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아픈데 한의원에 가라고요?
마음이 아픈데 한의원에 가라고요?
[김형찬의 동네 한의학] 마음과 몸은 서로 영향을 미친다
"침을 맞고, 한약을 먹으면 제 마음이 나아질 거라던데요. 그게 가능한가요?"

"환자분을 괴롭게 한 원인을 없앨 수는 없죠. 하지만 이를 계기로 일어난 불균형한 상태는 조절할 수는 있습니다. 일단 불안의 연쇄반응을 끊는 거죠. 멈추면 여유가 생기고, 그러면 문제가 좀 다르게 보일 수 있어요. 같은 일도 배고플 때와 배부를 때가 다른 것처럼요. 어떤 일은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레 풀리기도 해요. 문제없는 삶이 어디 있겠어요. 피할 수가 없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을 잘 다루는 정도일 테고, 그 부분에 한의학의 방식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유치원생부터 팔순 어르신까지. 병을 나침반 삼아 삶의 궤적을 살피다 보면 다양함 속에도 일정한 룰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우리 몸이 보여주는 규칙의 하나가 바로 마음과 몸의 상호작용입니다. 공학의 발달에 힘입어 우리는 몸을 더는 나눌 수 없을 수준까지 나눠서 들여다보고 있지만(물론 이것이 몸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의미하진 않습니다), 마음이라는 것은 도무지 실체가 없어서 보여 달라고 하면 당황스럽습니다. 혹자는 뇌가 만들어내는 환상 혹은 그와 유관한 화학물질과 전기적 신호에 불과하다고도 하지만, 정말 그걸로 인간의 마음이 다 설명되느냐 하면 인정하기 어렵습니다. 많은 철학이 마음을 정의하지만, 그럴 수 있겠다 싶어도 수학의 증명처럼 완전무결하지는 않지요. 

다만 분명한 것은 마음이라 이름 붙인 그것과 몸은 분명하게 서로 영향을 준다는 것입니다. 

병의 원인에 심리적인 영향이 상대적으로 크다고 판단되었을 때, 의사가 환자의 마음을 바로 움직일 수 있다면 가장 이상적일 것입니다. 어쩌면 성직자의 본래 역할이 그것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능력이 없는 관계로 우회로를 선택합니다. 겉으로 드러난 신체적 증상을 해석해서 그것이 의미하는 심리적 상태를 유추하고 환자를 통해 확인한 후, 몸과 마음이 맞물려 돌아가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고 심리적 상태를 환기하는 것입니다. 그런 후에는 환자가 그런 자신의 몸과 병을 이해하고 스스로 조절해 나갈 수 있도록 돕습니다. 화는 나지만 화를 입지 않는 것을 목표로 하죠. 

그런데 환자의 증상이 1+1=2와 같이 명쾌한 경우는 드뭅니다. 여러 가닥의 실이 서로 엉키고 매듭지어진 경우가 더 많습니다. 때론 가장 큰 문제는 숨겨두고 말하지 않기도 하지요. 사람마다 속내가 다르기 때문에 입력 값은 같아도 내부 상태에 따라 출력 값이 달라집니다. 실연의 아픔을 겪고 폭식과 폭음을 일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식음을 전폐하고 불면의 밤을 보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무렇지 않은 사람도 있고요. 그래서 진단의 과정은 표현된 증상들을 인정하면서도 왜? 라는 질문을 횃불로 삼아 병이란 동굴을 탐사하는 것과 같습니다. 때로는 병의 중심으로 가는 여정에서 막다른 길에 이르기도 하고 미로에 갇히기도 합니다. 시간도 걸리고 시행착오를 겪기도 하지만, 이윽고 그 중심에 이르게 되면 그 때부터 병은 빠르게 치유됩니다. 이 과정과 결과에 바로 의사의 고민과 즐거움이 모두 담겨있지요. 

병이 만들어진 경로를 찾고 바로 잡으려면 기준점이 필요합니다. 한의학은 마음을 설명할 때 혼魂 ․ 신神 ․ 의意 ․ 백魄 ․ 지志(이하 오신五神) 개념을 씁니다. 이 다섯 가지 중 신神-의意-志지를 세로축에 놓고 혼魂과 백魄을 가로축에 두고 보면 편리합니다. 

세로축이 정보를 수용해서 해석하고 정리해서 판단하고 기억하는, 흔히 이성의 작용이라 말하는 측면이라면, 가로축은 보다 본능적인 영역으로 좋고 싫은 것과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좋은 것은 갖고 싶고 싫은 것은 피하고 싶은 보다 생존을 위한 영역입니다. 이 중 혼이 희로애락으로 대표되는 감정의 만족과 불만족을 표현하고 조절한다면, 백은 식욕, 수면욕, 성욕이나 부와 명예를 추구하는 것과 같은 신체적 혹은 물질적인 부분과 관계됩니다. 인간이면 누구나 갖고 있는 오신이라는 조절시스템이 균형을 잡고 상황에 맞게 적절하게 발현되면 건강한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병이 든 것이지요. 

왜 근래 들어 신경정신과 환자와 의원수가 급증하고 있는 것일까요? 저는 그것이 오신 시스템의 세로축에 과부하가 걸리고, 혼백의 균형감을 잃기 쉬운 사회적 풍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우리에게 입력되는 정보량이 너무나 많고, 변화의 속도는 너무 빠릅니다. 그것을 처리하면서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게 살려고 하다보면, 우리가 어느 순간 흔히 말하는 멘붕의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게다가 그 정보의 질이 본질적인 측면을 반영하는 경우는 드물어서 이성의 질적 저하를 가져 오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얕게 많이 아는 것을 미덕으로 삼고 깊이 파고들 여유를 주지 않습니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제대로 취사선택을 하지 않으면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잃은, 많이 아는 바보가 되기 쉬운 세상이 되었습니다.

물질을 과도하게 중시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대의 백魄을 가득 채워 줄 테니 한편 먹자고 회유한 이방원에게 넋(혼)이 있든 없든 내 마음은 변치 않는다고 말한 정몽주와 같은 사람은 거의 멸종위기에 처했습니다. 감각을 즐겁게 하고 부와 명예를 최우선으로 여기다 보니 이를 충족시키지 못한 사람은 늘 불안하고 불만족인 상태에 빠지기 쉬워집니다. 혼백의 가로축이 한쪽으로 기울어진 것이지요. 이것을 적당히 제어할 이성의 기능은 마비된 상태에 빠져 있다 보니, 기울어짐이 더욱 심해져 결국 자신은 물론 주변, 심하게는 한 나라를 파국에 빠뜨리는 이도 나옵니다. 이런 사실은 우리 현실에서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지요.  

그럼 이런 상태를 한의원에서 어떻게 치료할 수 있을까요?

앞서 말한 것처럼 신체적 반응과 병의 증상을 살펴서 어떠한 심리적 변화가 원인인가를 파악하고, 이를 풀어내기 위해 한약을 쓰고 침을 놓는 것이 한의학의 일차적인 치료방법입니다. 개별적인 약물이나 처방에 관한 연구들이 더 많이 이루어지면 많은 사람들이 과학적이라고 말하는 방식으로도 증명이 되겠지만, 한의학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인간 심리 상태를 세분화해서 이에 따른 신체반응이 어떤가를 정리했습니다. 문명화된 사회의 삶이라면 과거도 현대와 크게 다르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지요. 그래서 진단이 정확하게 이루어지면 매우 강력한 효과를 발휘합니다.

이와 함께 환자가 먹는 음식이나 운동과 수면과 같이 건강의 바탕이 되는 부분을 함께 조절합니다. 우리가 먹는 음식은 신체와 정신이 작용하는 물질적인 토대가 됩니다. 좋은 영양을 제공할 수 없는 부실한 음식을 먹거나 편식을 하면 이를 바탕으로 우리 몸은 만들어지고 작용합니다. 부실하게 먹으면 몸도 정신도 부실해지고, 편협하게 먹으면 몸도 정신도 모나게 됩니다. 

경험적으로나 실제 연구로나 병의 치료와 예방에 음식이 중요하다는 것은 이제는 상식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치료를 위해 일시적으로 약물에 의존하더라도 빠른 회복과 이후 좋은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좋은 음식을 먹는 것이 중요합니다. 정신의 작용 또한 균형 잡힌 물질적 바탕 위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죠. 적절한 운동과 좋은 수면의 중요성은 누구나 공감하는 내용일 것입니다. 실제 치료에서 불균형을 바로 잡은 이후, 그것의 유지를 위해서 힘을 키우는 단계로 마무리 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여기에 한 가지 더 강조하는 것이 호흡입니다. 호흡의 작용과 효과에 관해서는 다양한 주장이 있지만, 치료에 있어서 개인적으로 중요시 하는 것은 환자 스스로에 대한 인지작용의 강화입니다. 마음을 내려놓으라든가, 힘을 빼라든가, 내면을 고요히 하라고 했을 때, 이를 바로 실행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그게 바로 되면 병이 날 일도 없었겠지요. 

하지만 환자가 자신을 선명하게 알아차리는 것은 분명 필요합니다. 우리 같이 평범한 사람들은 뭐라도 붙들고 있어야 안심을 하고 힘을 빼고 거울과 같은 상태가 되는 것이 가능합니다. 그 수단으로 호흡을 이용하는 것이지요. 물론 호흡 외에도 다양한 방법이 있을 수 있습니다. 호흡을 이용하는 것은 효과적이기도 하고 누구나 숨을 쉬고 있기 때문에 익히기만 하면 언제 어디서든 실천할 수 있어서 효과적입니다.

감정을 갖고 고등의 사고를 하는 동물이어서 인간은 많은 것을 이루었지만, 그것이 주는 부담을 잘 조절하지 못해서 생기는 병 또한 갖게 되었습니다. 현대 사회로 접어들면서 처리해야할 정보량의 증가와 빨라진 변화의 속도는 채 소화시키지 못한 생각들을 넘치게 합니다. 여기에 감각과 물질의 만족이 좋은 삶의 기준이 되면서 불평등에 기초한 불균형한 감정들이 우리를 힘들게 합니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이런 추세는 앞으로 갈수록 증가할 것만 같습니다.

이런 문제들을 푸는 방법에 대한 정답은 없습니다. 다만 어떤 병적 상황에 처했을 때 당장의 불편함을 해소하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가면 좋겠습니다. 엉킨 실타래를 하나씩 풀 수 있다면 결과뿐만 아니라 과정에서 얻는 것도 상당할 것입니다. 이 작업에 있어 한의학의 인식방식과 해법이 좋은 도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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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ndfarmer@hanmail.net 다른 글 보기
▶ 필자 소개
생각과 삶이 바뀌면 건강도 변화한다는 신념으로 진료실을 찾아온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텃밭 속에 숨은 약초>, <내 몸과 친해지는 생활 한의학>, <50 60 70 한의학> 등의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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