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 어린이 치아 건강을 어떻게 할 것인가"
"빈곤 어린이 치아 건강을 어떻게 할 것인가"
[기고] '불소화 반대론자'들의 '강제입법론'도 착각의 결과
2005.10.04 17:50:00
찬·반 의견 개진이 잠시 소강 상태였던 수돗물 불소화 논쟁에 이정덕 전북대 교수(문화인류학)가 새로운 의견을 냈다.

이 교수는 "수돗물 불소화가 유해하다는 근거보다 이롭다는 근거가 훨씬 많은 현실에서 수돗물 불소화를 추진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는 전제 하에 "이를 개인의 선택권에 대한 제약으로 파악하는 것은 다수결에 따라서 여러 가지 정책을 강제로 시행하는 현실에 비춰볼 때 무리한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그 대신 이 교수는 "수돗물 불소화 논쟁이 해결되기 위해서는 반대 측이 불소화의 '유해성'이나 '선택권'과 같은 주장을 하기보다는 중하층 어린이의 치아를 건강하게 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을 내놓는 것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된 건설적인 의견을 기다린다. <편집자>

서울대 사회학과 서이종 교수는 '수돗물 불소화'에 대해 불소화가 사실상 강제입법이고, 따라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서 교수가 몇 가지 잘못된 논리전개를 하고 있어 따져보겠다. 그는 글에서 '효과' '부작용' '선택권' 등 3가지 쟁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그의 글에 효과나 부작용에 대해서는 특별한 내용이 없으므로 진짜 핵심 쟁점이라고 생각되는 선택권 문제를 중심으로 이야기해보자.

우선 서이종 교수가 이와 관련하여 쓴 부분을 간단히 살펴보자. 서 교수는 "반대 측에서는 이미 1969년 세계보건기구(WHO)에서도 지역주민들의 선택을 존중할 것을 결정했고 1999년 구강보건법을 개정해 지방자치단체가 자율적으로 실시할 수 있도록 한 바 있듯이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고 주장한다"고 언급하면서 "부작용의 가능성, 선택권의 보장과 민주적 절차, 그리고 사업시행을 위한 선결과제 등에 대한 논란을 고려할 때 50% 이상의 반대가 있을 때만 불소화 사업을 미룰 수 있게 한, 따라서 사실상 사업시행을 강제하는 입법안은 비민주주의적인 법의 전형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선택권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먼저 생각해보자. 서이종 교수가 인용한 반대 측의 선택권을 살펴보자. 서이종 교수는 불소화 반대 측이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고 언급했지만 이는 독자를 오도할 수 있는 인용이다. 반대 측이 주장하는 선택권은 국민의 민주적 선택권이 아니라 개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권리다. 이 주장을 극단적으로 밀고 나가면 한 명이라도 반대하면 하지 말라는 독단적 선택권이다. 전자가 주민투표에서 50%가 넘으면 선택할 수 있다는 민주주의의 기본 논리에 따른 선택권이라면 후자는 결과적으로 주민 한 명이라도 반대하면 하지 말라는 소수의견 존중을 위한 선택권이다.

1%라도 반대하면 하지 말라는 주장은, 또는 원하는 사람만 하라는 주장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자유주의이다. 민주주의와 자유주의는 서로 공존할 수도 있지만 때로는 상충할 수도 있는 별개의 사고방식이다.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존중하고 다른 사람은 어떻게 되든 별로 상관하지 않는 방식이 자유주의다. 국민이 주인이고 이들의 의사를 반영하여 다수의견에 따라 일을 처리하는 방식이 민주주의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강제시행하는 것은 아주 많다. 모든 형벌이나 세금도 강제시행하는 것이고 각종 규칙도 강제시행한다. 수돗물을 소독하기 위해 염소를 넣거나 전염병이 돌 때 모두에게 강제로 접종을 한다. 하지만 이들은 궁극적으로 국민의 (또는 의회를 통해 간접적으로) 과반수의 찬성을 받은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비민주적이라고 하지 않는다. 국민 대다수가 반대할 때 이를 시행하면 비민주주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고려해보면 서이종 교수가 과반수가 반대하면 실행하지 않겠다는 것(또는 주민 과반수의 찬성이 있을 때 불소화를 시행하겠다는 것)을 비민주주의적인 법이라고 말하는 것은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착각했기 때문에 나타나는 잘못된 발언이다.

비민주적이라는 말은 국가가 국민을 속여서 불소화를 시행하는 경우에나 쓸 수 있는 말이다. 불소화 반대 측에서는 국가가 불소화 유해성에 대한 정보를 국민에게 충분히 전달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국가가 국민을 속이는 것으로 보고 있는 듯하다. 서이종 교수의 견해도 이에 기울어 있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국가가 불소화와 관련된 정보를 숨긴 적이 없고 지속적으로 제3자를 통해 불소화 유해 여부를 판정하려 노력했다는 점을 보아 이들의 주장은 지나친 것이다.

민주주의의 일반적인 룰은 과반수가 찬성하면 따르는 것이다. 물론 이에는 정말 효과가 있는가, 그리고 부작용이 있는가에 대한 판단이 중요한 의미를 지닐 것이다. 다수가 찬성해도 잘못된 경우가 자주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각 지자체 주민이 과반수로 이를 찬성하거나 반대했어도 이러한 결정이 미래에 잘못된 것으로 판명될 수도 있다. 찬성으로 결정 나도 나중에 유해성이 발견될 수 있고, 반대로 결정 나도 나중에 유해성이 없다는 것이 더욱 분명해져 이로운 정책을 수행하지 못했음을 아쉬워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경우라도 주민들의 판단능력을 인정하는 것이 민주주의다. 정보가 숨겨지고 왜곡당하지 않는 이상, 국민이 어떻게 결정하든 이를 따르는 것이 민주주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논쟁에서 개인의 선택권은 표면적인 문제이고 그 내면에는 계층 문제가 있다. 불소화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불소화의 유해 가능성을 걱정하며 자신들이 소수이더라도 자신들의 선택권을 존중해달라는 것이다. 불소화 찬성론자는 소수가 과장해서 걱정하고 있고 다수에게 특히 중하층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에 반대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실시하자는 것이다. 다수의 선택권을 보장하자는 것이다.

여기에서 핵심 쟁점은 중하층의 구강보건을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다. 일상적으로 수돗물을 마시는 사람들은 중하층이고 대부분의 중상층은 수돗물을 마시지 않는다. 불소화로 가장 혜택을 볼 수 있는 집단은 중하층 계층의 어린이들이다. 불소화 반대론자들이 어린이에게 직접 불소(불소정제)를 공급하라고 주장하지만 직접 공급된 불소는 비싸고, 또한 이를 먹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에 현실적인 대안이 아니다.

중상층은 치아 문제가 생기면 바로 치과에 데려가 치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만 중하층은 치아에 문제가 생겨도 방치하는 경향이 있다. 이 부분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가 가장 핵심 이슈다. 불소화 반대론자들이 중하층 어린이의 구강보건을 해결할 수 있는 현실적인 제안을 한다면 불소화 찬성론자들도 수돗물 불소화가 아닌 다른 방안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이제까지 불소화는 유해하다는 근거보다 이롭다는 근거가 훨씬 많고, 주민투표나 여론조사에서 불소화를 찬성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불소화 반대론자들이 수돗물 불소화를 유해하다거나 비민주적인 법안이라고 주장하는 것보다 중하층 어린이의 치아를 건강하게 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을 마련하여 제시하는 것이 가장 빨리 수돗물 불소화 관련 논쟁을 해결하는 방법이 될 것이다.
tyio@pressian.com 다른 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