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DJ를 넘어서
2012년, DJ를 넘어서
[김대중을 생각한다]<20> 윤여준 이사장 인터뷰
2011.04.28 08:00:00
2012년, DJ를 넘어서
"한나라당 국회의원 하면서 김대중 정부와 하도 싸워서 좋은 기억이 별로 없네요"

"전 DJ를 스테이츠맨(Statesman)이기보다는 폴리티션(Politician)으로 봅니다"


'보수의 브레인'으로 불리는 윤여준 한국지방발전연구원 이사장의 이 두 마디가 어쩌면 보수파의 김대중에 대한 시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김대중 정부 당시 한나라당 국회의원이자 이회창 총재의 측근이었던 윤 이사장은 당시 김대중 정부의 야당 탄압이 이전 독재정권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고 증언한다. 그러면서 대통령이 되기 이전 DJ가 한국 민주화에 기여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의 대통령 취임 이후 한국의 민주화는 지체됐다고 주장한다. 적어도 민주화의 화신이라고 얘기되던 김대중이 이끄는 정부라면 야당에 대해 그런 식으로 접근해선 안됐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진보개혁파를 자처하는 이들로선 의외의 평가이자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지적일 수 있다. 하지만 김대중 집권 당시 야당의 입장에 섰던 윤여준 이사장의 평가는 야박할 정도로 짜다.

윤 이사장이 민주화의 지체를 주장하는 이유는 또 하나 있다. IMF위기 이후 사회경제적 민주화를 통해 한국사회의 새 판을 짤 수 있는 기회를 놓쳐 버렸다는 것이다. 취임 초기 DJ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 발전'을 얘기한 데 대해 그는 경제민주화를 통해 민주주의를 심화시키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면서 '과연 DJ로구나' 감탄했다고 한다. DJ가 IMF위기를 한국사회 재구조화의 계기로 삼을 것으로 기대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나놓고 보니 DJ가 이 문제에 대해 과연 제대로 고민이나 했는지 의심스럽다고 그는 말한다. 한마디로 김대중 정부에서 한국 민주주의가 발전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게 그의 평가인 듯했다.

DJ를 경세가(Statesman)로 볼 것인지 정치인(Politician)으로 볼 것인지의 문제는 다분히 주관적 평가의 영역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DJ가 남북 화해에 앞장선 것은 경세가다운 모습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 윤 이사장은 '총선 사흘 전에 남북정상회담 사실을 발표한 것은 정치꾼다운 태도'라고 대답했다. 'DJ는 못 믿을 사람'이라는 보수파 일반의 회의적 태도는 바로 이런 인식에 바탕한 것은 아닐까.

윤 이사장은 김대중 대통령의 업적으로 남북관계 개선과 사회안전망 마련을 꼽으면서도 그의 정략적 자세로 인해 남북관계 개선이라는 성과의 빛이 바랬다고 평가했다. 반북적 태도로 일관했던 보수세력과 어떻게 타협이나 합의가 가능했겠느냐는 진보개혁파의 입장과는 사뭇 결이 다른 주장이다.

한편 그는 박정희 이후 역대 대통령들이 자신이 새 시대를 여는 창시자가 되겠다는 이른바 '국부(國父) 신드롬' 때문에 이전 행정부의 행적을 모두 지워버리려는 경향이 있었다면서, 앞으로는 전임 행정부에 대한 객관적 평가의 바탕 위에서 이어받을 것은 이어받고, 극복할 것은 극복해야 보다 견실한 민주주의 발전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음은 지난 14일 서울 마포구 한국지방발전연구원에서 행한 인터뷰 전문이다. 인터뷰 진행은 박인규 프레시안 대표가 맡았다. <편집자>


▲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DJ에 대한 기억

프레시안 :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기억이 많을 것 같다.

윤여준 : 저는 김대중 전 대통령을 지지했던 사람은 아니다. 사물이건, 사람이건 객관적으로 봐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지만, 한나라당 국회의원(16대, 2000-2004년)으로 활동하는 동안에 김대중 정부와 하도 싸워서 좋은 기억도 별로 없다.(웃음)

1998년 2월에 DJ가 대통령으로 취임했고, 그해 8월 말 한나라당 임시 전당대회에서 이회창 대표(현 자유선진당 대표)가 총재가 됐다. 김대중 정부 출범 6개월 만에 강력한 야당 지도자가 등장한 것이다. 그때 벌어진 일이 이른바 '세풍(97년 대선 당시 국세청 직원의 불법 선거자금 모금 사건)', '총풍(97년 대선 당시 한나라당이 북한에 '무력시위'를 요청했다는 사건)'이다. 그리고 2000년 총선에서 DJ가 졌다. 어쨌든 저는 DJ와 치열한 싸움이 계속되는 2001년경까지 이 총재를 가장 가까이에서 보좌했던 사람이니까, 유쾌하지 않은 일이 많죠.(웃음)

프레시안 : 당시 야당의 입장에서는 김대중 정부의 야당 탄압이 혹독했다는 애기인가

윤여준 : 그때 DJ가 그야말로 혹독하게 탄압을 하니까 이 총재가 저에게 그런 말도 하더라.

'아니, DJ는 나와 한번 겨뤄서 자기가 이겼지 않나. 그래서 대통령 됐고, 재선을 할 것도 아니고 단임인데, 야당을 했던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야당을 못살게 구나. 왜 그러나'

그래서 저도 사실 잘 모르겠는데, 논리적으로 추리한다면 두 가지 중 하나일 수 있겠다. 하나는 DJ가 퇴임한 후에 이회창 야당 총재가 대통령이 되는 것은 곤란하다. 그러니 지금부터 그 싹을 잘라야겠다. 또 하나는 DJ가 아니라 포스트 DJ를 노리는 여당 내 실력자들이 DJ의 힘과 권위를 빌려서 이 총재를 죽이려고 하는 것일 수 있다. DJ 의지가 아니고. 저는 둘 중에 어느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고 (이 총재에게) 말씀 드린 적이 있다.

프레시안 : '야당 죽이기'가 '세풍', '총풍'이라는 형태로 나타났다는 말인가? 구체적으로 어떤 '탄압'을 했나?

윤여준 : '세풍', '총풍'도 그렇지만, 아주 혹독하게 했다. 야당에게, 그리고 이 총재라든지, 이 총재 주변 사람들에게 그랬다.

프레시안 :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윤여준 : 심지어는 저런 것까지 했다. 김대업(2002년 대선 당시 이회창 후보 아들들의 병역 비리 의혹을 제기한 인물)이니 하는 사람을 내세워 허위 사실을 막 만들어서 발표하고 그랬지 않나. 특히 설훈 의원의 '20만불 수수' 같은 허위사실 발표는 청와대 비서관이 개입됐다는 사실이 재판과정에서 드러나기도 했다. '민주화의 화신'이라는 분이 대통령으로 재임하는 중에 그런 일이 나타난다는 게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나.

프레시안 : 정당하지 못한 방식으로 야당을 괴롭혔다?

윤여준 : 그렇다고 본다. 물론 저 쪽(동교동계 등 민주당 전신)은 그렇게 말한다. '너희가 과거 야당을 탄압할 때는 더 심하게 했다' 이렇게 얘기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내가 과거 집권세력으로부터 더 모진 탄압을 받았으니, 우리도 너희를 탄압한들 어떠랴'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말이 안 되죠. 그렇다면 민주주의 얘기를 말아야지.

DJ가 성취한 업적, 그리고 한계

▲ 성취와 한계는 물론 따로 얘기해야겠지만, 한마디로 DJ에 대해 가지고 있는 제 인식이랄까, 이미지는 이런 것이다. DJ는 국가지도자라기 보다는 정치지도자였던 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총평하자면 그렇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많은 사람들이 첫 번째 수평적 정권 교체를 들어 민주화를 DJ의 주요 업적으로 꼽는데, 당시 야당의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모양이다.

윤여준 : 수평적 정권 교체, 그것 자체는 대단히 의미가 크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독재정권 아래에서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또 극복하면서 민주화 운동에 헌신했던 사람이 대통령이 됐는데, 야, 어떻게 야당을 이렇게까지 (탄압을) 할 수 있나. 정말 납득이 안 가는 일이었다. 제가 그 와중에 있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지금 기록을 놓고 봐도 그 당시 김대중 정부의 야당 탄압은 이해하기 어렵다. 얘기가 다른 곳으로 새 버렸다(웃음).

프레시안 : 해방 후 이명박 대통령까지 열 분의 대통령이 있었다. 물론 정치적 입장에 따라 호오가 갈리겠지만, 각 대통령의 성과와 한계에 대한 최소한의 사회적 합의도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초보적이나마 역대 정치지도자의 공과에 대한 정리를 해보자는 생각에서 이런 기획을 했다.

윤여준 : 기획 자체는 의미 있는 기획이라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약간 거친 질문이지만 대통령 DJ의 성취와 한계는 무엇인가?

윤여준 : 성취와 한계는 물론 따로 얘기해야겠지만, 한마디로 DJ에 대해 가지고 있는 제 인식이랄까, 이미지는 이런 것이다. 영어를 써서 미안한데 보통 '스테이츠맨(Statesman, 정파를 뛰어넘어 국가의 미래를 고민하는 경세가)'과 '폴리티션(Politician, 정파의 파벌적 이익을 우선하는 정치인)'을 구분하지 않나. 즉 저는 DJ는 국가지도자라기 보다는 정치지도자였던 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총평하자면 그렇다.

프레시안 : 성취를 먼저 말해보자.

윤여준 : 성취라면, 한나라당 국회의원 할 때도 그런 얘기를 했는데, 남북의 화해다. 수 십 년 간 대결 구도로 이어져온 남북 관계를 화해 협력의 구도로 바꾼 전환점을 마련한 것은 분명 업적이다.

그리고 IMF위기 이후에 사회안전망을 만든 것도 업적으로 볼 수 있겠다. 당시 IMF의 신자유주의적 요구들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으므로 이 때문에 생존경쟁에서 탈락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초생활보장제도를 만들었다. 제도를 급히 만드느라 미비점이 많아서 운영상의 문제점은 많이 생겼으나 어찌 됐든 이것을 빨리 만들 생각을 한 것은 DJ의 식견이다.

그래서 저는 늘 이 두 가지를 DJ의 업적이라고 평가를 했었다. 남북 화해는 결국 심각한 남남 갈등을 일으키면서 많이 퇴색하긴 했지만 어찌됐든 그런 전기를 만들었다는 것은 업적이 될 것이다.

프레시안 : 어떤 것이 그의 한계였나?

윤여준 : 야당지도자로서 민주화에 기여한 점은 높이 평가해야 마땅하나 한계는 그가 대통령이 되고 나서 한국 민주주의의 심화 발전에 기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국의 민주화를 위해 일생을 헌신해온 민주화의 상징이자 화신으로 평가받은 그가 대통령으로 취임한 후에 민주주의가 어떻게 됐나. 저는 오히려 지체됐다고 본다.

그 다음 IMF위기를 한국사회 재구조화의 계기로 삼을 것으로 기대했는데 그렇지가 못했다는 것이다. IMF위기라는 것이 왜 왔나. 흔히들 유동성의 위기라고 하지만, 사실은 한국사회가 산업화를 거쳐오면서 그동안 누적된 가진 총체적인 모순이 드러났다는 견해가 많았다. 그렇게 보면 IMF위기는 한국 사회를 재구조화 할 수 있는 굉장히 좋은 기회라고 볼 수 있지 않았겠나. 물론 쉽진 않은 일이고, 또 DJ가 5년 동안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그러나 DJ가 IMF위기 극복 과정을 관리하면서 이것이 한국 사회를 총체적으로 바꿀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문제의식을 가졌는가, 여기에 대해 저는 의심스럽다. 고도성장에 매진했던 권위주의 시절을 겪으면서 생긴 문제들, 권력남용과 부패같은 것을 바로잡고 소외되거나 배재되었던 영역을 체제내로 끌어들여 국민의 폭 넓은 참여와 합의를 바탕으로 사회적 경제적 개혁을 했어야 했다. 저는 DJ가 강조했던 '준비된 대통령'이라는 말을 그렇게 받아들이고 큰 기대를 가졌었다. DJ가 그렇게 했더라면 한국의 보수세력이 자기성찰과 혁신을 통해 건강한 모습으로 거듭 태어나는 계기가 됐을 것 아닌가? 이 점을 생각하면 두고두고 아쉽다. 1만 권의 책을 가진 지식인인 DJ가 대통령이 됐는데, 참 이런 것은 아쉽다, 한계다, 저는 평소에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너무 좀 거시적인 얘기인지는 모르겠지만.

프레시안 : DJ를 지지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김대중 정부에서 민주주의가 지체됐다는 지적은 받아들이기가 어려울 것 같은데.

윤여준 : 제가 말하는 것은 정치적 민주주의보다는 일종의 사회경제적 민주주의에 관한 것이다. 물론 정치적 민주주의의 경우에도 집권하고 나서 그가 보여준 여러 가지 정치적 태도를 보면, 지역주의를 지속시켰다든지, 권위주의적 통치 방식을 보였다든지, 또는 의회, 정당, 언론을 대하는 태도가 민주적이지 않았다든지, 많이 있다.

그것도 그것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런 것이다.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DJ가 취임 직후 국정 지표를 발표하면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을 얘기했었다. 그것을 보고 저는 깜짝 놀랐다. '역시 DJ는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렇게 해석했다. 우리가 정치적 기본권이 보장되지 않은 시대를 오랫동안 살아왔으니까 민주주의를 정치적 민주주의로 봤고 이게 시급하다고 봐 왔다. 이른바 '절차적 민주주의'다. 그런데 수평적 정권 교체가 일어나 절차적 민주주의는 어느 정도 확보가 됐다. 그런데 정치적 민주주의, 즉 절차적 민주주의를 자연스럽게 발전시키면서 이것을 경제적 민주주의로 확산을 시켜야만 민주주의가 심화하는 것이다.

즉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표현을 바꿨을 뿐이지 일종의 경제적 민주주의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즉, DJ는 일찍이 '대중경제'를 제창한 적도 있었는데, '정치적 민주주의가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로 옮겨 가야만 온전한 민주주의가 된다, 성숙한다'는 것을 DJ는 알고 있구나. 그러나 그렇게 내걸었다가는 기득권 세력의 상당한 반발이 있을 것이 걱정되니까, 표현을 조금 바꿨던 것 아닌가. 이렇게 받아들였다.

당시 한나라당의 많은 분들이 그것을 몰랐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 발전, 이게 도대체 뭐냐.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둘이 같은 것 아니냐'고 하는 사람까지도 있었다. 그러나 저는 그 때 DJ가 탁월한 식견을 보인 것이라고 봤다. 정말 바람직한 문제의식이다. DJ는 참 합리적이다. 이런 생각을 했다.

그러나 어려움도 많았겠지만 어찌됐든 자기가 내걸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 발전에 대해 얼마나 진지하게 고민하고 노력했는가. 여기에 대해서는 저는 별로 평가하지 않는 편이다.

프레시안 : IMF위기를 계기로 우리 사회 구조를 제대로 뜯어고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지나쳤다는 비판으로 들리는데.

윤여준 : 그렇다.

▲ DJ 정도의 식견이 있는, 1만 권의 장서를 가진 지식인이라면 그런 문제 의식이 있었어야 하고, 그런 문제의식 속에 뭔가 시도를 했어야 했는데 그게 안 보인 것이다. 그게 쉽다는 뜻은 아니고 기대가 컸던 만큼 아쉬움도 크다는 것이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실제로 그 당시 많은 분들이 '차제에 한국 사회의 구조를 제대로 고쳐보자'고 말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실제로는 잘 안됐고 오히려 사회양극화가 심화, 악화되고 있다. 진보 쪽에서는 DJ가 신자유주의에 굴복해 사회양극화를 심화시켰다고 비판하고 있다. IMF위기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만들어내지 못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DJ 개인의 잘못일까. 아니면 관료, 정치권 등 우리 사회 전체의 역량 부족 때문인가?

윤여준 : 원인을 따지자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것은 절대 쉬운 과제가 아니다. 한 사회를 재구조화 한다는 것은 굉장히 힘든 일이다. 아주 정확한 문제의식만이 아니라 그 프로그램을 다 갖고 있어도 현실적으로 완강한 저항이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쉽지 않은 것이다. 평상시에는 엄두를 못내는 것인데, IMF 위기가 왔으니까, 그런 기회를 찾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때문에 아쉽다는 것이다.

DJ가 시도를 했다 하더라도, 저항을 물리치고 5년만에 완성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다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DJ 정도의 식견이 있는, 1만 권의 장서를 가진 지식인이라면 그런 문제 의식이 있었어야 하고, 그런 문제의식 속에 뭔가 시도를 했어야 했는데 그게 안 보인 것이다. 그게 쉽다는 뜻은 아니고 기대가 컸던 만큼 아쉬움도 크다는 것이다.

DJ, 그리고 YS, MB

프레시안 : 아마 DJ를 지지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이런 반론이 나올 수도 있을 것 같다. DJ가 민주화를 지체시켰다면 YS는 어땠나? YS도 민주화 이후에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한 것은 없지 않은가? 3당합당에 응한 YS보다는 자기 원칙을 지킨 DJ가 그래도 민주화에 기여한 것으로 봐야 하지 않은가.

윤여준 : 관점에 따라 여러 얘기가 나올 수 있을 텐데, 김영삼 전 대통령은 DJ와 집권한 과정이 전혀 다르다. 그 분도 취임하고 나서 한국 민주주의를 어떻게 해야 심화 발전시키느냐. 하는 체계적인 문제의식은 약했던 것으로 보이지만, 한국 사회를 민주화시키겠다는 일념으로 노력한 것은 사실이다. 하나회를 청산했다든지, 금융실명제를 시행했다든지. 그것은 빼 놓을 수 없는 것이다.

프레시안 : 이명박 정부 이후 요즘 '민주주의 후퇴' 얘기가 많이 나온다. 요즘 상황은 민주화의 지체가 아니라 후퇴요 역전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다. 현 정부와 비교하면 그래도 김대중 정부 때의 민주주의가 나았다는 지적이 나올 수도 있겠다.

윤여준 : 이명박 정부 들어서서 (민주주의가) 후퇴했다. 저는 동의한다. 동의 안 할 도리가 있나. 우리 눈에 보이는 현실이다. MB도 무능한 사람이 아니다. 젊었을 시절 한국 사회의 신화적인 존재 아닌가. 대통령이 되고 나서 재임 중에 나라를 발전시키고, 역사에 남고 싶은 생각이 왜 없겠나. 밤잠 안자고 노력하는 게 사실이다. 그런데 뭐가 문제냐. 이게 바로 CEO 리더십의 한계라는 것이다. MB가 지금 비판 받고 있는 게 뭐냐. 우리가 그나마 확보했던 절차적 민주주의마저도 후퇴한다. 그런 것 아닌가.

그 다음에 경제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고 경제 위기를 가장 빨리 극복한 나라라고 자랑은 하지만 사실 지금 와서 경제 성적표를 보자. 취임하면서 소위 '적하 효과' 이론 트리클다운 이론을 갖고 대기업 부자의 돈이 넘쳐야 서민에게 간다고 해서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내놓고 시작했던 것 아닌가. 그래서 대기업 위주로 (정책을) 해 왔는데, 서민이 대기업과 부자들의 돈이 흘러넘쳐 자기들에게 오기를 기다렸는데, 안 왔다. 민생과 완전히 격리된 상태로 대기업만 계속 커지지 않았나. 서민들에게 온 것은 뭐냐. 가계 부채, 전월세 대란, 물가 폭등, 이런 것이다.



프레시안 : 이 대통령의 리더십을 어떻게 평가하나?

윤여준 : 이명박 대통령이 애를 썼지만, 정치적으로도 소위 민주주의의 정치 과정, 공론화 과정이라는 것을 번번이 생략하고 자기 결정으로 밀어붙이는 식으로 갔기 때문에 완전히 과거 권위주의 방식의 리더십이라는 평가를 받는 것 아닌가. 그게 바로 CEO 리더십이다. CEO는 임원들과 결정을 하고 나면 사원들의 동의를 받을 필요가 없다. 성과로 말하면 되는 것이니까. 반면 정치지도자의 리더십은 여러 세력의 이해갈등을 조정하고 국민들의 동의를 구하는 것이 핵심이다. CEO 리더십과 정치지도자의 리더십은 전혀 다르다. 그런데 이 대통령은 기업과 국가를 전혀 구분하지 못한다. 국가라는 게 뭔지에 대한 기본 인식이 잘 안 돼 있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이 '나는 대한민국이라는 기업의 CEO'라고 한 적이 있다. 저는 아주 경악을 했다. 대통령이 국가와 기업의 차이를 모른다는 것 아닌가. 아마 조금만 더 있으면 경제 대통령이라는 소리 하기도 어려울 것이라고 본다. 그래도 우리가 김대중, 노무현 두 정부를 10년 동안 거쳤다. 그 동안 시대는 많이 변했고 국민 의식도 많이 변했다. 지금 나오는 얘기가 뭔가, 우리가 근대로부터 탈근대로, 그리고 지금 탈탈 근대까지 나오지 않나. 비동시성의 동시성을 얘기하는 마당인데, 그 흐름을 완전히 무시하고 다시 옛날로 돌아가는 식의 리더십을 보이는 것, 그러니 갈등이 안 생길 수가 없는 것 아니겠나.

프레시안 : 그간 조금씩 화해 무드로 진전돼 왔던 남북 관계도 후퇴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윤여준 :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하고 난 뒤에 대북 제재와 압박으로 일관해 왔다. 한미가 함께 경제적 압박 등을 하면 북한이 굴복할 것이라고 확신을 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제제와 압박 기조 유지) 했을 리가 없죠. 그런데 중간 결산해보면 어떤가. 북한은 굴복하지도 않고 체제가 붕괴되지도 않았으며 결과적으로 핵 능력만 키워주고, 핵 운반 수단을 개발하는 시간만 줬다.

그리고 중국이 2009년 가을에 대한반도 정책을 근본적으로 바꿨다. 북핵 폐기보다는 북한 정권의 안정이 우선이라는 게 골자다. 중국이 미국과 한국, 기타 다른 나라와 손을 잡고 북한 핵 폐기를 노력을 해왔는데, 하다 보니 북한 정권이 흔들리는 사태가 왔다. 그러자 '중국의 안보에는 북한의 핵 폐기보다 한반도의 안정이 중요하다'고 했다. 한반도의 안정이라는 것은 북한 정권의 안정이다. 그렇게 공개적으로 선언을 했다. 그렇다면 금방 알아 차렸어야죠. 아무리 한미가 손을 잡고 압박을 해도 중국이 저렇게 정책을 바꾸면 북한도 바뀌지 않는다. 그렇게 알았어야 하는데, 계속 제재와 압박으로만 일관되게 갔지 않나. 그러니 지금 와서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프레시안 : 미국의 대북 정책도 일관성은 모르겠지만 어떤 '전략'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비판도 있다.

윤여준 : 제가 듣기로 오바마 참모들의 말에 의하면 오바마가 워낙 국내 문제로 심각했지 않나. 의료 개혁으로 정신이 없었고, 대외 문제도 이란, 아프가니스탄, 팔레스타인, 이런 문제로 정신이 없어서 오바마 책상 위에 한반도 문제가 올라갈 수가 없었다는 것 아닌가. 그래서 뭐냐. 고상한 무시, 전략적 인내 이런 말로 포장하면서 그냥저냥 왔던 것 아닌가 .특별한 의지가 있었던 것은 아닌 것이다. 민족 문제는, 한국이 잘 주도해서 미국을 설득해 보조를 맞춰 뭔가 풀어갔어야 하는데, 지금 미중 간에는 서로 협의해서 6자회담으로 가려고 노골적으로 보이고 있다. 미국은 한국의 입장을 존중해야 하니까, 한국 정부가 남북 대화를 해서 분위기도 만들고 명분도 만들어주기를 바라는데, 한국 정부는 계속 천안함과 연평도 사태에 대한 적절한 조치를 안 한다고 그러는 것 같다.

그런데 한 때는 그게 대화의 전제 조건이 아니라고 그러더니 또 다시 강경으로 돌아갔다. 어디까지 갈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미-중은 가능한 한국 정부가 돌아서길 기다리겠지만, 끝내 한국 정부가 그것(강경책)을 고집할 경우 그들이 언제까지 기다릴 수 있을까? 그들은 계속 움직일 것이다. MB정부도 오래 가지 않고 대북 정책을 선회했어야 했는데, 쉽게 선회하기 어려울 만큼 너무 멀리 나갔다.

▲ ⓒ프레시안

프레시안 : 'CEO 리더십' 얘기가 나왔는데, 역대 한국 대통령에 대해서는 '제왕적 리더십'이라는 비판이 있다. 또 앞선 사람의 것 중 좋은 것은 계승하고 나쁜 것은 극복해야 하는데 우리는 그렇지가 않은 것 같다. 말하자면 계승과 극복의 전통이 확립되지 않은 것 같다. 이런 것을 한국 정치 체제의 취약성이라고 해야 할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윤여준 : 우리는 대통령이 (새로) 들어서면 꼭 (과거 정부를) 지우려고 하는 경향이 있죠.

프레시안 : 일종의 '청산주의' 같은 게 있는 것 같다.

윤여준 : 우리만 그런 게 아니고 미국에도 ABC(Anything But Clinton, 클린턴이 한 것만 빼고 다 한다) 이런 농담까지 있지 않나. 그렇게 깊이 생각한 것은 아니지만 저는 이렇게 표현한다. '국부(國父) 신드롬' 때문이 아닐까. 즉, 나라의 아버지, '파운더(Founder, 설립자, 창시자)'라는 것에 집착하는 것이다. 것이다. 뭐냐면 들어선 대통령마다 자기가 새 시대를 여는 창업자랄까, '파운더'로 자기를 자리매김하려고 하는 것 같다. 전임자까지는 구시대고 내가 새 시대를 여는 창시자다. 혹은 창시자가 돼야 한다. 그런 생각이 강한 것 아닌가. 그래서 자꾸 전임자의 좋은 것은 계승할 생각을 안 하고 다 지워가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인수위를 구성하고 나서 하는 것을 보고 굉장히 실망했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후보 시절 지난 10년을 '잃어버린 10년'이라고 규정했다. 그렇다면 인수위를 구성해서 5년, 혹은 10년의 국정을 전체적인 분야별로 리뷰를 했어야 했다. 그렇게 해서 어째서 잃어버린 10년인지를 국민들에게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동의를 구했어야 했다. 그리고 '잃어버린 10년'이었지만 이런 잘된 점도 있었기 때문에 이것은 계승하고 이런 잘못된 점은 바꾼다고 했어야 했다. 이것이 인수위가 할 일이다. 그런 것을 전혀 안하는 것을 보고 저는 실망을 했다.

국부신드롬을 얘기했지만, 박정희 콤플렉스라고도 얘기할 수 있다. 그런데 박 전 대통령은 18년을 재임했다. 5년 단임 대통령이 무슨 수로 18년 재임이 이룬 업적을 흉내 낼 수 있나. 그 욕심을 버려야 하는데, 자꾸 그런 것을 의식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대개 대통령이 임기 말이 되면 측근의 비리가 터지고 국정 실패가 있어서 민심이 극도로 이반하는 일들이 번번이 생겼다. DJ 때도 그랬고, 노무현 정부 때도 그랬다. 그래서 '묻지마' 투표로 이어지지 않나. 그래서 묻지마 투표로 당선된 사람이 전임자 계승할 생각을 안 하는 것 같다. 그런 생각도 든다.

프레시안 : '국부 신드롬' '박정희 콤플렉스', 적확한 해석인 것 같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 자신은 '구시대의 막내'라고 했었는데 지금 같은 한국 사회에서 대통령에게 '국부 신드롬'이 있으면 곤란할 것 같다.

윤여준 : 있으면 안 된다. 국민들도 이제 겪어볼 만큼 겪어봤다. 보수 권력도 오래 겪어봤고, 진보 권력도 10년 겪어봤고, 다시 또 보수로 돌아간 것도 겪어봤다. 그래서 이제는 국민들도 옛날 방식을 좋아하지 않을 때가 됐다. 그래서 지식인들은 국민들에게 평상시에 그런 것을(국부신드롬으로 가면 안 된다고) 많이 호소할 필요가 있다. 국가를 맡은 사람이 어떻게 다 잘못할 수 있나. MB에 대한 비판이 많은데, MB가 10가지를 다 잘못했겠나. MB가 한 것 중에 잘 됐다고 생각하는 것은 계승도 해야 전통이 생기고 축적이 생긴다.

'정치인' DJ의 궤적에 대해

프레시안 : 이른바 진보 개혁 진영에서는 87년 대선 당시 후보 단일화 실패와 관련해 DJ를 가장 크게 비난한다. DJ 측은 '왜 우리만 비난 받느냐'고 반박하기도 한다. YS측에도 책임이 있지 않냐는 얘기다. 시간이 상당히 흐른 뒤지만, 어떻게 보나?

윤여준 : 그 때 내가 청와대에 있었다. 비서관 할 때였는데, 기억이 난다. YS, DJ 두 분이 갈라선 것을 놓고 전적으로 어느 한 쪽의 잘못이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양 쪽에 다 책임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이 4자 구도 필승론(김대중 김영삼 김종필 노태우 4명의 후보가 모두 나서면 호남의 확실한 고정표가 있는 자신이 이긴다는)을 만들어서 그것을 명분으로 나가서 당을 새로 만들었다. 그래서 어느 쪽에 책임이 더 있느냐고 굳이 따진다면, 저는 DJ가 책임이 더 있다는 평가를 면하지 못할 것이라고 본다. 4자구도 필승론으로 자신이 이긴다고 주장했지 않나. 그런데 그게 사실이 아니었다. 결국 DJ에게 책임이 더 무겁다고 사람들이 생각해도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 한다.

프레시안 : DJ를 옹호하는 사람들 측에서는 박정희 정부, 전두환 정부 등 군사독재정권 측의 조직적인 비난 공작 때문에 DJ의 이미지가 국민들에게 나쁘게 각인됐다. DJ는 그런 '이미지 공작'의 희생양이었다, 하는 식의 얘기를 많이 한다.

윤여준 : 그런 측면이 있다. 10.26(박정희 전 대통령 시해) 이후는 물론이고 박정희 전 대통령 집권 때도 얼마나 많은 고초를 겪었나. 납치도 되고 죽다 살아나기도 했지 않나. 그리고 10.26 이후에 다시 군부가 정치 일선에 나섰다. 그 분들은 DJ에 대해서 상당히 공포심 같은 게 있더라.

프레시안 : 이른바 '빨갱이'로 보는 것인가?

윤여준 : 그런 차원보다도, 정치인으로써 강고한 호남 지역 기반이 있고, 호남 사람들에게는 신앙의 대상으로 영향력이 매우 컸다는 것, 그래서 지역감정의 폭발가능성 때문에 DJ에 대해서는 굉장히 공포감이 있었다.

반면 YS에 대해서는 실체보다 굉장히 무시하는 태도가 있었다. 3당 합당 할 때 제가 청와대 정무비서관이었다. 합당 작업을 했는데, 그 때 노태우 전 대통령 주변 참모들이 'YS는 야당 할 때나 YS지, 여당으로 오면 딱 석 달 안에 정치적으로 완전히 죽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 때 내가 당시 정무수석에게 '나는 출입 기자로 YS, DJ를 겪어본 사람이다. 그런데 당신들은 겪어본 적이 없다. 내가 보기에 정말 경계해야 할 사람은 YS다. 왜냐하면 YS는 특유의 승부사 기질이 있어서 한 번에 판돈을 다 건다. 이른바 '올 오어 나씽(All Or Nothing)'이다. 이 사람은 일을 저지르는 타입이다. 그런데 DJ는 매우 신중한 사람이고 안전 위주로 게임을 하는 사람이라서 노름을 할 때 판돈을 여러 곳에 나누어 거는 사람이다. 여기에서 잃으면 다른 곳에서 따서 보충하는, 안전하고 신중한 그런 사람이라서 DJ는 막상 큰일을 못 저지른다'고 했다.

그런데 그 얘기를 안 듣더라. 나중에 YS가 3당 합당을 하고 나서 얼마나 세게 몸부림을 쳤나. (내각제 밀약이 폭로되고 나서) 당무 거부하고 마산 가고, 청와대가 난리가 나고, 그런 풍파가 여러 번 있었다. 그런 것을 이 사람들은 예상을 제대로 못했던 것이다. DJ는 어쨌든 (군부 출신 정치인들에게는) 워낙 두려운 존재였기 때문에 중상모략을 많이 받은 게 사실이다. 그래서 희생자인 측면이 있다. 또 하나 집중적인 권력의 타겟이 됐기 때문에 오히려 정치적으로 성장한 측면이 없지 않다. 양면이 다 있다고 본다. 마치 지역주의 희생자이면서 수혜자인 것처럼.

▲ 제가 볼 때는 두 분 다 권위주의적인 통치 스타일이었다는 공통점이 있고, 또 하나 두 분 다 만기친람(萬機親覽, 군주가 모든 정사를 다 살핌)형이다. 꼼꼼한 메모와 지식을 바탕으로 정국을 운영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도 꼼꼼하게 메모했던 분이다. DJ는 그보다 더 했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YS, DJ 두 분의 정치 스타일에는 어떤 차이가 있었나?

윤여준 : 인물 중심의 당 운영이라는 점에서는 똑같다. 각각 강고한 지역 기반을 기초로 했다. 우리나라 정당이 다 그렇지 않나. 정당이 만들어지고 후보나 총재가 등장하는 게 아니라 사람이 하나 있고 그 사람이 당을 만드는 형식이었다. 그래서 김영삼이나 김대중이나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당 운영 방식은 수직적이었다. 민주적인 방식은 아니다. 아무래도 '권위주의 권력의 탄압을 이겨내려면, 우리도 일사불란한 체제가 필요하다'는 명분도 있었다.

제가 출입 기자로서 겪어본 바에 의하면 상도동(김영삼)은 그래도 리버럴(자유주의적인) 한 게 있었다. 그런데 동교동(김대중)은 선생님 말씀이 법이고, 선생님 말씀에 토를 달거나 하는 것도 용납이 안 되는 분위기였다. 제가 볼 때 두 분 다 태어난 세대, 성장한 세대가 전혀 민주적이지 않은 세대인 것이다. 그리고 정치 생활을 하면서도 명분이 어찌됐든 늘 비민주적인 방식으로 당을 운영하고 통제했다. 그러다 보니 민주주의 훈련을 할 겨를이 없었다.(웃음)

프레시안 : 여론조사 등을 통해 전직 대통령 평가를 해보면 부동의 1등이 박정희 전 대통령이고, 2등이 대개 김대중 전 대통령이다. 두 사람은 각각 우리나라의 산업화, 그리고 민주화를 상징한다. 정치 스타일로 비교한다면 두 사람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윤여준 : 글쎄, 제가 볼 때는 두 분 다 권위주의적인 통치 스타일이었다는 공통점이 있고, 또 하나 두 분 다 만기친람(萬機親覽, 군주가 모든 정사를 다 살핌)형이다. 꼼꼼한 메모와 지식을 바탕으로 정국을 운영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도 꼼꼼하게 메모했던 분이다. DJ는 그보다 더 했다.

프레시안 : 당시 윤 이사장이 기자 생활을 할 때 겪었던 것을 토대로 한 평가인가?

윤여준 : 그렇다. 두 사람의 차이점이라면, 박정희 전 대통령은 정통성 부분에서 큰 결함이 있었지 않나. 대개 권력의 정통성은 도덕성과 효율성, 두 개의 기둥으로 이뤄진다고 보는데 도덕성 측면에서 결함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효율성, 즉 국정의 성과를 가지고 정통성을 보완하려는 그런 노력을 많이 했다. '조국 근대화'의 신념이 굉장히 강해서 국민의 호응을 얻어서 짧은 기간에 산업화를 한 것 아닌가. 그렇게 보면 DJ의 경우는 물론 본인의 정치적 신념도 전혀 다르고 시대도 전혀 달랐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빈곤으로부터 해방, 조국 근대화, 이런 게 워낙 절실한 과제였으니까, 정치적으로 문제가 있어도 눈 감아주고 호응을 했다.

그런데 김대중 대통령이 등장한 시기는 정권이 수평적으로 바뀌는 등 새로운 대한민국에 대한 새로운 동기부여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뭐라고 해야 하나. 적당한 말을 찾기가 참 어려운데, 국가 지도자라기보다 정치 지도자의 성격이 더 강하지 않았느냐 생각한다. 어쨌든 김대중 전 대통령이 국가라는, 대한민국이라는 거대한 정치공동체가 지향해야 할 가치가 뭔가 이런 쪽에 고심했다기보다, 아마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도덕적 권위를 너무 의식해서 그런 점도 있다고 보는데, 자신의 위상과 관련해서 인기를 의식했던 것 같다. 당시 저는 그렇게 느꼈다. DJ가 국정을 너무 정략적으로 접근한다. 이미 자기는 대한민국 국가의 대통령인데 왜 자꾸 정파적으로 접근하고 정략적으로 생각하나. 이게 DJ의 한계다. 그런 생각을 했다.



프레시안 : DJ가 남북관계를 푼 것은 국가 지도자로서 평가받을 수 있는 부분이 아닐까?

윤여준 : 구상이나 취지는 누구도 흠잡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성 여부도 그렇거니와 추진했던 방식을 생각해 보라. 남북 정상회담을 한다는 발표를 총선 3일 전에 발표했다. 그런데, 누가 봐도 너무나 드러나게 된 정략적 목적 때문에 사실 선거에서 재미를 전혀 못 봤다. 실제로 패배하지 않았나.

그 후에 대북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도 어쨌든 국론이 분열하면 안 된다고 본인도 얘기를 했었다. 민족 문제, 경제 문제 푸는 데 초당적 협력이 필요하다고 얘기를 했었다. 그러나 본인이 실천한 게 별로 없었다. 그러니 결국 여야가 정치적으로 격돌하는 상황이 계속 벌어지는데 어떻게 통일 문제, 대북 정책만 여야가 오순도순 얘기하는 상황이 생기겠나. 결국 국론이 둘로 쫙 갈라지는 바람에 통일에 대한 국민들의 열기가 많이 냉각이 됐다. 물론 북한이 변함없는 태도를 보였고, 핵실험을 해 그런 측면도 있지만, 결국 DJ의 남북화해 기여도가 퇴색한 것은 사실 아닌가.

▲ DJ가 국정을 너무 정략적으로 접근한다. 이미 자기는 대한민국 국가의 대통령인데 왜 자꾸 정파적으로 접근하고 정략적으로 생각하나. 이게 DJ의 한계다. 그런 생각을 했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김대중도서관 김성재 관장에게 '남북화해에 관한 남한 내 컨센서스를 이루지 못한 것은 미흡한 점 아닌가' 하고 질문을 했더니, 그 쪽의 대답은 '아니 보수는 그야말로 대놓고 반북적인데 어떻게 설득을 할 수 있었겠는가'라는 취지로 반박을 하던데.

윤여준 : 저 (그 반박에) 수긍하지 않는다. 반북적인 태도가 문제라고 하면 국민을 설득하면 되지 않았을까. 그리고 나서 야당을 설득할 수 있지 않았겠나.

프레시안 : 결국 '남북관계 개선의 공을 본인만 가지려고 했다'고 보는 것인가.

윤여준 : 글쎄, 노벨상 탄 것을 보고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기도 하는 것 같은데, 저는 꼭 그렇게 생각하고 싶진 않다.

프레시안 : 김대중 전 대통령은 해방 후 처음으로 민주적 방식에 의한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다. 이미 말한 대로 우리 정치가 제대로 발전하려면 계승과 극복의 전통이 만들어져야 하는데, 노무현 전 대통령이 과연 김대중 정부를 제대로 계승하고 극복했느냐, 여기에 대해 여러 말이 있다. 어떻게 보나?

윤여준 : 남북관계 같은 경우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나름대로 계승하려고 노력한 게 사실 아닌가. 이런 것은 좀 있겠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나름대로 정치적 이상주의자인 면이 있었다. 자기 꿈이 있었고, 그래서 늘 얘기한 게 권위주의 타파, 지역주의 극복, 이 얘기를 많이 했다. 저는 그 진정성은 인정한다. 방식이 서툴러서 그렇지 진정성은 있었다.

말하자면 DJ도 권위주의적 방식으로 통치한 것이 사실이니까, (노무현 전 대통령이) 권위주의를 타파하겠다는 모습을 보인 것으로 본다. 또 하나는 지역주의 극복을 내걸었다. 본인의 소신이었던 것 같은데, 그것을 극복하려다 보니 DJ를 지지했던 분, 호남 분들에게는 배신이라는 감정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킨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섭섭했겠죠. (2002년 민주당 대통령후보 지역 경선 당시) 노무현 후보에 대한 지지 바람이 광주에서부터 일어나기 시작했는데, 당시를 생각해보면 광주 분들이 (노무현 정부의 통치스타일에 대해) 더 섭섭할 것 아닌가. 그래서 그렇게 (국정 운영이) 어려워지지 않았겠나. 꼭 DJ를 나쁘게 생각해서 DJ를 지워버리겠다는 생각으로 한 게 아니라, 자신의 정치적 이상, 정치적 신념을 실천하려고 하다 보니 그런 일이 벌어진 게 아닌가, 그렇게 생각한다.

프레시안 : DJ 측에서는 노무현 측이 정치적으로 미숙했다고 봤던 것 같고, 특히 노무현 정부의 대북 송금 특검에 대해서는 굉장히 유감스럽게 생각하는 것 같다.

윤여준 : 그 쪽(DJ쪽)에서는 당연히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모르겠다.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 입장으로 돌아가 보면 그렇게 쉽게 생각하기는 어려운 상황이 있었을 것이다. 여론의 압력도 대단했지 않나.

DJ를 넘어서

프레시안 : 박정희에 대한 평가도 많이 엇갈리지만 김대중에 대해서는 더욱 엇갈리는 것 같다. 아직 우리는 역대 대통령에 대해서 사회적 합의가 가능한 평가를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윤여준 : 사회적 합의라, 그것(대통령에 대한 평가)만 사회적 합의가 안 이뤄지는 게 아니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극심한 정치사회적 갈등, 오죽하면 공동체가 해체되는 것 아니냐 하는 우려가 나올 정도로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는 것도 당면 문제들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루지 못해서 그런 것 아닌가.

이명박 대통령이 등장할 때 말하자면 '작은 정부, 큰 시장'을 주장했다. 국가와 시장의 영역을 어떻게 선 그을 것인가 하는, 영역의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 이것도 대통령이 자기 구상을 이야기했어야 한다. '내가 볼 때는 국가와 시장의 영역은 여기에서 선을 긋는 것이 이상적이다' 이렇게 제안하고 사회적 합의를 얻었어야 한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은 그런 노력을 하지 않았다. '작은 정부, 큰 시장'이라는 것을 물리적 규모로 받아들인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청와대 비서진도 전임 정권보다 한 사람이라도 적게 한다든지, 그런 물리적 규모의 대소를 의식한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

지금 벌어지는 복지 논쟁도 결국 국가가 어디까지 복지를 책임질 것이냐 하는 논쟁이다. 이것도 사회적 합의를 구해야 한다. 여러 가지 경제적 여건이나 이런 것으로 봐서 보편적 복지로 가더라도 현재 시점에서는 국가의 능력이 어디까지냐 하는 논쟁이 있을 수 있다. 그것도 많은 논쟁을 해서 사회적 합의를 구해야 한다.

내년에 새 대통령이 선출된다. 인수위도 만들어질 것 아닌가. 그러면 인수위는 먼저(이명박 정부)처럼 하지 말고 전임 정부를 객관적으로 제대로 평가해야 한다. 그래서 국민에게 보고해야 한다. 계승과 극복의 과제를 함께 얘기하고 국민적 합의를 구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성숙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

▲ 2013년에 새 대통령이 취임하고 내년 총선 때 국회의원이 새로 뽑힌다. 그 분들의 임기 중에 일어날 일들을 예상해야 한다. 먼저 한반도 질서에 혁명적인 변화가 있을 수 있다고 본다. 변화를 내다보며 국민의 신뢰를 얻어 현명하게 위기를 대처해 가는 리더십이 등장하지 않으면 우리나라는 굉장한 위기에 들어갈 것이라고 본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노무현 이후의 정치를 보면서 3김 이후의 한국 정치, 과연 발전했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우리 '정치의 수준'이나 '정치인의 자질'이 3김 시대보다 오히려 후퇴한 것 같다는 지적들도 많은데, 어떻게 보나?

윤여준 : '시대는 점점 진화된 리더십을 요구하는데, 실제로는 옛날보다 오히려 못한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드는 것은, 결국 정치인의 자질이 높아지지 않고 시대가 가버리는 것 아닌가. 그래서 이전보다 못한 것으로 보이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찌 됐든 저는 그런 생각을 골똘히 한다.

2013년에 새 대통령이 취임하고 내년 총선 때 국회의원이 새로 뽑힌다. 그 분들의 임기 중에 일어날 일들을 예상해야 한다. 먼저 한반도 질서에 혁명적인 변화가 있을 수 있다고 본다. 그런 변화를 내다보면서 국민의 신뢰를 얻어서 현명하게 위기를 대처해 나가는 그런 리더십이 등장하지 않으면 우리나라는 굉장한 위기에 들어갈 것이라고 본다.

그래서 이제는 정당들이 더 이상 자기들 내부에서만 대통령 후보를 골라내서는 안 된다고 본다. 그런 막중한 책임을 지울 수 있는 자질을 가진 사람을 후보로 세워야지, 당내(여당) 다수파니까 표를 많이 얻어서 후보가 된다? 저쪽 정당(야당)도 마찬가지로 (후보를) 낸다? 이런 일이 되풀이 되는 것은 우리 정치발전을 저해하는 것이기 때문에 국민이 용납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지금부터 그런 캠페인을 하고 싶은 생각도 있다. '우리가 늘 습관적으로 이 당 아니면 저 당에서 사람을 고르는데, 그 과정에서 사적인 연고가 많이 작용한 게 사실 아닙니까. 그러나 주권자가 나라 운영을 하려고 하는데 사적 인연으로 사람을 뽑으면 됩니까. 국민이 그런 것을 용납하지 맙시다.' 하는 식의 캠페인을 하고 싶다. 그래서 정당에 '자질이 있는 후보를 내놓아라. 그렇지 않으면 안 찍을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프레시안 : 정치지도자 김대중, 그로부터 우리가 계승할 것은 무엇이고 극복할 것은 무엇일까?

윤여준 : DJ는 독서량이 많은 분이다. 그리고 굉장히 근면한 분이었다고 본다. 그래서 그런 근면성, 그리고 탐구 정신, 뭔가 배우려고 하고 알려고 하는 탐구 정신, 그런 것은 정말 본받아야 한다. 보통 '식견', '경륜'이라는 말을 한다. 저는 이것을 '지식+경험'이라고 얘기한다. 사람이 지식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고 경험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지식이 없이 경험만 하면 체계화하지 못하게 된다. 지식과 경험이 어우러져야 식견이 되고 경론이 된다고 본다. (DJ의 식견, 경륜과 함께) 아울러서 근면성, 탐구 정신은 기본적으로 지도자가 가져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것은 반드시 본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흔히 YS나 DJ 이런 분들을 전업 정치인이라고 얘기를 한다. MB의 경우는 정치가 아닌 다른 전문성을 가지고 일가를 이룬 '전문 정치인'이라고 한다. 앞으로는 '전업 정치인'은 국가지도자가 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이제는 프로페셔널한 사람들이 등장하게 되는데, 특히 그렇다면 독서, 지적인 욕구가 강해야 한다. 그것은 본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DJ에 대해 비판적인 것은 가급적 말씀을 안 하려는 것 같다. 그래도 굳이 묻겠다. 버려야 할 것은?

윤여준 : DJ나 YS 같은 전업 정치인 같은 모습은 버려야 한다. 요새 흔히 헌법적 가치를 주장하는 분들이 많다. 우리 헌법적 가치 중에 저는 가장 중요한 게 민주주의와 공화주의라고 생각한다. 이런 공공성을 살리는, 그래서 헌법 정신에 충실한 지도자가 중요하다. 그런데 말로는 헌법 정신을 얘기하지만 실제로는 헌법을 별로 안 읽어봤거나, 헌법에 담겨 있는 정신과 가치가 뭔지 별로 인식이 안 돼 있거나 한다.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이다. MB 얘기도 했지만 저는 MB가 집권하고 나서 큰 문제가 되는 것이 공공성의 파괴라고 본다. 아주 심각하다.

그런데, 김대중 대통령에 대해 잘못 말했다가 몰매 맞는 것 아닌가(웃음)

프레시안 : 오랜 시간 솔직한 말씀 감사하다. 인터뷰를 마치겠다.

* 윤여준은 1939년 충남 논산 출생으로 <동아일보> <경향신문> 기자를 거쳐 1977년부터 관계와 정계에서 일했다. 청와대 공보ㆍ의전ㆍ정무 비서관과 김영삼 정부에서 청와대 공보수석비서관, 환경부 장관 등을 역임했다. 1998년 한나라당 총재 정무특보, 16대 국회의원(2000-2004년)을 거쳐 2002년 대선 당시 이회창 후보의 선거전략가 역할을 했다. 현재 한국지방발전연구원 이사장을 맡고 있다.

* <프레시안>은 김대중 전 대통령에 관한 독자 여러분의 글을 널리 구합니다. 김대중의 정치적 유산 중 우리가 계승해야 할 것, 극복해야 할 과제 등에 관한 진솔한 생각을 담아 webmaster@pressian.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ilys123@pressian.com 다른 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