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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안중근 의사 유묵…'박근혜 소장' 기록 추적해보니…

[추적] 박정희 정권 당시 기증받은 유묵, 어디로 사라졌나?

박세열 기자 2012.12.13 18:19:00

문재인 캠프 안도현 공동선대위원장이 지난 10일 충격적인 의혹을 제기했다. 도난당한 보물급 안중근 의사 유묵을 박근혜 후보가 소장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의혹이다. <프레시안>은 의혹의 진위를 파악하기 위해 안중근 의사 유묵을 추적해봤다.

안도현 "안중근 유묵, '박근혜 소장' 기록 있어"

안 위원장은 트위터에 올린 글을 통해 "보물 569-4호 안중근 의사의 유묵 누가 훔쳐갔나"라며 "1972년 박정희 정권 때 청와대 소장, 그 이후 박근혜가 소장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문화재청에서는 도난문화재라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보물 제569-4호 안중근 의사 글씨는 1976년 홍익대 이사장 이도영에 의해 청와대에 기증되어 문화재청에 등록되었다. 1979년 이후 안중근기념관의 모든 도록에는 그 소장자가 박근혜로 나와 있다"며 "안중근 의사 유묵은 2011년까지 박근혜 소장이라는 확증이 있다. 안중근 유묵에 관한 한 국내에서 가장 공신력이 있는 (사)안중근의사숭모회의 기록"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박근혜 후보님,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이 안중근 의사 글씨를 사랑하는 딸의 방에 걸어두었는지, 아니면 전두환이 소녀가장에게 6억을 건넬 때 덤으로 국가의 보물 한 점을 끼워주었는지 직접 밝혀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 안도현 위원장이 올린 사진

박근혜 후보 측 "이미 사실관계 확인됐던 사안"

이에 박근혜 후보 선대위 박선규 대변인은 "명백한 거짓말이다. 과거 <시사매거진 2580>에서 이 문제를 제기한 적이 있다. 박근혜 후보가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혔고, 이 부분에 대해서 사실관계가 확인되었던 사안"이라고 반박했다.

박 대변인은 "다 타버린 연탄재도 함부로 차지 말라고 하셨던 분이 어떻게 한 나라의 대통령 후보를 인격적, 도덕적으로 정치적 목적을 담아서 심하게 차버릴 수 있는지. 국민의 사랑을 받던 한 시인의 변심이 진정 안타깝고 가슴 아프다"며 "법적으로 조치를 취하겠다"고 했다.

새누리당 공식 반응은 "박근혜 후보가 가지고 있지 않고, 이는 사실 관계가 확인됐던 사안"이다.

안중근 유묵, 恥惡衣惡食 者不足與議의 기구한 '운명'

문제의 안중근 의사 유묵은 "恥惡衣惡食 者不足與議 (치악의악식 자부족여의, 궂은 옷, 궂은 밥을 부끄러워하는 자는 더불어 의논할 수 없다)"라는 글귀의 유묵이다. 1910년 3월 여순 감옥에서 안중근 의사가 쓴 글씨다. 현재 50여 점 가량의 안 의사 유묵은 상당수가 그 행방을 알 수 없는 상태에 있다. 일본인들이 몇 점을 가지고 있는 게 확인됐지만, 되돌려 받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문제의 유묵은 1972년 8월 16일 보물로 지정됐다.

▲ 국방일보 온라인판 캡쳐

이 유묵은 박근혜 후보가 정말 소장하고 있을까? 박 후보가 소장하고 있다는 기록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는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국방일보> 2010년 1월 27일자 온라인판 기사에는 문제의 유묵이 "박근혜 소장"인 것으로 돼 있다. 2010년 안중근의사기념관이 발간한 도록 <대한국인 안중근>에는 "원 박근혜 소장이었으나 현재는 청와대가 소장"이라고 돼 있다.

어떻게 된 일일까. 이 도록 출간에 관여했던 김호일 중앙대 명예교수는 <프레시안>과 통화에서 "당시 도록을 발간할 때, 특별히 확인을 하고 '원 박근혜 소유였으나 청와대 소유'라고 기재한 게 아니다. 2001년 윤병석 교수가 엮은 '대한국인 안중근-사진과 유묵'(안중근의사기념관 출간)에 있던 것, 1993년도 <대한국인 안중근>이라는 책에 나온 것 등을 인용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당시 직접 확인한 것은 아니지만 나도 개인적으로 유묵이 어디에 있는지 궁금해서 따로 조사를 시킨 적이 있는데, 별다른 진척이 있다는 보고를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프레시안>은 당시 조사를 진행한 인사를 접촉했다. 그는 "왜 '박근혜 소장'이라는 기록이 있었는지, 이게 청와대로 실제로 건너간 것인지 알아낼 수 없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박근혜 소장'이라고 된 부분은 1990년대 초반 세계일보사에서 나온 책 <대한국인 안중근>에 해당 유묵이 '박근혜 소장'이라고 돼 있어서 그것이 인용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 MBC <시사매거진2580> 화면 캡쳐

사라진 안중근 유묵은 왜 "박근혜 소장"으로 기록에 남게 됐나?

이 유묵은 1972년 8월 16일에 보물로 지정됐다. 당시에는 소유자는 확실치 않지만, '지정문화재대장'을 보면 1976년 3월 17일 보관 장소가 청와대로 바뀌었다. 홍익대 이사장이었던 이도영 씨가 청와대에 이 유묵을 기증한 것이다. 당시 대통령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었다.

그런데 청와대 기증 이후 행방이 묘연해지기 시작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사망한 직후인 1980년 1월 5일 문화재지정서 재발급을 하지만, 이 사실만으로 유묵이 청와대에 그대로 존재한다고 볼 수 없다. 1983년에는 청와대에 이미 없다는 게 기록으로 나타난다. 1983년 4월 7일 문화재보존관리 실태조사에서 황천오, 황희주 두 사람이 조사를 한 것으로 보이나 "현품은 확인하지 못함"이라고 기록돼 있다.

그리고 나서 확인할 수 있는 공식 기록은 1993년 <세계일보>에 연재됐던 '대한국인 안중근' 기획 시리즈다. 이 시리즈 중 1993년 2월 13일자, 연재 67회 차 기사 '유묵과 자료들:5' 말미에는 "보물 제569의4호로 가로31㎝, 세로 1백30.5㎝크기인 이 유묵은 현재 박근혜 씨가 소장하고 있다"고 적혀 있다. '박근혜 소장' 보도로는 첫 보도다.

당시 이 기획은 <대한국인 안중근>이라는 책으로 묶였고 1993년 7월 세계일보사가 이 책을 출간한다. 2010년 유묵집 발간의 참고가 됐다는 그 책이다. 저자는 조규석 전 세계일보 논설위원과 나명순 기자.

▲ 문화재대장 ⓒ프레시안

▲ 문화재대장 일부 ⓒ프레시안

조규석 전 논설위원은 <프레시안>과 통화에서 "당시 나는 서문 등 몇몇 곳에 관여했고, 나명순 기자가 실질적인 기획의 책임자였다. 그러나 나 기자는 10여 년 전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말했다. 조 전 논설위원은 "당시 '박근혜 소장'이라고 책에 돼 있다고 하는데, 실제로 나는 취재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프레시안>은 이 기사를 직접 쓴 이 모 기자와 연락이 닿을 수 있었다. 현재 이 전 기자는 신문사를 그만둔 후 모 공공기관에 근무 중이다. 이 전 기자는 "당시 안중근의사숭모회를 취재했다. 숭모회에 직접 확인을 했다. '박근혜 씨가 소장하고 있다'고 말해줬다. 다만 느낌에 박근혜 후보가 직접 소장하고 있다는 것보다는 '박근혜가 소장하고 있는 기록이 있으니 박근혜가 소장하고 있는 것 아니겠냐'는 투였다. 기사를 쓰기 전에 숭모회가 발행한 책자가 하나 있었다. 그 책자에도 '박근혜 소장'이라고 돼 있었다"고 설명했다.

안중근의사숭모회 측에서는 확인하기가 곤란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숭모회 관계자는 "1990년대 초반 기록들은 숭모회가 이사를 다니면서 (소실 등) 정리가 됐다. 현재 1990년대 초반 자료를 찾기가 어렵고, 20년 전인데 당시 유묵에 대해 알고 있던 숭모회 인사들은 대부분 원로가 됐거나, 고인이 된 상태라 알기 어렵다"고 말했다.

"박근혜 소장"으로 확인하고 기재했던 최초의 인물이나, 당시 기재했던 상황을 지금 알아내기는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다.

청와대에는 유묵이 없다?…누군가 가지고 있다면 최대 징역 3년 이상

이후 청와대에 있다고 알려져 있던 이 유묵의 존재를 확인하려는 시도는 여러 차례 있었다. 보물관리대장에 따르면 1997년 10월 문화재청은 '지정동산문화재 실태조사'를 통해 청와대에 확인을 시도했지만 "조사자(종로구청)는 '특정 지역으로 출입이 불가능하므로 문화재관리국에서 직접 조사하여 줄 것'을 희망함"이라는 답변을 관할 지자체로부터 들었다. 사실상 확인에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2005년 2월에서 10월 사이에 문화재청은 유묵 존재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두 차례 청와대에 공문을 발송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 문화재관리대장 ⓒ프레시안

지난 10월 민주통합당 최민희 의원실은 문화재청으로부터 "1972년 국가지정문화재 지정 이후 문화재청에서 현품을 확인한 적은 없다. 1983년 4월 7일 실시된 실태 조사시 현품 확인 못 함. 2006년 2월, 8월 두 차례에 걸쳐 청와대와 동 문화재 조사에 대한 협의를 하였으나 조사하지 못함"이라는 답변을 들었다. 문화재청은 또 "각 정부의 (해당 유묵) 인계사항까지 문화재청에서 확인하지는 못하고 있다"고 했다.

문화재청은 "홈페이지 도난문화재정보에 소재 불명 문화재로 (해당 유묵을) 공고하였으며, 2011년 11월 1일 부로 각 지방자치단체, 경찰청, 관세청, 국제우체국, 국공립박물관 등 유관 기관에 안중근 의사 유묵 소재불명 및 해외 유출 방지 등 협조요청 공문을 발송 조치했다"고 밝혔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해당 유묵의 소유자, 보유자, 관리자는 국가지정문화재의 전부 또는 일부가 멸실, 유실, 도난 또는 훼손된 경우 문화재보호법 제40조에 따라 사유발생일로부터 15일 이내에 관할 지자체를 경유하여 문화재청장에게 신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신고 의무 위반시 동법 제103조에 의거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이 문화재를 탈취 혹은 은닉한 것으로 드러날 경우 문화재보호법 제92조에 따라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도록 돼 있다.

청와대에 두고 나온 유묵은 도대체 어디로?

그렇다면 문제의 유묵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당시 출간에 관여했던 김호일 중앙대학교 명예교수는 지난해 방영된 MBC <시사매거진2580> 인터뷰를 통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품 쪽에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후 박근혜 영애가, 이건 여기 있을 게 아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을 게 아니다라고 해서 도로 돌려주지 않았나"라고 추측했다.

▲ MBC <시사매거진2580> 캡쳐

실제, 박 후보가 박 전 대통령 사망 후 청와대를 나올 때 상당한 양의 유품을 가지고 나왔음을 추정할 수 있는 증언도 있다. 박근혜 후보가 청와대에 나온 후 거주한 성북동 330-416번지 자택을 지었던 경남기업 신기수 당시 회장은 2007년 6월호 <신동아>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당시 전두환 대통령이 박근혜 전 대표가 살 집을 지어달라고 내게 말했다. 박정희 대통령의 유품이 많으니까. 그걸 다 보관할 수 있게 지어달라고 해서 일부러 지하실을 크게 만들었다. 정확하게는 전두환 사령관이 대통령직에 오르기 전에 지시를 받았다."

박 후보가 거주하던 성북동 330-416번지 등기부등본을 보면 이 건물의 지하실 크기는 161.45m²로, 162.18m²인 지상 1층과 맞먹는 규모다. 지하실을 이렇게 크게 짓는 것은 드문 일이라는 게 부동산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약 49평 규모의 지하실에 보관될 유품의 양이면 생각보다 많을 수 있다.

'박근혜 소장'이라는 일부 기록으로 촉발된 의혹에 대해 박근혜 후보 측은 유묵을 가지고 나온 일 자체가 없다고 분명히 해명했다. 안도현 위원장의 의혹 제기에도 거듭 해명을 했다. 박 후보 측이 가지고 나온 유품 중 문제의 유묵은 없다는 말이다. 박 후보 측의 말이 사실이라면 청와대에 두고 나왔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유묵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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