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이 주목하지 않았던 폼페이오의 이 발언
언론이 주목하지 않았던 폼페이오의 이 발언
[정욱식 칼럼] 북한에 대한 '확실한 안전 보장' 있어야
언론이 주목하지 않았던 폼페이오의 이 발언
14일 오후부터 15일 오전까지 국내 언론이 가장 많이 보도한 내용은 이른바 '북한판 마셜 플랜'이었다. 약 60건 정도의 보도가 쏟아질 정도였다. 직접적인 계기는 "북한이 핵을 완전히 폐기하면 미국의 민간 투자가 허용될 것"이라는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발언이었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우리는 가능한 한 빨리 북한에 무역·투자를 개방할 준비가 돼 있다"고 거들었다.

그런데 정작 미국 언론을 비롯한 외신에서는 '북한판 마셜 플랜'이라는 표현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폼페이오와 볼턴의 발언을 비중 있게 보도하면서도 이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다.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미국 재정 지원 없는 '북한판 마셜 플랜'?

그 이유는 70년 전 미국 국무장관과 오늘날 국무장관의 발언을 비교해보면 잘 알 수 있다. 조지 마셜은 2차 세계 대전으로 피폐해진 서유럽 국가들의 경제 부흥이 필요하다며 '유럽부흥계획(European Recovery Program)'을 입안했다. 그 주된 방식은 서유럽 16개국들의 경제 재건을 돕고 위해 "미국은 대규모 재정적 지원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 결과 미국은 1948년 4월부터 1951년 말까지 서유럽에 당시 화폐가치로 무려 120억 달러에 이르는 경제 원조를 제공했다.

반면 폼페이오는 대북 투자는 "미국 납세자들이 부담하는 것이 아니다"며 민간이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볼턴도 "미국 정부 차원의 경제 원조는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이를 두고 '북한판 마셜 플랜'이라고 부르는 것이 과연 온당한 일일까?

대북 민간 투자와 무역에서 농축산업과 전력을 비롯한 에너지 분야를 강조한 폼페이오는 "내 지역구였던 중서부에는 그런 최상의 것들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 말의 행간에는 쇠락한 자신의 지역구 산업의 활로 가운데 하나로 북한을 삼아보겠다는 취지가 담겨 있다.

폼페이오는 트럼프 이후 대권을 노리는 야심가이다. 국무장관으로 재직하면서 기어코 북핵 문제를 풀어내고 이를 통해 미국인들의 경제적 이익도 보장할 수 있다면 대권에 성큼 다가설 수 있다고 여길 수 있다. 국내 언론이 '북한판 마셜 플랜'이라는 정체불명의 작명에 앞서 이러한 속내를 읽어내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폼페이오 발언의 백미는?

심지어 상당수 언론은 폼페이오가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만난 자리에서 언론 스스로 '북한판 마셜 플랜'으로 작명한 대규모 경제적 보상책을 제시하자 김 위원장이 "새로운 대안"에 사의를 표하면서 "만족한 합의를 봤다"고 말한 것처럼 보도하기도 한다. 과연 그럴까?

평양을 다녀온 폼페이오는 13일 폭스뉴스와 인터뷰에서 아주 주목할 만한 발언을 내놨다. "우리는 확실한 안전 보장을 제공해야만 할 것"이라며 이렇게 강조했다. "북한 지도부가 미국이 실제로 이런 것을 할 것이고, 미국이 더 이상 북한 체제를 위기에 처하지 않도록 할 것이 진정으로 가능하다고 믿도록 어떠한 대통령도 하지 못했다."

여기서 매우 중요한 대목은 "어떠한 대통령도 하지 못했다"고 실토한 부분이다. 이는 과거 미국 행정부들이 '미국은 북한의 안전을 보장키로 했는데, 북한은 이를 거부하고 핵과 미사일 개발에만 몰두했다'는 아전인수를 역지사지의 관점에서 반박한 것이다.

그러면서 폼페이오는 북한이 믿을 수 있는 확실한 안전 보장을 마련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또한 "김 위원장이 미국인과 목표를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도 했다. 정확한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김 위원장이 폼페이오가 구두로 전달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새로운 대안"에 만족감을 표한 것은 다름 아닌 "확실한 안전 보장"이었다는 것을 강하게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다.

'보상'이라는 그릇된 프레임


국내외를 막론하고 대다수 언론 보도의 또 하나의 문제점은 북한의 핵폐기에 대한 조치를 '보상'이라는 프레임으로 씌우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는 핵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문제 해결도 어렵게 한다.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먼저 보상이라는 표현은 '선 핵폐기, 후 보상'이라는 프레임으로 연결된다. 사전적인 의미를 떠나 보상은 보상의 주체가 손해를 감수한다는 뉘앙스를 동반한다. 그래서 '내가 대가를 지불하려면 네가 먼저 할 바를 해야 한다'는 인식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이러한 접근법은 실패를 거듭해왔다.

또한 핵 문제 해결의 본질적인 방식을 오도한다. '북한판 마셜 플랜'과 같은 정체불명의 표현 속에 담긴 대규모의 경제적 보상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경제적 보상은 결코 문제 해결의 본질적 방식이 아니다.

핵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평화협정 체결과 "단계적 군축", 대북 경제 제재 해제, 북미 관계 정상화 등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러한 조치들은 결코 '보상'이 될 수 없다. 비정상적인 상황을 정상화하는 것으로 바라봐야 하고, 또한 관련국들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조치들이다.

물론 보상이 아예 없을 수는 없다. 과거에 중유를 제공하고 무산되었지만 경수로를 제공키로 했던 것 등은 관련국들의 재정 지출을 수반하는 보상에 해당된다. 이는 물론 앞으로도 있을 수 있고 또한 그래야만 한다. 하지만 이는 부수적인 것이다.

언론의 그릇된 보도 양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대다수 언론은 리비아, 우크라이나, 카자흐스탄 등 타국의 사례를 '모델'로 언급하면서 북핵 폐기 방식에 관한 온갖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 북핵은 반드시 해결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이러한 보도를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북핵'만'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북핵 해결에 필요한 조치들에 대한 보도 수준은 턱없이 부족하다. 가령 평화협정에 어떤 내용이 담겨야 할지에 대한 보도는 찾아보기 힘들다. 언론이 북핵에 대한 관심만큼이나 폼페이오도 말한 "확실한 안전 보장"에도 관심을 기울일 때, 북핵 해결의 가능성도 높아진다는 평범한 진리를 유념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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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소개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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