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단추의 난'이 보여주는 것
'핵단추의 난'이 보여주는 것
[정욱식 칼럼] 핵 시대의 쌍생아 트럼프·김정은 닮은꼴 '네 가지'
2018년 들어서도 북한의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과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사이에 '절대 무기'를 둘러싼 신경전이 이어지고 있다. 2017년에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화두였다. 김정은은 작년 신년사에서 ICBM 개발이 "마감 단계"에 있다고 했고, 트럼프는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라고 응수했었다.

올해에는 "핵 단추"가 등장했다. 먼저 김정은이 "미국은 결코 나와 우리 국가를 상대로 전쟁을 걸어보지 못한다"며 "미국 본토 전역이 우리 핵 타격 사정권 안에 있으며 핵 단추가 내 사무실 책상 위에 항상 놓여 있다는 것, 이는 결코 위협이 아닌 현실임을 똑바로 알아야 한다"고 위협했다.

그러자 트럼프는 이틀 후인 2일(현지 시각) 자신의 트위터에 "나는 김정은이 가진 것보다 더 크고 강력한 핵 단추가 있다는 사실을, 식량에 굶주리고 고갈된 정권의 누군가가 그에게 제발 좀 알려주겠느냐"고 응수했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내 버튼은 작동도 한다!"

핵보유국 지도자들이 자신의 책상 위에 핵 단추가 있다고 공개적으로 자랑하듯 말하는 것부터가 대단히 이례적이다. 이는 핵무기는 절대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인류 사회의 '핵 금기(nuclear taboo)'를 건드는 것일 뿐만 아니라 자칫 우발적인 핵전쟁의 위험을 높이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하지만 김정은과 트럼프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들이야말로 군사적인 힘, 특히 핵무기에 의한 평화를 신봉하는 '핵 시대의 쌍생아'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김정은과 트럼프의 핵 독트린을 비교해보면 싱크로율이 100%에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크게 네 가지를 비교해보면 알 수 있다.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일 오전 9시(평양 시각) 노동당 중앙위원회 청사에서 육성으로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닮은꼴 '네 가지'

먼저 북한과 미국 모두 핵무기를 국가안보의 중추로 삼으면서 그 비중을 높이고 있다는 점이다. 김정은은 신년사에 "지난해 우리 당과 국가와 인민이 쟁취한 특출한 성과는 국가 핵무력 완성의 역사적 대업을 성취한 것"이라며 "그 어떤 힘으로도 그 무엇으로도 되돌릴 수 없는 강력하고 믿음직한 전쟁 억제력을 보유하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특히 핵무력을 가리켜 "평화수호의 강력한 보검"이라고 일컬었다.

이에 질세라 트럼프도 핵무기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2017년 12월에 발표된 <국가안보전략(NSS)> 보고서를 보면 이러한 내용을 잘 알 수 있다. 보고서에선 "핵무기는 지난 70년 동안 미국 국가안보전략의 사활적인 목표에 복무해왔다"며 핵무기를 국가안보전략의 중추로 삼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특히 "미국은 핵 삼축 체계와 미국이 해외에 배치한 전역(戰域) 핵 능력에 의해 제공되는 신뢰할 만한 억제와 확신 능력을 유지해야 한다"고 밝힌 부분이 주목된다. 이는 ICBM,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전략 폭격기뿐만 아니라 유럽에 배치한 B61 핵폭탄도 유지·강화할 수 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해외 배치 핵무기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은 냉전 종식 이후 처음이다.

둘째는 핵무기 증강 및 현대화 계획이다. 김정은은 신년사에서 "이미 그 위력과 신뢰성이 확고히 담보된 핵탄두들과 탄도로케트들을 대량생산하여 실전배치하는 사업에 박차를 가해 나가야 한다"고 주문했다. 연구개발 및 시험 단계에서 생산 및 배치 단계로 넘어가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한 셈이다.

특히 "적들의 핵전쟁 책동에 대처한 즉시적인 핵반격 작전 태세를 항상 유지하도록 하여야 한다"고 밝혀 '경보 즉시 발사(launch on warning)' 태세도 구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트럼프 행정부 역시 핵무기 현대화 계획을 분명히 하고 있다. 특히 냉전 종식 이후 미국이 핵무기에 대한 투자와 비중을 줄여왔다고 비판해, 핵전력 증강 의사를 강하게 암시했다.

셋째는 '모호한' 핵무기 사용 독트린이다. 북한은 이번 신년사를 비롯해 여러 차례에 걸쳐 "우리는 평화를 사랑하는 책임 있는 핵강국으로서 침략적인 적대세력이 우리 국가의 자주권과 리익을 침해하지 않는 한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을 것이며 그 어떤 나라나 지역도 핵으로 위협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혀왔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북한이 핵무기 선제 불사용 정책을 선언한 것으로 해석한다.

하지만 이렇게 해석하는 데에는 무리가 따른다. 우선 북한이 조건으로 제시한 "침략적인 적대세력이 우리 국가의 자주권과 리익을 침해하지 않는 한"이라는 표현 자체가 대단히 모호하고 추상적이다. 또한 국제 규범으로 통용되는 핵무기 선제 불사용 정책은 "상대방이 먼저 핵무기를 쓰지 않는 한"이라는 구체적이고도 엄격한 조건 하에서 성립된다.

북한의 핵 사용 독트린은 2013년 4월 1일 최고인민회의 법령으로 제정된 '자위적 핵보유국의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할 데 대한 법'에 그 내용이 비교적 상세히 담겨 있다. 일반적으로 핵 사용 독트린은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핵보유국을 상대로 한 전략이고, 또 하나는 비핵국가를 상대로 한 것이다.

핵보유국 간의 독트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핵무기 선제 불사용(No First Use) 정책을 채택하고 있느냐의 여부이다. 비핵국가에 대해서는 소극적 안전보장(Negative Security Assurance), 즉 핵무기 사용 및 사용 위협을 하지 않겠다는 정책에 조건을 다느냐의 여부가 중요하다.

전자와 관련해 북한은 "적대적인 다른 핵보유국이 우리 공화국을 침략하거나 공격하는 경우 그를 격퇴하고 보복타격을 가하기 위하여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의 최종명령에 의하여서만 사용할 수 있다"고 적시했다.

이는 북한이 먼저 핵무기를 사용해 다른 핵보유국을 공격하지는 않겠지만, 핵보유국이 핵무기는 물론이고 비핵무기로 북한을 침략하거나 공격해오더라도 핵무기로 보복할 수 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후자와 관련해서 북한은 "적대적인 핵보유국과 야합하여 우리 공화국을 반대하는 침략이나 공격행위에 가담하지 않는 한 비핵국가들에 대하여 핵무기를 사용하거나 핵무기로 위협하지 않는다"고 적시했다. 일종의 '조건부' 소극적 안전보장이다. 이는 핵보유국인 미국의 동맹국들이자 비핵국가들인 한국과 일본을 염두에 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을 종합해볼 때, 북한이 핵무기 선제 불사용을 천명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한편으로는 "평화를 사랑하는 책임 있는 핵강국"이라는 점을 부각시키려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 주도의 '비핵' 공격에도 핵 보복 가능성을 열어둠으로써 억제력을 과시하려는 욕구가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미국의 핵 사용 독트린은 어떨까? 미국은 단 한 번도 핵보유국을 상대로 핵무기 선제 불사용 정책을 천명한 적이 없었고, 비핵국가를 상대로 한 소극적 안전보장도 갈팡질팡해왔다.

'핵무기 없는 세계'를 주창한 오바마 행정부조차 "미국과 동맹·우방국들의 사활적인 이익을 보호해야 하는 극단적인 환경에서만 핵무기 사용을 고려할 것"이라며, "핵보유국들과 NPT 의무를 준수하지 않는 나라들이 미국이나 동맹·우방국들에게 재래식 및 생화학 무기 공격을 가하려는 것을 억제하는 데 있어서, 좁은 범위 내에서 미국 핵무기의 역할은 남게 될 것"이라고 밝혔을 정도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아직 핵태세 검토(NPR) 보고서를 발표하지 않아, 핵 사용 독트린의 구체적인 내용은 드러나지 않고 있다. 다만 북한을 상대로 "트럼프 대통령은 점증하는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이들을 방어하기 위해 핵과 재래식 전력 등 미국의 모든 범주의 군사력을 사용할 준비가 돼 있음을 강조했다"는 2017년 11월 8일 한미정상회담 공동언론발표문의 내용이 주목된다.

▲ 지난해 12월 31일 트럼프 대통령이 플로리다에 위치한 개인 소유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연말 파티를 열었다. ⓒAP=연합뉴스


통상적으로 미국의 안보 공약은 "확장 억제"라는 포괄적인 표현으로 언급되곤 했는데, 트럼프는 "핵 사용 준비"를 공식적·공개적으로 언급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트럼프가 적어도 북한을 상대로는 대단히 공세적인 핵 독트린을 천명했다는 점이다.

끝으로 북한과 미국 모두 핵무기 사용을 최고 지도자의 독점적인 권한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은 법에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의 최종명령에 의하여서만 사용할 수 있다"고 명시했고, 김정은은 신년사에서 "핵 단추가 내 사무실 책상 위에 항상 놓여 있다"고 자랑하듯 말했다.

이는 미국 역시 마찬가지이다. 트럼프가 북한을 상대로 "화염과 분노", "완전 파괴"와 같은 극언을 내놓자 미국 의회 일각에서 대통령의 독점적인 핵 사용 권한에 제동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고 있는 것이 이러한 현실을 잘 보여준다. 독불장군처럼 행동하는 트럼프에게 절대 무기를 전적으로 맡겨두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라는 문제의식이 발동된 것이다.

통미통북으로 핵전쟁 예방해야

이러한 네 가지 내용을 종합해볼 때, '싸우면서 닮아간다'는 말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국제 평화나 규범보다 핵주권을 우선시하는 일방주의도 너무나 닮았다. 서로가 강력한 억제를 추구하다가 안보 딜레마를 야기하고 이것이 핵전쟁의 위험을 높일 수 있다는 미소 냉전 시대의 위험이 어느덧 우리 앞에도 성큼 다가선 것이다.

이는 핵무기라는 절대 무기를 손에 쥔 지도자들 사이의 적대관계를 풀지 않는 한, '아마겟돈'이 한반도를 유령처럼 배회할 것임을 예고해준다. 그리고 통미통북을 통해 두 적대국 북한과 미국이 서로 통할 수 있는 관계를 만드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운명적 숙제라는 것을 새삼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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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소개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