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비핵화 모범 답안은 2005년에 나왔다"
"북한 비핵화 모범 답안은 2005년에 나왔다"
[정세현의 정세토크] 볼턴, '리비아식' 핵 문제 해결 방법 버려야
2018.04.10 10:58:30
"북한 비핵화 모범 답안은 2005년에 나왔다"
북미 정상회담이 오는 5월로 예정된 가운데 정상회담을 위한 양측의 움직임이 본격화됐다. 미국 방송 CNN은 지난 7일(현지 시각) "복수의 정부 관료들은 북미 양측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정상회담을 위해 비밀리에 접촉을 진행해오고 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블룸버그 통신> 역시 미국 정부가 접촉을 통해 북한의 비핵화 대화 의지를 확인했다고 전했다.

미국 언론들의 보도 이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9일(현지 시각) 북한과 5월 또는 6월 초에 회담을 하게될 것이며 실제 이를 위해 북한과 미국이 접촉하고 있다고 밝혔다. 트럼프 본인이 직접 해당 보도가 사실임을 확인한 셈이다. 

이에 대해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나서서 보도 내용을 확인하고 구체적인 정상회담의 시기까지 말했다는 것은 북한과 협상에 대한 긍정적인 전망을 내비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또 "미국과 북한은 '비핵화'라는 단어를 다르게 생각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미국 관료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북한의 비핵화 의지의 진정성을 인정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북미 간 어느 정도 수준까지 비핵화 문제가 진전되지 않았다면 미국 정부 관료가 북한이 비핵화 대화 의지가 있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이건 현재로서는 미국이 북한과 회담 전망을 나쁘게 보고 있지 않다는 증거이기도 하다"고 평가했다.

정 전 장관은 북한 비핵화의 구체적인 로드맵으로 지난 2005년 체결된 9.19 공동성명을 꼽았다. 그는 "9.19 공동성명은 비록 13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긴 했고 북한의 핵무기 보유 개수는 달라졌지만, 북핵 문제 해결의 '기본 틀'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여전히 가장 유력한 방안"이라고 주장했다.

정 전 장관은 "(9.19) 성명에는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반대급부로 미북‧일북 수교와 경제 지원, 정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전환 등을 명시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행동 대 행동'으로 이어가겠다고 했다"며 "북한은 성명에서 합의했던 그 프레임을 계속 가져가려고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미국도 정말 CVID(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핵폐기)를 바란다면, 즉 CVID가 실제 이뤄져서 무기 판매 시장이 좁아져도 괜찮다는 각오를 정말 하고 있다면 체제 안전 보장이라는 비핵화의 반대 급부를 어떻게 협상 과정에서 연계시킬 것이지 생각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편 현 국면에서 외교적으로 다른 국가들에 비해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면서 이른바 '패싱' 당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일본과 관련, 정 전 장관은 "우리가 어차피 한반도 문제의 '운전자'가 되기로 했고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기 때문에 북일 간 대화 채널을 열어주는 것이 좋다. 그래야 우리가 주도권을 가질 수 있다"고 주문했다.

그는 "북한 입장에서도 언제까지 북일 수교를 미룰 수 없다. 북일 수교도 북미 수교만큼 중요하다. 우리한테도 북일 수교는 '한반도 냉전 구조 해체'라는 의미가 있다"며 "한중일 정상회담에서 일본에 '곧 북한과 만나게 해주겠다'고 먼저 말하는 것이 좋다"고 덧붙였다.

인터뷰는 9일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박인규 이사장과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지난 7일(현지 시각) 미국 방송 CNN은 북한과 미국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정상회담을 위해 비밀리에 접촉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또 <블룸버그 통신>은 미국 정부가 북한의 비핵화 대화 의지를 확인했다고도 전했습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도 보도가 사실이라면서 5월이나 6월 말에 김정은 위원장을 만날 것이라고 했습니다.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긍정적인 신호로 보이는데요.  

정세현 : 일단 트럼프 대통령까지 나서서 보도 내용을 확인하고 구체적인 정상회담의 시기까지 말했다는 것은 북한과 협상에 대한 긍정적인 전망을 내비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미국과 북한은 '비핵화'를 다르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CVID를 주장하고 있는데요. 그런 상황에서 미국 관료가 언론에 북한이 비핵화 대화 의지가 있다고 말했다는 것은 곧 북한의 비핵화 의지에 대한 진정성을 인정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즉 북미 간 어느 정도 수준까지 비핵화 문제가 진전되지 않았다면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 겁니다. 이건 현재로서는 미국이 북한과 회담 전망을 나쁘게 보고 있지 않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좀 살펴보자면, 존 볼턴 신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주장하고 있는 이른바 '리비아식 해법'은 현실적이지 않습니다. 일단 북한 핵 문제가 미국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미 북핵문제에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함께 엮여있습니다. 제재든 대화든 안보리 상임이사국들과 협조 없이 미국 혼자 비핵화 문제의 방향을 결정할 수는 없습니다.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보상,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평화협정 체결 문제만 해도 그렇습니다. 평화협정은 남북한과 미국, 중국이 관련 당사자입니다. 게다가 중국은 안보리 상임이사국이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을 종합해볼 때 볼턴이 말하는 리비아식 해법이 비현실적이라는 점은 이미 국제사회에서 결론이 난 문제입니다. 반면 2005년 6자회담 이후 채택된 9.19 공동성명은 비록 13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긴 했고 북한의 핵무기 보유 개수는 달라졌지만, 북핵 문제 해결의 '기본 틀'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여전히 가장 유력한 방안입니다.

성명에는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반대급부로 미북‧일북 수교와 경제 지원, 정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전환 등을 명시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행동 대 행동'으로 이어가겠다고 했는데요. '행동 대 행동'으로 추진한다는 측면에서 '선(先) 핵폐기, 후(後) 보상'인 리비아식 해법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또 북한은 이미 리비아식 해결 방식을 거부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2011년 미국은 나토(NATO)의 모자를 쓰고 리비아에 개입하면서 정부군이 아닌 반군의 편을 들었는데요. 북한은 이에 대해 리비아식 해결의 나쁜 점이 여기에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먼저 핵을 폐기시켜놓고, 체제에 대한 보장 없이 경제지원과 핵 폐기를 바꿨기 때문에 리비아가 저렇게 됐다는 겁니다.

북한은 지난 2005년부터 비핵화 문제에 대해 일관된 입장을 보였습니다. 북한이 요구하는 비핵화에 대한 보상은 체제 안전입니다. 그리고 이를 구체적이고 법률적으로 보장하는 것이 수교와 평화협정 체결입니다. 이미 9.19 공동성명에서 한번 짜여진 틀이기도 합니다.

▲ 북핵문제 해결의 이정표를 세운것으로 평가받는 9.19 공동성명이 나온지 13년이 지났다. 사진은 성명 합의 직후 6자회담 참가국 수석대표들이 손을 맞잡은 모습. 왼쪽부터 당시 수석대표였던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사사에 겐이치로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 국장, 우다웨이 중국 외교부 부부장, 송민순 외교통상부 차관보,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 알렉산드로 알렉세예프 러시아 외무부 차관. ⓒ연합뉴스

 
북한의 일관성은 미국의 입으로부터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난 1994년 10월 제네바 기본합의 이후 북한에 경수로 건설을 지원하기 위한 미북 협상이 진행됐습니다. 그 때 한미 간 엇박자가 많이 나왔는데요. 미국 측 협상 대표가 나중에 우리 외교부에 "도대체 왜 당신들은 이 때는 이 말하고 저 때는 저 말하냐"라고 따졌답니다. 오히려 북한은 일관성이 있으니까 예측이 가능해서 협상하기가 편했다고 하면서요.

북한의 이런 전략은 공산당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1945년 태평양 전쟁이 끝난 이후 중국의 공산당과 국민당이 협상을 하는 과정에 미국이 끼어들었습니다. 전승국이기 때문에 아시아 질서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이른바 '운전자' 역할을 하겠다는 구상이었죠. 당시 미국은 공산당은 일관성이 있어서 이야기하기가 쉬운데 국민당은 너무 왔다 갔다 한다고 불평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결국 미국은 중국의 저우언라이(周恩來)한테 확 넘어가 버렸죠.

어쨌든 북한은 일관성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9.19 공동성명에서 합의했던 그 프레임을 계속 가져가려고 할겁니다. 미국도 정말 CVID를 바란다면, 즉 CVID가 실제 이뤄져서 무기 판매 시장이 좁아져도 괜찮다는 각오를 정말 하고 있다면 체제 안전 보장이라는 비핵화의 반대 급부를 어떻게 협상 과정에서 연계시킬 것이지 생각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북한의 핵 물질 신고가 제대로 되면 북미 수교와 평화협정 문제 협의를 어느 수준으로 할 것인지 정해야 하고, 검증이 끝나고 그 다음 단계를 어떻게 진행할지 로드맵을 만들어 놓는 것이 좋습니다.

프레시안 : CNN은 국무장관 후보자인 마이크 폼페이오 현 CIA 국장과 CIA 내부의 한 팀이 비공식 정보 채널을 통해 정상회담 준비를 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북미 양측의 정보 당국 관료들이 정상회담 장소에 초점을 맞춰 몇 번 접촉을 가졌고 제3국에서 만나기도 했다는데요. 국무부가 아니라 정보 기관에서 북한과 접촉하는 것은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요?

정세현 : 트럼프 대통령이 일단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을 불신한다는 점, 그렇다고 허버트 맥매스터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게 북핵 문제를 맡기기도 쉽지 않았다는 점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입니다. 맥매스터의 경력을 보면 북한을 상대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부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북한에 대해 상대적으로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는 CIA에 일을 맡기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또 서훈 국정원장과 폼페이오 CIA 국장 간 협력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입니다. 이 과정에서 북한에 대한 국정원의 판단과 북한의 대미 메시지가 폼페이오 국장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입력된 것으로 보입니다. 국정원-CIA의 협력을 통해 CIA로부터 들어온 보고가 비교적 정확하다는 점도 고려됐을 겁니다.

원래 CIA는 일본의 내각 정보 조사실(CIRO)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 국정원과 이야기해보니까 내각 조사실보다 국정원의 이야기가 훨씬 더 합리적이라고 생각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게 김정은 위원장의 대미 메시지가 트럼프에게 효력을 발휘하게 된 배경 중 하나로 해석됩니다.

그런데 미국뿐만 아니라 북한도 외무성이 아닌, 다른 쪽이 움직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9일 기자들과 만나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에 대해 "지난번 북중 정상회담 때를 보더라도 핵(문제)라든가 부분적으로 외교까지 포함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포괄적인 한반도 문제를 다루는, 남북(문제)보다 더 넓은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는 점을 간접적으로 확인했다"고 말했다는데요. 북한도 김정은 위원장과 김영철 통전부장이 주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북한이 남북 정상회담뿐만 아니라 북미 정상회담 등 속전속결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도 김 위원장의 직할 체제로 움직이고 있다는 정황 증거로 보입니다. 북한은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관계와 미북 접촉에 드라이브를 걸었습니다. 당시 이를 총괄 지휘했던 인물이 김영철이었다는 점을 보더라도 김정은-김영철에 소수의 제한된 인물만 현 국면에 개입하고 있을 겁니다.

물론 김영철 통전부장의 기본 업무는 대남업무입니다. 그런데 대남뿐만 아니라 남한과 대화 물꼬를 트고 그걸 다리로 삼아 북미 대화의 물꼬를 트려는 것이 북한의 그림이었기 때문에 이것이 평창올림픽 이후 지금까지 이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중간에 외무성 등 다른 기관에 이번 국면의 일처리를 넘기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 평창 동계올림픽 폐막식 참석 차 남한을 찾은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이 지난 2월 27일 북으로 돌아가기 위해 숙소인 서울 광진구 워커힐 호텔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남북 정상회담, 성공의 기준은

프레시안 : 이제 남북 정상회담이 보름 정도 남았는데요. 예전의 남북 정상회담과는 달리 북한의 비핵화가 남북 정상회담의 중심 의제로 오른 상황입니다. 그런데 사실 비핵화는 남북이 아니라 북미가 풀어야 할 사안인데요. 우리가 비핵화에 대해 북한과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정세현 : 남북 정상회담에서는 북한의 비핵화 문제와 관련해 일종의 '대원칙' 정도를 합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정상회담 준비위원회에서 비핵화를 정상회담의 의제로 내세우고 있다는 것은 남북 고위급회담에서 이 문제에 대한 교감이 있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다만 남북이 북한 비핵화의 구체적인 사안까지 결론을 내기는 어렵습니다. 기본적으로 북한의 비핵화는 보상이 뒤따라야 하고 이 보상을 줄 수 있는 주체는 우리가 아닌 미국이기 때문입니다.

미국이 원하는 CVID로 가기 위해서는 핵 물질 신고 및 검증을 거쳐 핵 시설 파괴, 이후 핵 무기 폐기의 과정을 밟아야 하는데 이러한 비핵화 단계와 수교 및 평화협정 협상을 어떻게 연계시킬지가 관건입니다.

여기서 수교는 북미 양자가 해야 하는 것이고 평화협정은 남북미중 등 최소 4자가 관여합니다. 비핵화는 특별히 문제점이 발견된 것이 없고 해롭지도 않다면 6자회담 방식을 그대로 가져갈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남북 정상회담에서는 "북한의 비핵화는 기본적으로 'CVID'로 간다는 데 남북이 합의했고 그러기 위해 국제적인 대화 방식으로 비핵화를 추진한다. 또 북미 양자 간 수교 협상을 진행하며 한국을 포함해 직접 당사자들이 참여하는 평화협정을 진행한다"는 정도의 큰 틀에 합의한다면 대성공으로 볼 수 있습니다.

프레시안 : 남북 정상회담 이후 한중일 정상회담이 계획돼있는데요. 5월 말이나 6월 초에 북미 정상회담이 원활히 열리기 위해서는 한미 정상회담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정세현 : 중국이나 일본도 남북 정상회담의 결과를 궁금해 할테니 이 이야기를 듣고 싶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한미 정상회담도 빨리 확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남북 정상회담에서 공개적으로 발표되지 않은 뒷이야기를 미국 대통령에게 반드시 전달해야 합니다.

말씀드린대로 비핵화 프로세스가 여러 단계가 있어서 비핵화와 수교 및 평화협정 등으로 연계시키는 그림을 미국이 그리려면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국 대통령이 북한과 주고 받은 이야기를 미국에 제대로 전해줘야 합니다. 이를 통해 북미 정상회담에서 최종적인 결론이 나오는 것이 좋습니다.

프레시안 : 그런가하면 문재인 대통령은 남북 정상회담 이후 나오게 될 남북 간 합의를 두고 국회의 비준을 받겠다고 했습니다.

정세현 : 1972년 동서독 기본 조약이 만들어질 때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 동서독은 사실상 국가 대 국가의 조약 형식으로 합의했습니다. 그걸 가지고 서독 내에서 '어떻게 동독을 국가로 인정하냐'며 기민당을 중심으로 반발의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결국 위 조약이 연방 헌법재판소에 제소되는 상황까지 가게 됐는데요.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특수 국가 이론'이 나왔습니다.

동서독은 서로가 서로를 국가로 인정하기 어려운 특수 관계입니다. 그러나 국제적으로 볼 때는 양쪽 모두 국가입니다. 따라서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 속에 잠정적인 특수 관계'라는 정의가 될 수밖에 없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에 이러한 내용이 반영돼 있습니다.

그런데 당시 노태우 정부에서는 이 합의서를 일종의 '신사협정'이라고 얼버무렸습니다. 서독 내에서 나왔던 비판과 같은 지점, 즉 북한을 국가로 인정할 수 있느냐는 비판을 우려했기 때문입니다.

북한은 당시 흡수통일에 대한 공포감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의 국회 격인 최고인민회의에서 합의서를 비준 동의 받았지만, 남한 정부는 생각이 달랐습니다. 헌법 정신에 모순된다는 시비가 나오는 것보다는 합의 내용의 이행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던 겁니다. 문 대통령도 이런 부분을 참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 북일 정상회담 주선해줘야

프레시안 : 현재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정세 변화 속에 러시아와 일본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러시아에 가고 이제 일본도 북일 접촉을 시도하려고 할 것 같은데요. 러시아와 일본의 움직임이 현 국면에서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까요?

정세현 : 뭔가 움직임이 있긴 합니다. 그런데 러시아가 김정은 위원장을 부른다고 해서 그가 쉽게 가지는 않을 겁니다. 가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북한은 상대국에 갈 때도, 상대국이 자기들에게 올 때도 항상 얻을 수 있는 것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지난 3월 19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 출석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 ⓒAP=연합뉴스


일본도 이른바 '재팬 패싱'이 두려워서 현 국면에서 뭐라도 해보려고 하는 것 같은데 북일 정상회담을 추진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현 상황에서 납치 문제로 북일 관계의 물꼬를 틀 가능성이 낮은 상황에서 아베 총리나 고노 외상이 모두 납치 문제만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차피 한반도 문제의 '운전자'가 되기로 했고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기 때문에 북일 간 대화 채널을 열어주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야 우리가 주도권을 가질 수 있습니다.

또 북한 입장에서도 언제까지 북일 수교를 미룰 수 없습니다. 북일 수교도 북미 수교만큼 중요합니다. 우리한테도 북일 수교는 '한반도 냉전 구조 해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가 한중일 정상회담에서 일본에 '곧 북한과 만나게 해주겠다'고 먼저 말하는 것이 좋아 보입니다.

일부에서는 현 상황에서의 운전자가 남한이 아니라 북한이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하는데 정확하게는 한국이 잘 운전에서 만들어진 물꼬가 급류가 됐고 여기에 김정은이 올라탄 거라고 봅니다.

특히 북중 정상회담이 이러한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이라고 봅니다. 김정은은 그동안 중국에 몇 번 가려고 했지만 중국은 북한이 원하는 수준의 의전을 제공할 의사가 없었기 때문에 김정은을 부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중국이 김정은에게 오라고 했습니다. 또 북한이 원하는 최고 수준의 의전을 보여줬습니다. 이같은 상황을 만든 것은 한국입니다.

물론 북한도 중국이 필요했기 때문에 방문한 측면도 있습니다. 한국이 트럼프랑 같이 압박하면 2대 1의 싸움이 될 수도 있는데 그 때를 위해 중국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또 중국에서 얻어온 것도 많을 겁니다. 바로 나타나지는 않을 수 있고 북중 국경의 동향을 볼 필요가 있지만, 제재 문제와 관련해 반대 급부가 있었을 겁니다. 그거 없이 김정은이 움직이지는 않았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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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기자 jh1128@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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