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성기 사진, 모호한 '음란물' 규정을 묻는다"

[인터뷰] 박경신 방송통신심의위 위원 "표현의 자유란?"

성현석, 이대희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1.08.02 13: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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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되면, '마녀사냥'이다. 중세에 마녀를 판정하는 방법은 간단했다. 마녀 혐의자를 밧줄에 묶어서 물에 빠뜨린다. 바닥까지 가라앉으면, 다행히 마녀가 아니다. 그렇지 않으면, 마녀다. 심판을 거부하면? 당연히 마녀다. 마녀를 만들고 싶다면, 바닥이 깊은 물에 빠뜨리면 된다.

2011년을 살아가는 우리는 이런 기록을 보며 웃을 수 있을까. 최근 박경신 고려대 법학과 교수가 겪은 일을 보면, 답은 부정적이다. 멀쩡한 사람을 한순간에 마녀로 만들어버린 최근 상황을 정리하면, 이렇다.

박 교수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의위원을 맡고 있다. 다른 심의위원과 함께 방송과 인터넷을 '검열'하는 게 그의 역할이다. 한 달에 수천 건을 지운다. 이른바 '음란물'이 주요 삭제 대상이다. 지난달 14일에도 '검열'에 참가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이날 전체회의를 열어 방송과 인터넷에 올라온 내용에 대해 '음란물' 여부를 판정했다. 이날 '음란물'로 찍힌 것 가운데 한 개인 홈페이지가 있었다. 남성의 성기 사진 7장과 나체 남성의 뒷모습 사진 한 장이 올라온 홈페이지였다. 전체 9명의 심의위원 가운데 8명이 '음란물'이라고 판단했다. 유일한 반대자가 박 교수였다. 박 교수는 이날 결정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성적 흥분을 유발하는 게 '음란물'인데, 이 게시물은 거기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게 박 교수의 생각이었다.

그렇다면, 그는 이 게시물이 '건전하다'고 봤을까. 그건 아니다. '청소년 유해물'일 수는 있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이 게시물에 대해 '성인 인증'을 요구하는 것은 타당할 수 있다. 그러나 '음란물'로 규정해서, 누구도 어떤 장소에서든 어떤 방법으로도 볼 수 없게끔 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게 그의 생각이다.

▲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의위원을 맡고 있는 박경신 고려대 법학과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고민 끝에 그는 이 게시물에 대해 다시 판단을 요구하기로 했다. 그가 택한 방법은 해당 게시물을 캡처한 사진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리는 것이었다. 박 교수는 이 게시물을 올리며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결정이 "성행위에 진입하지 않은, 그리고 성행위에 관한 서사에 포함되지 않은 성기 이미지 자체를 음란물이라고 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이 사진들이 어떻게 사회질서를 현저히 해할 우려가 있고 누구의 성욕을 자극하여 성적 흥분을 유발하는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이 사진을 올린 의도가 무엇이냐고 묻는 것 자체가 표현의 자유를 오해하고 있는 것"이라며 "표현의 자유는 모든 표현의 자유이지 '사회적으로 좋은 표현을 할 자유'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사회적으로 좋고 나쁜 표현을 걸러내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표현의 자유가 가진 이상"이라고 덧붙였다.

이게 지난 20일에 일어난 일이다. 그리고 며칠 동안, 아무 일도 없었다. 8일 뒤인 지난달 28일 열리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다시 논의하면 될 일이었다. 박 교수의 블로그는 28일 회의에서 '음란물' 안건으로 논의될 예정이었다.

갑자기 소동이 생긴 것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 회의를 이틀 앞둔 지난달 26일이었다. 이날 한 언론이 방송통신심의위원이 자신의 블로그에 성기 사진을 올렸다고 보도했다. 그리고 난리가 났다. 박 교수는 한순간에 유명인이 됐다. 논란이 되자 그는 해당 게시물의 접속을 차단했다. 이유는 명료했다. 문제가 된 사진은 청소년에게 권할만한 게 아니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평범한 교수인 그의 블로그는 청소년이 방문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곳이어서, 사진을 올렸었다. 그러나 그의 블로그가 갑자기 유명해지면서, 청소년도 찾게 됐다. 그래서 차단했다. 이런 이유다.

대신, 그는 여성의 성기를 묘사한 미술 작품을 블로그에 올렸다. 프랑스 화가 귀스타브 쿠르베의 그림 '세상의 근원'이다. 프랑스 파리에 있는 오르셰 미술관이 소장한 이 그림은 미술에 관심 있는 이들에겐 아주 익숙한 작품이다. 그러나 더 이상 합리적인 이야기는 통하지 않았다. 인터넷에서 그는 '블로그에 성기 사진 올린 대학 교수'로 통할 따름이었다. 언론도 마찬가지였다. 예컨대 2일자 <중앙일보>는 "'블로그 음란물' 박경신, 곽노현의 핵심 자문위원"이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냈다. 박 교수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음란물' 판정 기준이 타당한지를 따져 묻기 위해 블로그에 성기 사진을 올렸는데, 이 신문은 일단 '음란물'로 낙인찍고, 기사를 써나갔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결정은 법원 판결이 아니라는 사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말 그대로 다양한 생각과 배경을 갖춘 이들이 모인 심의기구일 따름이며 여기서 내린 결론 역시 구속력이 없다는 사실, 따라서 심의위원이 결정에 반대하는 것을 판사가 판결을 번복한 것과 마찬가지로 봐서는 안 된다는 사실 등을 완전히 무시한 기사다.

'마녀'로 찍힌 사람이 아무리 항변을 해도, 일단 물에 깊숙이 빠뜨리고 보던 중세의 풍경과 과연 얼마나 다른가. '21세기의 마녀'가 된 박 교수를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에 있는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다음은 지난 1일 그와 나눈 대화다. <편집자>


▲ ⓒ프레시안(최형락)

"방통심의위의 '음란물' 판단 근거 자체가 위법"

프레시안 : 블로그 때문에 대단한 파문이 일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문제는 오히려 파묻힌 느낌이다. '성기 사진', '성기 그림' 등의 자극적인 단어만 부각됐다.

박경신 : 대학에 있으면서 하는 일이 공익소송 기획이다. 사회적으로 중요한 의제를 놓고 벌이는 소송인데, 원고를 모으고 변호사를 조직하는 게 내가 하는 일이다. 예컨대 지금 기획하는 게 '모욕죄' 위헌 소송이다. 문화평론가 진중권 씨가 최근 변희재 콘텐츠유통기업협회 회장에게 '듣보잡(듣지도 보지도 못한 잡놈)'이라고 해서 모욕죄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런데 나는 모욕죄 자체가 문제가 있다고 본다.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해치는 면이 있다. 이번 블로그 사건도 이런 흐름과 맞물려 있다. 거듭 이야기하지만, '표현의 자유'는 '모든 표현'의 자유이지 '사회적으로 좋은 표현'을 할 자유가 아니다. 개인의 표현은, 사회 질서에 대한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 없는 한 처벌대상이 돼서는 안 된다.

프레시안 : 이명박 정부 들어서 표현의 자유가 위축됐다는 평가가 자주 나온다. 그런데 이런 논의는 주로 정치적 표현의 자유에 초점이 맞춰져 왔다. 예컨대 대통령이나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의 자유를 보장하라는 목소리는 제법 나왔다. 하지만 다른 표현의 자유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었다.

박경신 : 내가 관심을 두고 있는 '모욕죄' 문제를 놓고 보면, 모욕죄가 정부 비판 세력을 탄압하는데 명시적으로 사용된 경우는 아직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정치적 영역과 비정치적 영역을 구분하는 것 자체가 별 의미가 없다. 누구나 감정이 격해지면 욕설이 나올 수 있다. 모욕죄는 이걸 통제한다. 예컨대 정부의 환율 정책 때문에 큰 손해를 입은 중소기업 사장이 있다고 하자. 그가 마음 속 감정을 그대로 드러냈다. 이 경우, 개인 감정의 분출이지만 동시에 정치적 비판이 된다. 이걸 '모욕죄'로 처벌한다면 정치적 탄압이 될 수 있다. 정치적 영역이건, 비정치적으로 보이는 영역이건 가리지 않고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게 옳다.

프레시안 : 하긴, 어떤 종류의 정치사회적인 주장은 점잖은 표현으로만 담아내는 게 도저히 불가능한 것도 사실이다.

▲ ⓒ프레시안(최형락)
박경신
: 그렇다. 모욕죄는 사회에 대한 개인의 분노를 표출할 때 경멸적인 표현을 쓰지 말고 공손하게 포장을 해서 표현하길 강요한다. 그러나 어떤 감정과 견해는 포장을 하면 그 힘이, 날카로움이 무뎌진다. 이는 결국 표현에 담긴 의미 자체가 실종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예를 들어 2002년 효순이ㆍ미선이 사태 당시 시민들은 "퍽 더 유에스에이(Fuck the USA)"라는 구호를 외쳤다. 이걸 놓고, 국가가 '불법적 표현'이라며 재제한다면, 이른바 '공식 언어'로는 담아낼 수 없는 감정과 견해를 표현할 길이 없다.

용산 참사, 김진숙 씨의 고공농성. 전부 마찬가지다. 실정법상으론 불법이다. 그러나 합법적인 방법으론 막다른 골목에 내몰린 이들의 울분을 터뜨릴 방법이 없다. 그래서 택하는 방법이 행동이다. 목숨을 걸고 크레인에 오르는 것이다. 하지만 용기가 없는 보통 사람들이 이런 방법을 택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필요한 게 '표현의 자유'다. 말로라도 울분을 쏟아내야 한다. "퍽 더 유에스에이(Fuck the USA)"라는 말이 그냥 터져 나오는 것을 어떻게 법으로 막나.

그런데 이걸 법으로 막겠다는 게 '모욕죄'다. 한국의 인터넷 사용 실태를 조사해 보면, 불법 표현물 비율이 다른 나라보다 훨씬 높다. 그저 욕설일 뿐인데, 통계에는 전부 불법표현물로 잡힌다. 그리고 불법 표현물 비율이 높다는 이유로, 정부는 인터넷에 대한 규제를 강화한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심의 자체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일이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행정기구이지 사법기구가 아니다. 그런데 '표현의 자유'라는 헌법적 권리에 대한 판단을 사법기구가 아닌 행정기구가 하게끔 돼 있는 나라는 사실상 없다. 행정기구가 내린 판단을 사법기구가 '불법'으로 판단한다면 어떻게 될까. 내가 블로그를 통해 지적하려고 했던 것도 이 대목이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음란물이라고 판단하는 근거 자체가 법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게다. '모욕죄' 위헌 소송을 기획한 것은 그래서다.

"모욕죄를 없애고 혐오죄를 두자"

프레시안 : 비정치적 영역, 예컨대 성(性)에 관한 표현의 자유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쟁점이 '포르노' 문제다. '표현의 자유'를 옹호한다고 해서, 성폭력적인 내용을 담은 포르노까지 옹호할 수는 없지 않느냐는 게다.

박경신 : 앞서도 얘기했듯, 성(性)에 관한 표현의 자유와 다른 표현의 자유를 구별하는 게 별 의미가 없다. 우리가 흔히 쓰는 욕설을 떠올려 보자. 대부분 성(性)에 관한 것이다. 성(性)에 관한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것은 자칫하면 욕설을 할 자유까지 제약할 수 있다. 그렇다면 성폭력적인 포르노도 옹호해야 하나. 그건 아니다. 모욕죄를 없애고 혐오죄를 두자는 게 내 입장이다. 강자가 힘을 남용해서 약자에게 폭력을 휘두른다면, 법은 이를 막아야 한다. 약자에 대한 언어적 문화적 폭력을 막는 게 혐오죄다. 우리 법체계 안에도 장애인차별금지법에는 혐오죄의 내용이 담겨 있다. 장애인을 비하하는 표현에 대해 제재하는 내용이다. 나는 이걸 확대하자는 입장이다. 그렇게 하면, 성폭력이 담긴 콘탠츠를 규제할 수 있다.

프레시안 : 모욕죄를 없애고, 혐오죄를 두자는 게 박 교수 주장의 요점인 듯하다. 외국 사례는 어떤가.

박경신 : 선진국은 대체로 혐오죄를 택하고 있다. 사실 모욕죄는 대상이 너무 모호하다. 형법의 원리와 맞지 않는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당신은 서울시장 감이요'라고 말했다고 하자. 이게 모욕일까, 아닐까. 듣는 사람이 대통령을 꿈꾼다면 모욕이다. 서울시장을 꿈꾼다면 칭찬이다. 또 가까운 친구끼리 '이 새끼야'라고 한다면, 이건 모욕이 아니다. 그러나 친구라고 여기지 않는 사람에게서 이런 말을 듣는다면, 이건 모욕이다. 이처럼 '모욕'인지 아닌지 여부는 '텍스트'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 컨텍스트(맥락)을 고려해야만, 판단할 수 있다. 그런데 철저히 명료해야 할 형법에서 컨텍스트를 고려한다? 이건 말이 안 된다.

더 큰 문제가 있다. 어떤 모욕은 분명히 이유가 있어서 나온다. 예를 들어 살인사건 피해자가 살인자, 또는 유사 범죄자에게 욕설을 퍼붓는 것을 형사처벌 할 수 있나. 이게 안 된다면, 법률 조항에 일일이 어떤 경우에 모욕하는 것이 합법인지를 규정해야 한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또 그게 가능하다고 해도, 국민이 이런 규정을 모두 머릿속에 담고 있는 채로 살아가야하는데, 그것도 불가능하다.

최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2MB18nomA'라는 트위터 계정에 대해 차단 조치를 했다. 하지만 근거는 불분명했다. 이 트위터 계정 소유자가 왜 이런 표현을 썼는지는 고려되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뒤에는 '2mb18nomX'라는 계정도 차단됐다. 해당 트위터의 프로필을 보면, 여기서 'X'는 "아니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2mb18nom'이라는 표현에 반대한다는 뜻일 수도 있다. 하지만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해당 계정 소유자에게 문의하는 과정도 없이, 차단 결정을 내려버렸다. 대체 누가 이런 권한을 부여했다는 말인가.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박 교수는 '표현의 자유'를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다양성'을 중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한국에선 '자유', '다양성' 등의 가치가 별로 인기가 없다. 자칫하면, 보수와 진보 양쪽에서 욕먹기 십상이다. 실제로 과거 다른 인터뷰에서도 보수와 진보 양쪽에서 욕을 먹는다는 말을 했었다.

박경신 : 다양성? 다원주의? 자유주의? 글쎄다. 내가 옹호하려는 가치는 자유주의가 아니라 민주주의다. 우리는 형식적 민주주의라는 틀 속에서 살아간다. 형식적 민주주의는 결국 선거와 재판이다. 이 두 가지가 핵심 요소다. 그런데 투표와 소송으로 자신의 억울함을 풀지 못하는 이들은 늘 있다. 이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게끔 하는 게 '표현의 자유'다. 그게 보장돼야 민주주의가 작동할 수 있다. 선거와 재판 바깥 영역에서 정부가 철저히 시민을 통제한다면, 그건 영화 <매트릭스> 속 설정과 다를 바 없다. 내가 하려는 일은, 투표와 소송 바깥에서 이뤄지는 표현에 대해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다. 이게 이뤄지지 않으면, 국민의 정신생활이 정부로부터 통제를 받게 된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지금 이렇게 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위험 때문에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 9명 가운데 3명은 야당이 지명하도록 한 것이다. 따라서 나는 위원회 안에서 감시와 견제 역할을 하는 게 옳다. 이번 블로그 사건도 이런 맥락에서 봐 달라. 만약 내가 맡은 역할이 감시와 견제가 아니었다면, 그런 사건을 일으킬 필요가 없었을 게다.

"중요한 것은 시스템의 공정성, 공공성이다"

프레시안 : 미국 하버드 대학에서 물리학과 철학을 공부한 뒤, 변호사가 됐다.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셈인데, 진보적 가치에 눈을 뜬 계기가 궁금하다.

박경신 : 집안의 갑작스런 사정으로, 청소년 시절에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1980년대 말이라는 시대 상황이 사회 문제를 고민하게 했다. 대학에서 사회과학 공부를 열심히 했다. 한국인 1.5세 또는 2세들이 미국에서 한국 문화와 관련해 하는 활동이라는 게 그전까지는 부채춤 아니면 태권도였다. 하지만 내가 대학에 다닐 때 풍물패가 생겼다. 노동자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활동, 소수자와 연대하는 활동을 그 무렵부터 했다.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에 다닐 때도 이런 활동을 꾸준히 했다. 이런 경험들이 내가 지금 하는 실천의 밑거름이다.

학부에서 물리학을 공부하고, 법대 교수가 된 것을 한국에선 신기하게 여기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이런 반응은 '순혈주의', '연고주의'의 반영일 뿐이다. 외국에선 과학기술 전공자가 법조계로 진출하는 게 낯선 일이 아니다.

프레시안 : '순혈주의'에 대한 거부감은 결국 '기득권'에 대한 거부감으로 읽힌다. 그런데 박 교수가 몸담고 있는 법률 분야는, 한국에서 '기득권'이 가장 견고한 분야로 꼽힌다.

박경신 : 내가 끊임없이 강조하는 게 '사회 전체에 대한 연대성'이다. 부분적인 연대성, 요컨대 내가 속한 특정 집단 속에서만 느끼는 연대성은 결국 집단 이기주의일 뿐이다. 그 집단이 학교이건, 직업 세계건 다 마찬가지다. 부분적인 연대성은 결국 다른 이들에 대한 억압일 뿐이다. 반드시 깨야한다.

이런 맥락에서 나는 한국의 변호사 선발 방식 역시 바뀌어야 한다고 본다. 로스쿨 총정원제는 잘못이다. 또 로스쿨 안에서 일정 비율을 반드시 걸러내게끔 돼 있는 현행 제도 역시 잘못이다. 핵심은 한국에서 변호사 역할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조건이 무엇인지를 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대한 합의가 없으니, 상대평가만 있다. 변호사가 되고 싶어 하는 이들 가운데 무조건 일정비율만 걸러낸다. 이렇게 하면, 변호사에 대한 수요보다 늘 공급이 부족해진다. 그러니 변호사의 수입이 높아지고, 경제적 이유로 변호사가 되려는 이들이 늘어나서 과잉 경쟁이 생긴다. 변호사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조건을 정하자. 그리고 이 조건을 충족하면 누구나 변호사가 될 수 있게 하자. 이게 내 주장이다.

중요한 것은 시스템의 공정성, 공공성이다. 최근 쟁점인 복지를 예로 들어보자. 내 생각에 이 문제의 핵심은 참여다. 복지가 가능하려면, 시민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한국에선 참여할 수 있는 문이 닫혀있다. 어떤 노동자가 최소한의 생계를 꾸리기도 힘든 상황이라고 하자. 그가 택할 수 있는, 가장 사적인 방법은 남의 재산을 훔치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공공성이 높은 방법은 노동자끼리 단결해서 임금을 높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보다 더 공공성이 높은 방법은 적극적인 정치 참여로 사회복지를 강화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가능하려면, 시스템이 공정하다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또 '내가 원하는 걸 공적인 방법으로 얻을 수 있다'라는 사회 공공성에 대한 믿음도 있어야 한다. 그래야 참여가 이뤄진다. 나더러 다원주의자라고 하는 이들이 있는데, 차라리 나는 '획일적인 공정성'을 추구하는 입장에 가깝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보수 언론은 박 교수의 병역 문제를 물고 늘어진다. 병역 기피를 위해 미국 시민권을 얻었다는 주장이다. 공정성을 강조하는 입장에선 아픈 대목이다.

박경신 :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나는 시골에서 중학교를 다녔다. 당시 친구들 대부분이 군대에 다녀왔다. 그들과 비교해서, 나는 분명히 특혜를 누렸다.

다만 변명을 한다면, 내가 미국 시민권을 얻을 당시엔 내가 지금처럼 한국에서 살게 되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가족이 모두 미국에 뿌리를 내린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의도하지 않게 병역을 마치지 못한 이들을 한국 사회가 품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러나 어찌됐건, 한국에서 살아가는 다른 이들처럼 병역을 마치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거듭 용서를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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