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가 능사는 아니다
인내가 능사는 아니다
[김형찬의 동네 한의학] 나에게 맞는 삶을 살아야
"지금까지 잘 버텨내셨네요. 그런데 이제는 몸이 더 이상은 어렵다고 합니다. 말씀하신 증상들은 상관없어 보이지만, 실상은 하나로 꿰어집니다. 이런 경우 두더지 잡기 게임처럼 하나를 잡으면 다른 곳에서 다른 증상이 튀어나오거든요. 그걸 일일이 따라가다 보면 나중에는 몸이 지쳐서 뭘 못하게 됩니다. 여태까지 받아온 치료들이 효과가 없지는 않았지만, 변화를 이끌어 내기에는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두더지가 나오는 패턴을 이해하고, 게임기의 전원을 끌 수 있는 방식으로 접근해 보죠."

환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몸에 드러난 사인들을 하나씩 확인해 나가다보면, 자기 앞에 놓인 현실을 참 열심히 버티면서 살아왔고,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어느 한 사람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지 않은 이가 없다는 말에 깊이 공감하게 되지요.

그런데 그런 분 중에는 자신의 장점이나 개성을 죽이고, 사회나 다른 사람이 정해준 틀에 자신을 애써 맞추느라 참고 지내온 이가 꽤 있습니다. 마치 신화에 나오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처럼 기준에 맞추지 않으면 더 큰 일이 생길 것이 걱정되어서, 혹은 오랫동안 그렇게 살다보니 어느새 자신이 그런 사람이라고 스스로 여기게 되어 익숙함에 이끌려 살기도 하지요. 

하지만 정도와 인지의 차이는 있어도 그러한 불일치에서 스트레스는 발생하기 마련이고, 그것이 시간을 두고 쌓여 병을 만듭니다. 버티는데도 한도가 있기 때문이죠. 이런 분의 말과 몸이 보여주는 신호는 각기 달라서 진료에 애를 먹거나 병의 스위치를 찾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증상들이 의미하는 바를 설명하면 수긍하고 조금씩 스스로를 바꿔가면서 치료하는 경우도 있지만, 때론 의심과 경계심을 드러내며 다음에 오지 않는 분도 있습니다. 그러고 몇 해가 지나 다시 왔을 때 보면 십중팔구 여전히 그 상태 안에서 또 다른 병을 만든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병의 스위치와 시퀀스를 파악하게 되면 그에 맞게 치료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쉽습니다. 버티다 병이 난 경우는 먼저 신경계의 불균형으로 발생한 신체적 긴장을 풀어내는 치료를 합니다. 몸과 마음에 '괜찮아. 힘 빼도 돼, 안심해'라는 신호를 주는 것입니다. 편하게 호흡하고 힘이 들어간 어깨를 다독여서 한껏 위로만 몰려 있던 압력을 풀어 손끝 발끝까지 흘러가게 합니다. 이렇게만 해도 다양한 증상이 사라지지요. 

그런 후에는 그 동안 소모한 에너지를 채우고, 바람직한 상태를 유지할 수 힘을 키우는 단계로 넘어갑니다. 치료와 함께 생활에서 지속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간단한 기법들을 익힐 수 있도록 돕습니다. 그런데 보통은 본인이 불편해 했던 증상이 사라지면 오시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동료들과 나누다 보면 "다들 그렇게 산다", "너는 얼마나 다르냐"라는 말을 듣습니다. 저도 수긍하는 바입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렇게까지 버텨가면서 얻는 게 과연 무엇일까? 혹시 특정한 몇 사람의 신화를 일반적인 것으로 착각하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왜 그렇게 남들 눈에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려고 노력하는 것일까? 교육 때문에? 유전자가 시켜서? 그러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잊고 병까지 나는데? 와 같은 의문을 품게 됩니다. 

최근에 읽은 책(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은 한국이란 나라의 도덕지향성, 그리고 그 바탕이 되는 리(理)에 대한 지향성을 이야기합니다. 돈이 양심이란 말이 유행하는 현실인데다가, 책의 내용에 전적으로 공감하지는 않지만, 사회를 한 명의 환자로 치환해서 생각하면 일리 있는 진단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저자의 말처럼 우리 사회가 도덕지향적이라고 해도 도덕적으로 사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버티다가 병이 나는 것은 도리어 힘이 없기 때문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합니다. 이전 시대처럼 자신의 주장을 폈다가 처형당하는 시대는 아니지만,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막연한 수준에 불과한 어려운 상황조차 감당할만한 힘이 없는 것이지요. 그러다 보니, 지나고 보면 정말 말도 안 되는 후안무치한 자들에게 사회 전체가 농락당하기도 하고요. 

실제 환자들을 봐도 몸의 뿌리가 되는 부분의 힘이 약하고 위로 붕 떠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렇게 되면 본인의 뜻(志)이 견고하지 못해 주어진 조건이나 상황에 끌려 다니게 됩니다. 반대를 하더라도 넓고 깊게 생각해서 자신의 뜻을 명확히 한 후 나오는 것이 아니라, 얕은 단계의 감정적 수준에서 이루어지기 쉽습니다. 이러한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병이 안 날 도리가 없지요.

물론 살다 보면 참고 견뎌야 하는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냥 마냥 버티기만 해야 한다면 인생과 건강의 측면 모두에서 합리적 선택이 아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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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소개
생각과 삶이 바뀌면 건강도 변화한다는 신념으로 진료실을 찾아온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텃밭 속에 숨은 약초>, <내 몸과 친해지는 생활 한의학>, <50 60 70 한의학> 등의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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