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등의 불' 사용후핵연료, 어떻게 할 것인가
'발등의 불' 사용후핵연료, 어떻게 할 것인가
[작은것이 아름답다] 핵발전소가 핵폐기장이 되고 있다
'발등의 불' 사용후핵연료, 어떻게 할 것인가
언제부턴가 '사용후핵연료'라 부르기 시작한 '고준위 핵폐기물'은 잠들지 않는 아주 위험하고 불안정한 수백 가지 방사성 물질을 끊임없이 내뿜는다. 섭씨 수천 도까지 올라간 뒤 수십, 수백 년 동안 아주 조금씩 온도가 내려간다. 계속 열을 식히고 방사성 물질이 새 나오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 지금 세대뿐 아니라 까마득한 오는 세대에게 이 어리석은 물질을 떠넘겨야 하는 일이다. 이미 만들어 놓은 것과 앞으로 끝없이 쏟아질 핵 쓰레기에 대해 최소한 방법을 찾지 못한다면, 더 이상 '핵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길을 선택해야 한다. 핵물질을 꺼내 쓰기 시작한 현생 인류가 최소한 가져야 할 책임이다.

▲ 전남 영광 핵발전소. ⓒ작은것이아름답다(김기돈)


늘 발등의 불을 만들었다

우리나라는 25기 핵발전소에서 지금까지 40여 년 동안 1만5000톤 넘는 고준위 핵폐기물을 만들어냈다. 지금도 날마다 핵폐기물이 나온다. 고리1호기 첫 상업운전 시작이 1978년이다. 30여 년이 지나서야 고준위 핵폐기물 처리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문제다.

신고리5·6호기 공론화 뒤로 최근 고준위핵폐기물 임시처분장 문제가 떠오르고 있다. 앞으로 탈핵 정책 기조에 중요한 갈림길이라 탈핵 진영이 긴급하게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폭설이 내리던 날 전남 영광에서 핵발전소안전성확보공동행동(영광공동행동) 황대권 대표를 만났다.

"이전 정부들에서 핵확산 정책에 미칠 영향이나 핵발전소 수출 때문에 고준위 핵폐기물 처리 문제를 미루기만 해왔어요."

박근혜 정부는 고준위 핵폐기물이 포화 상태에 이르는 다급한 상황이 되자, 2013년 4월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를 쫓기듯 일방으로 밀어붙였다. 탈핵시민환경단체는 뺀 부실한 파행운영 끝에 권고안을 냈고, 산업자원부는 2016년 5월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을 행정예고 했다. 핵심 내용은 핵발전소 부지 안에 '단기 저장시설'을 추가로 짓자는 것.

"수십 년 넘게 쌓아둘 고준위 핵폐기물 관련 시설을 추가하는 일이거든요. 2016년 11월 박근혜 정부 마지막 국무회의에서 '고준위폐기물 관리시설 부지선정과 유치지역 지원 법률안'을 정부법안으로 발의했어요. 그 뒤 탄핵정국이 이어져 지금까지 법률안이 국회 상임위에 계류돼 있어요. 자유한국당은 빨리 처리하라고 압박하고 있는 상황이죠."

경주에 중·저준위 방사능 폐기장을 지을 때 '사용후핵연료 관련 시설'은 건설해선 안 된다고 법에 명시한 바 있다. 산업자원부는 근본 대책이 아니라, 이러한 법을 회피하는 방법만 고안했다.

"'고준위 핵 관련 시설은 들어올 수 없다'는 조항에서 '핵 관계시설은 지을 수 있다'로 고쳤어요. 관계시설은 공장에서 자재를 쌓아놓은 창고 같은 곳인데, 경주에 이를 적용하려고 하는 거죠.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고준위 핵폐기물 전체를 아우르는 근본 법안이 만들어져야 하는 이유입니다."

지금까지 정부와 산업자원부는 어떤 정책이든 미리 준비하지 않았다. 황대권 대표는 모든 정책을 '발등의 불'로 만들어 놓는 관행을 지적한다.

"지금 당장 하지 않으면 큰일이다, 난리 치는 거예요. 어쩔 수 없이 두루뭉술 넘어가는 거죠. 지금까지 정부는 위험하거나 문제가 많아도 늘 그렇게 일을 해왔어요."

발전소 수명 연장이나 신규 건설 문제도 절차가 있고 주민 동의도 받아야 하는데, 다 생략하고 돈을 들이붓고 공사를 먼저 시작해 버렸다. 이미 투자한 것을 날리게 되니 눈감아 달라는 태도를 들이밀었다.

"신고리 5·6호기 때도 절차 안 밟고 들이부은 불법 투자가 30퍼센트가 넘었어요. 오랜 세월 이런 논리가 묵인되고 불법 상황을 반복해 왔어요. 중요한 사안이 언제 어떻게 결정되는지 국민들은 전혀 모르는 때가 많아요. 국민에게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국책사업도, 조금의 실수도 일어나서는 안 되는 고준위 핵폐기물 처리마저 이런 식입니다."

▲ 2015년 8월 경주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 저장소 준공식에 참석한 참석자들이 핵폐기물이 저장될 동굴을 찾아 처분 시연을 지켜보는 모습. ⓒ연합뉴스


임시 저장은 핵확산 정책과 맞물려있다

우리나라 고준위 핵폐기물은 핵발전소 부지마다 습식 저장고에 저장하고 있다. 포화 시점을 뒤로 미루려다 보니, 애초 설계보다 저장 간격을 4배나 조밀하게 만들었다. 설계 수명 동안 발생할 총량을 고려해 애초 저장소를 만들어야 하는데, 가동 뒤 절반도 지나지 않아 조밀 저장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재해가 발생해 냉각이 어렵게 되면 추가 방사능 사고가 일어날 수도 있는 불안한 시설이다.

중수로인 경주 월성 핵발전소는 2019년, 경수로인 영광 한빛 핵발전소는 2024년에 고준위 핵폐기물이 포화 상태가 된다. 경수로는 농축우라늄을 쓰고, 중수로는 천연우라늄을 쓴다. 경수로보다 핵폐기물이 3배 넘게 나온다. 경주 월성 핵발전소는 이미 원통형 저장시설 캐니스터 300기와 콘크리트 조밀건식 저장시설이 맥스터 7기가 있다. 2019년이면 포화 상태가 되는 탓에 추가로 맥스터 7기를 더 짓는 계획을 올 6월까지 결정하려는 것이다. 맥스터 하나에 고준위 핵폐기물 16만 8000다발을 저장할 수 있다.

건식 임시 저장시설을 만들면 앞으로 핵발전소 정책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앞으로 40년 넘게 핵확산 기조를 밀고 갈 수 있는 바탕이 되는 탓이다. 문재인 정부는 '탈핵'을 천명하지만, 언제라도 틈새가 생기면 핵발전소 확대 세력이 목소리를 높일 빌미가 될 수 있다.

"당장 똥 쌀 곳이 생기면 아무리 탈핵 정책을 앞세워도 앞으로 수십 년 동안 상황을 바꾸지 않아도 되니까요."

영광 핵발전소 민간환경감시기구 이하영 부위원장은 '임시 저장은 영구처분 전 단계'라고 생각한다. 아무 대책 없이 밖으로 꺼내 쌓아둔다는 건 현재를 모면하려는 것일 뿐, 대책이 아니다.

"10만 년 보관해야 하는 핵폐기물을 발전소 부지에 둔다는 건 핵발전소가 자체가 영구 처분장이 될 수 있다는 걸 뜻해요. 핵폐기물을 우리 지역에 갖다 놓으라고 할 지역이 한반도에서 어디에 있겠어요. 포화 상태가 됐으면 사실 중지하는 것이 맞아요."

계획대로 '중간·영구 처분장'을 찾지 못하면, 결국 현재 핵발전소는 고준위 핵폐기장이 되고 만다.

핵발전소는 건설과 동시에 수명에 따른 폐기물 발생 총량과 관련 시설을 고려해야 하고, 폐기물 한계에 닿으면 바로 폐로 해야 한다. 설계와 운영, 폐로에 대한 전체 그림이 있어야 한다. 위험 요인을 어떻게 없앨 것인지, 핵폐기물에 대한 전체 그림을 완벽하게 그려야하고, 그렇게 할 수 없다면 시작도, 연장도 해서는 안 된다.

"폐기물이 가득차면 폐로 절차를 밟고, 폐로한 발전소와 가동하는 발전소 안전은 어떻게 보장할지 그 방법도 공개해서 추진하는 것이 상식입니다. 임시 처분에 대해 설령 주민들에게 50퍼센트 넘게 찬성해도 위험하다는 사실이 바뀌는 것은 아니니까요."

핵발전소 관련 정책에서 '방사능 물질은 위험하다'는 것이 대전제가 돼야 한다. 탈핵 정책은 핵이 위험한 것이기 때문에 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고준위핵폐기물에 대한 전체 그림을 그려야 한다

전국 핵발전소 부지마다 임시 건식저장고를 만드는 법안은 살아 있다. 지금 법으로도 밀어붙이면 지을 수 있는 시설이다. 문재인 정부는 이미 발등의 불이 된 고준위 핵폐기물 문제를 '재공론화'를 통해 풀 계획을 가지고 있다. 지방선거 전 논의를 끝내고 결론을 내려고 움직이고 있다.

고준위 핵폐기장 호남권 공대위 윤종호 님은 '정부와 핵산업계는 임시 저장고가 핵 산업 유지와 맞물려 있다고 인식하고, 사활이 걸린 문제'로 접근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같은 맥락에서 고준위 핵폐기물 문제는 '탈핵'에 대한 본질 문제가 담겨 있다고 봐요. 핵발전소가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듯 고준위 핵폐기물도 같은 기조에서 접근해야 해요. 모든 지역이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천명하고, 누구나 당사자가 될 수 있다는 의식을 갖는 것이 중요해요."

어떤 식으로든 곧 '재공론화' 문제가 수면으로 올라올 것으로 보인다. 황대권 대표는 정부가 재공론화를 시작하고 짧은 기간 안에 마무리 지으려고 할 텐데, 설령 재공론화 과정에 탈핵진영이 참여한다 해도 최소 2년 논의를 이어가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부는 '재공론화'와 임시 저장고 문제를 떼어놓고 운영하려고 해요. 핵발전소 소재 지역 공론화를 통해 주민이 결정하게 하겠다는 거죠. 주민 의견을 존중하는 것 같지만, 사실 돈으로 보상하면 다 지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공론화 과정이 길어져 저장시설이 가득 차면 논의가 결정될 때까지 핵발전소 가동을 멈춰야 한다. 공론화 과정이 끝난 뒤 이에 따라 법안을 만들어 저장시설을 지어야 한다.

"법안에 임시저장고 수명, 어디에 얼마나 지을 것인지, 영구 저장은 어떻게 할 것인지, 주민들과 국민이 모두 인식할 수 있는 전체 그림이 담겨야 해요."

경주환경운동연합 이상홍 사무국장은 핵발전소 지역 주민들은 지난 40년 가까이 핵발전소에 의지해 살아온 탓에 임시 저장시설 문제에 민감하다고 말한다. "임시 저장시설을 못 지으면 핵발전소를 조기 폐쇄하지 않을까 불안해하는 겁니다. 핵발전소 지원금이 발전량과 연동되어 있으니까 발전소가 중단되는 만큼 지원금도 줄어드는 것을 걱정하는 거죠." 어떻게 주민을 설득하고 이 문제에 접근해야 할지 쉽지 않다. 이상홍 님은 경주 일대가 지진 취약지역이라는 사실을 설득해야 한다고 본다.

"경제성 문제로는 반대하지만 지진 안전성으로 보면 설득력이 있어요. 체감 지진 횟수와 강도가 피부에 와 닿거든요. 지진 규모나 피해가 예측 불가능하니까요."

▲ 한수원 신문 광고. ⓒ황대권

최근 영광 지역신문들에 한국수력원자력공사에서 전면 광고를 냈다.

'미래를 위한 건식 저장시설, 주민과의 약속이 먼저입니다. 자연 바람으로 사용후핵연료 열을 식히는 시설, 원전 부재 안에 안전에게 짓겠다는 주민과의 약속 꼭 지키겠습니다. 세계에서 인정받은 지진에도 견고한 안전한 건식 저장시설.'

황대권 님은 이런 광고들을 주민들이 자꾸 접하면 무뎌지고 별문제 없는 것으로 느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얼핏 읽으면 고준위 핵폐기물 건식 저장시설이 황태덕장이나 마늘 말리는 건조대인 듯 말하고 있어요. 주민들이 약속한 것도 없고, 아직 아무것도 결정 난 것도 없는데, 한수원에서 이 짓을 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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