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의 정치적 유산은 과연 남아 있는가?
노무현의 정치적 유산은 과연 남아 있는가?
[민미연 리포트-다시 한국을 생각한다]<8>
노무현의 정치적 유산은 과연 남아 있는가?
한국 현대사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만큼 흥미 있는 인물도 드물 것이다. 고졸 출신의 변호사로서 많이 알려진 정치인도 아니었고 선거전에서 별로 유리한 위치에 있지 않았음에도 2002년 대선에서 화려하게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변화를 바라는 많은 국민의 성원을 얻어 막판 역전극에 성공한 것이다.

사실 그는 장점이 많은 인물이다. 한국 정치에서 드물게 원칙을 지키려 했고 작은 정치적 성공에 연연하지 않았다. 또 많은 부패한 정치인들과 달리 청렴했다. 그 때문에 대중적 지지를 얻을 수 있었고 대통령까지 될 수 있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그가 새로운 시대를 상징하는 인물로 부각되었다는 사실이다. 외환위기 이후 경제적 고통을 겪고 있던 서민대중, 노동계급, 청년계층 그리고 진보적인 지식인들은 빈농출신의 그가 그야말로 서민들의 나은 삶을 위한 정치를 해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다.

▲ 대통령에 당선된 노무현씨. 지지자들에 둘러싸여 있다. ⓒaskakorean.blogspot.com

이렇게 큰 기대를 안고 출범한 노무현 정권이었지만 정작 그는 국민의 바람을 제대로 충족시키지 못했다. 경제난이 가중되고 일자리가 계속 줄어드는 가운데 국민의 고통을 덜어주는 데 실패한 것이다. 더구나 임기 후반에 가서는 정책이 보수화하며 그는 점점 지지기반을 잃게 되었다.

그래서 임기가 끝날 무렵에는 거의 모든 국민이 그에 대한 기대를 접은 상태였다. 빨리 임기가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만든 열린우리당마저도 그와의 관계를 끊지 못해 노심초사했다. 그리하여 그는 마침내 국민의 냉담한 외면을 받으며 실패한 대통령으로서 임기를 마쳤다.

2008년 봄의 촛불시위로 궁지에 몰렸던 이명박 정부는 노무현 세력의 재기를 매우 두려워했다. 청와대의 컴퓨터시스템을 사가(私家)로 옮겨 가는 등 그가 전직 대통령으로 머물려 하지 않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그는 이명박 정권의 정치탄압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그의 자살은 무려 500만 명이라는 전대미문의 조문행렬을 만들어냈다.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엄청난 인파였다. 실정은 했으나 그래도 서민정치인으로서의 이미지를 가진 그의 죽음에 대한 안타까움과 함께, 부자들만을 위한 이명박 정권에 대한 분노가 겹쳐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하여 그의 정치적 생은 죽음을 통해 다시 복권되었다. 그에 대한 당시까지의 모든 부정적인 평가는 덮이고 그는 오늘날 역대 가장 훌륭한 대통령의 한 사람으로 자리매김 되고 있다. 그러면 그런 평가는 정말로 객관적일까?

그렇지는 않다. 노무현에 대한 평가가 아직 대체로 센티멘탈리즘의 차원에 머물러 있다. 감정이 강하게 작용한다. 또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인 상이 덧씌워져 더 긍정적으로 보일 뿐이지 아직 냉정한 평가는 내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노무현 정권에 대한 객관적이고 냉정한 평가 없이 한국 정치는 잘 정리되기 어렵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지금 진행 중인 야당들의 재편 문제는 노무현 세력과 밀접한 연관관계가 있고 한국 정치의 많은 현안이 아직도 그 연장선에 있기 때문이다.

노 정권은 실패했나? 물론 전적인 실패라고 할 수는 없다. 그는 한국의 정치와 사회를 민주화하는 데에는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정치적 권위주의를 약화시켰고 여론 형성도, 의사표현도 어느 정도 자유롭게 만드는 데 기여했다. 지방의 균형 발전을 위해서도 애썼다.

외교, 군사적인 면에서는 일부 문제는 있으나 그래도 자주적인 태도를 보여주려 했다. 남북관계에서는 김대중 정권의 정책을 계승하여 화해정책을 취했다. 그래서 남북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노 정권은 열린우리당의 후속정당인 통합민주신당이 2007년 대통령선거와 2008년 총선에서 크게 패배함으로써 유종의 미를 거두지는 못했다. 그리고 그의 세력은 구심점을 잃은 채 뿔뿔이 흩어졌다. 또 노 정권의 많은 주된 정책들은 후임 정권에 의해 폐기되었다. 이 점에서 그의 정치실험은 실패했다고 할 수 있다.

노 정권이 이렇게 실패한 원인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 노 정권에서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이정우 교수는 국민과의 소통에 실패한 데서 원인을 찾고 있다. 현장에 들어가 국민에게 고통을 감수하자고 호소하면서 그들을 위로하고 어루만져 주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고 오히려 자극적인 발언을 계속하니까 결정적으로 민심이 떠났다는 것이다.

나름대로는 일리 있는 진단이다. 그러나 소통만이 원인일까? 그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그의 정치 스타일, 한국 정치구조에 대한 기본적인 생각, 이념적인 불철저성, 잘못된 정책들이 더 문제였다. 임기 후반에 가서 점점 커진 이념과 그것을 구현할 정책 사이의 괴리도 중요했다. 소통은 그다음의 이야기일 뿐이다.

먼저 스타일의 문제를 보자. 경선과정에서부터 대통령에 당선되고 나서 그 직무를 수행하는 과정까지 그의 정치스타일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도박정치이다. 한 방에 모든 것을 끝내겠다는 것이다.

정몽준 씨와의 후보 단일화 과정, 국회에서의 탄핵과정, 개헌 주장, 한나라당에 대한 대연정 제안, 한미 FTA 교섭 등 모든 중요한 사안에서 그는 극적인 돌파구를 마련함으로써 국면을 즉각적으로 전환하려는 태도를 보였다.

물론 대통령에 당선되고 탄핵과정을 거쳐 열린우리당을 다수파 정당으로 만드는 데까지는 이런 태도가 큰 도움이 되었다. 멋지게 도박에 이김으로써 정치적 승리를 맛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태도는 집권에는 큰 도움이 되었으나 수성에는 매우 불리하게 작용했다. 복잡한 정치현안들을 상대방에 대한 설득과정 없이 단 한 번의 이벤트성 행위를 통해 해결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결국 정치권의 공감을 얻지 못한 상태에서의 개헌 제의는 흐지부지되었고 대연정 제안은 한나라당의 냉담한 거부로 실패로 끝났다. 또 한미 FTA의 무리한 체결은 중요 지지세력들의 이탈을 가져옴으로써 그의 정치기반을 와해시키는데 기여했다.

이는 '대통령 못해 먹겠다'는 발언에서 보듯 그의 조급하고 단순한 성격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대통령으로서 정치적 문제들을 풀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하는 힘든 과정을 견디지 못한 점에서 중대한 결점이라고 하겠다.

그리고 이러한 중요한 결정들을 할 때도 매우 독선적인 태도를 취했다. 다른 사람들과의 협의나 합의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마 계속적인 정치적 승리를 거두자 자만심이 생긴 것 같다. 그 점에서 그의 리더십은 민주주의적 리더십이 아니다.

그런 태도는 취임 초의 부안 방폐장 설치를 둘러싼 논란에서부터 나타났다. 그는 방폐장을 거부하는 부안읍민들에게 전경 7000~8000명을 동원하여 수용을 강제했다. 그러면서도 부안 사람들에 대한 사전 설득작업은 거의 없었다. 결국 그는 이 문제에서 취임 초부터 실패를 맛보아야 했다.

그 후에도 그의 정책결정 과정에서 그가 이해 당사자들이나 국민의 뜻을 폭넓게 고려하거나 설득하려 했다는 흔적은 별로 없다. 대부분 청와대 안의 몇몇 사람들의 협의에 의해 독선적으로 결정하고 처리했다.

심각한 결과를 가져온 것은 당‧청분리 원칙이다. 열린우리당과 청와대가 서로 간섭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 결과 대통령은 제멋대로 모든 문제를 결정할 수 있었고 여당인 열린우리당의 목소리는 매우 축소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대통령은 중요한 정치적 결정들에 대해 폭넓은 지지기반을 만들 기회를 스스로 포기했으며 여당은 청와대의 들러리로 전락했다. 결국 정치는 그의 원맨쇼가 되고 말았고 그의 인기가 사라지자 열린우리당도 함께 몰락하게 된 것이다. 그것은 지금의 이명박 정부도 마찬가지이지만 대통령과 여당의 관계를 고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문제는 그가 이념적으로 불투명하며 불철저했다는 것이다. 그는 서민 대통령을 자임하고 나섰으나 실제로는 대다수 국민이 왜 경제적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지의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 잘 몰랐으며 그것을 해결하려고 진지하게 노력하지도 않았다.

이것은 노정권이 처음부터 개혁정책의 중점을 정치문제에 둔 데에서도 나타난다. 2004년 17대 국회에서 열린우리당이 시도한 4대개혁입법인 국가보안법, 과거사진상규명법, 사학법, 언론관계법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그것들조차 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여야 사이에 극한 논쟁을 불러오고 여당의 힘을 소진시켰을 뿐이다.

반면 사회, 경제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별로 고민하지 않았다. 보수세력에게서 지속적으로 좌파정권이라는 비난을 받았음에도 진정으로 사회경제적 개혁의 방향으로 나아가려 하지는 않았다. 김대중 정권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그대로 유지했다.

그래서 확대되는 빈부격차, 심각한 고용문제, 주택가격의 폭등, 어려워지는 중소기업들의 문제, 몰락하는 소상인 문제들의 해결을 위한 본질적인 접근도, 단호한 태도도 보여주지 못했다. 저소득층의 고통이 커짐에 따른 무마책으로 사회보장 예산을 일부 확대했을 뿐이다.

오히려 금융 허브화 정책 등을 통해 외국자본의 과도한 유입을 조장했고 한미 FTA 체결을 통해 대기업 중심의 수출경제 체제를 강화하려 했다. 미국이나 선진국에 대한 경제의존을 구조화하고 서민들의 곤궁을 지속시키는 정책들을 채택한 것이다.

이것은 당시 노 대통령을 비롯한 집권세력이 신자유주의가 우리 사회에 어떤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오고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이 결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농민들의 소득을 올려준다고 농토를 골프장으로 전환하겠다는 얼치기 같은 발상이 나오고, '민주인사들도 이제는 골프 좀 쳐 줘야 한다'는 방자한 이야기들이 나돌 수 있었던 것이다.

가장 치명적이었던 것은 부동산가 폭등이다. 서울을 중심으로 주택을 포함한 부동산가가 폭등하며 심한 곳은 3배 이상 올랐다. 이는 서민대중의 주거와 생계 자체를 위협했고 상대적 박탈감을 크게 심화시켰다.

그럼에도 노 대통령은 아파트분양가 공개에 반대함으로써 부동산 값의 폭등을 방조했다. 나중에 부동산 거품의 사회적 부작용이 너무 커지자 종합부동산세를 신설하여 그것을 막으려 했으나 이미 때를 놓친 다음이었다.

▲ 아파트 모델 하우스에 모여든 사람들. 노무현 정권 시기에 만들어진 부동산 버블은 아직도 우리 사회를 파멸로 이끌 뇌관의 하나이다. ⓒ프레시안

이렇게 국민의 생활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었음에도 대통령은 한국경제의 거시지표가 양호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리고 국민의 고통에 진정으로 다가서려는 자세를 보여주지 않았다. 그러니 민심이 떠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누가 그런 무책임한 집권세력을 지지하겠는가.

노무현 정권 후반기에 가면 이념과 정책 사이의 괴리와 불균형이 점점 더 커졌다. 대연정 제안이나 한미 FTA 체결에서 그것을 잘 볼 수 있다. 노 대통령은 대연정을 제안하며 한나라당이나 열린우리당이나 이념에서 별 차이가 없다는 주장을 내세웠다.

그러나 그렇다면 열린우리당을 새로 창당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열린우리당의 존재 이유 자체가 없어지기 때문이었다. 이는 정치를 좀 편하게 해보겠다는 편의주의적 발상이나 대통령 스스로의 자기 부정임과 동시에 소위 진보개혁세력에 대한 모욕이었다.

특히 한미 FTA 체결은 그때도 그렇지만 지금도 문제이다. 그것이 자동차와 같은 일부 공산품의 수출을 늘릴 가능성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을 위해 농업을 포기했을 뿐 아니라 투자자국가제소제 같은 독소조항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또 수많은 국내법의 폐지나 개정을 통해 우리의 제도를 미국과 비슷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도 지니고 있다. 이는 한국의 사회와 경제를 미국에 구조적으로 예속시킬 가능성도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당장은 좀 이득이 될 것 같아도 장기적으로는 큰 손실을 줄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한미 FTA는 삼성경제연구소의 작품이라고 하는 이야기가 있듯이 재벌이나 대기업들을 염두에 둔 정책이다. 반면 사람들이 기대하듯 일반 국민이 그것으로 이득을 볼 가능성은 별로 없다. 그 점에서 그것은 진보적인 아젠다와는 거리가 멀며 결국 보수세력에 대한 투항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 2007년 4월 2일의 한미 FTA체결을 알리는 TV뉴스. 이에 대해 보수언론들은 한미경제통합이라며 크게 환영했다. 그러나 한미경제통합이 우리에게 이익이 되는 것일까? ⓒhttp://blog.jinbo.net/CINA

노무현 자신도 자신이 취한 정책들이 추구하는 이념과 잘 맞지 않는다는 것을 의식하고는 있었다. 그래서 '좌파 신자유주의'라는 모순적인 용어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에 좌파신자유주의가 있고 우파신자유주의가 있는 것이 아니다. 신자유주의는 그대로 신자유주의일 뿐이다.

그의 서민적 배경을 흠모하고 그의 서민적 풍모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은 아직도 많다. 그래서 그가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꾸었었다고 이야기들을 한다. 그러나 사상가가 아니라 정치인에게, 특히 대통령에게 중요한 것은 사람 사는 세상이라는 꿈이 아니다.

꿈보다는 어떻게 하면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드는가 하는 실천의 문제이다. 그것을 못한다면 그리고 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그런 꿈은 별로 의미가 없다. 따라서 그의 정책이 대중의 고통을 줄이기보다 늘였다면, 한국의 정치를 더 발전시키기보다 후퇴시켰다면 그런 정치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는 어렵다. 퇴행적인 이명박 정권의 출현은 바로 그에 대한 반동의 산물이 아닌가.

노무현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노무현의 실패는 아무리 훌륭한 이념이라고 해도 그에 걸맞은 적절하고 바른 정책수단을 함께 갖추지 못한다면 결코 좋은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그가 훌륭한 정치적 유산을 남겼을까? 앞으로의 한국에는 엄청난 정치, 사회적 위기가 기다리고 있다. 빈부차가 커지고 고용이 극도로 불안한 상태에서 서민대중들의 경제적 고통은 폭발점에 다가서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노무현의 순진하고 어설픈 정치적 아마추어리즘이 무슨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겠는가.
dongglmoon@pressian.com 다른 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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