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스를 이해하자고? 그렇다면 북한은...
펜스를 이해하자고? 그렇다면 북한은...
[기고] 미공군의 폭격과 북한의 집단적 상처
펜스를 이해하자고? 그렇다면 북한은...

2018 평창동계올림픽을 찾은 고위 인사 가운데 단연 무례한 인물은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었다. 그는 평창 올림픽 개회식 리셉션을 사실상 보이콧한데 그치지 않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헌법상 수반이자 북한 대표단을 이끈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을 일부러 외면했으며, 버젓이 탈북자들을 만나는 등 남의 잔치집에 재를 뿌리는 행동들을 서슴치 않았다.


펜스의 외교적 결례를 지적하고 질타하는 목소리들이 국내외에서 이어지자, 일부 언론과 시민들이 펜스의 아버지가 한국전 참전용사였다는 점을 넌지시 부각시키며 북한에 대한 펜스의 적개심을 이해하려는 듯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미국의 부통령쯤 되는 자가 자기 아버지가 한국전에 참전했다고 해서(전사한 것도 아닌데) 북한에 대해 적개심을 지니고 있다는 것도 이치에 닿지 않고, 설사 북한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이 있다 해도 평화의 축전인 올림픽에 와서 그 감정을 저토록 저열하게 드러낸다는 건 상식에 어긋난다. 


나는 펜스의 심기를 헤아리려고 안간힘 쓰는 일부 언론과 시민들에게 미국에 대한 북한의 마음을 헤아리려는 노력을 한 번이라도 해 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을 던지고 싶다. 그리고 그런 언론과 시민들에게 김태우 서울대 평화연구소 HK 연구교수가 쓴 〈폭격 : 미공군의 공중폭격 기록으로 읽는 한국전쟁〉이라는 책을 읽을 것을 권한다. 


▲ <폭격>(김태우 지음, 창비 펴냄). ⓒ창비

김 교수는 미국 국립문서보관소(NARA)와 미공군역사연구실(AFHRA)에서 입수한 미공군 문서, 한국전쟁 당시의 소련, 중국, 남북한 문서 등을 토대로 한국전쟁 시기 미공군의 활동상을 서술한 기념비적 저술을 남겼다. 한국전쟁 발발 직후부터 휴전협정이 발효되기 직전까지 미공군은 제공권 장악, 북한 내 군사시설·산업시설 등에 대한 전략폭격, 병참 및 보급선에 대한 폭격, 지상군에 대한 화력지원 등의 역할을 수행했다. 미공군을 빼놓고 한국전쟁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김 교수에 따르면 한국전쟁 시기 미공군의 폭격 전략은 정밀 폭격-초토화 폭격-항공압력 전략으로 변화된다. 정밀 폭격은 한국전쟁 발발 직후부터 중공군이 대거 개입한 이후 맥아더가 11월 5일 초토화 폭격을 공식 천명하기까지의 기간 동안 유지됐는데, 말이 좋아 정밀 폭격이지 북한은 물론 남한 내 북한 점령지역에 대해 불의 세례를 퍼부은 폭격 전략이었다. 단 민간인 거주지역을 폭격 목표로 삼지는 않았다는 점, 2차 대전 당시 드레스덴과 도쿄를 불바다로 만든 소이탄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은 평가할만 하다.


중공군의 전면 개입으로 전세가 급격히 기울기 시작하면서 도입된 초토화 폭격 이후엔 미공군이 소이탄을 사용해 북한전역을 황무지로 만든다. 북한의 거의 모든 도시들은 화염폭풍 속에 잿더미로 변했다. 심지어 작은 촌락이나 고립된 시골마을도 예외가 아니었다. 말 그대로 북한 전역을 석기시대로 돌려놓을 듯한 초토화 폭격이 진행된 것이다. 


정전협정이 진행중이던 1952년 7월 이후 미공군이 사용한 항공압력 전략은 북한의 철도, 수력발전소, 저수지 등을 표적으로 했다. 정전협정을 유리하게 체결하기 위해 북한을 사지로 몰아넣으려는 전략이 바로 항공압력 전략이었다. 전폭기와 전투기의 눈에 띄는 민간인들도 전부 표적이 되어 죽어갔다.


특기할 점은 미공군의 폭격이 북한지역이나 북한인민에게만 행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미공군은 남한 내 북한 점령지역의 군사적, 산업적 목표와 흰옷 입은 피난민들에게도 무차별적으로 폭격과 기총소사를 가했다. 미공군은 피아를 식별할 의지도, 능력도 없었다. 


세계에서 반미감정이 가장 강한 북한인민들의 집단적 멘털리티의 일단이 한국전쟁 시기 미공군의 폭격에서 기인했다고 보는 김 교수의 관점은 타당해보인다. 무고한 북한 주민 입장에서 아무런 군사적, 산업적 가치도 없는 촌락에 미공군 전폭기가 소이탄을 투하해 전 재산을 잃고 사랑하는 가족이 불에 타죽는 광경을 봤다면 죽을 때까지 결코 미국을 용서하기 어려울 것이다. 북한주민을 상대로 한 건 아니지만, 아래 인용한 사건들을 읽고 아무렇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1950년 9월 10일 인천 월미도에서 발생한 민간인 집단희생 사건이 그 대표적 예다…생존자들의 여러 증언은 당시 조종사들이 확인할 수 없었던 민간인 희생의 처참한 광경을 매우 생생하게 들려준다. 예컨대 사건 목격자인 임ㅇㅇ는 옆집에 살던 10대 고아 삼남매가 전쟁기에 노역 등을 하며 어렵사리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는데, 미군의 공중폭격으로 사방에 불이 붙자 꼭 껴안고 함께 타 죽었다고 증언한다." (p262)


"<뉴욕타임즈>의 종군기자 베럿(G. Barrett)은 1951년 경기도 안양 부근의 어느 농촌 마을을 방문한 후 다음과 같은 기사를 작성했다.


중국군이 마을을 점령하기 3~4일 전에 마을에 대한 네이팜탄 공격이 진행되었다. 마을 어느 곳에서도 시체가 매장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이를 행할 사람이 전혀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우연히 1명의 늙은 여인과 마주쳤다. 그녀는 그곳에 생존한 유일한 사람인 것 같았다. 그녀는 자신의 가족 4명의 시신으로 가득 찬 검게 그을린 마당 안에서 몇벌의 옷을 부여쥔 채 멍하니 서 있었다. 주민들은 마을 전체와 들판에서 발견되고 사살되었다. 그들은 네이팜탄 공격을 당했을 때 취했던 자세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한 남성은 막 자전거를 타려는 참이었고, 50명의 소년과 소녀들은 고아원에서 뛰놀고 있었으며, 한 가정주부는 이상하게 아무 상처도 없었다. (…) 약 200구의 시체들이 그 작은 마을에 놓여 있었다" (p330)


에드거 스노 작가가 일본군의 충칭 폭격 현장을 본 후 한 아래의 말을 읽으면 폭격 피해자들의 트라우마가 절대로 치유될 수 없는 것이란 걸 알게 된다.​ "공습은 자기 아들의 떨어진 머리를 찾고 있는 어머니를 본 적이 없거나, 불에 타버린 학생들의 고약한 냄새를 맡아본 적이 없는 사람은 누구도 진실로 이해할 수 없는 완전히 개인적인 증오를 일으킨다."


미공군의 폭격이 북한인민들에게 남긴 집단적 상처는 너무나 깊고 컸다. 미공군의 폭격으로 북한인민들은 가족을 잃고, 재산을 잃고, 일상을 잃었다. 북한인민들이 겪은 집단적 기억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북한이 핵 및 ICBM으로 상징되는 장거리 미사일 개발에 그토록 집착하는 이유 중 하나가 한국전쟁 당시 북한을 초토화시킨 미국의 무력에 대한 증오와 공포 탓이라고 해도 견강부회는 아닐 것이다. 북한이 한국전쟁을 일으켰으니 대가를 치른 것이라고 한다면 논의가 전혀 진척되지 않는다.


미북 간의 관계 정상화 없는 남북 간의 관계개선이 한계가 명백하다고 전제할 때 북한인민들이 미국에 대해 갖고 있는 원한의 실체를 이해하는 건 중요하다. 미북 간 관계개선의 실마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지금이라도 미국이 한국전쟁 시기 진행된 북폭에 대해 '과도했고 무고한 피해를 입은 민간인들이 있었다. 무고한 희생을 겪은 민간인들에게 사과한다'는 정도의 사실 인정과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한다면 어떨까 싶다. 아마 미국에 대한 북한인민들의 응어리가 상당히 누그러지지 않을까? 물론 펜스 같은 자가 부통령으로 앉아 있는 지금의 미국에게 이런 주문은 참으로 얼토당토 않아 보인다.


중요한 건 북한을 악마화하고 절멸시켜야 할 적으로 상정하는 것, 북한을 영구히 가해자의 자리에 위치시키는 태도는 북한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가로막는다는 사실이다. 앞으로도 남북관계는 온갖 우여곡절을 겪게 될 것이다. 대북정책도 강온을 오갈 가능성이 높다. 그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관건은 북한에 대한 정확한 이해에 바탕한 정책이 수립되는가다. 지피(知彼)없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펜스를 이해하려는 노력의 십분의 일만이라도 북한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건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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