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페미니스트'만 옹호하겠다는 당신에게
'진짜 페미니스트'만 옹호하겠다는 당신에게
[프레시안 books] <진짜 페미니스트는 없다>
2018.08.10 00:13:16
온라인에서 페미니즘은 그야말로 갈등의 최전선이다. 당장 9일에도 경찰이 인터넷 커뮤니티 '워마드' 운영자 체포영장을 발부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온라인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혜화역 시위가 열릴 때마다, 남성 이용자 비중이 큰 커뮤니티에는 시위를 비웃는 글이 속속 올라온다. 여성부는 어김없이 비난의 도마에 오르고, 문재인 정부는 성차별을 조장해서는 안 된다는 훈계가 내려진다. 페미니즘을 둘러싼 각종 이슈는 과거 빨갱이 논란처럼, 지금 네가 어느 편인지를 선명하게 드러내야만 하는 감별 도구가 되었다. 

물론 일각에서는 조금 더 차분한 반응도 나온다. '진정한 페미니즘'을 옹호한다며 '가짜 페미니스트'를 훈계하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온갖 자료와 페미니즘 안에서 페미니즘을 비판하는 다양한 목소리를 부분 발췌해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을 부정하고, '안전한 목소리'를 옹호하는 데 '진짜'와 '가짜'로 포장된 차별을 이용한다. 

진짜 페미니즘을 응원하지만, 가짜 페미니스트는 혐오세력이므로 잘못되었다는 식의 주장이 대표적이다. 이런 식의 구분 짓기는 우리 일상에서도 흔히 작동되는 방식인데, 대표적인 주장이 시사 이슈에 돌발적인 페미니즘 이슈를 섞어 '이를 이용하려는 세력이 나타날 것'이라는 등의 음모론을 덧입히려는 시도일 것이다. 

이 같은 지적을 <프레시안> 지면에서도 제기한 바 있는 예술사회학자 이라영이 그간 신문, 블로그에 발표한 글과 새로 쓴 글을 모아 신간 <진짜 페미니스트는 없다>(동녘 펴냄)를 냈다. 

▲ 혜화역 시위가 열릴 때마다 온라인에는 혜화역 시위에 나선 '멍청한' 페미니스트들을 비난하는 글이 연달아 올라온다. ⓒ연합뉴스


이 책에 실린 45편의 글이 결국 독자에게 전하고자 하는 바는 기성을 향해 질문을 던져야 한다는 것이다. 페미니즘을 정체성으로 정의하느냐 마느냐를 넘어, 우리가 무의식적으로든 의식적으로든, 기꺼이 진리나 보편으로 받아들이는 것에 질문하는 건 잘못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저자가 예로 든 사례 중 하나는 지난 2016년의 촛불집회다. 당시 많은 언론이 집회에 참여한 시민이 수십만 명에 달했음에도 길거리에는 쓰레기가 없었다고 '칭찬'했다. 저자는 칭찬받은 경험이 불쾌했다고 말한다. 저들은 뭔데 시민을 칭찬하는가. 칭찬한다는 건 평가한다는 뜻이다. 이로써 노동자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려 시위하다 일어난 '폭력적' 시위와 촛불시민의 시위는 구분된다. 길거리를 청소하는 시민과 그렇지 않은 시민은 구분된다. 시민의 머리 위에 앉은 언론이 이를 구분하고, 좋은 시민과 나쁜 시민을 구분했다. 그럴 권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이를 남녀 관계로, 나아가 우리 일상으로도 가져올 수 있다. "예쁘다" "몸매가 좋다"는 '칭찬'을 왜 여성이 불쾌하게 받아들이는가. 맥락적 사고를 할 생각이 없는 많은 남성은 이 대목에서 고개를 가로 젓고, '역시 페미니스트랑은 대화가 통하지 않는' 현실을 개탄한다. 칭찬은 잘 해야 하며, 맥락에 따른 올바른 칭찬을 할 능력은, 적어도 보편적 사회 활동을 거쳐 남의 입장에서 생각해볼 줄 아는 보통의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 있다. 그럴 생각이 없는, 촛불시민 위에 군림하는 누군가와 마찬가지의 입장에 선 이라야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다. 어른이 아이를 '칭찬'하고 아이는 어른에게 '존경'을 보여야 하는 수직적 구도를 칭찬과 반응을 기대하는 관계에서 고민해보는 건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다. 

이처럼 칭찬을 가장한 기만은 비단 여성을 혐오하는 남성만이 하는 짓이 아니다. 저자는 경험과 다른 이의 글을 끌어들여 이른바 좌파 진영 내의 기만자, 페미니스트 내부의 기만자들 역시 얼마든 고정관념을 바탕으로 생각하지 않고 기만의 언어를 내뱉는 경우를 전한다. 그리고 이러한 기만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 필터가 우리 세계에 작동하는 현실을 꼬집는다. 

저자는 말한다. 

▲ <진짜 페미니스트는 없다>(이라영 지음) ⓒ동녘

"진짜(좋은)와 가짜(나쁜)에 대한 구별은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작동한다. 이는 순수와 비순수, 곧 순수와 오염이라는 이미지를 만들며, 그것은 '우리'와 타자를 구별하는 기준이 된다. (중략) 진짜 페미니즘에 대한 증명은 꾸준히 헛수고가 될 것이다. 동시대 페미니즘은 꾸준히 '남성혐오'로 번역될 것이기 때문이다. 진정성은 죽어야 증명된다. 진정한 페미니스트란 자신의 현재를 방해하지 않는 페미니스트다. (중략) 나는 페미니즘이 완전무결하며 언제나 '올바른 길'만 걸어왔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페미니즘에 완전무결한 요구를 하며 정의를 가장해 페미니스트의 입을 봉쇄하려는 시도를 비판하는 것이다."

"하나의 진짜 길만 있는 사회보다는 여러 종류의 다른 길이 있는 사회가 옳다. 물론 '잘못된' 길에 이르거나 위험한 길에 다다를 수 있으며, 길을 더럽힐 수도 있다. 때로는 막다른 길에 이르러 다시 돌아와야 할 수도 있다. 그렇게 수많은 오류와 실패를 반복하며 길을 알아갈 권리가 있다. 누구도 그 권리를 박탈할 수 없다. 실패를 쌓아 균열을 만들 권리가 있다. 실패조차 하지 못하면 영원히 고립된다. 완벽하지 않아서 부정당할 필요는 없다. (중략) 그들이 무엇으로 불리든, '메갈리안'이든 '온라인 페미니스트'든 '게이'든 '남성 페미니스트'든, 그 누구든 일단 페미니즘에 대해 더 참여적으로 발언하는 현실이 침묵을 강요당하는 것보다 낫다."

저자는 책을 통해 세상을 보는 렌즈를 더 가다듬기를, 더 다양한 렌즈를 준비하기를 독자에게 요구한다. 여태껏 일상에 거리두기를 연습해보지 않은 이라면, 나의 믿음과 나의 길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당연한 고민을 해보지 않은 이라면 저자의 글에서 공감대를 찾아내기란 쉽지 않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른 이의 렌즈로 세상을 달리 보는 연습을 한 이라면, 설사 여태껏 페미니즘이라는 렌즈로 세상을 달리 보는 경험을 해보지 않았다손 치더라도 이 책을 통해 익숙한 것에 질문을 던져보는 흥미로운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이 같은 경험을 해 본다면, 지금도 너무나 뜨거워 손대기조차 어려워 보이는 저 인터넷 대전의 판을 조금은 달리 반추해 볼 계기를 얻을 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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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희 기자 eday@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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