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슬픈 응원가, '목포의 눈물' 기억하십니까?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응원가, '목포의 눈물' 기억하십니까?
[최동호의 한국스포츠당]<9> 스포테인먼트의 시대라지만… '스포츠는 정치적'
2013.05.21 07:44:00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응원가, '목포의 눈물' 기억하십니까?
1983년 10월 20일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한국시리즈 5차전. 해태 타이거즈가 MBC 청룡을 8대1로 누르고 우승을 확정짓자 잠실야구장엔 대중가요 '목포의 눈물'이 울려퍼진다. 우승에 환호하는 기쁨의 노래가 아니었다. 왠지 서글픈 가락은 서러운 흐느낌 속에 더욱 더 애절했다. 차별과 박대, 그리고 80년 광주. 서러운 세월을 숨죽이며 살아온 해태팬, 호남인들의 눈물의 합창이었다. 서러움을 함께 토해 내며 위로받았던 해태 타이거즈의 우승은 광주의 씻김굿이었고 모두의 눈시울을 적신 '목포의 눈물'은 광주의 진혼곡이었다. 이후 '목포의 눈물'은 광주를 상징하는 해태의 응원가로 불리었다.

세상 어느 곳에 이렇게 슬픈 곡조의 응원가가 또 있을까? 사직구장의 '부산 갈매기', 문학구장의 '연안부두', MLB 보스턴 레드삭스의 'Sweet Caroline' 모두 신나는 노래이다. 당연하다. 응원가는 신이 나야한다. 그러나 1935년 이난영이 발표한 '목포의 눈물'은 망국의 설움과 함께했던 노래다. 일제 강점기의 고달픈 민중의 삶을 달래주던 애달픈 곡조다. 드러내놓을 수 없었던 80년 광주의 한을 애달픈 곡조에 투영했기에 '목포의 눈물'은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응원가였다. 이 세상 어느 응원가가 시대를 어루만질 수 있을까? 더해서 한을 달래줄 수 있을까? '목포의 눈물'은 가장 슬픈 응원가였기에 가장 감동적인 응원가였다.

▲해태 타이거즈는 광주 사람에게 결코 오락적인 도구가 아니었다. 스포츠는 정치적이다. 정치적 의사표현을 금지시키는 국제축구연맹(FIFA)의 조치는 역설적으로 스포츠의 정치성을 잘 드러낸다. ⓒ연합뉴스

불행히도 스포츠는 정치적이다. 그러나 정치를 뛰어넘는 힘을 갖고 있어 더욱 가치 있다. 일본 프로야구 주니치 드래곤즈의 역사는 '타도 요미우리'의 역사다. 주니치의 우승은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도쿄에 맞서왔던 나고야의 피해의식과 박탈감을 치유한다. 일본 정치가 해결하지 못하는 '반골 나고야'의 힐링을 오직 주니치만이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은 정치적이면서 정치를 뛰어넘는 스포츠의 힘을 보여준다.

근대 축구의 역사 또한 정치적이면서 정치를 초월하는 스포츠의 힘을 보여준다. 산업혁명 시기 급격한 도시화, 공업화 속에서 발생한 노동자계급의 유일한 희망은 축구였다. 최악의 생존 조건에 직면했던 노동자계급에 축구라는 유일한 탈출구를 제공한 것이 정치경제적 계산이었다면, 축구는 노동자계급에 유일한 치유와 문화를 제공하며 생존의 근거를 마련해줬다. 축구 본고장 유럽의 전통적인 명문구단은 영국의 맨체스터와 리버풀, 독일의 도르트문트 등과 같은 산업혁명 시기 대표적인 공업도시를 근거로 한다. 근대 축구의 발전과정이 같은 시기 노동자계급의 형성과 맞물려있기 때문이다. 80년 광주에서, 산업혁명 시기 맨체스터와 리버풀, 도르트문트에서 스포츠는 정치를 뛰어넘는 치유와 희망을 선사했다.

2009년 해태 타이거즈의 뒤를 이은 기아 타이거즈가 12년 만에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9회말 1사에서 나지완의 끝내기 홈런으로 거머쥔 감동적인 우승이었다. 기아 응원단에서 '목포의 눈물'이 흘러 나왔다. 그러나 2009년 '목포의 눈물'은 마지막까지 불리지 못했다. 기아 응원단에서 호응하는 사람들이 적었기 때문이다. 어떤 이에겐 '목포의 눈물'이 불리다 만 것이 충격이었겠지만, 어떤 이에겐 애달픈 곡조의 '목포의 눈물'이 낯설기도 했을 것이다.

시대는 변한다. 스포츠에서도 엔터테인먼트를 추구하는 스포테인먼트의 시대다. 본질인 가치가 변하지 않더라도 파생인 기능은 시대의 요구에 부응할 수밖에 없다. 2009년 호남에도 기아 타이거즈의 기능은 엔터테인먼트였다. 프로야구의 환경도 변했다. 만년 적자사업인 프로야구에서 롯데, 두산, 삼성은 수년 째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프로야구가 산업화되며 공급자와 소비자 모두 상품으로서의 야구를 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기억과 추억을 잃어버릴 순 없다. 한 세대가 공유한 같은 시대의 기억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스포츠가 반영하는 시대상엔 우리가 살아온 이야기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스포츠는 웃고 즐기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스포츠엔 엔터테인먼트 그 이상의 우리 삶을 어루만져주는 감동과 치유가 있다. 80년대 해태 타이거즈가 그랬고 98년 외환위기로 해체된 남자배구 고려증권, 99년 프로농구 기아 엔터프라이즈의 마지막 시즌이 그러했다.

33주기 5.18을 맞이한 즈음 80년 광주 민주화운동이 폭동이라는 반역이 논란이다. 역사 속의 스포츠에서, 또 스포츠 속의 역사 속에서 해태 타이거즈와 '목포의 눈물'에서 내가 본 것은 민심이었다. 불과 30여 년 전의 우리 삶이다. 아들 딸, 부모 형제를 잃은 슬픔이 아직도 가시지 않은 분들이 계시는데, 가당찮은 수작이다. 역사 속의 해태 타이거즈는 스포츠가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최상의 가치가 무엇인지 보여준 최고의 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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