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들이여, 당신들의 신을 '죄의 늪'에서 구하라
기독교인들이여, 당신들의 신을 '죄의 늪'에서 구하라
[인권오름] 폭력과 비극을 부르는 건 동성애가 아니다
"케이틀린 캠벨, 웰즐리 대학은 당신의 입학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지난 4월 17일, 미국 동부에 위치한 어느 여자대학교 공식 계정의 한 트윗이 3632번이나 리트윗 되어 나의 타임라인에 도착했다. 지나치게 개인적인 호명이 아닌가 싶은 호기심에, 트윗 뒤에 링크된 기사를 눌러보지 않을 수 없었다.

조지 워싱턴 고등학교의 부총학생회장인 케이틀린 캠벨은 학교에서 마련한 기독교 단체의 성교육 강연 "성적 순결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에 참석하기를 거부했다. 보수 기독교 강연자 팸 스텐젤은 '닥치고 금욕'(abstinence-only) 전문가로 학생들에게 모든 종류의 성적 접촉은 성병을 불러올 수 있으며 여성을 불임으로 만들 것이라고 경고했다. 스텐젤의 이런 강의를 듣다가 몇몇 학생들은 울기도 하고 자리를 뜨기를 시도하기도 했지만 학교 측에 의해 저지당했다.

유튜브에 오른 스텐젤 강연 영상은 대부분 10대를 대상으로, 또 학교의 공식 초청으로 이루어진 것들이었다. 스텐젤은 기독교를 기반으로 한 청소년 순결교육 전문가로 유튜브에서 그의 이름을 치면 세계 각국의 언어로 번역된 그의 강연을 볼 수 있다.

"섹스하면 비싼 값을 치르리라", "재활용 처녀" 등의 놀라운 제목을 단 여러 영상에서 스텐젤은 "피임약을 먹는 여성은 성병에 걸릴 확률이 10배다. 불임이 되거나 죽는다", "설사 이미 해버린 몸이라고 해도 이제부터라도 미래의 남편에게 용서받는 그날까지 금욕한다면 재활용 처녀가 될 수 있다", "만일 엄마가 피임약을 준다면 그건 너희를 증오한다는 뜻이다" 등의 급진(상)적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캠벨은 이런 강연을 조직하고 강제적으로 참석하게 한 것을 "학생들에 대한 정신적 학대"라고 문제 제기하며, 조지 워싱턴고의 조지 아울렌 바처 교장에게 이 상황에 대해 공동체에 사과하고 사임하기를 요구했다. 그리고 "미국에서 9번째로 임신율이 높은 웨스트버지니아주의 학교에서 나는 피임법이 무엇이며 어떻게 그것을 이용할 수 있는지 정보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 교장의 체제 내에서 올바른 성교육은 억압받고 있다"고 캠벨은 언론에 이야기했다.

이에 교장은 캠벨을 교장실로 불러 캠벨이 합격한 웰즐리 대학에 그가 얼마나 "성품이 나쁜 학생"이며, "어떻게 뒤통수를 치는지"를 알리겠다고 협박했다. 교장은 이후에도 강연이 적절하고 정당했다는 자신의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이에 캠벨은 교장이 자신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지 못하도록 하는 금지 명령을 법원에 청구했고, 대학에서는 교장의 저열한 시도를 비웃듯 캠벨의 입학을 열렬히 환영했다.

금욕과 모욕 :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여겨라

금욕: 일의적(一義的)으로 특정하게 정립(定立)된 가치적 목표를 세우고, 스스로 행위를 내부로부터 규제하고 통괄하는 일. (두산지식백과)

모욕은 필연적으로 삼각형을 수반한다: (1)피해자, (2)가해자 그리고 (3)증인. 모욕당한 자는 자기만의 수모를 느끼거나 미래에 그것을 듣거나 보게 될 누군가를 상상할 수 있다. 모욕 장면의 공포 - 그것의 에너지와 강렬한 감정 - 는 언제나 이 셋을 필요로 한다. (<모욕>, 웨인 코에스텐바움)

무대를 누비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팸 스텐젤의 금욕 충만한 성교육 퍼포먼스를 바라보며 나는 이상하리만치 고요한 그 자리에 있는 10대 청중과 그들의 침묵에 대해 생각했다. 그건 불안과 죄책감의 침묵일 수도 있고, 동의의 침묵일 수도 있고, "헛소리는 됐고, 공짜니까 먹자"며 '순결 캔디'를 까먹던 고등학교 시절의 나 같은 학생의 침묵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경우일지라도, 이런 종교적 언설이 기대고 있고 의도하고 있는 것이 '모욕'이라는 혐의를 지우기 어렵다. 보수 기독교의 성 윤리가 개인의 의지와 실천을 바탕으로 건강하게 공동체에 뿌리내릴 수는 없는 것인가? 소수자가 되어 공동체에서 낙인찍힐 수 있다는 공포를 조장하지 않고는 안 되는 것인가? 보수 기독교의 성 윤리가 개인의 내면에 가 닿기 위해서는 반드시 공동체의 다른 누군가의 모욕감을 먹이로 삼는다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설사 인권이 침해될지라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이 정말 기독교적 사랑의 실천인가?

"인간이 한없이 욕구대로 행동하다 보면 파괴적이고 반사회적 행위로 발전될 우려"가 있기에 자기 내면을 응시하고 절제하며 수련하는 것을 금욕이라 했다. 하지만 자신의 종교를 한없이 근본주의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강요하다 보면 오히려 파괴적이고 반사회적으로 발전할 우려가 있다. 더 참담한 것은 종교적 믿음과 다양한 사회적 소수자의 인권 문제가 부딪힐 때, 우리는 신의 이름으로 인간의 존엄을 외면하는 '어떤 기독교인'들을 너무나도 자주 그리고 많이 마주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 한국 교계 동성애 동성혼 입법 저지 반대 비상대책위원회 소속 회원들이 지난 3월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동성애와 동성혼을 합법화하는 차별금지법안 반대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이것은 차별이 아니다: 우리는 누구에게도 폭력을 조장하지 않는다?

피임법과 성병 등에 대해 과학적 사실을 왜곡하고 공포를 조장하는 성교육은 '높은 도덕성'을 이끌어내기보다는 위험하고 준비되지 않은 임신을 초래한다. 재생산 건강을 다루는 비정부기구 굿마커 재단(Guttmacher Institute)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18세에서 29세 사이의 미국 남성의 절반 이상과 여성의 25%는 피임법에 대해 잘 모르며, 전체의 60%는 경구피임약의 효과를 믿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피임법에 대해 극도의 혐오를 퍼부어대는 순결교육이, 심지어 오바마 행정부의 공립 고등학교 임신 방지 프로그램 중 하나로 세금을 쓰며 지원되고 있다는 것은 심란한 일이다.

물론 지금 오바마 행정부 걱정을 할 때가 아니다. 한국 상황도 만만치 않다. "학생은 성별, 종교, 나이, 사회적 신분, 출신 지역, 출신 국가, 출신 민족, 언어, 장애, 용모 등 신체 조건, 임신 또는 출산, 가족 형태 또는 가족 상황, 인종, 경제적 지위, 피부색,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병력, 징계, 성적 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가진다"는 학생인권조례의 제6조는 특히 '임신 또는 출산' 그리고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조항을 이유로 기독교의 거센 반대에 부딪힌 적이 있다.

지금도 임신한 학생이 퇴학을 당하고 게이라는 이유로 학교 폭력의 피해자가 되고 레즈비언이라는 이유로 '교정 강간'까지 당하는 사례들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차별과 폭력을 막고 인권을 보호하자는 움직임을, 조직적인 실천을 하며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결국 그들은 보편적인 인권을 말하는 '차별금지법'을 세 번이나 철회시켰다. 그들이 다름 아닌 종교 집단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가? 왜 그들은 더 이상 차별하지 못 할까 봐 두려워하는가?

보수 기독교인들은 '이것은 차별이 아니다. 우리는 누구에게도 폭력을 조장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안타깝게도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게이 칼럼니스트 댄 세비지에 따르면, 홈리스 청소년 중 40%가 LGBT(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이며, 그들 대부분은 커밍아웃 혹은 아웃팅 이후 집에서 쫓겨났다. 그들 부모가 그들을 내쫓은 이유 중 하나는 "다른 자녀들을 성적으로 보호하기 위해서"였다고 했다. 이것은 동성애와 소아성애를 항상 연결시켜 동성애를 악마화, 범죄화하는 기독교의 왜곡된 선전이 초래한 비극이다.

"내 한목숨 죽어서 동성애 사이트가 유해 매체에서 삭제되고 소돔과 고모라 운운하는 가식적인 기독교인들에게 무언가 깨달음을 준다면, 난 그것으로도 나 죽은 게 아깝지 않아요"라는 유서를 쓰고 죽음을 택했던 청소년 동성애자 고(故)육우당의 10주기 추모제가 최근 열렸다. "차별금지법이 통과되면 청소년들은 동성애로 병들어 자살한다"는 피켓을 들이미는 보수 기독교 단체는 이 폭력과 비극의 책임이 동성애가 아닌 바로 당신들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관련 기사 : <"가식적인 기독교에 깨달음을"…어느 10대의 죽음><남편 사랑 못 받은 어머니, 동성애자 아들 만든다?><10대 성 소수자들 "홍석천처럼 세상에 나가고 싶다">)

나는 자신의 '열정'이 누군가에게는 직접적인 폭력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몰랐을 기독교인들, 혹은 그런 그들과 다르다며 그저 무관심하고 방관했던 또 다른 기독교인들에게 말하고 싶다. 이제는 당신들이 싸워야 할 때다. 나는 관용을 구걸하는 것이 아니다. '일부'라고 치부하기에는 당신의 신의 이름으로 저질러지고 있는 죄가 너무 많다.

"우리가 편견에 맞설 때에야 비로소 폭력은 멈출 것입니다. 우리가 목소리를 낼 때에야 비로소 낙인과 차별은 끝날 것입니다." (반기문 UN 사무총장, 세계 인권의 날 연설 중)

*이 글은 "[언니네 방앗간] 왜 기독교인들은 스스로의 명예를 위해 싸우지 않는가"라는 제목으로 주간인권신문 <인권오름>에도 실렸습니다. <인권오름> 기사들은 정보공유라이선스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정보공유라이선스에 대해 알려면, www.freeuse.or.kr을 찾아가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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