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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정당 설계자' 이재영, 큰 짐 지워 미안합니다

[추도사] 이재영 동지를 보내며

장상환기자 진보운동가 고 이재영 장례위원회 공동위원장- 경상대 교수 2012.12.14 11:50:00

어찌된 일입니까?
민중들의 삶 옹호와 진보정당 발전을 위해 아직도 할 일이 많은데,
사랑하는 가족과 동지들을 두고 이렇게 젊은 몸으로 우리 곁을 떠나다니.
정말 하늘이 원망스럽습니다.

이재영 동지는 한국 진보정당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이 동지는 민주노동당이 제대로 된 진보정당이 되도록 온몸을 바쳤습니다. 1997년 국민승리21 대통령 선거 공약 작성에 참여하면서 당시 정책국장을 맡고 있던 이재영 동지를 처음 만났습니다. 정말로 열정적이면서 유머도 있고 냉철한 활동가였습니다.

이 동지는 민주노동당의 창당과정에서 당의 성격과 당 강령의 내용을 정립하는 등 당의 설계자 역할을 했습니다. 창당 직전에 새롭게 건설할 진보정당의 성격으로 노동자 대중정당, 이념을 구성하는 정당, 철저한 민주주의 정당, 대중투쟁, 선거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하는 정당, 단계적으로 성장하는 정당,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정당 등 여섯 가지를 들었습니다. '사회주의적 이상과 원칙을 계승 발전시켜 새로운 해방 공동체를 구현한다'는 당 강령의 전문을 최종적으로 다듬은 이도 이재영 동지였습니다. 이재영 동지는 당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기존 관념에서 벗어나 집중과 가동, 과감한 포기를 하고,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을 우선적으로 실천해나가야 한다고 주장했고 또 자신의 활동에 이러한 원칙을 적용시켰습니다.
▲ 고 이재영 씨의 생전 모습. ⓒ진보신당

2000년 창당 후 2003년까지 내가 민주노동당 정책위원장을 하는 동안 이재영 동지는 정책실장을 맡아 당의 정책과 공약을 작성하여 당이 성장하는 데 핵심 역할을 했습니다. 2002년 대선 때 민주노동당이 '부유세 도입, 무상교육, 무상의료, 복지대혁명'을 공약으로 내세웠는데 10년이 지난 올해 총선과 며칠 뒤에 있을 대선에서 복지 확대는 여야를 막론하고 핵심 공약이 되고 있습니다. 당시 민주노동당 정책위원회는 정책 목표와 정책 내용뿐만 아니라 이를 실현하는 데 소요되는 재정과 제·개정할 법률도 공약에 포함시켰습니다. 공약을 빈 말에 그치지 않도록 한 것이고, 그 후 여야 주요 정당들도 모두 이러한 모델을 따르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에 김정진 변호사와 같은 전문가를 정책위원회에 영입하는 등 이재영 동지의 치밀한 노력이 있었습니다.

2003년에 민주노동당은 원외정당임에도 시민, 사회단체들과 연대해 6개 주제 50개 분야의 국정감사보고서를 발표하는 '진보 원외국감'을 했습니다. 원외국감은 시민사회단체와 민주노동당 간의 협력을 높여서 총선 약진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여기에도 진보 정당운동의 마당발로서 사회단체 상근 활동가들을 민주노동당과 협력하도록 하는 이재영 동지의 특유의 친화력이 있었습니다.

2003년에 전개한 '학교급식조례' 제정운동은 민주노동당이 대중들의 호응을 얻고 성장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정책위원회는 학교급식조례 제정의 필요성과 조례내용을 정리하여 운동을 주도했습니다. 전남에서 시작된 조례 제정 서명운동은 전국 곳곳으로 확산되었고, 전교조와 노동조합, 시민사회단체 등이 참여한 대중적 캠페인은 2004년 총선 승리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2004년 총선은 그의 인생에서 절정기였습니다. 국회의원 10명을 배출하고 제3당으로 등장하고 민주노동당 정책위원회는 정책연구원 50명을 뽑아 다른 유력정당에 비해 뒤지지 않는 막강한 정책역량을 보유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재영 동지의 헌신이 바탕이 되어 궤도에 오른 진보정당은 그 뒤 지리멸렬의 모습만 보여주었습니다. 자주파 세력의 패권적 행태, 지도급 정치인들의 출세주의, 당의 주축을 이루고 있었던 노동조합원 당원들의 실리주의 등이 함께 작용하여 진보정당은 분열과 지지도 하락의 악순환에 빠졌습니다. 이재영 동지는 함께 진보정당 운동을 시작했던 선배 정치인들이 진보정당의 정체성을 지키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지켜보아야 했습니다. 이번 대선에서 진보정당은 존재감조차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진보정당의 독립성을 무엇보다도 중요시하고 이를 위해 온몸과 결국 목숨까지 바친 이재영 동지에게 너무나 송구하고 안타까운 일입니다.

한국 진보정당의 설계자로서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습니다. 정책위원회 회의비용과 필요인사를 만나는 비용에서 당에서 지원받는 금액을 넘는 부분을 대느라 수천만원의 빚을 내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을 만나느라 소주와 삼겹살을 너무 자주 먹은 것이 암 발병을 재촉했을 것이라 생각하니 이 동지에게 너무 무거운 짐을 지워준 게 후회스럽습니다.

오늘 우리 사회는 외환위기 후의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비정규직 확대와 차별 심화 등 양극화가 심해지고 가계부채 증가로 국민경제의 안정도 위협하는 지역에 이르렀습니다. 이러한 자본주의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노동자 민중들의 사회적 단결과 정치적 역량 강화가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사회경제적 조건이 그러하기에 젊은 세대의 의식변화 등 흐트러진 진보정당을 바로 세울 사회적 힘도 점차 성장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진보정당을 너무나 사랑했던 이재영 동지에게 큰 빚을 지고 있습니다.

이재영 동지
함께했던 동안 너무나 고마웠습니다.
이제 그 짐 다 내려놓으십시오.
남은 일은 우리의 몫입니다.

이재영 동지
평안히 가십시오.

2012년 12월 14일
장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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