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도 고수 러시아 푸틴의 '평천하'
유도 고수 러시아 푸틴의 '평천하'
[유라시아 견문] 푸틴 : 유라시아 대장부
2017.12.10 20:55:45
유도 고수 러시아 푸틴의 '평천하'

1. 수신제가치국

푸틴을 두 번이나 두 눈으로 보았다. 처음은 상트페테르부르크, 다음은 블라디보스토크였다. 6월 서쪽에서는 국제경제포럼이 열렸고, 9월 동쪽에서는 동방경제포럼이 개최되었다. 먼저는 멀찍이서 지켜보았고, 나중에는 제법 가까이서 살펴보았다. 의외로 키가 작다. 170이 못되는 단신이다. 장신이 즐비한 러시아에서는 매우 작은 축에 속한다. 170 넘는 여자들도 수두룩하다. 말을 섞지는 못했다. 눈빛도 나누지 못했다. 두 차례 그는 몹시 분주했다. 나는 시종 한가했다. 행동거지를 지긋이 굽어볼 수 있었다. 다부진 몸에 몸짓에는 절도가 배였다. 하체는 단단하고 상체는 탄탄하다. 목도 손목도 꽤나 굵직하다. 타고난 통뼈이지 싶다.


태어난 후에도 몸을 갈고 닦았다. 11살부터 유도를 배운 것으로 유명하다. 지금도 집 안에 도장을 만들어 수련을 한다. 고단자, 유도의 고수이다. 전천후 스포츠 마니아, 올 그라운드 플레이어이기도 하다. 여름에는 수영과 사냥을 나가고, 겨울에는 아이스하키와 스키를 즐긴다. 곧잘 웃통도 벗어재낀다. 외부서는 힘자랑 한다며 꼬아본다. 근육질 몸매로 '강한 러시아’를 과시한다는 것이다. 현지에서 반년 가까이 살아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다. 아무 사내나 맨 몸 잘 깐다. 가슴 처지고 배 나온 이들도 태연히 벗는다. 특히 햇볕이 좋은 날에는 남녀 불문 훌러덩 벗어던진다. 실오라기 브래지어에 T-팬티만 걸치고 공원이나 강변에 드러누워 있는 여성들도 심심찮게 목격할 수 있다. 북반구 나라, 일조량이 적은 국가의 생활습성이라고 하는 편이 더 온당하지 싶다.

수신(修身)만 하지도 않는다. 마음도 다진다. 수도(修道)를 한다. 새벽에 일어나 맑은 정신으로 기도를 올린다. 술은 거의 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취할 정도로 마시지 않는다. 공식 만찬에서 입만 대고 목만 축이는 수준이다. 격물치지(格物致知), 이성의 연마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문/무를 겸비했다. 사상가에 값하는 면모를 갖춘 정치가이다. 동시대 국가 지도자들 가운데 가장 명석한 인물이지 않을까 싶다. 어벙하지 않다. 어버버 거리지 않는다. 공식 행사서도 원고 없이 연설한다. 탁월한 달변가이다. 기자회견서도 즉문에 즉답즉설한다. 술술술 막힘없이 풀어낸다. 허술함이라고는 없다. 민감한 사안에도 정연한 논리로 기자에 논박한다. 정기적인 '국민과의 대화'에서도 네다섯 시간이 넘도록 응수한다. 곤란한 질문에도 영리하고 능청스럽게 대응한다. 모든 사안을 장악하고 있을뿐더러 순발력까지 빼어나다. 애드립의 달인이다. 보면 볼수록 매력적이다. 알면 알수록 매혹적이다. 유투브 영상들을 보고 있노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든다. 나아가 학자들과 경연(經筵)을 펼치기도 한다. 매년 한 차례 발다이 클럽 행사가 열린다. 흑해 연안 푸틴의 별장으로 세계 각국의 러시아 전문가 50-60명을 초빙하여 끝장토론을 여는 것이다. 두 차례 참석한 일본의 러시아 연구자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경연에서도 조금도 밀리지 않는다는 후문이다. 학자 군주에 근접하다. 


▲ 상트페테르부르크 국제경제포럼에서의 푸틴. ⓒ이병한

▲ 블라디보스토크 동방경제포럼에서의 푸틴.ⓒ이병한


본래 총기 넘치는 청년이었다. KGB 정보장교 출신이다. 그 중에서도 최정예, 동독에서 근무했다. 지식을 치밀하게 다루고, 정보를 치열하게 다투었던 사람이다. 세계를 주물렀던 경험이 밑천이 되고 관록으로 쌓였다.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그날 밤을 잊지 못한다. 공산주의 체제를 무너뜨린 동독인들이 드레스덴의 KGB 건물을 에워쌌다. 푸틴은 모스크바에 긴급 구호를 요청하는 전화를 했다. 그러나 답이 없었다. 아무도 받지 않았다. 소련이 동독을 포기하는 순간이었다. 푸틴이 밤새도록 한 일은 기밀 서류들을 파쇄하는 것이었다. 유럽과 세계를 망라한 최고급 정보들을 대거 불태워버렸다. 


▲ 드레스덴 KGB 사무실. ⓒ이병한


털털 빈손으로 귀국했다. 붕괴된 조국에서는 서방의 만트라, 민주화와 시장화, 자유화가 울려 퍼졌다. 그가 목도한 신생 러시아는 재앙이었다. 북유럽과 중앙아시아와 흑해에서 영토를 상실했다. 두마 의원 자리를 쟁탈하기 위한 선거전은 추잡했다. 올리가르히의 부정부패는 하늘을 찔렀다. 실업과 물가 상승, 부채 증가, 빈부격차 확대, 혼란과 불안정의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결국 1998년 IMF 사태까지 치닫는다. '세계화의 덫'에 빠진 것이다. 경제정책, 내정을 간섭 당한다. 주권이 유린되었다. G2였던 소련은 졸지에 G8의 말석으로 수직 하강한다. 미국의 1/20, 중국의 1/5 수준으로 폭락했다. 푸틴은 모욕과 수치를 느꼈다. 자괴감과 참담함으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러시아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밤낮으로 공부하고 연구했다. 1999년 말 직접 논문을 발표한다. 흔히 '밀레니엄 논문'이라고 불린다. 여기서 표방한 것이 바로 국가자본주의와 주권민주주의이다. 이듬해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논문의 주장이 고스란히 정책으로 반영되었다. 사상가이자 정치가, 경세가이다. 호연지기가 차고 넘치는 북방의 대장부이다. 


집권 초기 적폐청산에 주력했다. 올리가르히 타도에 총력을 기울였다. 재차 러시아가 희랍세계의 후계자임을 강조해둔다. '올리가르히'(Олигархи)라는 말부터가 고대 그리스의 과두지배를 일컫는다. 소련기 '교조적 국유화'가 탈소련기 '교조적 민영화'로 이행하고 말았다. 국가 자산을 '자유화'함으로써 막대한 사적 이익을 취한 신흥계급이 올리가르히였다. 뻔뻔스럽게도 그들이 민주화를 이끄는 전위를 자임했다. 자유민주주의의 주역이자 주체였다. 여기에 맞서 푸틴이 주창한 것이 바로 '주권 민주주의'였다. 부르주아들을 국가 경영에서 몰아낸 것이다. 정/경 분리, 공/사 분리를 단행한 것이다. 그러나 서방과 결탁한 올리가르히의 힘은 여전히 막강했다. 2000년 첫 당선 당시 지지도가 5할에 그쳤다. 여차하면 '밤의 대통령'의 의지대로 풋내기를 교체해 버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정보요원으로 단련된 푸틴 또한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강골이다. 반골이다. 저항하는 자들에게는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해외로 추방시키거나 감옥에 처넣어버렸다. 약탈적 자본주의로부터 '강한 국가'를 재건해낸 것이다. 푸틴이 아니었다면 러시아는 유고슬라비아의 운명처럼 산산이 조각났을지 모른다. 혹은 우크라이나처럼 너덜너덜한 거버넌스로 전락했을지 모른다. 또는 걸프만 국가들처럼 자국의 지하자원을 서방의 독점기업들에게 헐값에 내다 팔아버렸을 것이다. 그 글로벌자본과 공생하는 기생정권이 나라를 좌지우지 했을 공산이 매우 높다. 적확한 진단이었다. 정확한 판단이었다. 정밀한 실천이었다. 전광석화 같은 되치기 기술이었다.

물론 과(過)가 없지 않다. 그러나 공(功)이 훨씬 더 크다. 상황에 즉하여 평하자면 공이 7이요, 과가 3이다. 푸틴식 주권민주가 옐친의 자유민주보다 더 공정하고 더욱 공평하며 더더욱 합당한 질서를 창출해내었다. 국민들도 화답하고 있다. 여전히 지지율이 8할을 오르내린다. 푸틴이 없으면 러시아도 없다고 여긴다. '잃어버린 10년', 1990년대의 악몽을 종식시켜준 '40대 기수'였다. 예순이 넘도록 해결사 푸틴을 거듭 지지하고 있다. 10년 난국을 타파하고 20년 치국(治國)에 이른 것이다. 권불십년이라고는 하지만, 10년은 되어야 비로소 강산도 바뀐다. 두 번의 10년, 산하를 재조해내었다. 러시아를 리셋(reset)했다.

▲ 브릭스 정상회담에서의 푸틴. ⓒwikipedia


2. 평천하(1) : 정교대국

1952년 10월 7일에 태어났다. 상트페테르부르크가 고향이다. 출생 당시에는 레닌그라드였다. 레닌그라드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다. KGB에 들어간 것은 1975년이다. 동독 근무를 비롯하여 15년을 일하고 1990년에 퇴직한다. 때마침 대학 시절 은사가 상트페테르부르크 시장이 되었다. 스승의 호출로 부시장을 역임한다. 주로 대외관계 업무를 맡았다. KGB 이력을 십분 살린 것이다. 모스크바에서도 그를 필요로 했다. KGB 후신으로 출범한 러시아 연방보안청 장관을 맡긴다. 총리에 오른 것은 1999년 8월이다. 무능했던 옐친의 유일한 업적이 푸틴을 후계자로 발탁한 것이다. 2000년 대통령에 당선된다. 40대 후반에 세계에서 가장 큰 나라의 지도자가 된 것이다. 대통령 직전 보안청 장관과 총리 시절 다루었던 사안이 바로 코소보 사태였다. NATO의 유고 공습이 단행된 것이 1999년이다. 베를린 장벽 붕괴 10년, 미국은 여전히 냉전적 태도를 그치지 않았다. NATO는 해산은커녕 도리어 동유럽까지 확대되었다. 맞대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세계화, 세계의 획일화, 지구의 미국화에 맞서 러시아를 사수했다. 


▲ 정교회 성탄절 미사의 푸틴. ⓒwikipedia


4년씩 두 번의 대통령 임기를 마치고 2008년 5월부터 총리가 된다. 대통령 시절보다 공식 행사가 덜했다. 한결 시간 여유가 생겼다. 다시 공부하고 연구한다. 특히 러시아의 철학서와 역사서를 탐독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학자들과도 교분을 쌓으며 돈독해졌다. 그래서 다듬어진 것이 '정교대국'이라는 발상이다. 본디 신자이기도 했다. 아버지는 공산당원이었다. 무신론이 당원의 의무였다. 그러나 아버지 눈을 피해 어머니를 통하여 세례를 받았다. 1993년 예수가 태어난 예루살렘에도 순례 간다. 동방정교의 총본산이라 할 수 있는 그리스의 아토스 수도원을 처음 방문한 것은 2005년이다. 9세기 이래 그리스 정교의 성지로 간주되는 곳이다. 무슬림들이 메카에 순례 가듯이 정교도 신자들이 순례 가는 장소이다. 그해부터 러시아-아토스 협회도 발족시켰다. 러시아를 그리스의 후예국가로 간주한다. 동로마, 비잔티움제국이야말로 그리스문명의 총화였다. 2012년 5월 대통령에 복귀한 직후에도 아토스 섬을 방문했다. 2016년에는 키릴 총주교와 동반 순례했다. 러시아인이 최초로 아토스에 입산한 10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내년에 다시 당선된다면 또 한 번 순례 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

▲ 푸틴이 매년 순례하는 그리스 아토스의 성지. ⓒ이병한


러시아 종교법이 흥미롭다. 크게 두 갈래로 나눈다. '전통적 종교'와 '비전통적 종교'이다. 전통적 종교가 정교만도 아니다. 정교와 이슬람, 불교와 유대교를 아우른다. 네 개의 종교가 조화를 이루어 러시아의 역사적 기층이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다문명세계를 아우르는 복합국가이다. 이 네 종단 대표들의 회합 기구가 정부 내에 설치되었다. 푸틴은 정례적으로 이 종단 대표들과도 환담한다. 내치와 외교는 불가분이다. 


▲ 소치에서 열린 시리아 평화회담에서의 푸틴-로하니-에르도안. ⓒyandex.ru


'종교 외교'가 커다란 수확을 거둔 것이 바로 시리아 내전이다. 얼마 전 소치에서 평화 회담이 열렸다. 러시아와 이란과 터키가 축이 되어 시리아의 안정을 되찾았다. 시리아의 인구 1할이 정교도이다. 원시 기독교가 유래한 땅이 바로 시리아이기도 하다. 미국의 '천주 없는 민주', '천민 민주'가 시리아를 대혼란으로 몰아넣었다면, '천주와 민주의 공진화'를 추구하는 러시아-터키-이란이 평천하의 논리를 구축해낸 것이다. 정교도의 보호라는 명분과 기독교의 성지가 있는 땅이라는 점을 매개로 러시아는 중동의 새로운 수호자로 등극하고 있다. 이슬람세계와 정교세계의 공존체제를 도모하는 것이다. NATO의 본부가 자리한 브뤼셀은 러시아의 중동 진출에 연신 경고음을 울린다. 그러나 교황이 자리한 바티칸은 시리아 내전 종식에 환영 성명을 발표한다. 바티칸이 브뤼셀보다 모스크바에 더 호의적인 것 또한 전례가 없던 일이다. 키릴 총주교와 프란치스코 교황의 만남, 천년만의 동서교회 화합이 즉효를 내고 있는 것이다. 푸틴이 표방하는 '정교대국 러시아'는 획기적일뿐더러 성공적이기까지 하다. 유라비아의 새판짜기, 서유라시아의 신천하를 추동해 간다.

▲ 종교 지도자들과 회동하는 푸틴. ⓒwikipedia


3. 평천하(2) : 대(大)유라시아

서유라시아의 대반전이 성/속의 재균형에서 비롯되었다면, 동유라시아에서는 동/서의 방향 전환을 꾀하고 있다. 20세기 후반기 내내 서쪽으로 치중하고 말았다. 후르시초프/브레즈네프 시대는 서구형 좌파가 주도했다. 고르바초프/옐친 시절에는 서구형 우파가 이끌었다. 동/서 이념대결, 로마의 영혼에만 편향되었던 것이다. 21세기 러시아는 몽골의 육체를 중시한다. 아시아로 눈을 돌려 몸을 깊이 섞는다. 본디 동쪽의 유목민들과 어울려 물질생활을 영위해왔던 나라이다. 분류 방법에 따라서는 100을 넘어 200을 헤아릴 만큼 소수민족도 다양하다. 유라시아의 만인들을 망라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용광로를 자랑한다. 동/서로는 대서양과 태평양을 접하고, 남/북으로는 북극해와 지중해를 잇는 규모이다. 대서양에서 태평양으로, 유럽에서 아시아로, 러시아의 축을 옮긴다. 러시아의 비대칭성, 불균형성을 타개하는 방편이기도 하다. 인구의 8할은 서쪽에, 자원의 8할은 동쪽에 있다. 내부의 '지방균형발전'이자, 세계 권력의 재균형 정책이다. 이 안/밖의 공진화로 러시아는 스스로를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재인식하고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어둠이 깔려도 블라디보스토크에서는 태양이 떠오른다. 하바롭스크에서 해가 져도 모스크바에서는 중천에 해가 떠 있다.


구미(歐美)에서 유라시아(歐亞)로 세계사의 축이 전환됨을 일찍이 꿰뚫어 보았다. 1999년 '밀레니엄 논문'에서부터 러시아를 '아시아 국가', '태평양 국가'로 전변시켜야 한다고 역설했다. 2000년 집권과 더불어 곧장 평양을 방문했다. 20세기 소련과 러시아의 최고 수뇌부 누구도 북조선을 찾지 않았다. 레닌도 스탈린도 고르바초프도 옐친도 마다했다. 러시아 지도자로서 최초로 평양을 방문한 이가 푸틴이었다. 그만큼 한반도 및 (동)아시아를 중시한다. 바로 그해 최초의 남북정상회담과 6.15 공동선언이 발표된 것과 무연치 않을 것이다. 2001년에는 중국을 방문하여 당시 장쩌민 주석과 회동했다. 20세기 내내 풀리지 않았던 양 대국간 4300km 세계 최장의 국경선 획정 작업을 마무리 지은 것이 2004년이다. 반도의 남/북과 대륙의 남/북을 아울러 동유라시아 신천하의 밑그림을 다진 것이다. 아시아 국가로서의 러시아, '탈구입아'(脫毆入亞) 선언이라고도 하겠다. 


▲ 시베리아 투바 공화국에서의 푸틴. ⓒwikipedia


2012년 대통령 직에 복귀하면서 '아시아로의 축의 이동'에 더욱 박차를 가한다. 취임 일성으로 '장기적 국민경제정책에 대하여'를 직접 발표하며 시베리아와 극동 개발을 본격화했다. 극동발전성이라는 별도의 부처까지 출범시켜 동시베리아에 국운을 건다. 미국의 서부개척, 중국의 서부대개발에 견줄만한 러시아의 동시베리아 개척, 동부대개발이다. 2016년에는 '대유라시아 파트너십'이라는 어휘까지 등장했다. 대서양에서 미국과 멀어지고 있는 유럽과 러시아가 재조하는 서유라시아, 태평양에서 아시아와 러시아가 주도하는 동유라시아를 합류시켜, 구대륙의 신질서를 구축해낸다는 것이다. 20세기 환대서양과 환태평양을 끊어내고, 21세기 대유라시아 연합으로 반전시키는, 담대하고 원대하며 으리으리한 구상이다. 


고로 푸틴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는 정책에 그치지 않는다. 국책이다. 아니 '국시'(國是)에 더 값한다. 21세기 푸틴은 18세기 표토르에 맞먹는 지도자로 기억될 것이다. 다만 방향이 전혀 다르다. 18세기형 서구화와 세속화, 적폐를 청산한다. 탈서구화와 탈세속화, 새천년 새천하에 조응하는 오래된 러시아='유라시아 정교대국'을 중흥시킨다. 현재 러시아연방공화국은 1992년 5월에 들어선 신생국가이다. 겨우 25년 지났을 뿐이다. 2000년 푸틴의 등장으로 비로소 제대로 된 건국에 들어섰다고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차르'라는 진부한 수사보다는 '국부'(國父)라는 호칭이 더욱 어울린다.

4. 업어치기

유도(柔道)는 레슬링이나 씨름과 달리 힘 싸움이 아니다. 주먹질과 발차기로 직접적인 타격을 가하지도 않는다. 내 힘이 모자랄지언정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연마하는 무술이다. 공격해오는 상대의 힘을 역이용하는 되치기, 낚아채기, 반전의 기술을 훈련한다. 그래서 단신이 장신을, 작은 사람이 큰 사람을, 무게가 덜 한 사람이 더 한 사람을 매칠 수도 있다. 업어치기 한판승, 일순의 역전이 가능하다는 점이 유도의 묘미, 백미이다. 효과, 유효, 절반 등 누적된 점수만으로 승부가 갈리지 않는다. 신사적인 무예이자, 역동적인 스포츠이다. 


▲유도하는 푸틴. ⓒyandex.ru


유도 고단자 푸틴이 추구하는 바도 러시아를 왕년의 소련과 같은 초강대국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힘 대 힘, 맞대결을 추구하지 않는다. 강 대 강, 군비경쟁에 함몰됨으로써 소련이 자멸해버린 실패의 과정을 철두철미 복기해 두었다. 양극체제의 우두머리보다는 다극체제의 일각이 되는 쪽을 원한다. 응당 협력과 통합을 방편으로 삼고 있다. 유럽에서는 메르켈의 독일과 협력하고, 중동에서는 터키의 에르도안과 이란의 로하니와 협동한다. 중국과는 동맹에 버금가는 협조를 구하는 반면으로, 인도와 일본과도 보조를 맞추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요는 임기응변, 주먹구구식이 아니라는 점이다. 초지일관, 대유라시아연합을 통해 미국 일극 패권체제를 타파한다는 또렷하고 뚜렷한 목표를 세웠다. 2018년부터 다시 6년, 흔들림 없이 밀고나갈 것이다. 2024년 임기 말이면 구대륙이 선도하는 천하대세가 더욱 확연해져 있을 것이다. 22세기의 역사가들은 21세기의 첫 사반세기를 오롯이 '푸틴의 시대'로 기록할지 모른다.

그만큼 구상력이 빼어나다. 새로운 세계를 전망하고, 새로운 세기를 기획하는 디자인 능력이 뛰어나다. 다른 역사와 다른 미래를 공진화시킨다. 동로마-북로마의 계승자로서 러시아를 정초 짓고, 미래를 재설계하며 지구를 리모델링하는 것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공상에서 상상이 비롯되는 것도 아닐 터이다. 상상의 근저에는 사상이 자리한다. 상상력은 사상의 힘에 근거한다. 사상가를 만날 차례가 되었다. 21세기 신 유라시아주의 운동의 기수이자 정수, 알렉산드르 두긴을 만났다. '푸틴의 브레인'으로도 곧잘 회자된다. 그와의 대화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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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소개
동아시아 현대사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지만, 논문보다는 잡문 쓰기를 좋아한다. 역사가이자 언론인으로 활약했던 박은식과 신채호를 역할 모델로 삼는다. 뉴미디어에 동방 고전을 얹어 아시아 르네상스를 일으키는 'Digital-東學' 운동을 궁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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