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진보당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통합진보당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김민웅 칼럼] 죽음으로 가는 진보정치
통합진보당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진보정치의 절망

통합진보당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라고까지 이야기해도 정신을 못 차릴 것 같다. 통합진보당의 당권을 주도하고 있는 세력은 당 전체를 소로 만들고 있고 우리는 그 귀에다 경을 읽고 있는 한심한 스님이 되고 있다. 또는 통합진보당은 말이 되고 있고 우리는 동쪽에서 부는 바람의 처지다. 말은 대중이라는 바람을 타고 달리지 않고 바람과 마주해서 달리고 있다. 그것도 어디 누가 이기나 보자 하는 식의 태도로 말이다.

어이없게도, 본질적으로 이길 수 없는 싸움을 시작했다. 이길 수 있다고 착각한 채 수렁에 스스로 걸어 들어가고 있는 세력이 평소에 "대중적 진보정당"으로서의 외연확대를 강조했다는 사실은 비애스럽다. 자살 내지 자폭의 상태로 질주하고 있는 통합진보당의 모습은 이 나라 진보정치의 절망을 보여주고 있다. 그 절망의 끝에는 민중들의 배신감과 분노가 존재한다.

정당이 대중과의 관계 설정에 실패하면 끝이다. 정당으로서의 존립 이유와 가치는 이로써 사라진다. 통합진보당은 지금 그런 위기에 놓여 있다. 더욱 큰 문제는 이런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정치적 맹목(盲目)이다. 그건 그 정당이 이끌어갈 정치의 파산이며, 신뢰의 붕괴이자 혐오의 증폭과 지지기반의 소멸로 가는 길이다. 지금 그렇게 되어가 고 있는 양상 아닌가? 진보정치의 가치와 실천이 절실한 때에 이는 매우 위험한 사태다,

정치적 결단이 우선이다

선거 과정에서 논란이 생길 만한 여지가 발생했다는 것 자체로서 이미 그 선거는 정당성을 잃는다. 자세히 따져보면 오해의 가능성도 있을 수 있고, 억울한 당사자도 생겨날 것이다. 그러나 그 오해를 풀기에는 이미 사태는 겉잡기 어렵게 되어 버렸고, 무언가 신속하고 명쾌한 매듭을 짓고 그 다음 수순을 밟지 않으면 모두가 죽는 상황이다. 그래서 이때 필요한 것이 정치적 결단이다.

정치적 결단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누군가를 정치적 희생양으로 삼고 모두가 사는 방법을 취하라는 것이 아니다. 자세한 사정을 알지 못하는 여론의 일방적 압박에 굴복하라는 것도 아니다. 진보정당으로서 뭐라고 변명해도 면구스럽기 짝이 없는 상황이 만들어진 것에 대한 무한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이라는 것이다. 그것만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위기상황에서 진보당을 구출하고 진보정치의 새로운 내일을 기약할 수 있는 출발점이다.

당연히, 이 문제의 해법을 찾아가는 과정이 마녀사냥식의 여론몰이가 되는 것은 옳지 않다. 선거 관리에 대한 조사가 얼마나 정확하고 치밀했는지는 섬세한 평가가 필요하다. 조사가 절대적 권위를 가질 수 있는지는 따져봐야 할 일이고, 뿐만 아니라 조사과정에서 부당한 명예훼손이 있었다면 이 역시 수정하고 명예 회복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은 시간이 얼마가 걸려도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사실 관계에서 정밀하지 못한 결과를 놓고 사태의 방향을 이끌고 가는 것은 기본에서 잘못된 것이다. 그런 점에서 통합진보당의 당권파가 주장하고 있는 것을 배제할 일은 아니다. 여론의 대세가 비난 쪽으로 기울어졌다고 해서 억울한 사람이 있는데도 당 전체의 운명을 생각해서 희생해달라고 하는 것도 진보정치의 원칙과 벗어난다. 진보정치는 그런 억울함, 그런 희생이 없도록 하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니 말이다.
ⓒ뉴시스

억울한 희생, 부당한 명예 훼손 당연히 정리되어야

그러나 이 문제는 선거라는, 정치의 가장 기본적 정치를 책임 있게 관리하지 못한 것 자체로 그 해법의 기준을 정해야 한다. 의도적 부정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해도, 선거 결과에 대해 전폭적인 신뢰를 부여하기 어려운 상황이 조성되었고 그로 말미암아 억울한 탈락자가 생겨났다고 받아들이는 이들이 있는 한, 이 문제는 단호하게 책임지는 결단을 내리지 않고 그냥 지나갈 수 없게 되어 있다.

그런데도 이를 정파 간의 음모나 의도적 공격 내지는 당원들의 명예 문제로만 파악해 들어가게 된다면 그것은 대단히 어리석은 일이다. 정당은 정치적 화법이 따로 있다. 법정의 논리와는 다른 울림을 갖지 못하면 대중의 바다에서 표류하는 정치조직이 되고 만다.

그 정치적 화법이란, 당원의 명예 이전에, 정파적 이해관계 이전에, 내부의 여러 복잡한 사정에 대한 분석과 해명 이전에, 국민대중 앞에 겸허하고 뼈저린 마음으로 사죄하고 완전히 새롭게 거듭나겠다는 결의에 찬 환골탈태(換骨奪胎)의 피눈물을 쏟는 일이다. 거기에서 감동이 나오고, 거기에서 새로운 동력이 생겨나는 것이다.

이런 태도가 당내 일부세력이 우려하는 것과 같이 선거과정의 부정이 있었다고 인정하고 마는 것이라고 여기지 말라. 일단 이와 같은 자세를 취하는 순간, 대중은 관대함과 성찰의 능력을 가지고 이 문제를 합리적으로 정리할 수 있는 기회와 조건을 갖게 된다. 지금의 모습은 그런 대중의 태도를 가로막고 있을 뿐이다.

이정희 공동대표, 당이 죽으면 당원의 명예고 뭐고 없다.

이정희 공동대표도 넓고 길게 생각해야 한다. 당원의 명예가 아무리 중요해도 당이 무너지면 당원의 명예는 되찾을 길 없다.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는 실망만 가중시키고, 다 죽는 길로 끌고 가는 것 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공청회는 나중에 해도 된다. 또는 정파 간 균형 잡힌 구성을 가진 조사위원회를 만들어 정리해나가도 늦지 않다. 억울한 희생자가 있다면, 그 억울함을 풀어주는 것이 옳다.

그런데 지금은 그걸 할 때가 아니다. 이런 기막힌 소란이 일어나고 수습능력이 제로인 상태 자체에 대한 부끄러움과 사죄가 마땅히 먼저 아닌가?

논란의 핵심이 서게 된 이석기의 경우도 "당원 총투표"라는 방식으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자고 하는 모양인데 이 역시 대중의 눈으로 보자면 꼼수에 지나지 않는다. 이 시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말한 "당원의 권리와 명예"가 아니라, 진보정치가 국민대중 속에서 살아나갈 길이 있는가 없는가에 대한 판단이다. 당원의 권리와 명예도 그 기초 위에 서 있다.

통합진보당의 존재는 어렵게 이뤄낸 진보통합의 열매였으며, 대중의 바다로 나가기 위한 노력의 산물이었다. 그런데 제대로 된 출범조차 해보지 못한 상태에서 이렇게 파국을 스스로 만들어 내면 되겠는가? 대중의 바다는커녕, 좌초하게 생기지 않은가?

진보정당의 미래를 위해 평생을 던졌다면, 바로 그 자세로 이번 위기에 자신을 던지는 모습을 보고 싶다. 만고의 진리다. "생즉사 사즉생(生卽死 死卽生)"이다. 사는 길처럼 보이는 것이 죽는 길이고, 죽는 길처럼 보이는 것이 사는 길이다.

통합진보당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고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충격 좀 받으라고 한 소리다. 그런다고 충격을 받을지 어쩔지는 모르겠지만. 부디 통합진보당 있는 세상이 살 맛 난다, 는 소리 나오게 해주면 안 되겠는가?

진보정치를 위해 전력투구하면서 살아온 이들이 이번 사태로 도매금으로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 되고, 진보적 의식을 가진 대중들마저도 통합진보당 쪽으로는 고개도 돌리고 싶어 하지 않게 만들고 싶다면 계속 그렇게 하고, 아니라면 지금이라도 속히 대중과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일에 힘을 쏟을 일이다.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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