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치 언니네 집
치치 언니네 집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의 수상한 여행 3] ④첫 출발, 뒤뚱뒤뚱
치치 언니네 집

1월 3일 오후 4시. 인천 국제공항을 이륙해 3시간 후 중국 광저우 공항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뉴질랜드로 가는 비행기로 갈아타기 위해 대합실에서 5시간을 대기했다.
“아이구, 여기 좀 드러누워야겠다.” 추니가 가방을 베개 삼아 대리석 맨바닥에 자리를 잡았다.
창밖에 뿌연 조명등을 달고 길게 줄지어 서 있는 공항 장비들이 지루함을 더했다. 나는 밀크 사탕 한 개를 입안에 넣었다가 끈적거려서 곧 뱉었다.

새벽 1시. 드디어 광저우 공항을 이륙해 12시간 뒤 뉴질랜드 남 섬 크라이스트처치(Christchurch)에 도착했다.

 

ⓒ최광철 여행작가·방송인


“박스 좀 열어보세요.” 공항 입국 심사 요원이 작은 칼을 주면서 직접 열 것을 요구했다.
“자전거입니다.” 한쪽 귀퉁이를 열어 보였다.
“네, 됐어요.” 손전등으로 박스 구석을 이리저리 살피고는 통과를 허락했다.
“좋은 하루 되세요.” 나도 모르게 큰소리로 말했다. 자전거 바퀴에 흙이 묻어있으면 입국할 때 시빗거리가 된다고 해서 출발 전에 깨끗이 세척해 실었다는 자신감에 목소리가 컸나 보다.

공항 대합실을 나와 뉴질랜드를 처음 만났다. 예상치 못한 차가운 바람과 새파란 하늘이 낯설다 못해 두려웠다. 군데군데 물이 고여있는 걸 보니 방금 소나기가 지나간 것 같았다. 점퍼를 꺼내 입었다.

공항 대합실 앞 승강장에서 우리 일행을 기다리던 미니 셔틀 버스가 어디론가 훌쩍 가버렸다. ‘어쩌지, 분명 저 차가 우리 일행을 예약한 민박 집까지 픽업하려고 기다린 것 같은데.’ 나 혼자 중얼거렸다.

“오래 기다렸지요. 가방을 일일이 다 열어보라고 하네요.” 맨 늦게 나오는 만능 키가 얼굴이 벌게졌다.

“앗! 저 버스 다시 왔네요. 어서 타요.” 아까 그 차 같은데 알고 보니 같은 회사의 다른 셔틀 차량이었다.
공항에서 10분 걸려 예약해놓은 ‘치치 언니네’ 한인 민박 집(31 Glenharrow Avenue)에 도착했다.

“어서 오세요. 엄청 힘드셨죠.” 민박 집 내외분이 마당에서 일행을 반갑게 맞이했다.
“마을이 조용하네요.”
“이곳은 크라이스트처치 시내 조금 외곽입니다.”
“정원도 참 예쁘고요.”
“자전거는 여기 창고에 넣어주세요. 먼 길 오시느라 속도 불편하실 텐데 따끈한 떡국 먼저 드시고 짐 정리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아니, 떡국을요?”
“연초라서 떡국을 끓였습니다.”
치치 언니는 상 차리느라 나와 눈길도 맞출 시간도 없이 분주하게 거실과 주방을 왔다 갔다 했다.
떡국에 넣은 주먹 크기의 굴이 고소하고 쫄깃했다. 새콤한 김장 김치가 밍밍한 기내식으로 더부룩했던 속을 확 풀어줬다.

“이곳은 한국 시간보다 네 시간이 빠르고, 밤 9시까지도 날이 훤해요. 천천히 짐 푸셔도 됩니다.” 치치 언니가 말했다.

“이 층 방 두 개는 추니님과 춘천댁 내외분이 쓰시고요, 우리 남정네 둘은 일 층 방을 함께 사용할게요.” 만능 키가 나서서 방 배정을 했다. 다들 이의가 없었다.

테라스 창밖 열 평 남짓 정원엔 콩알 크기의 깜찍한 패랭이꽃이 가득 피었고, 실내 장식장엔 알록달록 찻잔과 식기가 가득 찼다. 녹슨 재봉틀과 낡은 전화기가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방 세 개 이틀간, 아침 식사 제공하고 삼십육만 원. 석 달 전에 인터넷으로 예약을 했는데 비교적 저렴하고 무엇보다도 주인이 정성을 다하는 것 같아 기분 좋았다.

“자전거 조립부터 합시다.” 만능 키가 창고 앞에 서성이며 말을 꺼냈다.

 

ⓒ최광철 여행작가·방송인


각자 박스를 열어젖히고 자전거와 옷가지, 취사도구들을 꺼냈다. 마치 빨리 조립하기 시합이라도 하듯이 모두들 손놀림이 바빴다.

“내가 해볼게요. 이쪽에 와서 핸들을 붙들어요.” 춘천댁이 남편 뭔지의 서툰 조립 솜씨에 답답한 듯 재촉을 했다.
“허참, 이상하네, 집에서는 잘 됐는데.” 뭔지는 자리를 비켜주지 않았다.
“그거, 앞뒤 바퀴가 바뀌었어요.” 인천 총각이 옆에서 보다 못해 거들었다. 밤 10시를 훨씬 지나서야 자전거 조립은 완성됐다.

다음 날 샌드위치와 우유, 계란으로 늦은 아침 식사를 마치고 현지 적응도 할 겸 자전거를 타고 크라이스트처치 시내로 들어갔다. 뉴질랜드는 우리나라와 달리 좌측통행이라서 상당히 헷갈렸다.

“이거 어때요? 70퍼센트 세일이래요.” 아웃도어 매장에서 버너용 가스를 고르고 있는데 춘천댁과 추니가 라임 색 웃옷을 한 개씩 들어보이고는 계산대로 다가갔다. ‘아니, 첫날부터 웬 쇼핑? 짐이 될 텐데.’라는 말이 입 끝에서 가까스로 멈췄다.

시내 레스토랑에서 첫 점심식사로 베이글 정식 육 인분과 아메리카노 커피 여섯 잔을 주문했다. 메뉴는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순식간에 한 가지로 통일됐다.

아이 센터(i-center)에 들러 앞으로 가야 할 노선과 길목에 캠핑장이 있는지, 또 도로 상태에 대한 정보에 대해 물었다. 브로슈어는 잔뜩 손에 쥐었는데 정작 유용한 정보는 부족했다.

 

ⓒ최광철 여행작가·방송인


크라이스트처치 도심에 있는 2011년 대지진의 현장을 목격했다. 리히터 규모 6.3의 강진이 시내 한복판에서 발생하는 바람에 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고, 흉측하게 부서진 대성당의 잔해가 그 당시 처참했던 상황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나는 일행들과 시내 한복판에 있는 보타니컬 가든(Botanical Garden) 공원에서 잠시 여유시간을 보냈다. 연못에서 평화롭게 노니는 오리들 곁에 다가갔지만 체한 듯 가슴이 갑갑했다.

ckchoul@naver.com 다른 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