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감옥' 기숙학원, 그곳에 가보니…
'아이들의 감옥' 기숙학원, 그곳에 가보니…
['사교육 중독', 이젠 빨간불]부모 욕망이 빚어낸 아이들의 지옥도
'아이들의 감옥' 기숙학원, 그곳에 가보니…
여름방학을 일주일 앞둔 지난 12일, 경기도의 한 유명 기숙학원을 찾았다. 광역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도 한참을 걸은 끝에 기숙사 건물 두 채가 덩그러니 나왔다. 기숙학원 생활은 유배생활이나 마찬가지라던 어느 수강생의 말이 실감났다. 학원 앞은 논이었고, 뒤는 산이었다. 주변에는 그 흔한 편의점도 없었다.

접수를 담당하는 학원 관계자는 방학이 오면 전국 각지에서 오는 재학생으로 학원이 북새통을 이룬다고 말했다. 기숙학원은 학기 중에는 재수생만 받을 수 있지만, 방학이 오면 성수기를 맞는다. 특히 겨울방학 때는 중학생 학부모도 기숙학원에 자녀들을 보낸다고 했다.

학부모 상담실에 들어갔다. 탁자에는 유명 대학에 진학한 학생들의 이름이 진열돼 있었다. 원장에게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을 위한 '여름방학 특강'에 대해 물었다. 원장은 '한 달 안에 수능 뽀개기' 일정표를 건넸다. 고교 전 과정을 한 달 동안 압축적으로 복습하는 과정이다.
▲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보러 떠나는 기숙학원 학생들. ⓒ뉴시스

새벽 6시반부터 새벽 1시반까지…

원장을 따라 강의실을 안내받았다. 대부분 학생들은 문제집을 쌓아놓고 자습을 했다. 몇몇은 한 평 남짓한 '질문방'에서 강사와 일대일 수업을 하고 있었다. 걸어다니면서 수첩을 들고 다니는 학생도 보였다. 원장은 학생들이 하루에 영어 단어를 100개씩 외운다고 설명했다.

"우리 학원에서는 딴 짓할 틈이 없어요. 학생들 대부분이 밥 먹을 시간이 아까워서 식당에서도 영어 단어를 외우고 있습니다."

과장이 아닌 듯 했다. 기숙학원 학생들의 하루 일과는 오전 6시30분에 체조와 함께 시작한다. 오전 8시부터 한 시간 동안 '자기주도 학습'을, 오전 9시부터 오후 1시까지 수업을 받는다.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또 다시 수업이, 오후 6시부터 10시까지는 다시 자습이다. 중학생이든 고등학생이든 일정은 똑같다. 새벽 6시30분 시작, 밤 10시 마감이다.

재수생의 자습은 오후 11시에 끝나지만, 본인이 원하는 경우 새벽 1시30분까지 이어진다. 학원법상 재학생은 밤 10시 이후에 학원 수업을 받을 수 없다. 그러나 이 기숙학원에서는 고등학생도 학부모가 원하는 경우 새벽 1시30분까지 자습할 수 있다고 했다. 하루일과가 오전 6시 30분부터 다음날 새벽 1시30분까지 있다고 가정했을 때, 식사시간과 세면·체조시간을 빼면 공부하는 시간은 하루 16시간이었다.

휴대전화, 남녀대화 금지…면회는 이주일 후부터

강의실에서 나와 복도를 걷자 도란도란 대화를 하던 학생 두 명이 원장을 흘깃 보고는 흩어졌다. 원장은 학생들에게 눈치를 줬다. 아이들이 힘들어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원장이 답했다. "고3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지요. 학원 지침만 잘 따른다면 낙오할 염려는 없습니다. 첫 이틀은 정신강화 훈련을 시키거든요."

기숙학원에는 휴대폰을 가져올 수 없다. 첫 이주일 동안은 가족과 전화 통화도 할 수 없다. 이주일 뒤부터는 '면회'가 가능하고, 한 달 뒤부터는 하루 '휴가'를 갈 수 있다. 이성 간에는 대화도 금지다. 외출은 병원에 갈 때만 가능하다. 강의실을 나가는 길에 학생들이 똑같은 단체복을 입고 줄을 맞춰 체조를 하는 사진이 눈에 띄었다.

한 학원 관계자는 "기숙학원 생활이 생각보다 많이 힘드니, 아이가 버틸 수 있는지 잘 생각해보라"면서도 "그래도 예전보다는 규율이 많이 풀어진 편"이라고 귀띔했다.

"예전에는 스파르타식 학원이 많았잖아요. 요즘은 예전처럼 체벌도 못해요. 단체기합도 못 주고요. 떠들면 해당 학생만 조용히 교무실로 불러서 앉았다 일어서기를 시키는 정도죠. 고등학생은 확실히 재수생보다 어리거든요. (최소한의 규율이 없으면) 그냥 수련회 온 것밖에 안 되니까요."

"중학생도 24시간 관리받으며 고교과정 선행학습"

중고등학생을 전문으로 받는 경기도의 또 다른 기숙학원. 여름방학 특강을 시작한다는 홍보가 한창이었다. 학원 관계자는 "한 반에 10명 정원으로 소수정예"라며 "교사가 24시간 상주하며 질문을 받는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중학생에게는 고등학교 과정을 선행학습한다"며 "전날 배운 내용을 매일 시험 본다"고 덧붙였다. 중학생에게 준비물로 요구하는 공책 10권이 학습량을 가늠케 했다.

재수생이든 중학생이든 기숙학원 상황은 대개 비슷비슷했다. 학생들은 7시 30분에 일어나 체조를 하고, 하루 종일 수업과 자습을 한 뒤 오후 11시 30분에 취침에 들어간다. 고등학생의 수강료는 단체복, 모의고사비용을 포함해 한 달에 220여 만 원이었다. 중학생의 경우 3주일에 50만 원이다.

학생들은 기숙학원이 "감옥 같다"고 말했다. 3년 전 기숙학원에 다녔던 김아라(가명·23) 씨는 "일주일에 자유 시간은 일요일 오후 3시간 밖에 없었다"며 "그 시간도 부족한 잠을 자기 바빴다"고 말했다. 그는 "전체 학생의 30% 정도는 갑갑함을 못 견디고 중간에 그만 둔다"며 "나도 다시 돌아가라고 하면 절대 못 돌아갈 것"이라고 진저리쳤다.

김 씨는 "우리나라가 입시 과열이라서 기숙학원이 생겨난 것 같다"며 "부모님은 (기타비용을 포함해) 한 달에 250만 원이나 썼으니 돈 투자한 만큼 열심히 공부하라고만 했다"고 말했다. 그는 "좋은 대학에 나오지 않아도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는데, 사람들은 좋은 대학에 가야만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다고 강요한다"며 "학벌을 위해 인생이 너무 소모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김승현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 정책실장은 "기숙학원 문제는 학부모의 과도한 욕망이 부른 학생들의 인권 문제"라며 "학습노동에도 적정한 수준을 지켜줘야 방학이 의미가 있는데, 24시간 체제의 스파르타식 학습노동을 시키면 아이들에게 너무 심한 처사를 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교육 중독', 이젠 빨간불
<1> "엄마가 말하길 제 꿈은 하버드대 편입이래요"
<2> 세계에서 가장 머리 나쁜 한국 학생들?
<3> 가정 경제 파탄내는 사교육 : 아이들이 진학하면, 엄마는 '알바' 뛴다
<4> '강남 불패' 신화 휘청?
<5> "나이 마흔에 잘려서 호프집 차리느니…"
<6> 부자동네 아이들이 서울대 진학률 높은 '진짜 이유'
<7> "영어유치원 10곳 생기면 소아정신과 1곳 생긴다"
<8> 현직 학원장의 고백 "애들이 수학 포기하는 이유는…"
<9> "영어 조기교육, 아이 말더듬이 만들 수 있다"
<10> "6살짜리 앉혀놓고 민족사관고 가라며…"

<11> '선행학습 금지법' 시안 들여다보니…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dongglmoon@pressian.com 다른 글 보기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