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 세종(世宗)을 통해 본 정치가 정조(正祖)
정치가 세종(世宗)을 통해 본 정치가 정조(正祖)
[서평] <정조 평전: 말안장 위의 군주>
1. 세종으로의 외도(?), 그리고 정조로의 귀환

세종을 연구하던 저자가 다시 정조로 시선을 옮겼다. 1999년 "정조의 성왕론과 경장정책에 관한 연구"를 통해 박사학위를 받은 뒤 20년만이다. 위대한 리더십을 보여주었던 정치가 세종을 탐구해왔던 저자의 눈에 정치가 정조는 어떻게 비춰졌을까. 좀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세종을 연구하기 이전과 생각이 어떻게 달라졌을까.

저자가 참고문헌에서 자신의 기존 단행본으로서 언급하고 있는 두 가지 저작 <정치가 정조>(푸른역사, 2001), <세종의 수성(守成) 리더십>(삼성경제연구소, 2006)은 세종 탐구 이후 정조로 귀환한 저자의 학문적 여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정치가 정조>는 저자가 1999년의 박사논문을 보완해서 2001년에 출판했다. 정조에 대한 일련의 작업 이후, 저자는 세종에게 눈을 돌려 세종이 보여주었던 위대한 정치 리더십을 탐구하고 그 성과를 대중에게 확산시키는데 힘을 기울여 왔다. 그리고 이번 <정조 평전: 말안장 위의 군주>는 그 동안의 세종 탐구를 통해 쌓인 저자의 학문적 온축을 정조로 대상을 전환하여 정리한 저작이다.

2. <정치가 정조>(푸른역사, 2001): 정치가로서의 책임에 대한 강조

세종과 관련한 저자의 여러 저작에서 볼 수 있듯이, 저자는 조선시대 국왕과 재상을 정치가로 규정하고, 이들의 말과 행동을 분석하는 연구방법을 활용해 왔다. 저자 학문적 여정의 출발이었던 정조에 대한 박사논문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조선의 국왕이었던 정조를 정치가로 간주하고 그의 말과 행동의 세밀한 분석을 시도했다. 박사논문을 정리한 <정치가 정조>에서 저자는 성왕(聖王)이라는 이상과 경장(更張)이라는 현실정치의 도전으로부터 완벽하게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 정치를 개혁하려고 했던 고투와 학자 군주로서의 면모에 주목하여 정조를 정치가로서 기술했다(부남철 2001, 242).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의의는 정조를 부정적으로 평가한데 있었다. "정조대왕 서거 200주년"이었던 2000년을 전후로 정조를 다룬 단행본들이 다양하게 등장했다. 정약용, 박제가, 박지원 등을 등용해 18세기 조선의 문예 부흥을 가능케 한, 탁월한 학문 능력을 갖춘 지도자로서 "군사(君師)"의 정치를 이끈 군주 정조를 묘사한 <정조시대의 사상과 문화>(정옥자 외, 1999, 돌베개), <정조의 수상록 일득록 연구>(정옥자, 2000, 일지사), 정치적으로 소외된 당파였던 남인에서 인재를 발탁해 중용하는 지도자, 즉 탕평군주로서 정조를 묘사한 <영조와 정조의 나라>(박광용, 1998, 푸른역사), 학자 군주로서의 정조의 면목에 주목한 <정조의 경학과 주자학>(김문식, 2000, 문헌과 해석사), 정치적 다수파인 노론의 견제를 받으며 왕위에 올라 규장각과 장용영이라는 문무의 지지 세력을 키워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는 주도면밀한 지도자의 모습에 주목한 <장용영: 정조가 만든 조선의 최강 군대>(김준혁, 2018, 더봄) 등이 그러한 책들이다. 이러한 정조에 대한 긍정적인 서술들과는 달리 저자의 연구는 정조의 재위 기간에 추진된 개혁 정책의 성취를 거론하면서도, 정조의 사망 이후 전개된 세도정치에 대해 정치가 정조의 책임을 묻는 부정적인 성격의 것이었다. 

이와 같이 19세기 조선에서 세도정치로 불리는 견제 받지 않는 권력이 등장하고 80여 년 동안 경직된 쇄국정책이 펼쳐졌던 원인과 책임이 정치가 정조에게 있다는 것이 저자가 박사논문부터 정조를 평가하는 기본적인 시각이다. 저자의 주장은 정조 시대에 이루어진 국왕으로의 권력 집중, "고가대족(古家大族)"을 중심으로 전개된 정치 운영방식이 국왕의 사망 이후, 공론정치의 부재와 견제장치의 부재 속에서 세도정치와 쇄국정치의 등장을 가능하게 했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요컨대 저자는 그동안 결과로 평가받아야 하는 정치가로서 정조의 책임을 강조해 왔다.

▲ 정조 어진. ⓒ민음사 제공


3. 말안장 위의 군주

머리말에서 저자가 19세기 조선의 "정치의 실종"에 대한 정조의 정치적 책임을 거론하면서 이 책을 시작하고 있듯이(5-8쪽), 저자는 정조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버리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정조 평전: 말안장 위의 군주>에서 저자는 이러한 냉철한 평가를 유지하면서도, 한 인간으로서 정조의 모습에 주목해 그가 꿈꾸었던 이상과 그가 그것을 이루기 위해 펼쳤던 정치를 차근차근 되짚어 보고 있다(9쪽). 저자의 그러한 따뜻한 시선을 느낄 수 있는 것이 바로 책의 제목인 "말안장 위의 군주"이다. 정조(正祖, 1752-1800; 재위 1776-1800)는 죽을 때까지 전쟁상태와 다름없는 고독과 좌절 속에서 살았던 인간이었다는 것이 저자가 이번 평전을 서술하고 있는 기본적인 전제이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정조에 대한 시선의 변화를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수원 화성에서 운영한 정조실록학교와 세종문화회관에서 시민들을 대상으로 <정조실록>을 강의하기 위해 그 시대 기록들을 다시 보면서 정치가 정조보다는 한 인간으로서의 정조의 모습이 눈에 아른거렸다. 아버지 세도세자는 물론이고 그 앞의 임금 영조조차도 그에게 듬직한 의지처가 되지 못했다. 의지처가 되기는커녕 오히려 "죄인의 아들"이라는 매우 무거운 짐을 남기고 떠났다. 신하들 역시 서로 당색이 달라 사사건건 대립하고 갈등했다. 노론의 김종수와 남인의 체제공은 정조가 가장 의지하는 신하였지만 둘은 "한 하늘 아래 같이 설 수 없는" 사이였다... 왕실이나 조정 어느 한 곳도 온전히 믿고 의지할 수 없는 정조가 겪어야 했던 고독과 좌절 등을 책장을 넘기면서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을 통해 그런 인간 정조의 모습과 내면세계를 들여다보려 한다(8-9쪽)."

"말 위에서 천하를 얻었는데, <시경>과 <서경>을 어디에 쓰겠는가(馬上得天下 安事詩書)." 중국의 진나라가 무너진 이후 영웅호걸인 항우(項羽)마저 꺾고 제국의 창업자가 된 유방(劉邦)이 육가(陸賈)에게 한 말이다. 전쟁을 통해 제왕이 된 유방에게 유생인 육가가 틈만 나면 유가의 고전을 인용하여 조언을 하자, 유방이 작심하고 한 말이었다. 그러나 육가는 물러서지 않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말 위에서 천하를 얻을 수는 있지만, 어찌 말 위에서 천하를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居馬上得之 寧可以馬上治之, <사기(史記)> 육가열전(陸賈列傳))." 중국을 통일했으면서도 20년 만에 망했던 진나라의 전철을 밟으면 안 된다는 육가의 조언이었다. 

국가를 경영하는 군주가 말에서 내려야 한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다. 그러나 이러한 당연한 사실이 정조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는 것이 저자의 시선이다. 저자는 평전의 1장 "정조 재위 24년"을 할애하여 "말안장 위의 군주"였던 정조의 모습을 기술하고 있다. 평전의 전개는 그렇게 왕위에 오르고도 평생을 말안장 위에 앉은 듯이 긴장 속에 살았던 인간 정조의 모습을 전제로 이어지고 있다.

4. 역사를 보는 따뜻한 눈

평전을 통해 정조에 대한 저자의 따뜻한 시선을 느낄 수 있다. 정조는 고립무원의 인간관계 속에서도 "감성의 군주"(2장)였으며, 유산으로 받은 충과 효라는 딜레마를 적절하게 극복한 리더십의 소유자(3장)였다. 그가 마주한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재위 기간 동안 규장각을 통한 지식 경영(4장), 대통합의 인재 경영(5장), 경장과 개혁의 정치(6장), 디자인 경영(7장)의 리더십을 보여주었다. 서학(기독교) 논쟁(8장)과 같이 재위 후기에 보여준 정치공학적, 정치기술적인 태도조차 말안장 위의 군주라는 그가 처해 있던 구조를 통해 변호되는 것으로 읽혀지기도 한다. 정조가 말안장 위에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던 한 명의 인간이라는 따뜻한 시선에서의 기술들로 평전은 이루어져 있다.

이 책의 마무리는 3쪽도 안 되는 짧은 에필로그이다. 저자는 "물결이 아니라 나루가 있는 곳을 보라."는 정조의 당부를 인용해서, 역사의 어두운 측면만을 강조해서 현재 일어나고 있는 부정적 현상들의 원인으로 강조하는 현실의 세태를 비판하고 있다. 그리고 저자는 나루가 있는 지점, 즉 현실의 올바른 판단 기준과 문제를 해결할 해법을 역사 속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정조가 서학 등 외래 풍조의 도전에 대응하기 위해 정도전과 이순신 등 우리 역사 인물을 부각시킨 것은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사마천이나 정조는 ‘조상 탓’을 하지 않았다. 역사 속 인물들의 시행착오를 발견하더라도 그것을 비난하기보다는 그렇게 된 원인과 해법을 찾아내는 데 집중했다. 그들의 사고 체계의 중심에는 '위하여' 동기가 자리 잡고 있었다. '위하여' 동기를 가진 사람들은 주인의 눈으로 역사를 바라본다. 역사의 창고에서 꺼내 쓸 지혜의 연장 찾기에 바쁘다. 그들은 종들과 달리 '연장 탓'을 하지 않는다. 비록 낡은 도끼자루가 마을에 들지 않더라도 새 도끼자루를 만들 때까지는 어쩔 수 없이 그 낡은 도끼자루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도 안다. 미래의 텃밭을 일구려는 분들께 이 책이 작은 지혜의 창조 역할을 하기를 바라며 글을 맺는다." 
 
몇 년 전부터 "헬조선"이라는 신조어가 유행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현실이 마치 지옥과도 같다는 자조적인 표현이다. 헬'한국'이 아니라 헬'조선'이라는 점에서 우리의 역사를 얼마나 자조적으로 인식하고 있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이것은 일정 부분 한국학 연구자들의 책임이기도 하다. 실증적인 자료에 입각하지 않지 않고 주관적인 재해석에 의존하여 짜 맞추기 식으로 억지로 민족의식을 고취하고자 하는 시도는 설득하지 못했고 오히려 반감을 불러일으켰다.

역사의 민낯을 직면해야 할 때가 왔다. 하지만 이것이 단순하게 좌절감을 느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어느 특정한 시대에 우리 민족이 혼란스럽고 비참한 상황에 처해 있었음을 인정하는 것이 곧 민족적 자부심을 버려야 할 이유가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원나라가 한 때 전 세계를 호령했다고 해서 몽골 민족이 가장 위대한 민족이 아닌 것처럼, 우리 역사의 한 국면이 민족의 우열을 결정짓는 것은 아니다. 역사의 민낯을 직면하는 적절한 방법은 단순히 성패와 같은 일차원적인 결과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조건 하에서 어떤 의도를 가지고 어떤 행동을 취했으며 그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입체적인 시선에서 이해하고 또 분석하는 것이다.

저자의 이번 <정조 평전: 말안장 위의 군주>는 한국의 역사와 정치가 그러한 가능성을 분명히 내포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최근 회자되었듯이 세종은 현대적 맥락에서 성군이라고 할 수 없다. 세종 역시 어디까지나 전제적 왕권을 포기하지 않았던 시대의 군주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종은 그가 발을 딛고 있던 시대적 맥락 속에서 분명히 성군이었다. 척화론의 경우도 현대적 맥락에서 결코 합리적인 외교전략이라고 할 수 없다. 재조지은이라는 명분에 매달려 국가를 화란으로 몰고 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척화론은 인조정권이, 나아가서는 조선이라는 국가가 유지될 수 있게끔 만들어 주는 권위의 정당성을 제공했다는 차원에서 분명히 합리적인 외교전략이었다. 

이처럼 한국의 역사와 정치는 당대의 맥락에서 충분히 의미를 가지고 있다. 있는 그대로의 역사를 마주한다고 하더라도 충분히 그 의미를 모색할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이번 저자의 평전은 반명제의 반동에서 합명제로의 진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저자가 그동안의 정조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에서 이번 평전의 따뜻한 기술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겪었을 지난한 고민의 강도를 상상해 볼 수 있다.

만약 헬조선이라는 용어가 19세기 조선에도 있었다면 당시 조선인들은 이를 부르짖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19세기의 헬조선은 21세기의 헬조선과는 의미의 차원이 달랐을 것이다. 21세기 헬조선이라는 용어의 근저에 깔려있는 정서는 다름 아닌 체념이기 때문이다. 21세기의 한국인들에게 조선의 역사와 정치는 극복해야 할 대상, 혹은 피하거나 피했어야 할 대상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저자의 평전은 마주친 현실 속에서 이상을 실현하고자 분투했던 조선인들의 역사를 정조의 사례를 통해 그려내고 있다. 

저자가 "후일을 기약한 나머지 이야기"(15쪽)는 아마도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에 대한 이러한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저자는 평전이라는 형식임에도 불구하고 정조에 대한 평가를 최대한 유보했다. 그렇게 여백으로 남기고 있는 저자의 이야기를 상상해 보면서 이 책을 일독하기를 권유하고 싶다.

▲ <정조 평전: 말안장 위의 군주>(박현모 지음) ⓒ민음사



<참고문헌>
김문식, 2000, 『정조의 경학과 주자학』, 문헌과해석사.
김준혁, 2018, 『장용영: 정조가 만든 조선의 최강 군대』, 더봄.
부남철, 2001, “『정치가 정조』 서평”, 『정치사상연구』 6, 241-247.
박광용, 1998, 『영조와 정조의 나라』, 푸른역사.
박현모, 1999, 『정조의 성왕론과 경장정책에 관한 연구』, 서울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박현모, 2001, “정치가 정조의 역사적 평가 - 역사 속의 정조와 정조 안의 역사 -”, 『한국학보』 27(2), 131-154.
박현모, 2001, 『정치가 정조』, 푸른역사.
정옥자 외, 1999, 『정조시대의 사상과 문화』, 돌베개.
정옥자, 2000, 『정조의 수상록 일득록 연구』, 일지사.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eday@pressian.com 다른 글 보기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