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학교, 중간 결산 보고서가 나왔다
혁신학교, 중간 결산 보고서가 나왔다
[프레시안 books] <혁신학교, 한국 교육의 미래를 열다>
혁신학교, 중간 결산 보고서가 나왔다

혁신학교의 오늘은 한국 교육의 내일이다. 전국 1200여 개에 이르는 혁신학교에서 거대한 에너지가 꿈틀거린다. 수업을 바꾸고, 교육과정을 재구성하고, 학교문화를 전환하려는 자발적 열정이 넘친다. 10여 년 전, 폐교 위기에 처한 시골의 작은 학교에서 시작된 혁신학교는 관행과 편견, 법률과 제도의 제약, 문화적 오해와 이념적 공격에도 불구하고 계속 성장했다. 작은 학교의 한 차례 실험으로 끝날 수 있었던 혁신학교는 농촌에서 도시로, 소규모에서 대규모 학교로, 초등학교에서 중·고등학교로 확대되었고 이제는 우리나라 학교 개혁 운동의 대명사가 되었다.


혁신학교에 대해 긍정적인 시선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서울 양천구의 한 고등학교는 교직원들이 2018학년도 혁신학교 지정을 신청하기로 의견을 모았으나 학교운영위원회에서 학부모위원들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동아일보>와 고려대 정부학연구소, 한국리서치가 실시한 '2017 대한민국 정책평가'는 40개 국가 정책 중 '혁신학교 운영 확대 정책'이 최하위(40위)라고 발표했다(<동아일보> 2017년 12월 18일자). 경쟁사회의 현실을 도외시하고 이상만 추구하는 몽상가들의 교육실험이라는 불안감, 좌파들의 학교 장악이라는 정치 선전이 여전히 힘을 발휘한다. 혁신학교가 지금 걷는 길은 꽃밭이 아니라 가시밭이고 지뢰밭이다.

그런데 혁신학교가 한국 교육의 미래를 열었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이들이 새롭게 책을 펴냈다. <혁신학교, 한국 교육의 미래를 열다>가 그것. 책을 엮은 송순재 전 감리교신학대학교 교수는 1990년대부터 우리나라 대안교육과 혁신학교 운동의 멘토 역할을 해 왔다. 그 외 15인의 저자는 혁신학교 현장에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토론하고 실천하며 이론을 정립했다. 그리고 다시 실천하며 수정하기를 반복한 혁신교육의 전략가이자 각 분야의 야전사령관들이다. 그 동안 혁신학교 관련 책은 수없이 많이 나왔다. 각 학교 운영 사례와 각론의 실천 방법론은 수백 권이다. 그런데 이 책은 기존 도서를 총괄하며 혁신학교 운동의 이론과 실천을 종합하였다. 다음 단계 도약을 위한 발판으로 삼으려는 의도를 엿볼 수 있다.

▲ <혁신학교, 한국 교육의 미래를 열다> ⓒ살림터

혁신학교를 교육정책으로 도입한 때는 2009년 9월이다. 전국 첫 직선 1기 교육감인 김상곤의 공교육 정상화 정책이었다. 이때는 말조차 생소했다. 심지어 정책을 집행하는 사람들조차 서로 다른 의미로 용어를 사용했다. 그런데 직선 2기(2010년~2014년)에 6개 시·도 지역으로 확산되면서 그 영향력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공교육 안팎에서 수십 년 동안 펼쳐진 새로운학교운동, 대안교육운동, 작은학교운동, 참교육운동의 힘이 혁신학교로 모아졌다. 총론과 각론, 이론과 실천이 상호작용하고 융합되었다. 그 잠재력은 공교육을 근본적으로 혁신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나타났다. 급기야 직선교육감 3기(2014년~2018년) 혁신학교는 전국으로 확산되었고 지금은 그 숫자가 1154개 학교에 이른다.

2017년, 문재인 정부가 탄생했고 혁신학교 정책을 처음 만들었던 교육감 김상곤은 교육부 장관이 되었다. 이제 혁신학교는 더 이상 실험학교나 선도학교여서는 안된다. 혁신학교를 확대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법과 제도를 바꾸어 혁신학교 성과를 한국교육의 보편 원리로 정착시킬 과제가 김상곤 앞에 놓인 셈이다. 그렇기에 이 책의 가치가 빛난다. 혁신학교 운동의 역사와 철학, 민주적 행정과 리더십, 지역 협력과 공동체 문화, 혁신학교 교육과정-수업-평가 원리와 방법론을 개괄했다. 각론으로서 독서와 삶을 가꾸는 글쓰기, 문화·예술·체육의 의미, 연극과 노작 수업 사례 등도 담았다. 우리나라 혁신교육의 사상적 두 스승 성래운과 이오덕의 교육론, 아울러 독일 헬레네랑에슐레, 덴마크 자유교육, 발도르프, 프레네, 일본 배움의 공동체 등 외국 혁신교육 사례까지 다양하게 소개했다. 가히 혁신학교 이론과 실천의 중간결산 보고서라 할 수 있다.


해방 이후 우리는 쉼없이 달려왔다. 교육은 경제와 안보를 뒷받침하며 양적으로 팽창했다. 교육은 자본의 요구에 부응하여 산업인력을 충실히 공급했고, 개인은 교육을 통해 직업 경쟁력을 획득했다. 교육과정의 중심은 학생이 아니었다. 국가가 필요로 하는 객관적 지식을 구조화하여 교육과정을 만들었고, 학교는 훈육과 통제를 통해 일방적으로 전수하고 평가하여 서열을 매겼다. 권위주의, 행정주의, 관료주의를 앞세울 때 더 효율적이었다. 진학률 문맹률 취업률 같은 양적 척도에 성과가 있었다. 그러나 학생은 병들었다. 학생 각자의 흥미와 능력 그리고 필요와 상관없이 주입되는 교육과정은 다수 학생을 소외시켰다. 인권과 민주주의는 교육의 본질도 원리도 방법도 아닌 지식일 뿐이었다. 산업 환경이 변하고 근면 성실 인내보다 비판적 사고, 의사소통, 협업, 창의력 같은 미래핵심역량이 중요해졌다. 그러나 학교는 쉽게 변하지 않았다. 치열한 경쟁, 폭력과 무기력이 여전하다.

교육의 정당성은 학생 삶에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키는가에 맞추어 판단해야 한다. 학생 특성에 맞는 교육과정 재구성, 스스로 탐구하고 참여하는 수업, 서열화가 아니라 학생 성장에 도움을 주는 수단으로서의 평가, 이 세 가지는 모든 교육정책과 행정의 평가기준이 되어야 한다. 세계의 모든 교육개혁과 혁신학교는 학생의 배움과 성장이 이루어지는 조건으로 교육과정-수업-평가가 위와 같이 혁신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소통과 협력의 학교문화는 학생 성장을 위한 수업혁신에 가장 최적화된 환경이다. 자치와 인권은 교육이 배양되는 토양이다. 권위적 교장 승진제도를 개혁하여 학교를 민주적으로 운영하는 것은 학교를 바꾸는 기본이다. 최근 입시제도와 고교학점제 같은 큰 정책을 두고 갑론을박을 한다. 이 또한 큰 방향은 초·중등 교육과정-수업-평가에 미치는 영향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600여 페이지에 이르는 이 책을 읽는 내내 들었던 의문이 있다. 전국 1200여 혁신학교 중에 사립학교는 거의 없다. 공립학교만의 개혁이고 잔치다. 대안교육 운동 초기만 하더라도 사립은 공립보다 더 혁신적이었다. 그런데 왜 지금 사립은 낡은 교육방식과 가치를 고집할까? 지난 정부에서 역사 국정교과서 채택에 앞장섰던 학교는 모두가 사립이다. 자사고를 비롯해 낡은 경쟁교육 모델에 집착하는 학교들도 대부분 사립이다. 심지어 인권침해나 성희롱 발생 빈도 또한 사립이 월등하다. 사립은 여전히 보충수업 자율학습 강하게 시켜서 명문대 진학률을 높이기 경쟁에 몰두하는 경우가 많다.

왜 사립은 시대 변화를 선도하지 못하고 걸림돌로 전락했는가? 그 이유는 사학법인과 사립학교의 비민주적 구조가 교육주체의 열정과 집단지성의 발현을 억압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교육개혁과 학교혁신은 민주적 리더십 그리고 소통과 협력의 문화적 토대 위에서만 가능하다. 그런데 사립학교 이사회의 권한과 구조는 이를 어렵게 한다. 우리나라 초·중·고의 절반은 사립학교다. 절반을 포기한 채 학교혁신이 가능할까? 공·사립 구분없는 전체 학교의 혁신 없이 일부의 혁신학교로 교육을 바꾸겠다는 것은 몽상이다. 사립학교를 민주화 시키는 일이야말로 결국은 혁신학교로 한국 교육의 미래를 여는 일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필자는 이 책을 혁신학교 중간결산 보고서라고 불렀다. 그 이유는 이 책이 어떤 문제에도 정답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독자들이 각자의 현장에서 끊임없이 연구하고 실천하라는 말을 할 뿐이다. 그렇지만 이 책을 읽기 전과 후에 바라보는 교육은 많이 다르다. 꼬이고 얽힌 교육 문제를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고 실천할 것인지를 말해주기 때문이다. 교육을 실천하는 교사와 행정가는 물론이고 바람직한 자녀 교육을 원하는 학부모 그리고 더 나은 미래를 열망하는 시민이라면 누구나 읽어봐야 할 책이다. 혁신학교가 한국 교육의 미래를 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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