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청은 화해시키고, 치유하고 구원한다"
"경청은 화해시키고, 치유하고 구원한다"
[이야기 聽] ① '노인들의 이야기 집'을 꿈꾸며
2017.12.07 23:55:47
"경청은 화해시키고, 치유하고 구원한다"
화가 김정헌의 '이야기 청(聽)'을 2회에 걸쳐 게재합니다. 김정헌은 '경청'을 통해 노인들의 삶과 이야기에 주목할 것을 사회적으로 제안합니다. 그는 '서사적 인격'의 맥락에서 노인들의 이야기가 하나의 시대, 그리고 마을의 소중한 기록이자 역사임을 강조합니다. 나아가 그 경청의 주체로서 청년들을 등장시켜 세대 사이의 소통과 공감의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화가 김정헌이 젊은 예술가들과 함께 진행하고 있는 '이야기 청' 프로젝트로 독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편집자.

'이야기 청'은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담는 집이다.

나는 그동안 '이야기' 주위를 돌고 돌아 다시 이야기에 꽂혔다. 나 개인적으로도 어느 자리에서건 주로 듣는 경청자의 자세를 견지하려 노력해 왔다. 사실 50년에 이르는 나의 화업(畵業) 자체가 그림 자체를 시각언어로 담아내는 이야기로 생각하며 작업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실제로 젊은 예술가들과 '예술과 마을 네트워크'를 만들고, 몇 년 전 충북 제천 대전리의 폐교를 빌어 '마을 이야기 학교'를 만들어 주로 마을 노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활동을 한 바도 있다. 페이스북에 80여 회에 걸쳐 '나의 옛날이야기'를 실어 작년에 열린 내 전시회에 맞추어 <그림이야기-이야기그림>라는 자그마한 책을 내기까지 했다.

촛불 시민 혁명이 대선으로 어느 정도 갈무리 되어 갈 즈음 예전부터 벼르던 노인들의 이야기를 듣는 '이야기 청' 프로젝트를 다시 꺼내 들었다. 이 프로젝트는 거창한 것이 아니다. 단지 노인들의 살아온 이야기를 듣고 이를 젊은 예술가들이 자기의 작업으로 전환하는 일을 구상한 것이다. 노인들의 살아온 삶과 청년예술가들이 결합하는 공익적인 프로젝트인 셈이다.

이야기 청 활동은 지난봄 몇몇 젊은 예술가, 기획자, 활동가들과의 작은 모임으로 시작되었다. 노인들의 이야기와 예술 창작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 노인, 구술, 창작 등에 대한 자유로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보다 먼저 노인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작업을 해 온 구술 전문가, 노인 연구자 등을 초대하여 경험을 나누었다. 이 과정에서 이야기 청 활동은 서울문화재단과 성북문화재단과의 협력을 통해 사회적 프로젝트로 추진되었다. 그리하여 6개월여에 걸친 젊은 예술가들의 활동으로 서울시 성북구 성북동의 '선잠52'라는 대안공간에서 11월 17일부터 12월 10일까지 노인들과 작가들이 함께 만드는 워크숍과 전시가 진행되고 있다.

ⓒ 이야기 청


이야기 청을 제안하게 된 배경은 이렇다.

노령 인구가 급증하면서 종로 탑골공원 주위에는 할 일 없는 노인네들로 넘쳐흐른다. 내가 자주 이곳을 지나며 봐온 이 노인네 군단(?)이 '단순히 급식 정도의 복지정책으로 해결한다고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유지할 수 있을까?' 나는 항상 의문이었다. 국가나 지자체가 저마다 복지정책을 열심히 펼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기본적인 생계를 보장해주는 것 말고도 그들의 품위를 지켜줄 문화적 접근이 필요하지 않을까? 여기서 문화란, 자기의 삶을 성찰하고 되돌아봄으로서 생기는 일종의 자각이며, 자기 존엄이며 자기의 삶에 대한 자긍심이다. 결과적으로는 자기 치유인 셈이다.

노인네들은 누구나 기회만 있으면 자기가 살아온 삶에 대해서 말하기를 좋아 한다. 기회만 있으면 '발화(發話)'하고 싶어 한다. 그런데 많은 노인네들이 이처럼 하고 싶은 이야기들에 싸여있음에도 발화의 기회는 좀처럼 없다. 독거 노인네로 살거나 핵가족 시대에 젊은이나 가족으로부터 분리된 삶을 살아야만 하기 때문에 더욱 발화의 기회는 없다. 서울의 경우는 그 정도가 좀 심한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노인네들에게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젊은 사람이 있으면 그들은 그들의 살아온 삶을 '발화'함으로써 그들의 삶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 <행복이라는 말이 없는 나라>(한창훈 지음, 한단화 그림, 한겨레출판 펴냄) ⓒ한겨레출판

한창훈의 우화소설 <행복이라는 말이 없는 나라>(한단화 그림, 한겨레출판 펴냄)에는 '쿠니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집'이라는 내용이 있다. 여기서 쿠니는 공원에서 만난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발화'하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어준다. 단지 이야기를 들어주기만 한다.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반복되어 쿠니는 이야기를 들어주는 전문가가 된다. 그래서 쿠니는 '이야기를 들어주는 집'을 만든다. 여기에서 노인네들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쿠니에게 '발화'함으로써 자기의 삶에 활기를 얻고 자기들의 삶을 돌아보는 계기를 만든다.

7, 8년 전 나와 젊은 예술가들이 만든 '예술과 마을 네트워크'에서는 제천에 있는 대전리라는 마을에 폐교를 이용해 '마을 이야기 학교'를 만들고 몇 년간 이런 활동을 펼친 바 있다. 마을 노인들이 살아온 척박한 농촌마을에서 젊은 예술가들이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 주는 것으로 그들은 어느 정도 행복감과 자신감을 갖는 것을 실제로 목격한 바 있다(이는 마을 만들기 활동의 일환이었기 때문에 실제로 마을의 활력 증진에 이바지했는지는 의문이다).

또 다른 중요한 사례가 있다. 전문적인 연구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20세기 민중생활사 구술열전'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한국학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박현수 영남대 인류학과 교수의 주도로 100여 명의 연구교수와 연구원들에 의해 만들어진 프로젝트로 '20세기 민중생활사 연구단'이 그 주축이었다.

이는 근현대를 살아온 많은 이름 없는 민중들의 삶을 기록으로 남겨두려는 의도이기도 하다. 그들은 역사학에서는 취급되지 않는 수많은 민중들의 살아온 이야기에 주목했고 그들이 살아온 여러 자취들, 부엌살림 살이나 어린이 장난감 같은 생활 물증 등의 민속자료에서부터 개인이 간직해 온 사진과 서류 등 메모 형식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삶의 기록을 수집하고 채록했다.

그중에 가장 빛나는 성과가 6권짜리 <20세기 한국 민중의 구술 자서전>과 46권으로 펴낸 <한국민중구술열전>이다. 이들은 전국 각 지역에서 비교적 고르게 70세 이상의 노인들을 선정하고 한 사람의 연구원이 장시간에 걸쳐 면담과 구술 채록, 현장 방문으로 이 민중들의 구술 채록을 완성하였다. 여기에 수록된 노인네들은 민중들의 극히 일부분이지만 '이름 없는 개인의 역사를 사회의 역사 속으로, 또 사회의 역사를 개인의 역사 속으로 편입시키려는' 시도였다.

위에서 몇 가지 사례를 들었지만, 이름 없는 민중(노인네)들이 그들의 삶을 '이야기(발화)'하고 그것을 기록으로 남기는 일은 상당히 중요하다.

그들이 자기의 삶을 되돌아보고 기억을 끌어 올려 누구에게 이야기할 때, 그들에게는 자기의 잃어버렸던 존엄을 되찾는 일이 될 것이다. 또 누구에게는 잃어버린 감성을 되찾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김화영 옮김, 민음사 펴냄). ⓒ민음사

마르셀 프루스트가 어렸을 때 먹었던 마들렌 과자와 차 한 잔의 맛을 기억해 냄으로써 그는 저 유명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김화영 옮김, 민음사 펴냄)라는 긴 소설(전 6권)을 쓰게 되었듯이, 누구에게나 지나간 과거를 회상하거나 기억을 더듬는 일은 단순히 과거를 불러 드리는 일이 아니라 지금 잃어버린 감성을 되찾아 현재와 앞으로의 자기 인생을 다시 설계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이야기에는 '발화자(發話子)'가 있듯이 '수화(受話子)'도 있어야 한다. 즉 '듣는 이'가 있어야 한다. 노인네 발화의 수신자는 모든 사람이 대상이 될 수 있겠으나, 노인네들만큼 삶의 경험이 없는 20대나 30대의 젊은이일수록 좋다. 왜 젊은이여야 하는가? 대물림의 원칙이다. 즉 이야기는 과거와 현재를 거쳐 미래까지 대를 이어가기 때문이다.

<정의란 무엇인가>(김명철 옮김, 김선욱 감수, 와이즈베리 펴냄)에서 저자 마이클 샌델은 "모든 인간은 사회적 정체성을 가지는데 이는 고립된 한 인간의 삶이 아니라 과거로부터 앞으로 나아갈 미래까지 이야기(서사)의 한 부분"이라며 '서사적 인격'에 대해 말한 바 있다. 한 인간은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과거에서 다양한 빚, 유산, 적절한 기대와 의무를 물려받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한 인간의 권리와 의무는 그의 서사적 인격, 즉 대물림받은 이야기와 관련돼 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젊은 사람들은 노인네들의 다양한 삶의 경험을 들을 의무와 권리가 있고, 그들로부터 다양하게 살면서 느껴 온 감성을 물려받을 수 있다. 여기서는 단순히 이야기를 들어주기도 하지만 젊은이들이 현대의 여러 매체를 활용해 그들의 이야기와 여러 물증을 다양한 방법으로 기록할 수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수화자는 단순히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만을 뜻하지 않는다. 쉽지는 않겠지만 모든 이야기(발화된 말)는 듣는 것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철학자 한병철이 말한 대로 '경청(敬聽)'해야 한다.

▲ <모모>(미하엘 엔데 지음, 한미희 옮김, 비룡소 펴냄). ⓒ비룡소

한병철은 그 예로 미하엘 엔데의 <모모>(한미희 옮김, 비룡소 펴냄)를 사례로 든다. 모모는 단지 이야기를 경청함으로써 말하는 사람에게 기적을 일으킨다.

"그럴 때 … 상대는 자기 안에 있으리라고는 짐작도 하지 못했던 생각들이 갑자기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녀가 경청하면 혼란에 빠지거나 어찌할 줄 모르던 사람들도 갑자기 자기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 … 사람들은 말하는 도중에 이미 자기가 자신을 아주 잘못 생각했고, 정확하게 자신과 같은 사람은 세상에서 단 한 명뿐이고, 그래서 자신은 아주 특별한 방식으로 이 세상에서 중요한 인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모모는 이렇게 경청할 줄 알았다!"

"경청은 누구에게나 그에게 속한 것을 되돌려 준다. 경청은 화해시키고, 치유하고 구원한다"는 것이 한병철의 지론이다.

'노인들의 이야기 집'은 노인들 자기의 삶을 '발화'함으로써 자기의 삶에 대해 긍정적인 자부심을 갖게 하고, 이를 경청할 줄 아는 '젊은 예술가(경청자)'들로 하여금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과거로부터 미래로 이어진 서사적 인격을 갖게 하는 두 가지의 의미와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앞으로 '노인들의 이야기 집'이 전국 곳곳에 만들어져 노인들과 젊은이들이 세대를 뛰어넘어 만나고, 같이 이야기를 나누는 공동체적 사랑방이 만들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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