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다
남북관계,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다
[정욱식 칼럼] 한반도 국면 전환? 들뜨지 말고 차분하게 가야
2018년 우리에겐 두 가지 '반전'이 절실하다. 하나는 전쟁만은 안 된다는 반전(反戰)이다. 요즘 나라 안팎에선 한반도 전쟁 가능성이 몇 퍼센트냐를 두고 확률 게임이 유행할 정도로 전쟁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또 하나는 국면 전환이 절박하다는 반전(反轉)이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했던 한반도 드라마는 어느덧 반전이 사라지고 막장으로 치달아왔다.

이 두 가지 반전을 도모할 수 있는 유력한 기회가 바로 평창 동계올림픽과 패럴림픽이다. 여러 차례 무기력을 호소했던 문재인 정부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평창의 잠재적 가치를 주목해왔다. 연말에 문 대통령이 한미 군사훈련 연기를 공론화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새해 들자마자 북한이 호응하고 나섰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1월 1일 신년사를 통해 평창 대회 참가 및 남북 대화, 그리고 군사적 긴장 완화 의지를 강력히 피력하고 나선 것이다.

김정은의 신년사는 적어도 북한 자체적으로는 상당한 구속력이 있다. 앞으로 남북관계와 북미관계를 비롯한 관계의 상호작용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불확실한 측면이 있지만, 북한이 국면 전환을 모색하고 나선 것은 분명 환영할 만한 일이다.

물론 여기에는 유감스럽고 또한 불안한 부분도 있다. 북한은 "국가 핵무력 건설 완성" 선언을 통해 국면 전환을 도모하고 있다. 이는 한반도 비핵화에 역행할 뿐만 아니라 한미 갈등과 남남 갈등을 야기할 소지마저 있다. 또한 북한이 비핵화를 계속 거부할 경우 남북 관계도 전면적인 개선보다는 부분적인 개선에 머물 공산이 크다.

하지만 북한이 신년사를 통해 비핵화를 선언할 것이라곤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다. 오히려 "핵무력 완성"을 공식화하면서 병진 노선의 또 다른 축인 경제발전과 이에 필요한 대외 환경 조성에 방점을 찍을 것이라는 예측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리고 김정은의 신년사는 이러한 예측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하여 최선이 아니라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크게 세 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비핵화는 포기할 수 없는 목표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단기간에 이룰 수 없다는 점 역시 분명하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그래서 전쟁 방지는 과거보다 훨씬 절실해졌고, 이에 따라 위기관리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남북관계를 핵문제에 전적으로 종속시키기에는 남북한에 풀어야 할 사안들이 너무나도 많다는 것이다.

이들 세 가지 문제는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는 점에서 고도의 전략을 요한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선순환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상호 조율된 조치를 추구하면서도 남북관계의 독자적인 영역도 꾸준히 회복할 수 있는 접근이 필요한 것이다.

먼저 핵 문제는 '과정으로서의 비핵화'를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선 상응 조치도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가령 북한의 핵과 미사일 시험 중단에 대한 상응 조치로 한미군사훈련의 축소와 민생과 직결된 대북 제재 완화 등이 검토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비핵화를 전제로 한 북핵 동결과 한반도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는 문제도 공론화될 필요가 있다.

평화협정에 한반도 비핵화, 혹은 비핵화보다 국제법적 구속력이 높고 핵보유국의 의무도 명시한 비핵지대를 명문화할 경우, 평화협정이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하는 것이라는 우려도 상당 부분 예방할 수 있다.

이러한 조치들은 우리에게 최선의 국익이라고 할 수 있는 비핵화의 희망을 되살리고 최악의 결과라고 할 수 있는 전쟁을 예방하는 데에 큰 기여를 할 수 있다. 시급한 위기관리와 장기적인 비핵화, 그리고 남북관계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유력한 접근법인 셈이다.

남북한 정부가 모처럼 통(通)하면서 남북관계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적폐가 남북관계에도 쌓일 대로 쌓여 있고, 북핵 문제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결의, 그리고 남북관계의 상당 부분마저 구조적으로도 연계된 현실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남북관계의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해나가면서 완전한 정상화와 발전을 기약할 수 있는 국제적 공감대 형성에 주력할 필요가 있다.

독자적인 영역에는 평창 대회를 비롯한 스포츠 교류, 단절된 소통망 재개, 민간 교류협력과 이산가족 상봉을 비롯한 인도적 사업, 그리고 이들을 포괄할 남북 대화 재개와 정례화 등이 있을 수 있다. 정부는 이들 사업을 하나둘씩 정상화하면서 개선된 남북관계를 지렛대로 삼아 북미·북일 대화 중재 및 6자회담 재개 등 국제 공조에도 심혈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특히 대북 제재 완화 및 해제 로드맵을 세우는 것이 북핵 해결 진전은 물론이고 남북한 경제협력 및 북방경제 활성화의 관건이라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유엔의 대북 제재와 미국의 독자 제재 해제의 완화 및 해제 없이는 남북경협을 본격적으로 재개하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한국 독자적으로 이들 제재를 해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향후 문재인 정부의 가장 큰 딜레마이자 숙제가 바로 이 지점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첫 술에 배부를 수도 없고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이다. 동시에 시작이 반이라는 말도 있다. 이 역설의 공간이 바로 평창이다. 모쪼록 평창 동계올림픽이 일시적 평화를 넘어 영구 평화의 초석을 다지는 계기가 되기를 간절히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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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소개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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