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서 겨울로, 안데스를 지나다
여름에서 겨울로, 안데스를 지나다
[이동석의 세계를 달린다 ③] 안데스를 넘으며 (상)
2018.01.13 13:55:52
1987년 10월 12일 저녁 7시 45분. 세상사에 관심 있는 사람들의 눈이 KBS 1TV로 향했다. KBS가 야심차게 만든 교양 프로그램 <세계를 달린다> 제1편이 방송된 순간이다. 

당시까지 한국은 세계로부터 고립된 섬이었다. 한국인은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보지 못했다. 미국의 시선, 일본의 시선, 유럽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봤다. 당시 <세계를 달린다>는 직접 우리의 눈으로 '무엇이 그 나라를 번영케 하고, 무엇이 그 민족을 활기차게 하는가.' '겉으로 활기있고 번영한 나라에는 무엇이 아킬레스 건인가.' '외국인이 쓴 책으로 읽고, 외국인이 만든 프로그램으로만 보아왔던 세계는 진정한 세계인가.'라는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KBS가 야심차게 제작한 프로그램이었다. 

<프레시안>에 옛 일제의 만행을 되새기게끔 하는 취재 일기를 여러 차례 연재한 이동석 PD가 <세계를 달린다> 프로젝트의 선구자였다. 당시 이 PD팀은 현대자동차의 지원을 받아 국산차 석 대와 취재팀 9명으로 구성된 인원으로 남미 대륙으로 무작정 건너가, 우리 눈으로 바라본 남미 대륙의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줬다. 

이 PD의 당시 여행담을 총 열 차례에 걸쳐 싣는다. 이제는 세계의 품에 안긴 지금 우리의 시각으로는 이해하기 힘들 법한 에피소드도 눈에 띌 것이다. 그러나, 1987년 한국은 영화 <1987>에서 보듯, 지금과는 다른 체제였다. 아직 소련과 중공이 건재했다. 냉전의 한가운데에서 북한은 여러 차례에 걸쳐 한국에 실질적 테러를 감행한 위험국가였다. 노태우 정권의 북방정책이 펼쳐지기 전이었고, 한국인의 외국 여행은 규제되었다. 고립된 섬에서 출발한 이들이 드넓은 세상을 마주하던 시대를 그린 여행기이자, 누구보다 먼저 큰 지구를 경험한 이들의 여행담을 독자 여러분께 전달하고자 이 기획을 정리했다. 편집자.

국경 바릴로체에 도착한 때는 점심을 막 지난 시간이었다. 새벽부터 죽어라 달려왔지만 겨우 이 시간이었다. 그 높은 안데스산맥을 넘자면 무슨 일을 당할지 몰라 어두워지기 전에 산위를 조금이라도 더 올라야 했으므로, 그야말로 촌음을 아껴 달려왔다. 아르헨티나 출국세관을 지나면 바로 칠레 입국세관이었지만, 통관이 그리 만만치 않았다. 필요한 완벽한 서류와 통관 편의 제공을 당부한 그들 나라 정부 요인의 특별한 서한을 지참했음에도 십여 명에 이르는 이 나라 관리들에게 하나하나 머리를 조아리며 국경선을 넘어가면, 저 나라 세관에서도 십여 명 관리들 하나하나에 미소를 지으며 굽신거려야 차량이 겨우 선을 넘을 수 있었다. 그러자니 조급한 우리들의 마음은 아랑곳없이 해는 곧 안데스 산봉우리에 닿을 것 같았다. 

이제부터 이 대륙에 도착해서 처음 겪는 도전이 시작된다. 올라 본 일도 없는 안데스 산길을, 그것도 밤을 도와 달려야 하고 어디에서 무엇을 먹어야 하는지, 어디에서 차량에 기름을 넣어야 하는지도 모를 야간주행을 해야 한다. 제작진 모두의 얼굴에 긴장감이 서렸다. 경험 많고 직업의식 투철한 촬영기자(카메라맨) 백승대 씨는 1호차 천정의 선루프를 열고 지붕위에 카메라를 장착했다. 안데스산맥 진입부터 트레킹(차에서 달리며 촬영하는 기법)을 하겠다는 것이다. 국경마을에서 얼마를 오르자 산길은 벌써 비포장으로 변했다. 지금부터 털털거리며 해발 3천 미터가 넘는 저 산을 넘어 칠레의 오소르노에 도착해야 했다. 

▲ 안데스 산


처음은 여름이었다. 국경이 있는 안데스 산기슭은 여름처럼 무더웠으나, 올라갈수록 기온이 떨어졌다. 가벼운 점퍼를 입었다. 오가는 차량은 전혀 없었다. <세계를 달린다>라는 스티커를 붙인 유랑극단 같은 세 대의 취재차량 외에 움직이는 것은 없었다. 어디선가 쩍쩍하고 무엇이 갈라지는 날카로운 소리가 들렸다. 어렸을 때 추운 겨울날에 들었던 얼음 갈라지는 그 소리! 우리들은 어느덧 얼어붙은 호숫가 옆을 지나가고 있었다. 반팔 티셔츠를 긴팔로 갈아입고, 그 위에 다시 점퍼를 입었다. 

서서히 어둠이 깔렸다. 위로 오를수록 길은 질퍽거렸다. 밤에는 얼고 낮에는 녹기를 반복해서다. 질퍽거리는 길은 지금부터 다시 얼기 시작할 것이었다. 나는 워키토키를 들고 2, 3호차를 호출했다. 

"길이 얼어붙기 시작합니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조심운전 바랍니다!"

어련할까. 2, 3호차의 핸들은 국제기능올림픽 정비부문 금메달리스트들이 잡고 있는데. 그러나 내 말에는 졸지 말고 운전하기 바란다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그만큼 모두들 지쳐 있었다. 운전자 말고는 모두 잠을 잘 것이다. 졸음을 쫒아 주려고 우리 차 최 팀장에게 말을 걸었다. 

"며칠 있으면 두 달이네. 안데스 넘어서 이제 서쪽 해안으로 쭉 달려 베네수엘라까지 올라가면 끝나니까 잘 견뎌보세. 어때, 나라마다 사람 사는 게 많이 다르지?"

최창만 팀장은 사려가 깊은 사람이다. 말수는 적지만 한마디 한마디에 의미가 담겨 있었다. 하기야 30만 명의 임직원을 가진 현대자동차에서도 엄선해서 이 프로젝트에 참여케 한 세 사람의 에이스 중 하나니, 기술은 물론 품성과 교양미에도 남다름이 있었다.

"이 PD님, 이 친구들 한심하지 않습니까? 이 엄청난 자연의 혜택을 받고 살면서 겨우 이 모양으로 산다니요. 한 가지 예를 들면 말입니다, 이 친구들 보니까 직장에서도 점심식사 시간이 대충 두 세 시간이더군요. 처음에 채소 먹고, 먹으며 이야기하고, 천천히 포도주 마시며 이야기하고, 메인 디시 먹으며 수다 떨고, 다 먹고 나서 커피마시고, 마시며 깔깔거리고... 그렇게 그 소중한 낮 두 세 시간을 허비해버리고 언제 일 하겠습니까? 그러니 사는 게 맨날 이 모양이겠지요. 우린 말입니다. 회사 점심시간이 정확히 한 시간입니다. 그 한 시간을 어떻게 쓰냐하면요, 10분 동안에 빠른 속도로 밥을 먹습니다. 그리고 뛰어나가 20분 동안 불꽃 튀게 족구를 합니다. 아직 30분 남죠? 10분 동안 샤워합니다. 그리고 20분 동안 낮잠을 자죠. 그리고 다시 현장에 가서 일합니다. 우리나라가 이만큼이라도 살게 된 것이 이런 근면한 자세 덕분 아니겠습니까? 이 친구들 정말 한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잘 봤네. 그런 이야기하자고 이 프로그램 만드는 거야. 무엇이 조국과 민족의 장래를 결정하는가, 그걸 알아내자는 것이지. 지금 이야기한 것처럼 여기 와서 직접 보고 느낀 그런 점들을 진솔하게 모아 보자는 거야."

꼭 한마디를 덧붙이고 싶었으나 지금의 분위기는 그게 아니었다. 삶의 질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어느 쪽이 우세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 한마디를 꿀꺽 삼키고 말았다. 완전히 어두워졌다. 스치는 나무도 없었고, 좌우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저 언제 지나갔는지 모르는 자동차 바퀴 자국만 앞으로 길게 뻗어나 있었다. 워키토키를 들었다. 

"2, 3호차! 지금부터 정신 차려야 됩니다. 아무것도 안 보여요. 졸지 말고 1호차 바퀴자국만 따라와야 합니다. 조금이라도 옆으로 삐져나가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요. 알았으면 응답하세요?"
"...알겠습니다."
"3호차는 왜 응답이 없나요? 조는 거 아닙니까?"
"...아닙니다. 다 듣고 있습니다. 바퀴자국만 따라가겠습니다."
"가끔씩 서로 신호 보냅시다. 깜깜하니까 뒤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 알 수가 없어요. 최 팀장, 우리도 저 바퀴자국만 똑바로 따라갑시다. 믿을 건 저 바퀴자국밖에 없겠네요."

솔직히 나도 졸렸다. 카스테레오에 카세트테이프를 꽂았다. MP3는커녕, 아직 CD도 나오지 않은 시절이었다. 서울에서 특별히 주문해서 녹음해온 노래들이었다. '산모퉁이 바로 돌아 송악사 있거늘, 무얼 그리 갈래갈래 깊은 산골 헤매냐...' 그 밤길 분위기에 딱 어울리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나도 졸음을 쫒아야 했고, 핸들을 잡은 최 팀장의 졸음도 쫒아야 했다. 심심파적으로 무슨 말이든 해야 했다. 

"창만 씨, 라디오에서 들은 이야기 해줄까? 가수가 꿈인 어떤 예쁜 처녀가 있었대. 연습할 곳이 마땅찮았던지 전국의 산과 바다를 혼자 돌아다니며 노래연습을 하다가, 어느 날 바닷가의 한 여인숙에 들렀대. 형편이 여의치 않으니 여관이 아니라 여인숙에 들었겠지. 처녀가 방에 들어가서 어떤 노래를 열심히 부르고 있었나봐. 그런데 어느 순간에 옆방에서 자기 노래에 맞춰 기타반주가 울리더래. 왜 그렇잖아, 여인숙은 벽이 얇아서 방음이 안 되지. 아무튼 노래를 마치고 나니까 벽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며 남자 목소리가 들리더래. ‘누구신지 모르지만 노래를 참 잘 하시네요. 마루에서 좀 볼 수 있을까요?’ 그래서 두 사람은 마루에서 만났다는군. 남자가 하는 말이 자기는 중 되려고 결심하고서 실컷 노래나 하고 입산할 요량으로 기타 하나만 들고 산과 바다를 돌아다니며 노래를 부르고 있다는 거야. 그러다가 오늘 이 여인숙에 들었는데, 바로 옆방에서 당신 노래 소리가 들리더래.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반주를 넣었대. 결국 남자는 중 되길 포기하고 이 여자의 남편이 됐고, 둘 다 이름난 부부 가수가 되어 지금 활동 중이라더라. 왜 있잖아 '사랑하는 그대에게'라는 노래 부른..."

최 팀장은 말없이 바퀴자국만 따라 차를 몰았다. 추위가 엄습했다. 두꺼운 방한복을 꺼내 입었다. 최 팀장의 등에도 그의 파카를 덮어주었다. 불과 두세 시간 만에 여름에서 가을을, 다시 가을에서 겨울을 겪게 되었다. 정상에 오르면 얼마나 더 추울까. 거기서부터는 반대로 겨울에서 가을로, 가을에서 여름으로 바뀔 것이다. 하룻밤 사이에 사계절을 두 번씩 맞이하는 셈인데, 벌써부터 몸이 적응하기 힘들었다. 

밥 먹을 곳도, 기름 넣을 곳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졸음을 쫒으며 달리는 일 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 것도 없었다. 팜파스 주행을 시작하여 여기까지 이르는 동안, 우리는 눈에 띠는 대로 밥을 먹고 눈에 띄는 대로 차에 기름을 넣었다. 먹은 지 한 시간 뒤라도 식당이 나타면 또 식사를 했고, 넣은 뒤 30분 뒤라도 주유소가 나타나면 또 기름을 넣었다. 다음 어디에 식당이 있고 다음 어디에 주유소가 있는지 적혀있는 자료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만일에 대비해서 배가 터지도록 우겨넣고 탱크가 터지도록 채워야만 했다. 그리고 죽어라 달려서 여기까지 왔다. 

생각하면 참으로 무모한 계획이었다. 한국방송사상 최대 규모라고 무게를 잡으며 출발은 했지만, 또 그것이 틀린 사실은 전혀 아니지만, 현지답사 한 차례 없었고 현실감 있는 현지자료도 수집되지 않은 상태에서 4개월 동안 이 야성적인 대륙을 종횡단 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모하고 위험한 일인지를 현지에 와서야 깨달았다. 70년대 초 아시아 대륙을 동에서 서로 횡단하면서 세계를 감복케 한 일본 NHK 특집프로그램<실크로드>는  기획, 자료수집, 현지답사, 구성, 섭외, 현장준비 등에만 12년이 걸렸고, 촬영에 2년이 걸렸으며, 그것을 1년여에 걸쳐 편집하고 방송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우리 프로그램은 기획에서부터 촬영까지가 불과 6개월이었다. 우리가 획득할 수 있는 자료라곤 외무부와 코트라(KOTRA)를 통해서 얻은 현지의 정치 경제 현황과 대학의 스페인어과에서 얻은 그 나라 역사 서적 몇 권, 10여 년 전에 나온 일본인의 호들갑스러운 여행기 번역물, 그리고 각 신문사의 남미 관련 외신기사들이 전부였다. 오로지 하면 된다, 부딪쳐 가면서 해결한다, 몸으로 밀어붙인다, 그것이 그 시기 한국의 거의 모든 분야를 지배한 테제였다. 그래서 달려도 하루에 1000km 이상이요, 먹고 돌아서서 또 먹으며 달려야 하는 우스꽝스러운 여정을 이어가면서도 당연한 것처럼 여기는 시절이었다. 지금 이 안데스산맥의 야간주행이 몸으로 차량을 밀고 올라가는 거나 다름없다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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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소개
1973년에 TBC에 입사, 이후 35년간 다큐멘터리에 매달렸다. 성철스님 일대기, 손기정 다큐멘터리 등 다수의 인물 다큐와, 일본이 일으킨 태평양 전쟁의 진실을 밝힌 <잊혀진 전쟁>을 기획, 연출을 했다. 일본군의 위안부 만행을 추적한 <종군위안부>로 1993년 백상예술대상을 수상했다. 1983년 정통다큐멘터리 월요기획을 만들었고, 인간극장, 한국탐구 등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다큐멘터리를 제작, 기획, 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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