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위고는 프랑스 대신 영국 땅에서 <레미제라블>을 썼을까
왜 위고는 프랑스 대신 영국 땅에서 <레미제라블>을 썼을까
[프레시안 books] <가보지 않은 여행기>
2018.11.20 14:53:03
정숭호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위원이 여행기의 모습을 한 독특한 인문학 서적 <가보지 않은 여행기>(HMG퍼블리싱 펴냄)를 냈다. 

이 책은 저자가 '상상의 촉수'를 뻗쳐 그간 칼럼을 쓰기 위해 읽은 책에 나온 세계 각지의 장소를 소개한 내용을 담았다. 전체 15개 장소 중 저자가 직접 가본 곳은 없다. 경험기 대신 해당 장소의 지리적, 역사적 이야기와 그 장소에 얽힌 문학에 관한 각종 지식이 망라되어 있다. '여행기를 가장한 독후감'이 이 책에 관한 보다 정확한 설명일 것이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이란 자그로스를 소개하면서 저자는 바주프트 강에 관한 이야기, 제이콥 브르노우스키의 <인간 등정의 발자취>에 관한 해박한 지식과 감상기를 정리했다. 프랑스 렌을 설명하는 챕터에서는 밀란 쿤데라의 <웃음과 망각의 책>이, 영국 옥스포드에 관한 내용에서는 J.R.R. 톨킨의 <반지의 제왕>이 등장한다. 

단순 정보 나열에 그치는 책이라면 '인문학 서적'이라는 해석을 붙일 수 없다. 저자는 톨스토이에 관한 나보코프의 생각, 오르한 파묵과 나보코프의 생각 등 기존 알려진 정보를 배경으로 이들 거장 사이의 문학적 계보를 새로 정리하는 식의 시도를 책 곳곳에 심어놓았다. 

빅토르 위고가 왜 조국 프랑스가 아닌 영국 왕실령 섬에서 <레미제라블>과 같은 대작을 썼는지, 영국 제국주의의 하수인으로서 식민지 미얀마에서 경찰로 활동한 오웰이 어떻게 반 제국주의자가 되었는지, 렌에서 망명했던 쿤데라는 왜 자신의 대표작으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아니라 <불멸>을 꼽는지 등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저자의 해석에 따라 시공간을 종횡하며 이어진다. 

각 챕터 말미에 붙어 있는 '잡식 디저트' 코너 역시 단순 정보 나열에 그치는 식이 아니다. 본문에는 미처 담지 못한 저자의 생각을 짧게 정리한 코너다. 

비록 저자는 책에 나온 곳을 방문하지 않은 채 이 '여행기'를 펴냈지만, 여행을 더 풍부하게 즐기고 싶은 이, 책에 나온 장소를 들러본 이라면 오히려 해당 장소에 관한 초보라고 해야 할 저자의 이 책에서 도움을 받을 만한 내용이 많다. 한동안 유행한 가벼운 교양서적과는 무게감이 다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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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희 기자 eday@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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