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꼽통증으로 느껴지는 아이"를 입양 보내야 할까
"배꼽통증으로 느껴지는 아이"를 입양 보내야 할까
[프레시안 Books] 황선미의 <엑시트>
2018.06.15 17:15:39
"배꼽통증으로 느껴지는 아이"를 입양 보내야 할까

'성선설'을 믿지는 않는다. 하지만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하냐'고 생각되는 많은 경우가, 몰라서다. '그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는 게 어떤 일인지 우리는 모른다. 그 사람이 인성이 나빠서, 무책임해서, 파렴치해서 벌어진 일이 아닌 경우가 더 많다.

<마당을 나온 암탉>를 쓴 황선미 작가의 신작 <엑시트>는 우리가 너무 몰랐던, 그래서 '책임도 못질 아이를 낳았다'고 곁눈질 했던, 10대 미혼모의 삶에 대한 얘기다.

▲ <엑시트>, 황선미 지음, 비룡소 펴냄

주인공 '장미'는 열여덟 살에 아이를 낳았다. 장미는 엄마, 아빠의 얼굴조차 기억 못할 정도로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버림을 받아 할머니 손에 자랐고, 할머니가 죽고 나선 고모 집에 얹혀살다가, 생전 처음 좋아하는 감정을 느낀 이성에게 그 감정을 고백하자마자 강간당했다. 그래서 모자보호원에서 모두가 '이 아이는 입양 보내질 것'이라고 예상하는 아이를 낳았다.

장미는 그 아이를 데리고 보호원을 탈출했다. 그리고 모자 보호원에서 만난 친구 진주의 자취방에 얹혀살며 '하티'를 키운다. 아이 이름은 술 취한 진주가 혀 꼬부라진 소리로 그렇게 불러줘서다.

"장미는 입양도 보육원도 선택할 수 없었다. 하티를 누군가에게 줘야 한다는 사실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건 J 때문도 사랑 때문도 하티가 불쌍해서도 아니었다. 하티는 배속에서부터 장미 것이었다. 배 속의 장기나 손가락처럼 몸의 일부였으니 태어났어도 달라질 게 없었다. 세상에 자기 것이라고는 없는 장미에게 하티는 먹어야 하고 돈 벌어야 하고 잘 곳을 찾아야 하는 이유였다."

세상 어디를 둘러봐도, '내 것'이라고는, '내 편'이라고는 없는 장미에게 하티는 "배꼽 통증으로 느껴지는" 존재다. 한국 사회에서 하티는 출생신고도 못해 '존재'하지도 않는 아이지만, 장미에겐 사회와 연결된 유일한 '끈'이다. 이 끈이 떨어지면, 장미의 부모가 장미에게 그렇듯, 살아도 산 사람이 아니고, 죽어도 죽은 사람이 아니다. 홍수가 나면 구정물이 차오르는 지하 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동안 친구 진주가 분유는 제때 먹이는지 기저귀라도 제대로 갈아주는지 몰라도, 잘 씻기지 못해 몸에서 비린내가 나는, 하티를 장미는 끝까지 놓지 않는다. 장미는 하티를 키우기 위해 사진관 아르바이트를 하며 만나게 된 성인 해외 입양인들을 보며 자신의 선택에 더 확신을 갖게 된다. 이런 모습을 보고 어떤 이들은 '제대로 키우지도 못하면서 아이를 볼모로 한다'고 비난할 수도 있다.

한국 사회는 '엄마가 새 출발을 하고, 아이가 더 나은 가정에서 자라기 위해서'라며 미혼모들에게 '입양'을 권한다. 장미도 모자보호원에서 그 이야기를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다. 하지만 정작 그렇게 해외로까지 입양 보낸 아이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는 관심이 없다. 애초에 한국 사회의 관심은 미혼모와 그 자녀 '문제'를 없애는 것에 있었지, 미혼모와 그 자녀들에게 있지 않았다.

밀리언셀러인 <마당을 나온 암탉>에서 청둥오리를 키우는 암탉의 이야기를 통해 '모성'의 의미를 물었던 황선미 작가는 신작 <엑시트>에서 또 다른 의미의 '모성'에 대해 묻고 있다. 그런 점에서 두 작품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두 작품의 주인공 모두 세상의 통념과 다른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을 통해 스스로의 행복을 추구하는 용기 있는 여성이라는 점에서도 작가의 일관된 문제의식을 느낄 수 있다. <마당을 나온 암탉>의 잎싹의 모성에 찬사를 보낸 한국 사회가 <엑시트>의 장미에게도 찬사와 격려를 보낼 수 있기를 바란다.

황선미 작가는 미혼모와 입양이라는 주제가 얼마나 작품으로 다루기 어려웠는지 '작가의 말'을 통해 고백했다. "입양. 이 소리를 짊어지고 참 오래 걸어왔다. 떨쳐 내지지 않는 이물감을 안고 오는 내내 입안에 염증이 생기는 지병에 시달렸는데 그 원인이 몸이 허술해서라기보다 이 문제를 원고로 풀려는 욕심 혹은 스트레스가 너무 지독했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닫는다. (...) 얼마 전에 만난 화가의 작품은 좀 더 인간적인 아픔을 각인시켰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이 상흔을 인간이 인간에게 가한 원초적인 폭력으로 받아들인다. 어머니가 누구인지 모르고 왜 그렇게 멀고 낯선 곳까지 가야 했는지 의문이었던 입양인 화가의 작품 속 여성의 얼굴은 하나같이 비어 있다. 이목구비가 없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몰랐다. 모른다는 말은 무책임하다는 말의 미화된 표현이기도 하다. 2017년에도 398명의 아동이 해외로 입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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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홍기혜 기자 onscar@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2001년 프레시안 공채 1기로 입사한 뒤 정치, 사회, 경제 분야를 취재했습니다. 2013년부터 4년 동안 편집국장을 지냈습니다. 프레시안 기자들과 함께 취재한 내용을 묶어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한국의 워킹푸어>, <안철수를 생각한다> 등을 책으로 냈습니다. 원래도 계획에 맞춰 사는 삶이 아니었지만, 초등학생 아이 덕분에 무계획적인 삶을 즐겁게 살려고 노력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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