'아재'들의 전성시대, 청년들의 절망시대
'아재'들의 전성시대, 청년들의 절망시대
[기고] 영포티에서 86세대까지, 아재들은 갖고 2030은 갖지 못한 것
2017.12.07 13:31:12
최근 화제가 되었던 영포티(Young Forty) 논란은 소비의 주도권을 쥐게 된 X세대와 관련이 깊다. 이미 '응답하라' 시리즈에서 보였던 X세대의 문화적 소비권력은 점점 미디어 전반으로 확장되고 있다. '중년 남자와 20대 여성'의 로맨스에 가장 큰 불만을 표출하는 건 '20대 여성'이었다. 이 20대 여성은 여전히 10년도 더 전에 규정되었던 '88만 원 세대' 혹은 'N포 세대'의 꼬리표를 이어받고 있는 세대다. 현재의 30대를 포함하여 20대에 이르기까지, 이 세대의 가장 큰 특징은 '가진 게 없다'는 점이다.

크게 봤을 때 대한민국의 권력 지형도는 586세대와 X세대로 나누어진다. 과거 386세대라 불리며 화려하게 사회의 중심에서 담론을 펼치던 이들은 이제 50대가 되었다. 이들은 새 정권의 출범과 더불어, 명실상부 우리나라에서 가장 정치적으로 강한 권력을 지닌 세대가 되었다. 반면, 40대에 접어든 X세대는 문화적으로 가장 큰 권력을 지니고 있다. 586세대가 정치를 선점했다면, X세대는 문화를 선점한 셈이다. 이들은 나란히 정치적·문화적·사회적 권력을 나눠가지면서 '아재들의 전성시대'를 누리고 있다.

얼마 전, <케이팝스타>를 보다가 한 청년이 울고, 감사하며, 머리를 조아리는 것을 보았다. 그 앞에는 이미 문화 권력을 선점한 아재들이 의기양양하게 청년들을 간택하거나 내치고 있었다. 논란이 되고 있는 드라마 <나의 아저씨>나 영화 <러브슬링> 등에서도 아재들은 20대와의 로맨스를 즐긴다. 그 외에도 교양과 예능이 결합된 '쇼양'인 <알쓸신잡>이나 <차이나는 클라스> 등에서도 주인공은 아재들이다. 이들은 청년들에게 지식이나 지혜를 베풀어주는 위치에 있다.

나이가 많은 이들이 여러 가지 권력을 포함하여 지식과 지혜까지도 풍요롭게 가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역사만 보더라도, 이는 그리 당연한 일은 아니었다. 이미 386 세대가 주목받았을 때, 그들은 청년으로서 민주화를 이루었고, 이후에는 대통령을 탄생시키며 시대의 '주역'에 있었다. X세대 역시 기성세대가 베풀어주는 문화를 누리기보다는, 자신들만의 문화를 창출하며 시대를 이끌어갔다.

그러나 윗세대가 이미 정치와 문화를 선점하고, 자본과 권력을 토대로 이를 공고히 하면서, 그 아래 세대가 가지게 된 것은 절망뿐이다. 이미 '아프니까 청춘이다'로 유명해진 세대, 그에 '아프면 환자지'라고 대답하는 세대, 다시 N포세대로 여전히 불리고 있는 세대와, 거기에 '포기도 선택'이라고 항변하는 욜로(YOLO) 세대는 모두 같은 세대다. 이 세대는 윗세대가 결정하는 사회에 살면서, 윗세대가 만든 문화를 소비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그저 정치적으로는 '절망과 포기'를 이따금 토로할 수밖에 없고, 문화적으로는 유튜브와 같은 1인 미디어에서 자신들의 영역을 만들어가고 있는 정도다.

이러한 세태가 궁극적으로 잘못된 것이어서, 반드시 뜯어고쳐야 하는 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적·문화적 현상 안에는, 이미 우리나라의 운명을 이야기하는 핵심적인 문제가 고스란히 들어있다. 이른바 '저출산·고령화'로 대변되는 인구절벽과 지방소멸 같은 문제는 청년의 절망, 위축, 포기와 떼려야 뗄 수 없기 때문이다. 청년들이 새로운 문화를 창출하는 데 차단되고, 사회와 정치에 새로운 피를 수혈시키지 못하는 나라의 미래는 결코 긍정적일 수 없다.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가야 할 청년들은 그러기도 전에, 생활고, 학자금 대출, 결혼과 출산 포기, 각자도생에 내몰리고 있다.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함 속에서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기성세대의 비위를 맞추고, 그들의 기준에 들어, 겨우 기성의 제도와 자본에 소속되는 것밖에 없다. '아재들'이 대변하는 요란한 볼거리 뒤에 숨죽이며 사그라드는 청년의 얼굴을 봐야 할 때다.

▲ 아재들은 문화 권력의 중심이 됐다. 2030은 아무 것도 갖지 못했다.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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