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축구 8강 진출 청신호, 김창수 빛났다
한국축구 8강 진출 청신호, 김창수 빛났다
[런던올림픽] 한국대표팀 '와일드 카드' 김창수를 주목한다
현대축구는 바야흐로 풀백 전성시대다. 과거 체력이 좋은 선수가 많이 뛰며 측면 수비를 보는 걸로 치부되던 포지션은 오버래핑이란 개념이 등장하고 포지션별로 복수의 임무가 주어지는 토탈사커의 시대를 맞으며 빛나게 됐다. 지금에 들어서는 수비는 기본이고 뛰어난 공격가담 능력까지 갖춘 최정상급 풀백 없이는 대표팀도, 클럽팀도 정상을 노릴 수가 없다. 이제 풀백은 카푸, 필립 람, 다니엘 알베스, 이영표 등에서 보듯이 최고의 체력과 축구지능, 윙포워드를 연상시키는 뛰어난 공격 기술까지 지녀야 한다.

30일 새벽(한국 시각) 스위스를 꺾으며 런던올림픽 8강 진출 가능성을 드높인 대한민국 올림픽 대표팀 역시 역대 어느 팀보다 탁월한 풀백들을 보유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이번 대회에 빛나는 선수는 와일드카드로 선발된 김창수(27, 부산 아이파크)다. 멕시코전에 이어 스위스전에서도 공수 전체를 아우르는 최고의 활약으로 팀 승리에 크게 기여했다. 올림픽대표팀 선발 당시 많은 이들을 갸우뚱거리게 했던 홍명보 감독의 선택은 대회에 들어 눈부시게 빛나고 있다.

▲지난 26일(현지 시각) 오후 영국 뉴캐슬 세인트 제임스 파크에서 열린 한국과 멕시코의 남자축구 조별리그 B조 예선 1차전 경기에서 김창수가 볼을 다투고 있다. ⓒ뉴시스

베이징올림픽의 좌절이 만든 성장

김창수의 축구인생은 가시밭길이었다. 창원 상남초등학교에서 축구를 시작한 김창수는 부산의 축구명문인 동래중학교로 진학하며 승승장구하는 듯했다. 고등학교 역시 명문 개성고등학교(전 부산상업고등학교)에 입학하며 엘리트선수의 꿈을 키울 수 있었다. 하지만 고등학교 2학년 당시 중학교 은사의 강한 요청으로 친구 세 명과 함께 새로 창단한 동명정보고등학교로 전학을 가야 했다. 결국 신생팀 동명정보고등학교에서는 단 한 번도 전국대회 8강에 들지 못했고 그의 대학 입학은 좌절됐다.

다행히 개성고등학교 시절 보여준 잠재력을 알고 있던 스카우트의 도움으로 프로팀 울산 현대에 연습생으로 합류하게 되지만 2년간 그가 얻은 기회는 리그컵 단 한 경기 출장이 전부였다. 2년차인 2005년에는 발목 부상이 길어지며 운동도 제대로 못했다. 프로 무대에서 좌절과 상처만 안은 김창수는 초등학교 은사인 박말봉 감독이 이끄는 실업팀(현 내셔널리그) 창원시청 입단을 타진했다. 하지만 스승인 박말봉 감독의 생각은 달랐다. 아무리 자신의 팀에 플러스가 돼도 재능 있는 제자는 더 높은 수준에서 뛰어야 한다는 것. 결국 대전 시티즌의 최윤겸 감독이 김창수에게 손을 내밀었고, 박말봉 감독에게 등을 떠밀린 김창수는 다시 프로 무대에 도전장을 던졌다.

2006년 대전에서 10경기에 출전하며 성공적으로 안착한 김창수는 2007년 23경기에 출전해 1골 3도움을 기록, 자신의 가능성을 실력으로 폭발시켰다. 때마침 핌 베어벡 감독이 이끄는 올림픽대표팀에도 선발되며 단숨에 촉망 받는 유망주로 올라섰다. 올림픽 예선 전 경기에 출전한 김창수는 2008년 부산으로 이적했고, K리그를 대표하는 풀백으로 확실히 자리매김했다. 올림픽 출전의 꿈도 커졌고 예상대로 최종엔트리에 선발됐다.

하지만 올림픽 본선은 그에게 좌절을 안겨줬다. 후배인 신광훈(포항)에게 밀려 단 1분도 출전하지 못한 채 대회를 마감한 것. 당시 올림픽대표팀은 1승 1무 1패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울산에서 나온 뒤 올림픽에서 다시 맞은 시련 앞에 흔들릴 법도 했지만 김창수는 이내 일어섰다. 2009년 29경기 1골 2도움, 2010년 32경기 2골 3도움으로 꾸준한 성장세를 보였다. 2011년에는 수비수 조련에 일가견이 있는 안익수 감독을 만났다. 상대적으로 젊은 선수들이 많은 부산에서 주장으로 임명된 김창수는 2011년에 공격과 수비에서 모두 진일보한 모습을 보이며 35경기에서 1골 5도움을 기록하며 축구인생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극적인 와일드카드 합류의 그날

2012년에도 김창수의 오름세는 계속됐다. K리그 최고의 수비조직력을 자랑하는 부산의 '질식수비'의 핵이 된 김창수는 공수 양면에서 물오른 기량을 보여줬다. 프로축구연맹이 선정하는 라운드별 베스트11에도 가장 많은 이름을 올린 풀백이었다. 하지만 런던올림픽은 꿈꾸지 않았다. 이미 만 23세의 연령을 초과해서, 세 명을 뽑을 수 있는 와일드카드로나 선발되어야 했던 상황이었다. 박주영, 정성룡이 이미 확정된 가운데 나머지 한 명은 수비수가 선발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홍정호가 무릎 부상으로 빠진 센터백 포지션의 보강이 유력한 가운데 오른쪽 풀백 포지션 보강도 종종 언급됐다. 그러나 김창수보다는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당시 홍명보 감독이 선발한 신광훈이 더 유력하다는 얘기가 많았다. 언론은 남은 한 장의 와일드카드 후보로 1순위 이정수, 2순위 신광훈 식으로 예상했다.

런던올림픽 최종엔트리가 발표되던 운명의 6월 29일. 홍명보 감독의 입에선 대부분이 예상치 않았던 김창수의 이름이 불렸다. 발표 이틀 전만 해도 김창수를 언급하지 않았던 홍명보 감독이 하루 사이 생각을 바꾼 것이었다. 1순위 후보였던 이정수는 소속팀 알사드의 반대로 인해 차출에 실패했다. 거기서 홍명보 감독의 고민은 커졌다. 차출을 확신했던 이정수의 합류가 무산되자, 홍명보 감독은 사고를 전환했다. 얇아진 센터백은 어린 선수들의 조화와 2명의 수비형 미드필더를 세우는 방식으로 보강하고 풀백을 한층 강화하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하지만 모든 이의 예상과 달리 그는 신광훈이 아닌 김창수를 택했다. 수석코치였던 베이징올림픽, 감독이었던 광저우아시안게임 때의 선택과 달리 현재 K리그에서 보여주고 있는 경기력이 누가 더 위인지를 면밀히 검토한 것이다. 자연스레 K리그 최고의 풀백으로 맹활약 중이던 김창수를 미련 없이 선택했다.

김창수의 선발 후에도 언론과 팬들은 의아해했다. 굳이 풀백 포지션에 와일드카드를 보강해야 하는가라는 의문이었다. 무엇보다 김창수의 선발로 부산 한 팀에서만 세 명(김창수, 박종우, 이범영)의 선수가 선발돼야 했다. 올림픽 기간 중에도 시즌을 치르는 K리그 팀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팀당 최대 두 명까지만 선발하겠다던 홍명보 감독 개인의 원칙에도 위배되는 결정이었다. 그때 부산의 안익수 감독이 나섰다. 안익수 감독은 고민하던 홍명보 감독에게 "얼마든지 선발해 가도 좋다. 우리가 모든 걸 감수할 테니 김창수를 꼭 선발해달라"고 역으로 요청했다. 안익수 감독의 판단은 그랬다. 팀 전력의 핵인 김창수가 한 달 넘게 빠지는 것은 큰 타격이지만 올림픽이라는 무대를 경험함으로써 선수 개인이 얻어 올 성장과 효과는 그 이상이라는 것. 결국 부산의 대승적 결단에 김창수는 극적으로 두 번째 올림픽에 참가할 수 있었다.

▲지난 3일 경기도 파주 NFC에서 김창수가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당시 그는 와일드카드 선발이 "선수 인생의 전환점"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이 바람은 현실로 이뤄지고 있다. ⓒ연합뉴스

2002년의 송종국과 2012년의 김창수

김창수는 올림픽 본선을 앞두고 치른 두 차례의 평가전에서 자신에 대한 많은 이들의 의문을 환호로 바꿔놨다. 뉴질랜드와 벌인 첫 번째 평가전에서 오른쪽 측면을 지배한 그는 영국 현지로 건너가 세네갈과 치른 두 번째 평가전에서 또 한 번 발군의 활약을 펼쳤다. 운동능력이 탁월한 아프리카 선수들을 상대로 시원한 돌파와 수비에서 강력한 마크 등 압도적인 플레이를 보였다. 왼쪽 풀백 윤석영과 함께 좌우 측면에서 상대를 압도하며 홍명보호에 있어 공격의 출발이자 수비의 시작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본선 경기에 들어서도 매 경기 최고의 활약을 펼치고 있다. 멕시코도, 스위스도 공수 양면에서 완벽한 밸런스를 보여주는 김창수가 지키는 오른쪽 측면을 뚫기는 역부족이었다.

이번 런던올림픽에서 김창수가 보여주는 대활약은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송종국이 보여준 모습을 연상시킨다. 당시 오른쪽 측면에서 루이스 피구를 비롯한 세계적인 선수들을 꽁꽁 묶으며 단숨에 세계적인 선수로 등극했던 송종국이 그랬던 것처럼 김창수 역시 이번 대회가 끝난 후 가장 가파른 유명세를 누리게 될 선수임에 분명하다. 잠시간의 희생을 통해 선수 개인의 성장을 돕고 결국 그 선수가 돌아오면 팀에 긍정적인 효과를 줄 것이라 본 안익수 감독과 부산의 선택은 옳았다. 과거 자신의 호불호가 아니라 현재 보여주고 있는 경기력을 놓고 냉정하게 판단했던 홍명보 감독의 선택도 옳았다. 남은 올림픽 일정 동안 김창수가 현재의 경기력을 꾸준히 유지한다면 사상 첫 메달로 가는 올림픽 축구대표팀의 발걸음도 한층 경쾌해질 것이다.
eday@pressian.com 다른 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