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승부조작, 선수들도 불쌍하다
프로야구 승부조작, 선수들도 불쌍하다
[정희준의 '어퍼컷'] 제레미 린 출현을 막는 나쁜 어른들
프로야구 승부조작, 선수들도 불쌍하다
사실 작년 K리그 승부조작으로 온 세상이 떠들썩했을 때 검찰은 그 뿌리를 뽑지 못했다. 각 구단, 프로연맹, 대한축구협회, 대한체육회 모두 사태가 진정되고 사그라지기만을 바랬다. 축구담당 기자들도 "이러다 야구한테 완전히 먹히는 거 아냐?"하며 사태의 빠른 마무리에 동조했다. 결국 K리그 승부조작 사건은 '그 정도 선에서 마무리' 됐다. 그러나 더 있었다고 한다. 승부조작에 연루된 선수들 말이다. 모 구단의 경우 어느 경기에선 출전 선수들 전원이 승부조작에 참여했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많은 기자들이 알았다. 그러나 기사화되지 않았다.

파문의 결과로 54명이나 되는 선수들이 축구계에서 영구제명 됐다. 축구 외엔 정말 아무 것도 모르는 젊은 청년들이 졸지에 직업을 잃은 것이다. 솔직히 그 중 억울한 선수들도 있겠지만 그 방법 외엔 축구계가 빠져 나갈 방법이 없었고 또 그래야만 선수들도 앞으로 조심할 거다. 그런데 문제는 젊은 선수들은 축구계에서 쫓겨나고 생계가 끊겼는데 어른들은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구단, 연맹, 협회 사람들 중 축구계에 만연한 승부조작을 아는 사람 많았다. 그렇지만 모두들 쉬쉬 하다가 일이 터지자 선수들만 희생시키고 자기들은 깨끗한 척 했다. 연맹이나 협회에 있는 축구인 출신 인사들 중 선수생활, 지도자생활 하면서 승부조작 한 번도 안 한 사람들, 손 한 번 들어봐라. 없을 거다. 단 한 사람도.

승부조작, 그들의 일상

승부조작 파문이 프로배구에 이어 프로야구로 번지는 중이다. 축구에 이어 배구, 야구까지 번지는 이번 사태는 또 남성 선수들뿐 아니라 여성 선수들까지 유혹에 넘어갔다는 점에서 엄청난 사태로 진행될 듯하다. 배구는 이미 사실 확인이 끝나 후속처리에 고민 중이고 야구는 검찰 수사로 번질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 물론 도박이 운동선수들만의 문제는 아니겠지만 왜 운동선수들이 유난히 도박 때문에 인생을 망치는 경우가 자꾸 생기는가.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낮은 연봉을 받는 선수들이 유혹에 빠지기 쉽다고 하는데 꼭 그것만은 아니다. 가장 큰 이유는 적절한 윤리적 판단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운동선수들이나 지도자들 사이에서 폭력, 성폭력, 승부조작 문제가 심각한 것은 이들의 윤리의식이 낮아서가 아니다. 그게 뭔지를 아예 모른다. 상당수 체육인들은 친한 사람이 어려운 사정을 설명하며 읍소하면 (예를 들어 선수들의 대학 진학) 져주기도 한다. 그런데 그걸 그들은 승부조작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과거 칼럼에서 썼듯이 우리나라 스포츠에서 승부조작은 '밥 먹듯'이 일어난다. 선수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승부조작을 배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승부조작이 나쁜 거라는 인식이 머릿속에 없다. 작년 승부조작에 참여한 것이 밝혀져 쫓겨난 축구선수들이나 이번에 걸린 배구와 야구 선수들 중엔 "이게 그렇게 큰 잘못이었나?" 하며 억울해 하는 선수들 꽤 있을 거다.
▲프로 스포츠계를 들쑤시고 있는 불법 도박과 연계된 경기조작 의혹이 프로야구 마저 뒤흔들고 있다. 프로야구 경기조작 사건과 관련해 국내 8개 프로야구단 가운데 서울에 연고를 둔 최소 2개 팀 이상의 주전 투수가 경기조작에 가담했다는 브로커의 진술이 나와 검찰이 확인 작업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15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한국야구위원회(KBO) 로비의 로고 위로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다. ⓒ연합

프로야구의 또 다른 아킬레스건, 약물과 사인거래

운동선수들이 이러한 문제에 판단력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는 많다. 사실 나는 프로야구의 경우 스테로이드 등 약물문제가 터질 것이라 예상했었다. 과거 한때 선수들이 공공연하게 약물을 복용했었다. 지금은 달라졌겠지만 주문을 받아 단체로 구입했을 정도로 약물에 대한 판단력이 없었다. 십여 년 전부터 프로야구계의 약물 문제가 제기되자 조심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지만 지금도 많은 사람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갑자기 몸이 두꺼워진 선수들이 있었던 모 구단은 팬들 사이에서 '뚱×'이라 불리기도 했고 2009년 마해영은 자신의 자서전에서 선수들의 약물 복용을 밝히기도 했다. 또 2008년 김재박 전 LG트윈스 감독은 기자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선수들 간 사인 거래를 스스로 밝히기도 했다. 사인 거래 역시 명백한 승부조작인데 감독인 사람마저 이게 잘못됐다는 생각을 아예 못하는 것이다.

이번에 프로배구와 프로야구에서 문제가 터진 후 경기인 출신 인물들의 방송 인터뷰를 듣기도 했고 직접 물어보기도 했다. 다들 자기는 그런 일이 있을 줄은 전혀 몰랐다는 식으로 말한다. 그런데 그 말투를 들어보면 거짓말을 한다는 게 느껴진다. 이들이 "어떻게 부인해야 하나" 고민하며 말하는 것이 느껴진다. 사실 단호하게 부정하지 못하고 뭔가 여운을 남긴다.

뭘 잘못 했는지도 모르고 맞아야 하는 선수들…

승부조작과 관련된 선수들은 벌을 받을 것이다. 팀에서 쫓겨날 뿐 아니라 스포츠계에서 영원히 쫓겨날지도 모른다. 그래야 한다. 단호하고도 확실하게 엄벌에 처해야 한다. 그러나 나는 그 선수들이 불쌍하다. 그 선수들도 희생자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말하지 않았는가. 그들은 판단력이 없다고. 그들은 운동만큼은 우리나라에서 최고지만 그러한 사회적, 윤리적 판단을 할 능력을 배우지 못했다.

친한 교수가 있는데 전공이 스포츠심리학이다. 그가 어느 종목 지도자 아카데미에서 감독, 코치들 대상으로 강의를 하는데 그가 미국에 있을 때 하던 식으로 물어봤단다. 여러분들이 가장 존경하는 감독님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고. 보통 미국에서 이런 주제로 이야기를 시작하면 서로 자기를 가르쳤던 감독님 자랑 하느라고 이야기가 끝이 없다. 자신의 인생을 바꾼 스승이라고 누가 이야기하면 다른 사람이 자기 스승이 더 훌륭하다고 스승 자랑 경쟁을 한다. 그래서 작년 한국에 들어온 그 교수는 한국의 지도자들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는데 이게 전혀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흘렀단다.

아무도 이야기를 않더라는 것이다. 당황한 그 교수는 결국 상황을 깨닫고 방향을 틀었다. 그래서 각자 옛 스승과의 아픈 기억을 이야기하기로 했다. 그랬더니 서로의 아픈 추억이 봇물 터지듯 나왔다고 한다. 그 중 가장 마음 시린 이야기, 듣는 사람도 아프게 만드는 이야기가 있었다.

"뭘 잘못 했는지도 모르고 맞을 때 정말 슬펐다."

지난 달 나도 어느 지역 스포츠 지도자 연수에 강의를 갔다. 나도 물어봤다. 옛날 운동할 때 가장 존경하는 스승님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고. 말이 없다. 기다렸다. 직전까지 내 말에 반론도 제기하며 활발하게 토론을 벌였는데 그 질문에 아무도 대답이 없다. 한 사람이 그런다. "각자 존경하는 스승이 마음 속에 있지 않겠어요? 그냥 넘어가죠." 그래서 그에게 존경하는 스승을 이야기해보라고 했는데 그는 입을 닫았다. 다른 사람도 시켜보고 고집스럽게 기다리고 그랬다. 결국 아무도 말을 안 했다. 60명씩 두 개의 반에서 강의했는데 두 반 다 똑 같았다. 그래서 내가 그들에게 그랬다. "없죠?" 역시 말이 없었다.

엄중한 조사 외에 필요한 것들

이번에 아프더라도 확실하게 밝혀내고 뿌리째 뽑아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다칠 것이다. 지금 한국의 스포츠는 외부로부터의 충격 없이는 바로 설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미술평론가인 이브 미쇼는 상업주의로 타락한 현대미술을 개탄하면서 이를 되살리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낭떠러지에서 떨어뜨려 절명케 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한국의 스포츠가 바로 그 지경이다.

그러나 이와 함께 더욱 근본적인 해결책을 고민해야 한다. 운동선수들에게 제대로 된, 다른 아이들과 똑같은 성장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 수업도 들어가 담임선생님이 누군지도 알게 하고 운동선수 친구뿐 아니라 반 친구들도 사귀도록 해줘야 하고 합숙소가 아니라 집에서 가족과 함께 지내며 성장하도록 해야 한다. 지금처럼 검투사 기르듯 격리시켜서 운동시키면 올바름에 대한 자율적 판단능력을 상실한 운동기계만 만들어낼 뿐이다.
▲미국 전역을 들끓게 만드는 '황색돌풍' 제레미 린. 한국에서 제레미 린 같은 운동선수가 나타나는 게 가능할까. ⓒ로이터=뉴시스

지금 한국의 운동선수들과 최근 미국 NBA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뉴욕 닉스의 대만계 미국선수 제레미 린이 대비된다. NBA뿐만 아니라 지금 미국에서 가장 뜨거운 인물인 그는 고등학교 재학 당시 교지 편집장을 했고 방학 때는 상원의원실에서 인턴을 했을 뿐 아니라 대통령 장학금까지 받았다. 농구를 잘했지만 동양인에 대한 편견 때문인지 농구 명문 대학으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지 못하자 그는 방향을 바꿔 그의 우수한 성적을 바탕으로 하버드대에 진학한다. 경제학을 전공한 그는 하버드대 아시아인기독교 학생 모임의 리더를 했고 장래 꿈도 목사가 되어 NPO를 이끄는 것이라고 한다. 한 인터뷰에서 도심의 불우한 청소년들을 돕는 일을 하고 싶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제레미 린 같은 운동선수가 가능할까. 이게 가능하기 위해선 한국의 스포츠를 바꿔야 한다. 대한체육회 등록선수만 무려 10만 명이다. 이 많은 선수들 중 대다수는 운동선수로서 성공하지 못한다. 그나마 성공한 선수들은 지도자가 되지만 언제 잘릴지 모르는 비정규직으로 불안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운동 잘하는 선수들 중에서도 극소수가 프로에 가지만 이렇게 허망하게 퇴출되기도 한다. 한국스포츠의 착취구조, 곧 협회와 일부 지도자를 위해 선수가 이용당하는 관행, 검투사 기르듯 격리시켜 기르다가 문제 생기면 선수만 희생시키는 저질 협회, 공부 안 시키고 올바른 성장의 기회를 박탈하는 교육, 이제 박살을 내야 한다.
eday@pressian.com 다른 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