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나 지금이나, 쌍용차 해고자는 어디로 가야 하나
그때나 지금이나, 쌍용차 해고자는 어디로 가야 하나
[기자의 눈] 고립된 섬 속의 해고자들...국가란 무엇일까?
2018.07.04 16:33:28
"저 빨갱이 새끼들. 다 때려잡아야 해."
"신성한 우리 땅에서 대체 뭔 짓이냐. 당장 나가."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3일 낮 12시께, 기자회견을 마친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이 분향소를 설치하려 하자, 대한문 일대는 아비규환이 됐다. 친박단체인 태극기행동국민운동본부 회원들이 문제였다. 분향소 천막을 철거하려 달려드는가 하면 분향하려는 사람들을 향해 물병, 의자 등을 던지기도 했다. 

이들은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이 기자회견을 하기 전에 이미 대한문 곳곳에 천막을 설치해둔 상태였다.  


겨우 분향소가 설치됐으나 아수라장은 그대로였다. 보수단체 회원들은 분향소 바로 옆에 방송차 스피커를 놓고는 연신 군가를 틀어댔다. 그 소리로 옆 사람과의 대화는 포기해야 했다. 이러한 방송은 대한문 건너편 프라자 호텔의 항의가 있던 4일 새벽 2시까지 계속됐다. 막말도 이어졌다.

"고인의 죽음은 애도하나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평택 공장에 가서 분향소를 차려라. 당신들은 고인의 '시체팔이'를 하러 온 게 아니냐. 우리의 장소인 신성한 대한문에서 어서 나가라."

분향소를 방문한 사람들에게도 욕설과 폭력이 이어졌다. 금속노조에 따르면 국본 회원들은 이날 저녁 조문하러 온 문규현 신부에게 '날라리 신부'라고 하는가 하면, 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에게 욕설을 퍼붓고, 폭력을 행사했다. 
  
밤에도 이러한 행동은 이어졌다. 밤 8시께 이들은 분향소에 사람들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했다. 이 과정에서 몇몇 시민과 시민운동가들이 다쳤다. 대한문이라는 공간 내에서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은 또다시 고립되는 모양새였다. 그 모양새가 참으로 서글펐다. 

▲ 쌍용자동차 대책위에서 분향소 천막을 치려하지 이를 막으려는 보수단체 회원들. ⓒ프레시안(허환주)


가상의 국가와 존재하지 않는 국가 사이에 낀 노동자들

9년 전인 2009년 6월이 떠올랐다. 당시 쌍용자동차 평택공장에서는 옥쇄파업이 한창이었다. 정리해고 명단에 들어간 '죽은'자는 공장 안에서, 명단에 들어가지 않은 '산'자는 공장 밖을 떠돌아다녔다. 

공장 안에서는 경찰특공대와 쌍용자동차 노조원간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싸움이 벌어졌다. 너트와 볼트가 새총에 의해 날아다녔고, 테이저건이 노동자의 얼굴에 꽂혔다.    

공장 내 진입이 철저히 차단됐고, 식수 반입조차도 제지당했다. 하늘 떠 있는 헬리콥터에서는 끊임없이 최루액이 쏟아졌고, 파업 참여자들의 숙면을 취하지 못하도록 매일 새벽 4시면 전경들이 공장 내에서 방패로 땅을 내리치며 연신 구호를 외쳤다. 수위만 다를 뿐 현재 보수단체 회원들이 대한문 앞에서 하는 짓과 의도는 비슷했다.   

공장 밖은 그 정도는 아니지만, 마찬가지로 연일 폭행사태가 벌어졌다. '산'자들은 쇠파이프 등을 들고 다니며 민주노총 차량은 물론, 연대단위의 천막을 번번이 부셨다.  

기자들도 안전하지 않았다. '산'자들은 공장 정문에 설치된 기자실로 찾아와 각종 욕설과 폭력을 행사했다. 모 방송사 기자는 그들에 의해 머리채를 잡혀 끌려가기도 했다. 촬영 카메라가 수차례 박살났고, 기사를 쓰다가 돌 세례를 받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파업이 풀려야 회사가 정상화되는데 '죽은'자들이 이를 막고 있다는 게 폭력 행사의 이유였다. 이들은 '죽은'자들이 '자기네 땅'인 공장에서 나가야만 사태가 해결된다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행동은 그저 분풀이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경영상 위기는 노동자가 아닌 회사 간부들이 자초한 게 아닌가. 불안한 현실 속에서 같은 노동자에게 화풀이를 하는 식이었다. 기댈 곳 없는 그들이 허상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듯했다.  

국가는 이 노동자들에게 '가상'의 어떤 것이었다. 존재해야 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다. 

ⓒ프레시안(허환주)


대한문으로 이야기를 돌려보자. 국본 등 보수단체들이 대한문 분향소에 폭력을 행사하는 이유는 대한문 앞이 '자기네 땅'이기 때문이란다. 이들은 2016년 박근혜 탄핵 정국 때부터 박 전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는 집회를 대한문 앞과 서울광장에서 개최해왔다. 지금도 매주 주말 집회를 열고 있다. 

이들은 여전히 박근혜 탄핵이 음모에 의해 진행됐다고 믿고 있다. 자기네들이 나서서 박근혜의 억울한 누명을 풀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망상일지는 모르나, 실제 그들은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 그들에게 쌍용자동차 해고자의 분향소는 진실을 밝히는데 걸림돌이 됐다. 그들이 나가라며 폭력을 행사한 이유다. 

하지만 이들의 행동 역시 그저 분풀이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집단최면이 걸리지 않고서야 누가 그의 범죄사실을 부정할 수 있을까. 이창근 전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기획실장은 그들의 그런 모습을 두고 자신의 페이스북에 "개인의 욕구와 성취로 삶이 이어지지 못한 채 국가라는 실체 없는 허상에 붙들려 허우적거리는 이들"이라고 했다. 

그들의 국가는 허상이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은 그 허상에 부응한 정권이었다. 이들에게는 노동자 '때려잡던' 그 국가가 정의였을 것이다. 마치 존재하는 것처럼 보였을 뿐인 그 국가는 그러나, 이제 완전히 사라졌다. 박근혜는 아버지의 유산을 걸머지고 감옥으로 들어갔다. 

국가는 무엇일까. '태극기 부대'는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국가를 신봉한다. 노동자들은 이 가상 국가의 '적'일 뿐이다. 이 '적'이 자신들이 신봉하는 '박정희의 국가'를 몰락케 했다고 믿는다. 

쌍용차 노동자들에게 '국가'는 가상으로라도 존재하지 않는 '어떤 것'이다. 국가는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음으로써 그들을 좌절시켰다. 

가상의 국가와 존재하지 않는 국가 사이에 낀 노동자들, 그들은 대체 어디로 갈 수 있을까. 벌써 서른 명의 쌍용차 관계자들이 세상을 떠났다. 이창근 실장은 묻는다. 

"그때(2009년 6월)나 지금이나 쌍용차 해고자인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국가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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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환주 기자 kakiru@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2009년 프레시안에 입사한 이후, 사람에 관심을 두고 여러 기사를 썼다. 2012년에는 제1회 온라인저널리즘 '탐사 기획보도 부문' 최우수상을, 2015년에는 한국기자협회에서 '이달의 기자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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