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를 만드는 사람들] 분청사기에 전통의 색채 되살리는 이명복 도예가
[문화를 만드는 사람들] 분청사기에 전통의 색채 되살리는 이명복 도예가
전주서 다시 태어나는 '천년 분청사기'..전통에 뿌리를 둔 실험적인 작품도 돋보여
2018.05.27 12:42:02
[문화를 만드는 사람들] 분청사기에 전통의 색채 되살리는 이명복 도예가

이명복 도예가는 천년의 명성을 이어온 분청사기를 전통에 뿌리를 두고 현대적 감각에 맞게 다시 만들어가는 개척정신이 돋보인다.

문화와 예술은 나라를 이끌어가는 보이지 않는 힘의 원천이다. '예술의 고장'인 전북에는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문화예술인들이 활동하고 있다. 각자의 위치에서 나름 소신과 철학을 갖고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예술인들을 찾아 작품 세계와 삶을 들어봤다. /편집자주

“흙과 불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흙은 저의 운명입니다.”
한줌의 흙이 모양을 갖춘 덩어리로 변한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뜨거운 가마 속에서 새로운 생명체로 거듭나는 손길 속에 스스로도 하루하루 다시 태어난다.


천년의 명성을 이어온 분청사기를 전통에 뿌리를 두고 현대적 감각에 맞게 다시 만들어가는 손길이 있다. ‘도꼼(도자기를 손으로 꼼지락 꼼지락 만든다는 뜻)’ 갤러리-도예체험학습장을 운영하는 이명복 도예가(55)를 찾아 도예가로서의 길을 걷는 그의 삶과 작품을 살펴봤다.

◇분청사기는 한국 도자 문화유산의 ‘특별한 존재’

분청사기는 분장회청사기의 줄임말로 ‘분으로 장식한 회색, 청색의 사기그릇’이라는 뜻이다.

분이란 밝은 노란색이 나는 흙물이다. 그릇을 만든 후 밝은 노란색이 나는 흙물을 겉에 입혀서 초벌구이를 하고 다시 유약을 바른 후 재벌구이를 한다.

분청사기는 고려가 멸망하고 고려시대에 도자기를 만들던 도공들이 전국 각지로 흩어지면서 전국의 여러 가마에서 만들기 시작한 도자기로 백자와 함께 조선시대 초기의 대표적인 도자기로 알려져 있다.

조선 초에는 많은 관광서와 왕실에서도 백자와 함께 분청사기를 사용했다.

하지만 분청사기는 임진왜란이 끝나면서 점차 소멸돼 우리나라에서 자취를 감추게 된다.
반면 임진왜란 전후 일본에서 ‘이도’(井戶)나 ‘미시마’로 불리며 큰 보물 대접을 받았다.

분청사기의 소멸 이유에 대해 여러 학자들의 의견이 있으나 흰색을 좋아하는 우리나라의 민족성과 도자기의 주요 용도가 식기이므로 백자가 선호돼 소멸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견이 많다.

이제는 우리 도자기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에겐 낯설지 않은 ‘분청사기’
.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세계가 그 독창적인 조형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한국 도자 문화유산의 특별한 존재가 분청사기라 평가받고 있다.

이명복 도예가가 만든 다양한 분청사기.

◇“분청사기는 나의 운명”...정읍서 전주로 공방 옮겨

“흙을 처음 만졌을 때 설렘으로 가득했습니다. 흙을 만지며 살아온 지 35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흙에 닿는 순간 행복하기만 합니다”

전북 정읍 산외면서 태어난 이명복 도예가는 전주대 산업미술학과에 진학하며 도자기와 운명적인 인연을 맺었다. 대학원 졸업 후 고향인 산외면의 품에 안겨 도예가의 길로 들어섰다.

그는 특히 분청사기 만드는 것에 더 애정과 관심을 쏟는다.

지금은 고인이 된 ‘내장도예’ 나희용 도예가를 찾아 배우기도 했다. 또 ‘도자기의 고장’으로 알려진 여주에 6개월 정도 거주하며 도자기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도 계속했다.

수많은 수행착오와 깨달음을 반복하며 20여년 가까이 산외면 ‘도꼼’ 공방서 분청사기를 만들어 온 이명복 도예가는 전주로 공방을 옮기게 된다. 전주 모악산 근처에 가마터를 잡고 도예가로서의 제2의 삶을 꿈꾸게 된 것.
고향인 정읍 산외에서 작업한 작품들로 마지막 전시회를 열어 그 의미도 되새겼다.

모든 과정을 수작업으로 하고 원하는 작품을 빚어내기 위해 전통적인 장작가마터까지 만들었다.

작품을 하는 도예가들은 경제적인 면에서 절벽과 마주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경제적으로도 안정을 찾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통했을까? 그토록 소망하던 전주한옥마을 한 켠 에도 소중한 작품들을 선보일 공간을 마련했다. 전시판매장 오픈을 앞두고 미세한 떨림과 설렘으로 여러 날 동안 밤잠을 설치기도 했다.

전주한옥마을 전시판매장 운영과 관리는 아내가 맡고 있다. 주로 생활형 도자기를 주로 전시, 판매하며 ‘도꼼’ 공방의 손길을 대중에게 전달하고 있다.

작업실 분위기도 분청사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향기처럼 소박하고 자연스럽게 만들었다.

작업실에 아기자기하게 진열돼 있는 머그, 커피잔 세트, 도자기 소품 등등 억지스러운 데가 없다. 작가가 여기저기서 구해 놓은 의자나 책들도 도예작품과 궁합이 잘 맞다.

이런 자연스러운 분위기 때문에 도자기 체험을 원하는 수강생 등 이곳을 자주 찾는 이도 부쩍 늘었다.

이명복 도예가의 창조정신이 돋보이는 벽에 거는 분청 도판.

◇회화와 조각의 접점, 벽에 거는 분청도판 만들어

분청사기는 소박하고 서민적인 특성을 지녔다고 한다.

고려시대의 청자가 화려하고 귀족적인 면과 대조적이다. 고려의 청자에 비해 색상도 그리 밝지 않고 그릇의 모양도 투박하다. 하지만 이런 소박한 모습은 오히려 더 친근하기도 하다.

또한 분청사기는 다양한 기법이 사용한다.

고려시대에 유행했던 상감기법. 촘촘히 도장을 찍고 그 파인 곳을 장식하는 인화기법. 밝은 노란색 흙물을 바르고 그 자리를 파내서 그림을 그리는 음각기법. 풀로 만든 빗자루로 휘돌아서 흙물을 발라 생동감이 넘치는 귀얄기법. 흙물을 바르고 무늬만 남기고 바탕은 파내는 박지기법. 신화철로 그림을 그리는 철화기법. 그릇을 만든 후 흙물을 담궈 전체를 밝은 색으로 장식하는 덤벙기법 등을 사용한다.

그는 회화와 조각의 접점을 찾아 벽에 거는 분청 도판을 만들었다.

사각형의 ‘분청 도판 도자기’는 장인정신의 새로운 일면을 보여주고 있다. 탄탄한 기본기에 존통에 뿌리를 두고 실험적인 작품에 개척정신까지 돋보이는 대목이다.

그의 분청사기는 흙의 질감과 색에 충실하면서도 독창적이라는 평가와 함께 “독특하고 따뜻하다. 인생을 보는 것 같다”는 호평도 받았다.

그는 “아직 많이 부족하다“며 스스로를 빚어낸다. 무수한 실패를 딛고 1300도의 장작 불꽃에서 본래 흙의 느낌을 간직한 분청사기를 만들어내는데 혼 힘을 다할 뿐이다.

그의 얼굴엔 늘 호기심이 가득하다. 새로운 것을 찾는 아이 같다. 전통 기법을 고수하지만 현대적 감각에 맞는 새로운 분청사기 만들겠다는 의지도 다져간다.

◇전통 도예기법 이으면서 현대적 색채 입히기 나서

이명복 도예가가 빚어낸 분청사기엔 주로 고향에 대한 정과 그리움, 안타까움 등 다양한 형태가 작품 속에 녹여 있다.
‘달을 삼킨 항아리’ 개인전에 내놓은 수십 여 점의 작품을 통해 속내를 여실히 드러냈다.

그가 분청 상감기법을 활용, 달 항아리에 담은 하늘을 날고 싶은 물고기와 연꽃, 해초, 버들강아지 등을 그렸다. 약은 재유를 사용하고, 투박한 분청에 그 느낌을 표현했다. ‘달을 삼킨 항아리 작품’은 작품명이 의미하듯 바람과 바다와 하늘이 주는 다양한 안료(顔料)들을 이용, 다양한 색상으로 도판에 옮겼다.

물고기를 품은 접시 작품은, 인간이 삶에서 자유를 누리려 하지만 자유롭지 못한 물고기처럼 접시 안에 사는 인생을 여러 가지 사각형태의 도판으로 표현했다. 또한 풍경이 있는 화병 작품은 오방색을 겹쳐 칠한 후 긁어내는 기법을 활용, 고향에 핀 꽃들과 들판, 하늘과 달, 그리고 잊지 못할 추억들을 화병에 담았다.

전시장을 가득 채운 이명복 도예가의 분청사기 작품은 분청사기의 새로운 가능성을 돌아보게 한다. 전통의 정신을 몸으로 이어받고 그 속에 현대성을 녹여 넣는 혼신의 기력이 이들 작품에 고스란히 스며있다.

깜짝 놀라게 하는 아이디어나 지식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순수와 고독과 열정이 묻어있다는 점에서 더욱 애착이 간다.

이명복 도예가가 현대적 감각을 녹여 만든 분청사기.

◇6월5일 이명복 분청사기전...가을엔 개인전 준비 열심

이명복 도예가는 호리병, 막사발, 접시, 항아리, 주전자, 도판 도자기 등 다양한 분청자기 제품을 만드는 한편 문양, 형태, 색의 다양성을 추구하는 등 새로운 도전을 계속하고 있다.

1992년 전주 얼 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통해 대중들에게 다가선 그는 현재까지 14회의 개인전 및 400여회의 다양한 기획 초대전에서 활동하고 있다. 1994년부터 전주대 평생교육원 도예 강사로 활동하는 그는 전통 도예 문화를 계승하고 대중성을 확보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손으로 제작하는 도자기는 동시에 같은 분청 기법과 형태로 제작한다 해도, 100% 똑같이 만들 수 없기에 기성 제품과는 다른 가치를 인정받는다. 그렇기에 작품 하나 하나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만들어가려고 노력 중이라고 한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도예가의 길을 걸어오면서 자신만의 독특하고 농염한 감수성과 창의력, 남다른 예술적 사고와 깊이가 있어 개성적이고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어 내고 있다.

또한 도예가로서 이 시대를 살아간다는 것은 각고의 노력과 어떠한 역경 속에서도 항상 손에서 흙을 놓지 않고 도자예술만의 특성과 형태, 문양, 기법처리 등을 자기 것으로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지금까지 살아왔다.

이것저것 따지거나 계산하지 않고 언제나 늘 해오던 대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분청사기 속에는 아직도 묵묵하고 은은한 향내가 배어있다.

오는 6월 5일 전주에 있는 갤러리 피크니크 개관기념 ‘이명복 분청사기전’ 준비에 여념이 없다. 가을엔 다시 개인전도 준비 중이다.

이번 전시회에서 관람객과 함께 차를 마시며 만날 작정이다. 벌써부터 흙과 불 이야기를 나누게 될 것에 설렘으로 가득하다.

이명복 도예가는 갑오동학미술대전, 전국춘향미술대전, 전북미술대전, 전국 무등미술대전, 경상북도 미술대전, 온고을 전통공예 전국공모전, 관악 현대 디자인 공예대전 운영위원, 대한민국 황실공예 지평선대전 운영위원, 전국온고을미술대전 심사 및 운영위원으로 활동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전북도예가회, 천잠공예가회, 전업미술가협회, 흙사랑회, 시대미술협회, 토목금 회원, 전북미술대전 초대작가, 전국 무등미술대전 초대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특히 전주대 평생교육원에 출강, 도예의 대중화에도 앞장서며, ‘도꼼도예’를 운영하고 있다.

miso12077@naver.com 다른 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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