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원 의원이 붙인 '나쁜 합의' 딱지, 생각해 봅시다
나경원 의원이 붙인 '나쁜 합의' 딱지, 생각해 봅시다
[기고] 강서구 특수학교 설립 합의, 이것이 민주주의다
나경원 의원이 붙인 '나쁜 합의' 딱지, 생각해 봅시다
지난 5일 강서구 특수학교(서진학교) 설립에 대한 합의가 체결됐다. 서진학교 설립을 추진하는 서울시교육청과 이를 반대하는 지역 주민들은 오랜 기간 갈등을 빚어왔는데, 늦게나마 합의에 이른 것이다. 대화와 타협을 통해 민주적으로 일을 해내는 전통이 약한 한국 사회에서, 보기 드문 모범적 사례라 생각했다. 그런데 정작 여론은 필자의 생각과는 정반대로 흘렀다.

우선 장애학생 학부모들은 의견수렴이 부족했다는 점을 꼬집었다. 교육청이 일방적으로 협상을 추진했다는 것인데, 이는 교육청도 아프게 받아들여야 하는 비판이다. 아무리 교육청이 특수학교 설립에 앞장서고 있는 입장이라 해도, 직접적 이해관계에 있는 학부모들에게 협상 내용과 과정을 적절히 설명할 책임이 있다. 조희연 교육감도 이 점에 대해선 인정하고 사과했는데, 추후에는 조금 느리더라도 당사자들과 함께 가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정작 문제는 다음인데, 마치 협상과 합의 자체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처럼 보는 경향이다. 일부 시민사회는 특수학교를 짓는 것은 옳은 일이고 법적으로도 문제가 없기 때문에, 법대로 밀어붙이면 되는 것이었다고 교육청을 비난했다. 진보정당인 정의당도 마찬가지로 협상 자체가 잘못된 선례로 남을 것을 염려했다. 언론 역시 ‘떼법이 통했다’, ‘지역 민원과 맞바꿨다’ 같은 자극적인 표현을 써가며 합의를 폄하했다. 심지어 합의 당사자로 나선 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과 같은 당 소속인 나경원 의원까지 '정치적 흥정', '나쁜 합의'라는 딱지를 붙였다. 

▲ 강서구 옛 공진초 터에서 열린 특수학교 설립추진 설명회에서 특수학교 설립 관련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진 참석자들이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필자는 이러한 비판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몰이해와 뿌리 깊은 반정치주의를 읽는다. 그렇다면 묻고 싶다. 어떤 이유로든 주민들의 반대가 상당한 상황에서 그저 밀어붙이면 되는 일인가? 옳은 일이니 반대 의견은 없는 셈 쳐도 되는 것인가? 그리고 법대로 했으니 문제없다고 하면 끝인가? 과연 이것이 갈등을 다루는 민주적 방식인가?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고 염려하는 시민들도 특수학교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시민들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동료 시민들이다. 이들이 틀렸으니 이들의 의견은 무시해도 좋다고 누가 감히 이야기기할 수 있을까? ‘집값’ 같은 이기적인 동기로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기 때문에 ‘나쁜 사람’이라고 누가 감히 규정할 수 있을까? 그럼 ‘임금’ 같은 이기적인 동기로 조직된 노동조합은? 그럼 ‘법대로’ 쫓겨나는 세입자들은?

그럴수록 교육청이 약자의 편에 섰어야 했다는 의견도 있다. 심지어 보수언론까지 흔치 않게 자신들은 약자인 학부모의 편이라며 교육청을 나무란다. 하지만 이는 자신의 옳음을 증명하는 방법으로는 손색이 없겠지만, 일이 되게 만드는 민주적·제도적 실천 방안은 아니다. 여기서 교육청의 역할은 갈등을 조정해 특수학교를 만드는 일이지, 옳음을 주장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교육청 입장에서는 법대로 밀어붙이는 게 편했을 것이다. 우리가 과거 용산에서, 평택에서, 그리고 지금도 수많은 명도집행 현장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게다가 스스로의 옳음을 주장하며 반대 때문에 아무 일도 못하겠다고 불평하는 일은 얼마나 편리한가. 핑계 없는 무덤 없고, 알리바이 없는 행정 해태도 없다. 시민들의 반대, 정치인의 비토, 관료들의 복지부동, 의견수렴의 미비…. 핑계를 대자면 그 소재야 말로 끝이 없다.

그런데도 교육청은 대화와 협상을 택했다. 쉬운 길 놔두고 가장 어려운 길, 민주주의를 택했다. 갈등 사안을 합의 사안으로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고 결실을 맺었다. 민주주의는 승자와 패자를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더 나은 결과를 만들기 위한 제도이고 실천이라는 것을 이 과정을 통해 증명했다. 

물론 누구나 합의 내용에 대해 불만을 가질 수 있다. 그런 의견들은 당연히 존중받아 마땅하고, 토론을 통해 더 나은 대안을 모색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협상 자체를 공격하거나, 합의 자체를 문제 삼는 태도는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것이 정치와 민주주의를 다루는 정당과 정치인, 언론이라면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민주사회에서 갈등은 없앨 수 없다. 현실에 존재하는 수많은 이해관계를 선·악과 같은 단 하나의 기준으로 결코 재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그런 기준 같은 것이 있다면 골치 아프게 민주주의를 할 필요도 없다. 서로 다른 의견과 이해관계는 민주주의의 대전제다. 그렇기 때문에 협상과 타협, 양보와 합의가 민주주의의 다른 이름인 것이다. 민주화 이후 30년이 지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옳음이 아니라 더 많은 민주적 실천이다. 서진학교 설립 합의를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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