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은 한미FTA에서 무얼 바라나?"
"삼성은 한미FTA에서 무얼 바라나?"
[한미FTA 뜯어보기 532 : 기고] 삼성경제硏의 한미FTA 보고서 비판
한국 국민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지난 4월 2일 한미 양국 정부의 협상단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타결을 공식 선언했다. 그러자 4월 5일 삼성경제연구소(SERI)는 기다렸다는 듯 <한미 FTA 협상 타결과 한국경제의 미래>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1)한미 FTA 협상 타결의 의의, (2)한미 FTA 반대론의 허와 실, 그리고 (3)한미 FTA의 전략적 활용이라는 세 소절로 구성된 이 보고서는 그동안 노무현 정부가 국민들에게 거짓 선전해 왔던 한미 FTA의 기대효과를 똑같이 반복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의 대기업, 특히 재벌 삼성의 기대이익을 노골적으로 대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런데 이 보고서의 핵심 내용과 그 이면에 전제돼 있는 문제점들은 옳은가? 과연 이들이 한국을 둘러싼 국제경제 현안에 대해서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가? 이들이 주장하는 대로 한미 FTA가 한국경제 전체에 도움이 될 것인가?

"고급 소비자가 존재하는 미국"과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중국"?

한미 FTA 협상 타결의 의미와 관련해, 이들은 한미 FTA가 동북아시아의 평화는 물론 세계평화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인 양 선전하고 있다. 그들이 이렇게 주장하는 핵심 근거는 한미 FTA가 한국경제로 하여금 "과도한 중국 의존"에서 탈피할 수 있게 하는 계기라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과의 대외무역이 증가하면 어떻게 한국경제의 "경제적 리스크"가 증대된다는 것인지 이들은 전혀 설명하지 않고 있다. "기술이전"이나 "산업 공동화의 우려" 운운하는데, 이는 국내 제조업 생산라인의 중국 이전을 부채질해 왔던 것이, 김영삼 정부 이래로 한국 정부가 대책 없이 추진해 왔던 글로벌화의 부정적 산물이었다는 점을 은폐하고 있다.

이들이 진정으로 "중국 내부의 정치적 격변"과 "정책의 불연속성"을 근거로 한국경제의 리스크를 걱정한다면, 이들은 이와 동일한 비중으로, 아니 더 높은 비중으로 미국의 막대한 재정적자 및 무역적자 문제를 거론했어야 옳다. '글로벌 불균형'(Global Imbalance)라는 이름으로 이미 수년 전부터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 이 문제야말로 한국경제와 국제경제의 불안을 가중시키는 주범 아니던가.

쌍둥이 적자와 글로벌 불균형, 그리고 미국發 금융위기의 가능성

2005년 말을 기준으로 미국의 무역적자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5.7%인 7167억 달러를 상회하고 있다. 이는 "쌍둥이 적자(twin deficits)"라는 표현이 탄생했던 1980년대 중반 레이건 정부 시절의 무역적자에 비할 때도 전례 없이 높은 수치다. 또 2005년 미국 연방정부의 재정적자는 GDP 대비 2.6%이고, 총 국가채무는 GDP의 64%다. 이 가운데 절반을 외국인, 주로 중국, 일본, 한국 등 동아시아 국가의 중앙은행과 기관투자가들이 가지고 있다.

이런 기괴한 경제상황에 대한 대응으로, 지난 수 년간 세계경제에서 미국 달러화는 지속적으로 그 신용도를 상실해가고 있다. 또 미국 재무부와 연방준비은행은 자국의 무역적자를 줄인다는 미명 하에 달러화 가치를 떨어뜨려 자국의 만성적인 경제 문제를 무역 상대국으로 이전시키는 정책을 취하고 있다. 지난 2~3년간 한국을 포함한 각국의 통화 가치가 지속적으로 절상되면서 이들 국가에서 인플레이션 압력이 증대된 결정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런 상황에 직면해, 미국은 지난 수 년간 '다국적 기업, 특히 군수산업체가 이라크 전쟁을 통해 벌어들인 막대한 이윤'과 '중동의 원유 수출국가들 및 미국 정유업체가 지속적인 고유가 정책을 통해 벌어들인 막대한 양의 유동성', 이른바 페트로 달러(Petro-dollar)를 축적해 왔다.
▲ '한미FTA 저지 범국민 운동본부'가 한미 FTA 반대 시위에서 사용했던 이미지. 한미 FTA를 통해 한국경제와 미국경제의 관계를 심화시키는 것은 한국에 '독'이 될 것이라는 내용을 전달하고 있다. ⓒ프레시안

이제 이 막대한 유동자산은, 미국 투자은행(IB)들의 주도로, 투기적 대출과 해외 외환투기의 행태로 나타나고 있다. 2001년 미국 주식시장의 일시적인 거품붕괴 이후 이 금융자산들은 대체로 부동산 시장에 대거 유입됐다.

최근 미국에서 나타난 부동산 가격의 앙등과 거품붕괴 현상은 바로 이런 고삐 풀린 금융 자산의 투기적 행태가 야기한 불가피한 결과다. 주택 구입용 융자를 전문적으로 담당해 온 미국의 준정부 대출기관이 '서브 프라임 모기지'라는 이름으로 자격 없는 사람들에게 대출을 해주고, 바로 이것이 자산시장 전체의 불안정성을 야기하는 상황이 바로 2007년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미국경제의 현실이다.

이에 대해 미국 연방준비이사회(FRB)는 한편으로는 모기지 대출기관에 비공개적으로 막대한 공적자금을 투입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단기이자율을 올려 인플레이션 압력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정책을 취하고 있다.

이런 정책은 일시적으로는 금융 불안정이 경제 전반으로 확대·파급되는 통로를 차단할 수 있겠지만, 결코 제도적인 인센티브 구조에 따라 움직이는 과잉 유동성 문제 그 자체를 해결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들은 조만간 부동산 시장이 아니라면 주식 시장으로, 그것도 아니라면 다변화된 '포트폴리오 투자'라는 이름으로 라틴아메리카나 동아시아의 소위 '신흥 금융시장'(emerging markets)으로 투자처를 옮겨가며 이들 국가의 실물경제에 막대한 피해를 입힐 것이다. 이는 국제적 금융 불안정의 확산이라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고급 소비자가 존재하는 미국 시장"과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중국 시장"이라는 기묘한 대비를 통해 이들이 "미국 시장에서의 입지 재강화"와 "세계시장 포트폴리오 다변화"를 운운하는 것은 단지 이들의 머릿속에 뿌리박힌 숭미주의를 드러내는 것이거나 국제정치경제의 현황에 대한 무지를 드러내는 것 둘 중 하나일 뿐이다.

정작 한국 정부와 기업이 "세계시장 포트폴리오 다변화"라는 이름으로 오래 전부터 추진했어야 하는 것은, 그렇지 않아도 그 비중이 기형적으로 높은 대미 무역의존도를 서서히 줄이고 외환 및 수출입 구조를 다변화하는 일이다.

"개방의 부작용에 대한 과도한 우려"?

삼성경제연구소는 한미 FTA를 반대하는 주장을 몇 가지로 분류한 후 각각에 대해 반론을 펴고 있다. 우선 이들은 한미 FTA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개방에 따른 일부 산업의 피해에 관심을 집중"하거나 "외환위기 이후 개방과정에[서] 나타난 부작용을 개방 반대론의 근거로 사용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한미 FTA로 피해를 입을 산업 부문이 "일부" 농수산물 분야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국민경제 전체에서 여전히 압도적인 고용과 임금을 보장하고 있는 중소기업 분야 및 이에 기반을 둔 중소 서비스업 등 전 영역에 걸쳐 있다는 사실을 은폐한 것이다. 유일한 예외는 한국의 재벌들이 어느 정도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는 산업 부문이다.

이와 관련해, 삼성경제연구소는 한미 FTA의 체결 근거로 내세우고 있는 "산업구조의 고도화" 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밝혀야 할 것이다. 이미 재정경제부는 "금융산업의 발전과 산업구조의 고도화"라는 명분으로 '자본시장통합법'을 통과시킨 바 있다. 이는 외환위기 이후 은행산업 분야를 대대적으로 통폐합한 것으로도 모자라 국내 은행의 덩치를 키워 미국식 투자은행으로 탈바꿈시킨다는 거창한 계획을 내걸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가 말하는 "산업구조의 고도화"가 국내 은행산업을 미국식 투자은행으로 탈바꿈시키는 것인가?

금융산업의 발전이든 산업구조의 고도화든, 일체의 금융정책은 제조업과 비(非)금융산업 분야의 장기적인 투자와 고용을 증진시키는 방향으로 제도화돼야 한다. 또 금융산업 분야의 고유한 사업 영역과 요건 등에 관한 강력한 감시와 규제를 위한 법적·제도적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다수의 중소기업과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이익을 희생시키면서, 막대한 이윤 유보금과 비은행권 금융기업이 소유한 금융자산을 차용할 수 있는 소수의 재벌 기업과 금융 자산 소유자들의 이익만을 체계적으로 보장하는 '가진 자들의 천국'을 만드는 것에 불과할 것이다.

1980년대 미국과 2007년 한국, 그리고 금융부유화

이와 같은 우려가 추상적인 가정만이 아니라는 것은 1980년대 레이건 행정부가 추진한 보수적 금융정책의 사례를 살펴보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당시 폴 볼커가 지휘하던 연방준비이사회는 국제유가의 급격한 상승에서 연원한 국내 인플레이션 압력에 대응하기 위해 급격한 단기이자율 상향조정과 달러화 가치의 급속한 평가절상으로 대응했다.

'레이거노믹스'로 불리는 이같은 긴축통화 정책으로 1979년 13%에 달하던 인플레이션율은 1983년 4%로 낮아졌다. 하지만 그에 따른 경제적 대가는 엄청났다. 같은 기간 실질 GDP는 820억 달러 상당으로 하락했고, 6000억 달러의 총생산이 손실됐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같은 손실이 결코 경제주체들 사이에서 고르게 분담되지 않았다는 데 있다. 갑자기 상향조정된 이자율 정책으로 가장 큰 손실을 본 집단은 설비 확장을 위해 이전에 대출을 받았던 중소 농장주와 중소기업가들, 그리고 그들에게 고용된 노동자, 그리고 주택과 자동차 구입을 위해 대출을 받았던 가계들이었다.

그들은 집과 토지 및 생산 설비를 박탈당했을 뿐 아니라 경기후퇴에 따른 비자발적 실업으로 인해 안정적인 수입원도 박탈당했다. 몇몇 우량 중소기업들이 이같은 급격한 고이자율 정책에서 살아남았지만, 이들은 연이어 불어 닥친 적대적 인수합병(M&A)의 첫 번째 희생자가 돼야 했다.

반면, 이같은 고이자율 정책의 최대 수혜자는 금융자산 소유자들, 그리고 레이건 정부가 국가안보라는 명분으로 제공한 막대한 보조금을 받았을 뿐 아니라 중동 전쟁을 통해 자체 재고까지 재활용할 수 있었던 군수산업 분야의 대기업들이었다. 이들은 높은 이자율과 높은 달러 가치를 바탕으로 국내 금융시장에서 자산 투자를 다변화했을 뿐만 아니라 해외 신흥 자산시장으로 투자처를 옮겨가기도 했다.

오늘날 우리가 '신자유주의(neoliberalism)'라고 부르는 일련의 경제 정책들, 즉 공기업의 대대적인 민영화, 사회간접자본과 교육 및 환경 분야 등 공공부문에 대한 정부지출의 축소, 자본시장에 대한 규제 철폐 등은 바로 레이건 정부가 앞서 실행했던 정책이다.

이같은 경제 정책은 미국 내에서는 '자본주의의 황금기' 1960~1970년대 전후의 모든 경제적 성과를 급속하게 재구조화하는 결과를 야기했다. 우선, 1980년대 초반의 조세감면 정책과 고이자율 정책의 조합으로 역진적인 소득 재분배가 일어났다. 상위 20%의 고소득자는 최대의 이익을 얻은 반면, 중하위 소득자는 최대의 피해자가 됐다.

또한 이 시기는 오늘날 우리에게 이미 친숙한 '빚을 내가면서 소비하는' 미국 소비자들의 전형적인 소비 패턴을 구조화시킨 결정적인 시기이기도 하다. '아메리칸 드림'의 한 지표로 선전되던 개인 주택구입(home ownership) 비율도 1940년 이후 지속적으로 상승해 1980년 66%에 이르렀다가, 이 시기를 기점으로 하락하기 시작했다.

레이거노믹스는 많은 미국 국민 개개인에게 경제적 손실을 끼쳤을 뿐 아니라, 미국경제 전반의 활력을 근본적으로 뺐어갔다. 미국 중앙은행의 독립적인 금융정책 수립·집행 능력은, 그 공식적 목표가 '화폐 총량에 대한 조정(monetary aggregate targeting)'에서 '단기이자율 조정(inflation targeting)'으로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국내의 거시경제적 여건 전반에 대한 고려보다는 물가안정이라는 목표에만 매달렸다.

한번 역동성을 상실하게 된 미국 경제는 더 이상 1984년 이전까지 보여줬던 경제 성장률을 시현하지 못하고, 사상 최대의 무역적자와 재정적자가 주기적으로 공존하는 오늘날의 전형적인 패턴으로 구조화됐다.

대외경제의 측면에서 볼 때, 레이건 정부의 초긴축 금융정책은 국제적인 차원의 경기후퇴를 야기하기도 했다. 수출 주도의 경제성장 전략을 추진했던 한국 등 동아시아에서는 경제성장이 급격히 후퇴했다. 이뿐만 아니라 당시 미국 투자은행에게서 막대한 대출을 받았던 3세계 개발도상국들, 특히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에서는 외채 위기가 발생하기도 했다.

개방의 지표와 소득 재분배 효과

한편 '미국식 모델을 수용해야 할 불가피성'에 대해, 삼성경제연구소는"개방이 없었을 경우 국가 간 또는 일국 내의 소득 불균형은 더 심화되었을 것이며, 세계화의 흐름에 부응한 국가가 더 많은 이익을 향유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보고서에서는 "세계화"와 "개방"의 정도를 도대체 어떤 지표를 이용해 측정했는가에 대한 아무런 설명이 없다. 예컨대 박정희 정권 하에서 수출 보조금과 각종 조세혜택 그리고 정책금융을 지원받아 수출 목표를 달성한 기업이 있었다고 치자. 이 기업은 당연히 미국을 포함한 해외시장에서의 점유율을 높일 수 있었을 것이다. 이 기업과 정부는 개방 전략을 구사한 것으로 분류되는 것인가 아닌가?

이런 의문은 결코 비아냥이 아니다. 어떤 경제학자가 '세계화나 개방 수준이 일인당 국민소득 증가율과 긍정적인 상관관계(positive correlation)를 지니고 있다'고 말하려면 먼저 '어떻게 세계화와 개방 수준을 측정할 것인지' 분명하게 제시하는 것이 기본 상식이다. 이런 상식도 지키지 않은 채 삼성경제연구소는, 한발 더 나아가, 아예 세계화나 개방 그 자체가 소득증가를 가져온다는 인과론적 설명(causal relation)으로 기존 보고서들을 왜곡하고 있다.

이들은 한미 FTA라는 양자 간 협정이 세계무역기구(WTO) 체제 하의 다자간 협정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또는 WTO 체제 하의 다자간 무역· 투자 체제가 그 이전의 통상협정과 어떤 질적인 차이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조금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 이들은 이 협정이 상품무역에 관한 것인지, 지적재산권(IPR)에 관한 것인지 아니면 금융서비스와 관한 것인지에 대해 어떤 주의도 기울이지 않고 있다.

그들은 오로지 '개방=세계화= FTA=경제성장= 소득 증가'라는 단순한 등식을 독자들의 머릿속에 주입시키려고 발버둥 치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이들은 개방과 세계화가 국내 소득의 재분배에,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역학관계에, 중소기업과 독점재벌의 수직적인 통합관계에, 또는 경영자와 도시 임금노동자들의 소득 분배와 도시 거주민과 농어촌 빈민들의 소득 분배 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해서는 질문조차 던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정작 한국 국민들에게 중요한 것은 바로 이런 질문들이다.

한미 FTA는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킨다

삼성경제연구소의 거짓 선전은 "한미 FTA가 양극화를 해소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는 또다른 선전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이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한미 FTA가 "장기적으로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해 양극화 문제를 완화"할 수 있으려면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전제 조건이 반드시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 한미 FTA를 계기로 장기적인 투자와 고용을 보장하는 외국인직접투자(FDI)가 대거 유입돼야 하고, "단기적으로 발생하는 기업 퇴출과 실업 증가"를 만회할 수 있을 정도로 새로운 일자리가 단기적으로 대거 창출되어야 한다. 둘째, 일시적으로 퇴출되는 기업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중장기적으로는 경쟁력을 갖춘 중소기업들이 성장해 국내 고용을 늘릴 수 있어야 한다.

애석하게도, 한미 FTA의 금융서비스 협정문은 장기적인 투자와 고용을 보장하는 생산적인 자본과 단기성 투기자본을 구별할 수 있는, 금융감독 기구의 감시 및 규제 기능을 근본적으로 박탈하는 규정을 담고 있다. 또 한미 FTA는 장기투자를 유도하고 투기자본을 규제하는 일체의 산업정책 및 금융 관련 규제를 '완전 자본시장'의 이름으로 무력화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한미 FTA는 여전히 초급 단계에 머무르고 있는, 그래서 그 어느 때보다도 정부의 정책적 지원과 금융 및 조세 혜택을 필요로 하는 국내 중소기업의 자생력과 기술혁신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뿌리 뽑을 것이다.

그들 말대로 한미 FTA는 "장기적으로"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해 "양극화 문제를 완화"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더 명확한 사실은 "장기적으로" 우리 인간은 모두 죽는다는 사실이다.

외환위기 이후 대기업만 구조조정했다?

삼성경제연구소가 "한미 FTA의 전략적 활용"이라는 소절에서 밝히고 있는 한미 FTA의 기대효과는 (1)"경쟁에 의한 구조조정 촉진" (2)"기업 규제 개선의 계기" (3)"투자 활성화의 계기" 등 크게 3가지다.

이들은 '전략적 활용론'을 설파하기 위해 먼저 '중소기업 분야의 지체된 구조조정'을 공격한다. 이들은 "외환위기 이후 대기업은 자산매각, 사업 구조조정 등을 통해 어느 정도 구조조정이 이루어진 상태"인 반면 "중소기업은 구조조정 부진, 경쟁력 저하 등으로 인해 영업이익률이 하락세를 지속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그러나 삼성경제연구소는 이런 말을 하기에 앞서 외환위기 이후 한국의 재벌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구조조정을 해왔는지를 제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이 말하는 대기업집단의 구조조정이란 기껏해야 '자산 소유권을 불법적으로 상속한 것'에 불과할 것이다. 이는 '구조조정' 노력이 아니라 '족벌체제 유지' 노력이다.

더 나아가, 이들이 오도하는 것과는 달리, "중소기업이 낮은 경쟁력에도 불구하고 구조 조정이 지연"되는 결정적인 이유는, 정부의 지원이 "구조조정 압력을 완화"했기 때문이 아니라,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수직적으로 통합된, 중소기업과 대기업 간의 종속관계 때문이다. 서유럽 각국에서는 상식처럼 굳어진 '업종 전문화' 제도는 온데간데 없고, 그나마 남아 있던 출자총액제도도 최근 재벌의 로비로 폐지되고 말았다.

따라서 "한미 FTA는 [중소기업 부문의] 경쟁을 촉진하기 위한 외부적 지렛대"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이들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재벌과 중소기업 간의 수직적 통합관계가 지속되는 한, 정부가 중소기업들에 대한 지원을 하지 않는 한 한국의 중소기업은 결코 혁신 주도적 기업으로 거듭나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한미 FTA는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혁신적 우량 중소기업의 근간을 뿌리 뽑는 최악의 영향을 끼칠 것이다.

어떤 투자가 어떻게 활성화된다는 말인가

마지막으로 삼성경제연구소가 강조하는 한미 FTA의 기대효과는 "투자 활성화의 계기"다. 외환위기 이후 "저투자-저성장" 국면에 진입했다는 이들의 주장은 사실이다. 기업의 투자부진이 경제 성장률의 하락과 고용구조의 악화를 가져온다는 주장도 사실이다.

이들은 한미 FTA로 외국인직접투자(FDI)도 증가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FDI는 포트폴리오 투자와는 달리 실제로 한국 현지에 고정자산을 투자해 고용을 창출하기 때문에 국민경제의 성장에 기여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이 은폐하는 것은 첫째, 경제학적으로 FDI와 포트폴리오 투자를 구별하는 명확한 기준이 없다는 것이다. 둘째, 설사 외국기업이 실물 고정자산을 투자한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실제로 현지 경제가 요구하는 만큼의 고용을 단기간에 창출하리라는 보장이 없다. 셋째, 한국에 진출한 외국기업은, 기술이전과 임금, 조세 및 환경 관련 규정, 그리고 국내 은행과 맺는 제도적 관계가 어떠냐에 따라, 국민경제에 이바지할 수도 있고 아니면 론스타처럼 투기만 할 수도 있다.

안타깝게도 한미 FTA는 임금, 조세, 환경 등 제도적 기업 환경을 자국 국민경제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방향으로 조성하려는 일체의 정부 노력을 잠식하는 조항들을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삼성경제연구소가 계산한 "20.8%의 FDI 증가율"이 실제로 나타난다고 해도, 그 FDI는 고용, 임금, 기술이전 등과 관련해 한국 경제에 일말의 도움도 주지 않을 것이다.

정부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때

외환위기 이후, 특히 김대중 정부 말기부터 기업들의 연구개발(R&D) 투자는 말할 것도 없고 전반적인 설비투자 비율도 급속하게 줄어들고 있다. 이같은 투자 감소는 외환위기를 전후로 급속하게 개방된 자본시장과 금융시장의 불안정성, '신용카드 대란'으로 나타난 급속한 신용 거품의 축소와 이에 따른 소비 위축 등의 종합적인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정부가 규제와 감시를 통해 자본시장 및 금융시장의 급격한 개방에 따른 불안정성을 줄이지 않는다면, 정부가 사회복지 정책을 추진해 국내 소비자들의 안정된 소득 수준을 보장하지 않는다면 투자 활성화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맹목적으로 추진되는 한미 FTA는 삼성을 포함한 독점 재벌들을 제외한 전 산업 분야의 성장과 발전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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