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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 딸 문제지 정리하는 대학원생, 이유인 즉슨…"

['강매' 당한 학사모, 대학은 죽었다·②] 학문이 사라진 대학

김영석 대학원생 2011.06.21 16:29:00

한국은 대학 졸업장을 강매하는 나라다. 학사모 쓰는 비용, 그러니까 대학 등록금이 '미친 가격'이라는 건 누구나 안다. 학비 마련을 위한 아르바이트와 학업 사이의 우선 순위가 뒤바뀐 풍경 역시 낯설지 않다.

'미친 등록금'을 받는 대학은, 그렇다면 제대로 된 교육을 하고 있나. 만약 그렇다면, 세계적으로 유례가 드문 대학 진학률을 기록한 한국은 '가장 지적인 사회'가 돼 있을 게다. 현실은 다르다. 세계 최고 수준인 대학 진학률과는 대조적으로, 국민 1인당 연 평균 독서량은 바닥 수준이다. 진지한 내용을 담은 책은 초판도 소화하기 버겁다. '반(反)지성주의'가 판치는 고학력 사회. 그게 한국의 자화상에 가깝다. 너도나도 대학에 가지만, 대학에 학문은 없다. '지혜로운 가르침'에 목마른 이들은 오히려 강의실 밖을 떠돈다. '2011년 한국의 대학'은 학생도, 교수도, 학부모도, 심지어 졸업생을 채용하는 기업가조차 만족시켜주지 못하는 곳이다. 학문도, 예술도, 자유도, 비판도, 심지어 실용도 없는 곳. 그렇다면, 이 땅에 대학이 존재할 근거는 무엇인가?

누구나 이런 질문을 한다. 그러나 대학 졸업장을 포기하려는 이는 드물다. 이유 역시 다들 잘 알고 있다. '대학 안 나오면, 사람대접 못 받는 사회'가 이유다. 직업과 학력, 학벌에 따른 뿌리 깊은 차별은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대학 졸업장을 열망하게 했다. 활화산 같은 대학 진학 수요는 군사정권조차 누를 수 없었다.

대학이 자애로운 교육자보다 악덕상인을 더 닮게 된 것은 그래서였다. 꼭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을 '이거 안 사면 큰 코 다친다'라고 협박해서 비싼 값에 팔아넘기는 악덕상인. 지금 폭발적으로 터져 나오는 등록금 논쟁은, 그래서 경제적 비용의 문제만이 아니다. '이 땅에 대학이 존재할 근거가 뭐냐'라는 근본적인 질문과 맞닿아 있다.

일단, 대학의 현실을 똑바로 보는 게 우선이다. 그래서 대학 사회의 실제 구성원들의 목소리를 그대로 싣기로 했다. 두 번째로 소개하는 글은 한 대학원생의 글이다. 그는 학문을 원해서 대학에 갔고, 대학원까지 진학했다. 그러나 비싼 대가를 치르고 들어간 곳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학문이 아니었다. 학문을 향한 열정은,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한 마음, 아니면 먹고사는 데 걱정이 없는 이들이나 누릴 수 있는 사치일 뿐이었다.

그렇다면, 먹고사는 걸 걱정해야 하는 보통 사람들은 대학, 대학원에 왜 다녀야 할까. 대학은 대체 무슨 근거로 그토록 비싼 대가를 요구하는 걸까. 이번 글이 던지는 질문이다. <편집자>

- '강매' 당한 학사모, 대학은 죽었다
☞<1>"좋은 대학 간 것도 아닌데…'불효자'는 웁니다"

얼마 전, 퇴임하는 어느 노교수의 고별강연에 참석했다. 막 대학원생이 되어 주변에 잘 보이기 위해 억지로 자리를 지킨 것이 아니었다. 그 교수는 주변 동료와 학생들에게 존경받고 있었다. 그 교수의 어떤 면이 그를 존경받게 했는지가 궁금했다.

노교수의 마지막 강연은 학생들과 교수, 졸업생에게 당부의 말을 남기고, 앞으로 펼쳐질 자기 인생의 후반부 공연을 멋지게 소개하는 걸로 끝났다. 그 큰 세미나실을 다 채울 만큼 많은 사람이 온 것을 보며, 그 교수가 어떤 교직 생활을 했는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스크린에 크게 떠 있던 '학생들은 목적의 수단이 아니다'라는 문구가 기억에 남는다. 아마 동료 교수에게 남기는 이야기였을 것이다. 그 문구를 보면서 지방에서 4년 동안 다녔던 대학의 어느 교수가 생각났다.

"교수 딸이 풀 문제지 유형별로 정리하는 대학원생"

사업가인지 교수인지 구분이 안 되는 사람이 있었다. 최근 한창 주가가 오르는 분야에 손을 대서 그런지 그 교수의 실험실은 지방 대학치고 규모도 크고 활발했었다. 그러나 그 교수가 맡은 학부 수업에서는 활기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가 학부에서 하던 수업은 어렵지만 꼭 이해해야 하는 중요한 3학년 전공과목이었다. 그런 수업을 이틀에 한 번 꼴로 휴강했다. 그나마 하는 수업도 자기자랑 일색이었다. 교육, 봉사, 연구 대신 사업, 연구, 허세를 목표로 삼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결국 학생들 입장에서는 중요한 과목을 놓친 셈이 됐다.

한 번은 같이 공부하는 선배가 중고등 문제지에서 문제를 잘라 빈 종이에 붙이고 있는 모습을 보고 뭘 하느냐고 물어 봤다. 대답이 기가 찼다. 그 교수의 딸이 풀 문제지를 유형별로 정리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그걸 왜 선배가 하느냐고 따졌다. 선배는 졸업하려면 해야지 하는 푸념과 함께 그 실험실 대학원생도 같은 짓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 교수의 별명은…'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

문제는 학교에 그런 교수가 한 명이 아니라는 것이다. 표현에 가감이 없이 전공서적을 아주 열심히, 그리고 정확히 읽어만 줘서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가 별명인 교수, 학생들이 뒤에서 '여자만바라기'라고 부르는 변태 교수, 수업하면서 자기도 잘 모르겠다고 고해성사를 하는 교수 등 말하자면 끝도 없다. 게다가 어느 대학 어느 과를 다니는 누구를 만나도 교수에 관한 이런 식의 이야기를 하면 공감대가 형성된다. 이 꼴을 보면서 대학을 다니고 있으면 비싼 등록금에 대한 열불이 절로 난다. 아마 학기가 시작할 때쯤 ATM이나 은행창구에 앞에 서서 대체 내가 내는 이 등록금은 어디로 가나, 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나 하나는 아닐 것이다.

사실 나는 한 기업에서 외부장학금을 받고 학교에 다녀서 크게 등록금 걱정을 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그것을 위해서 나는 모범생이 되어야 했다. 겉보기와는 반대로 장학금을 받는 모범생들은 절대로 행복할 수 없다. 장학금을 위해 대학생활의 낭만도 자유도 포기하고, 승리를 위해 인간관계와 학문을 버리고 학점 기술자가 돼야 하는 게 모범생이다. 우리는 같이 공부하는 동기끼리도 장학금을 위해 혹은 취직할 때 유리한 학점을 받기 위해 경쟁해야만 했다. 수업노트를 보여주지 않거나 필기한 것이 없다고 거짓말을 하는 일은 비일비재하고, 선배에게 받은 족보를 혼자 몰래 보다가 들켜 동기끼리 서로 마음이 상했다는 이야기도 자주 듣게 된다.

그 대학생에게 800원짜리 초코쿠키가 '엄청 좋은 과자'인 까닭

그래도 나를 포함해서 공부나 해가면서 학교라도 어떻게든 다니는 친구들은 행복한 편이었다. 모범생이 되는 데 실패했거나 그런 생활을 거부한 친구 중에는 옆에서 보기에 엄청 안쓰러운 생활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언젠가 학교 근처 고시텔에 사는 친구가 집에 가는 길에 800원짜리 초코쿠키를 사들고는 이 과자가 엄청 좋은 과자라고 말한 적이 있다. 나는 그 과자가 정말 맛있는 과자인줄 알았다. 그런데 이 친구의 이유인즉슨 "과자를 와그작와그작 빨리 먹고 물을 마시면, 잘 불어나서 그런지 배가 엄청 부르다"고 했다. 농담인지 진담인지 헷갈리는 얼굴로 신대륙을 발견한 양 자랑스럽게 말하는 그 친구를 보면서 웃어야 하는지 울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결국 학교 근처 식당에서 2800원하는 백반정식을 사줬던 기억이 난다.

또 그래도 그 친구는 배가 고플지언정 학교라도 다니니 조금은 행복한 거였다. 수학과를 다니던 한 친구는 등록금과 생활비를 벌기 위해 유명 햄버거 체인점에서 파트타임으로 일을 했었다. 성격도 성실하고 개방적인 친구라 어느 지점을 가서 일해도 곧잘 일하는 사람들과 친해지고 시급도 100원씩 차곡차곡 잘 올랐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시급은 100원씩 오르는 데 등록금은 수십만 원씩 올랐고, 그는 결국 학교를 떠나야했다. 졸업장이 없으니 미적분과 통계를 하던 실력은 쓸모가 없었다. 그렇다고 어디 전문직에 취직하기는 어려웠고 결국 지금도 그 햄버거 체인점에서 일을 하고 있다. '풀타임'으로. 어쩌다가 그 친구는 "풀타임으로 일해도 먹고 살기 힘든데 파트타임으로 대학까지 졸업하려고 했던 자기가 어리석었다"고 한탄하듯 말하곤 한다.

그렇게라도 졸업해서 행복해 질 수 있다면 다행 중 다행이다. 다른 대학 수학과를 다니던 비슷한 처지의 다른 친구는 졸업을 했다. 등록금을 쥐어짜내 얻어낸 당당한 졸업이었다. 하지만 그 친구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이태백('20대 태반이 백수'의 줄임말. <편집자>)이었고, 이태백과 헤어지자 그다음은 '88만 원'이었다. 다른 길을 보여준 친구도 있다. 한 친구는 졸업 후에 9급 공무원을 준비하고 있다. 그 친구의 전공은 '수산학과'였다.

동아리방이 사라진 자리에 들어선 취업스터디룸

학생들의 이런 아픔을 아는지 어쨌는지 진리를 추구하는 대학교는 동아리방을 리모델링해서 학생들에게 취업스터디 룸을 마련해주었다. 고맙게도 학생들은 그곳에서 영어 단어를 외울 수 있게 됐다. 그걸로 모자라 고객을 모시는 서비스 정신으로 학생들을 대하겠다는 대학본부는 취업캠프를 주관했다. 학생들은 거기서 황송하게도 면접관을 삼초 만에 사로잡을 수 있으면서 개성까지 넘치는 자기소개서 쓰는 방법을 습득할 수 있게 됐다.

학교가 이렇게까지 학생들을 생각하는데 요즘 젊은 세대는 어릴 때 고생을 못해봐서 문제가 많다. 졸업 학기, 취직 준비를 하는 친구들을 보면 대부분이 심각한 문제를 공통점으로 가지고 있다. 요즘 학생들은 하고 싶은 일, 원하는 회사가 없다. 그저 대기업이거나 연봉을 많이 주는 중견회사면서 일이 힘들지 않은 회사라는 두루뭉술한 목표뿐이다. '대학생들이 이러니 국가가 발전할 수 있을 턱이 있나.' 기성세대의 한탄이 서울까지 따라와서 귓가에 들린다.

대학은 신통방통하다. 미래를 예측한다. 한 선배의 자랑은 결국 자기소개서가 됐다. 남들은 20~30군데 쓰는데 자기는 50여 군데를 썼다는 자부심.

"걔네는 우리보다 취직이 안 되니까 괜찮아"

이렇게 비아냥거리고 있지만 즐겁지는 않다. 내가 학부 때 다니던 과는 구성원들의 만족도가 높은 학과였다. 모든 구성원이 학과 공부가 재밌고 교수님들이 존경스러워서 그랬던 건 아니다. 이유는 단 한 가지, 취업이 타과보다 잘된다는 것이었다. 과 축구 동아리끼리 맞붙은 경기에서 지고 고기를 구워 먹으면서 우리는 '걔네들은 우리보다 취직이 안 되니깐 괜찮아'라고 변명하고 웃고 떠들어버리며 패배감을 설욕하곤 했다. 그게 얼마나 나를 불쌍하고 저열한 인간으로 만드는 짓인지 그때는 몰랐다. 대학이나 그때의 우리나 나나 매한가지다.

내 머리에서 끄집어낸 대학에 대한 스케치가 보여주는 한국 대학의 현주소, 그것은 대학은 더 이상 학문의 요람이 아니라 취직의 전초기지라는 것이다. 기지답게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이 사회의 수많은 '나'들을 위한 지지

이 사회에는 내가 많을 것 같다. 등록금이 없어 학업을 그만두는 친구를 보면서 안타까워하는, 졸업했지만 취직을 못 해 아르바이트하는 친구의 푸념을 들어야 하는, 대학이 그런 시장바닥임을 뻔히 알면서도 거기에 뛰어들어가야 하는 내가 모르긴 몰라도 제법 많을 것이다. 그리고 그 수많은 나들이 만나는 비슷한 친구들은 또 얼마나 많을지 상상조차 안 된다. 대충 몇십만 명이라면, 그들과 함께 어려움을 감내해야 할 그들의 가족들까지 몇백만 명이 대학의 등록금 때문에(혹은 대학 그 자체나 그것보다 거대한 무엇인가 때문에) 힘들어하고 있을 것이다.

▲ 반값 등록금 집회에 참여한 대학생들. ⓒ프레시안(최형락)

요새 연일 반값 등록금으로 시끄럽다. 서울의 몇 대학의 학생들이 동맹 휴교부터 촛불시위까지 여러 방면으로 힘을 써보고 있다. 그것을 보면서 몇 년 전 독일에서 있었던 대학생 시위가 생각났다. 우리나라 돈으로 한 80만 원 정도 하는 등록금도 폐지해야 한다고 8만5000여 명의 대학생이 거리로 뛰어나온 적이 있었다. 그에 비하자면 거의 대여섯 배에 가까운 등록금에 몇백만 명이 힘들어하는 데도 아무도 고치려고 하지 않는 우리 사회의 모습은 정반대에 가깝다.

누구나 이야기하는 당연한 말대로 대학은 변해야 한다. 교육의 질을 높여야 한다. 취직을 위해 거쳐나는 곳이 아니라 학문적 깊이가 깊어지는 대학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해서 학생들이 행복하게 생활할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전쟁터가 아니라 공동체가 되어야 하고, 경쟁이 아니라 협력을 배울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

하지만 그 전에 학생이 다닐 수 있는 대학이어야 한다. 그걸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 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하지만, 누구도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지금까지처럼 상황은 계속 나빠질 것이다. 그래서 반값 등록금 집회에 일단은 지지를 보낸다.

- '대학 안 가도 당당한 사회'

"대학 졸업장 '강매'하는 나라, 행복하십니까?"
"'기름밥' 잘 사는 꼴 못보는 그들, '룸살롱 여대생'엔…"
"교수 월급이 청소부보다 많아야 할 이유, 과연 있나?"

"최저임금 인상이 산업경쟁력 높인다"
"'사람값'이 비싼 사회를 찾아서"
"'좌파'보다 국익에 무관심한 그들, '진짜 우파' 맞나?"

- '직업과 학력·학벌에 따른 차별이 적은 사회'

"명문대? 우리 애가 대학에 갈까봐 걱정"
의사와 벽돌공이 비슷한 대접을 받는 사회
"덴마크도 40년 전에는 '서열 의식'이 견고했다"

"우리가 낸 세금으로 당신들을 공부시켰다"
비정규직 임금이 정규직 임금보다 더 많은 나라
이건희 회장 손자에게도 '무상복지'가 필요한 이유

- 경쟁보다 효율적인 것? 바로 협동!

"평등 교육이 더 '실용'적이다"
"'혼자 똑똑한 사람'을 키우지 않는다"
"'로마'만 배우는 역사 수업"

- '반값 등록금' 바라보는 여러 시각

"대학 졸업장 '강매'하는 나라, 행복하십니까?"
"대학 진학률이 높아서 문제?…'최저임금'부터 올리자"
"너, 대학 안 나와서 뭐 먹고 살래?"
"서울대가 등록금 2000만 원 받는다고 정원 못 채울까"

- '대학주식회사'의 그늘

"'시장의 포로' 대학 캠퍼스…술집 빼고 다들어왔다"
등록금 400만원, 대학교육 '원가'는 도대체 얼마?
"한국의 대학, 이제 시장의 포로가 됐다"
"비참해진 대학, 뭘 가르칠지 목표도 방향도 잃었다"
자살 또 자살, '공짜' 없는 카이스트는 지금…

- '대학의 교육 불가능'

☞ ①
"학부생 인질 잡힌 대학원생 등록금,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 ② 공부할수록 가난해지는, 가난할수록 공부할 수 없는
☞ ③ '스펙 괴물'이 된 대학생의 시한부 인생
☞ ④ "접대 자리엔 인문학 전공자 노래 한 곡이 효과적?"

☞ ⑤ 누가 대학생과 대학을 욕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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