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는 왜 민주정부 10년에 만개했나?
신자유주의는 왜 민주정부 10년에 만개했나?
[김운회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아서']<13> 한국에 몰아친 신자유주의 광풍
2012.10.11 10:14:00
신자유주의는 왜 민주정부 10년에 만개했나?
제 5 장. 한국에 몰아친 신자유주의 광풍

□ 신자유주의(Neo-Liberalism)의 이름으로

1990년대 후반에는 신자유주의의 바람이 거세게 불었습니다. 지금도 그 바람이 계속 불고 있습니다. 주로 미국에서부터 거세게 불어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도처에 '시장원리'라는 말이 횡행하게 되었습니다. 즉 경제를 비롯한 사회 전반에 대해서 정부가 인위적으로 규제를 하지 말고 시장(market)의 자율적인 기능에 맡겨두라는 것입니다.

신자유주의의 기원은 고전적 의미의 자유주의(Liberalism)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자유주의란 자본주의가 초기에 발생할 때 신흥 부르조아(bourgeois) 계급이 국가의 산업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최대한 자유를 주어야 한다는 사상입니다. 그래서 정부는 그저 도둑이나 잡고 기업가들이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는 토대만 만들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고전적 자유주의는 경제 대공황을 주기적으로 초래하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인류는 가장 참담한 세계 대전(World War)을 두 번씩이나 치르게 되었습니다. 이 문제의 해결방식으로 대두된 것이 정부가 경제문제에 직접 개입하여 때로는 경제를 부양시키기도 하고 때로는 이자율을 높여 과열된 경기를 막는 등 경제를 안정화 시키고 실업율도 일정한 정도로 유지하는 정책을 쓰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케인즈 혁명(Keynsian Revolution)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케인즈 혁명으로 정부가 지나치게 간섭하고 산업을 선도하다보니 적지 않은 부작용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정부의 규제나 간섭을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진 것입니다.

신자유주의는 고전주의와 마찬가지로 한 두 사람의 사상가에 의해서 어느 시점에 일시적으로 대두한 것이 아니라 국가에 의한 설계주의(Constructionism)로 인한 정부의 비대화와 그에 따른 규제주의나 간섭주의를 배격하는 사상적 조류라고 하겠습니다. 신자유주의는 하이에크(Friedrich Hayek·1899∼1992)나 프리드만((Milton Friedman·1912∼2006)에 의해 주창되어 오늘날 크게 풍미하게 된 것이죠. 간단히 말하면 신자유주의는 정부의 지나친 개입과 간섭으로부터 시장을 보호하여 시장이 가진 고유의 자율적인 보정기능(autonomous adjustment mechanism of market)을 회복시켜보자는 생각입니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연구는 오히려 정치학(Politics)에서 많이 다루어온 주제입니다. 정치학에서는 자유주의 - 현실주의 - 신현실주의 - 신자유주의 등의 개념으로 정치화(精緻化)되어 있는데 제가 보기엔 별로 의미가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다만 미국과 서유럽의 시각에서 세계를 보는 방법론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세계를 전체적으로 보는 통합적 시각이 부족하다는 얘깁니다. 쉽게 말해서 '그들만의 리그' 라는 것이죠.

(1) 신자유주의(Neo-Liberalism)

신자유주의를 보기 위해 일단은 고전적 의미의 자유주의와 신자유주의의 차이를 알고 넘어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 부분은 정치학에서 많이 논의된 것이니 먼저 정치학에서 말하는 내용을 간단히 봅시다.

일반적으로 자유주의를 자유주의적 이상주의(liberal idealism)라고도 합니다. 자유주의의 핵심적 가정은 성선설(性善說)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전쟁도 불가피한 것이 아니고 ① 평화를 위한 '초국가적 제도의 창출', ② 전쟁에 대한 법적 통제 ③ 무기제거(군비축소, 군비제한) 등을 통해서 막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한 사상가는 낭만과 역설의 사상가 루소(Rousseau·1712~1778)였습니다. 이 생각들은 후에 철학자 칸트(Immanuel Kant·1724~ 1804), 미국의 대통령 윌슨(Woodrow Wilson·1856∼1924) 등에 의해 계승됩니다.

▲ 자유주의 3인방. 왼쪽부터 칸트, 룻소, 윌슨

이에 대하여 현실주의(realism)는 성악설(性惡說)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즉 "인간본성은 사악하다. 따라서 국제정치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다(every man against every man)"라는 것이고, 국가의 우선적 의무는 '국가이익'을 증진하는 것입니다. 마키아벨리(Machiavelli, 1469~1527)의 <군주론(The Prince)>이 대표적인 저술로 볼 수 있습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는 여우의 간교함과 사자의 용맹을 동시에 가져야 된다고 역설합니다. <군주론>은 현실주의 철학의 주춧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실주의의 대표적인 이론가들로서는 베버(Max Weber, 1864~1920), 카아(E. H. Carr)(1) 모겐소(H. Morgenthau), 케넌(George F. Kennan, 1904∼2005) 등을 들 수 있습니다. 특히 케넌은 '미국외교의 기초자'로 유명한 사람입니다. 불가피한 일이었기도 했지만 냉전(Cold War)을 부채질 한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 마키아벨리와 조지 케넌

정치학에서는 이와 같이 자유주의와 현실주의가 오랫동안 대립해왔습니다. 시기적으로 보면 자유주의(Liberal idealism) - 현실주의(Realism) - 신현실주의·신자유주의 등의 형태로 대립 발전 해왔다고 보면 됩니다. 즉 초기 자본주의 하에서는 자유주의가 번성하다가 공산주의가 강력히 대두하면서 현실주의가 세상을 지배하더니 이제 다시 신자유주의와 신현실주의가 싸우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신자유주의란 고전적 의미의 자유주의에 기반을 하되, 자유주의 이론의 일부를 지양(止揚)하고 현실주의의 가정을 대폭 수용한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즉 신자유주의는 국가의 역할의 중요성을 인정하는데 이것은 기존의 자유주의와는 많이 다릅니다. 자유주의의 입장에서 국가라는 것은 강력해지면 비합리성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최소한의 정부만 유지되어야 한다는 입장이지요. 신자유주의는 현실주의와 같이 국가는 통합된 합리적인 행위자로 봅니다.

신자유주의는 상호 이해관계(mutual interest)가 있거나 제도화의 정도에 따라서 국가들은 얼마든지 상호협력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따라서 신자유주의에서는 국제제도(international institution)가 국가의 행동에 중요한 영향을 줍니다. 이 점은 이전의 자유주의와는 확실히 다릅니다. 따라서 신자유주의에서는 국가의 역할이나 보다 합리적인 상호협력은 중요한 것이지만 가능한 범위 내에서 많은 자율적인 기능을 줌으로써 세계의 협력과 상호발전을 유도해낼 수 있다는 개념입니다.

이에 비하여 신현실주의는 1960년대 후반에서1970년대 초에 나타난 것으로 국제 경제현상의 변화에 영향을 많이 받은 것입니다. 정치란 경제를 벗어나서 존재할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기도 합니다. 이전의 현실주의란 정치가 경제를 결정한다는 생각에 기반을 하고 있는 점과는 많이 다르죠. 무정부상태인 국제체제에서 개별국가들은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설령 일부의 자국의 이익을 포기하더라도 보다 더 큰 범주에서 자신을 보호하기위한 국제적 안정 수단의 확보에 총력을 기울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작정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 상태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전체적으로 복잡한 듯하기도 하고 큰 차이가 느껴지지 않은 듯도 하니, 이것을 알기 쉽게 표로 정리하여 좀 더 이해해 보도록 합시다.


▲ 자유주의·현실주의 비교

이러한 자유주의를 경제적으로 지원하는 이론이 바로 고전적 경제학의 자유주의이고 현실주의가 케인즈 이론이라고 보면 크게 틀리지는 않습니다. 다소 도식적인 말이기도 하지만 고전경제학의 원리는 주로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에 의한 수요 공급의 원칙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이에 비하여 현실주의에 바로 상응하는 경제정책은 분명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정부의 개입과 간섭을 유난히 강조한 케인즈의 경제정책은 정치학에서 말하는 현실주의와 관계가 깊다고 보면 됩니다. 그러니까 1980년대 중반 신자유주의가 번성할 때까지 현실주의가 미국과 서유럽의 정치를 지배할 때 케인즈 추종자들이 역시 경제를 지배했던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정치는 현실주의(political realism)요 경제는 케인즈 이론이라고 해야 하겠죠.

신자유주의에 대해서는 정치학을 비롯하여 많은 분야의 사람들이 논의를 했기 때문에 저는 더 이상 상세히 거론하지는 않겠습니다. 이제부터는 다만 패러다임과 관련한 부분들을 중심으로 검토하도록 하겠습니다.

(2) 미국과 신자유주의

신자유주의의 바람은 미국에서 거세게 불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미국은 앞으로 말씀드릴 인터넷(Internet)과 신자유주의로 세계의 헤게모니를 다시 장악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미국은 1980년대 심각한 위기에 봉착합니다.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의 원인이 있습니다. 1960년대~1970년대 미국은 베트남전쟁과 위대한 사회건설 프로젝트(Great Society Initiative)를 수행하면서 엄청난 위기를 맞게 됩니다.

프랑스와 미국의 도발로 시작된 베트남 전쟁(Vietnam War)은 미국으로 하여금 돌이킬 수 없는 실패를 맞보게 합니다. 세계적으로 도덕적인 비난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국내적으로도 많은 반발에 부딪힙니다. 그보다 심각한 것은 전쟁이 장기화됨에 따라서 많은 산업들이 군수산업화 되었다는 것이지요. 사실 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군수산업은 편리합니다. 마케팅(marketing)을 할 필요도 없이 생산하면 이내 정부가 소비해주고 돈 받을 걱정도 없으니 마치 '땅 짚고 헤엄치기'하는 식이기 때문이죠. 그 과정에서 일본, 독일, 한국 등의 민수산업(자동차, 가전제품, 기계 등)들이 미국 시장을 유린하기 시작합니다. 이 과정에서 당연하게도 미국의 무역적자(trade deficit)가 심화됩니다. 아이러니하지만 한국 경제의 성장은 미국의 군수산업의 팽창과 긴밀한 관련이 있습니다. 한국 경제가 도약하는 시기도 바로 이 시기입니다. 이 시기 즉 197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까지 미국을 방문한 사람들이라면 이구동성으로 미국의 각 마트(mart)에 한국 제품들이 도처에 쌓여있더라는 말을 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중국 제품을 보듯이 말입니다. 톰행크스(Tom Hanks)가 모영화에서 "에이 이것도 역시 한국제(made in Korea)야?"라며 짜증을 내던 것도 바로 이 시기입니다.(아래 '미니해설' 참고)

베트남 전쟁 뿐만 아니라 '위대한 사회 건설'이라는 국가적 복지 프로젝트는 엄청난 재정적자(financial deficit)를 초래합니다. 미국은 베트남 전쟁과 위대한 사회건설 프로젝트를 완수하기 위해 많은 돈을 씁니다. 어느 나라나 실물생산의 기반을 무시한 채 복지(welfare)를 남발해서 멀쩡한 나라는 없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자국의 화폐인 달러가 기축통화(key currency : 세계통화)인 점을 이용하여 통화를 남발하였고 그것은 결국 금 태환 정지선언(1971.8)을 초래합니다. 이로서 세계통화로서의 달러의 이미지는 치명적으로 손상을 입게 됩니다.

▲ '위대한 사호' 건설의 설계자 린든 존슨 대통령
1980년대의 미국은 한마디로 암울하였습니다. 미국은 무역적자와 재정적자에 시달리게 되는데 이를 일반적으로 쌍둥이 적자(twin deficits)라고 부릅니다. 이 쌍둥이 적자로 말미암아 미국의 미래는 기약하기 힘든 상태가 된 것이죠. 뿐만 아니라 베트남 전쟁으로 미국은 사상 처음 참담한 패전(敗戰)을 경험하였고 많은 젊은이들이 죽은 것은 물론이고 베트남전쟁 자체의 부도덕성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여기에 베트남 전쟁을 종식시킨 닉슨(Nixon) 대통령의 워터게이트사건(Watergate Affair·1972)으로 미국의 정치권은 도덕성의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그래서 미국을 살리기 위해 많은 연구가 이루어집니다. 아이러니한 말이지만 산업계에서도 미국을 살리기 위한 경영기법에 대한 광범위한 연구가 수행되어 경영학 이론의 황금기가 됩니다. 그러니까 어떤 이론이 범람하는 것은 그 분야의 문제가 그만큼 심각하다는 것이죠. 오늘날 미래사회의 패러다임에 대한 책들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는 것도 다 미래 패러다임을 종잡을 수가 없다는 말이 되겠지요.

이런 암울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미국이 신자유주의에 집착한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동물원을 생각해보면 답이 나오죠. 동물원의 우리(cage)를 모두 없앤다고 생각해봅시다. 그러면 이를 통해서 가장 이익을 보는 것은 사자나 호랑이들입니다. 이들은 먹이사슬에서 가장 상위의 포식자(predator)들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사자나 호랑이가 모든 동물을 다 잡아먹을 수는 없겠지만 필요에 따라서 골라서 잡아먹을 수도 있기 때문에 자유로운 환경이라는 것은 강자들에게는 더할 나위없는 환경이 됩니다.

신자유주의의 가장 기본이 되는 이념은 '자율화'와 '개방화', '세계화'이지요. 문제는 약소국이나 저개발 국가들입니다. 비유를 하자면 동물원의 사슴이나 토끼, 오리들입니다. 이들은 오직 사자나 호랑이의 먹이 구실밖에 할 것이 없습니다.

신자유주의를 표방하는 국가들은 국민경제나 민족주의를 구시대적인 발상과 사고라고 공격하고 '세계화(Globalization)'를 하는 것만이 세련된 현대 문명을 향유하는 길임을 역설합니다. 이에 대해 정신없는 이론가들은 학문의 이름으로 끊임없이 아부하고 봉사해온 것이고요. 때로는 더 나서서 이를 지지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미국을 위시한 서유럽의 선진 자본주의의 번영을 위해 왜 세계의 다른 모든 나라들이 봉사해야 하는 지가 의심스럽습니다. 미국과 서유럽의 선진자본주의를 따라가서 제대로 성공한 케이스는 한국(Korea), 타이완(臺灣) 정도에 불과한데 말입니다. 사회주의의 몰락 이후에 일부 선진국들과 한국 등 소수의 나라들을 제외한 어느 나라도 이 같은 먹이사슬의 구조를 벗어날 수는 없는 듯합니다.

(3) 신자유주의는 패러다임인가?

신자유주의는 물론 패러다임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지 않고서야 이 긴 세월동안 경제학자나 정치학자들이 머리를 쥐어짜고 싸울 수가 없었겠죠. 이것은 마치 고대 동양사회에서 오래 동안 지속된 성선설·성악설 논쟁을 보는 듯합니다.

서유럽과 미국인들은 스스로 세상의 중심이라고 보고 논의를 전개합니다. 즉 세상의 중심을 차지하고 유지하기 위해 투쟁하는 주체는 미국·서유럽·일본 - 소비에트 러시아(소련·Soviet Russia)였습니다. 여기에는 다른 나라들의 존재는 없습니다. 쉽게 말해서 미국과 유럽의 백인 사회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경연장(arena)에 다른 나라들은 들러리(bridesmaid)를 서는 형태에 불과합니다. 현실주의면 어떻고 자유주의면 어떻습니까?

궁극적으로 미국과 소비에트러시아(구소련)는 실질적으로는 한 번도 정치적 현실주의(realism)를 포기한 적이 없으며 국제적으로는 한 번도 자유주의적 이상을 내세우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외부적으로는 무슨 신자유주의니 신현실주의니 하면서 심각한 대립과 투쟁을 하는 듯이 보이려고 무척이나 노력하고 있으니 세계가 이 지경이 된 것입니다.

미국은 베트남 전쟁 때는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서 참전했고 이라크 전쟁은 핵 확산의 주범이자 희대의 독재자(후세인)를 처단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어느 구석에도 미국의 석유 수송로나 석유자원의 안정적 확보에 대한 이야기는 없지요. 그러나 미국은 철저한 자국의 이익을 위해 참전한 것을 모를 사람도 없습니다. 소비에트 러시아(구소련)도 마찬가지입니다. 소비에트러시아의 동유럽의 침공(1953~1968)이나 아프간 침공(1979)도 베트남 전쟁과 한 치의 오차도 없습니다.

그래서 가만히 보면 이들 백인 학자들이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들에게는 서유럽과 미국, 러시아, 일본, 호주 등을 제외한 다른 국가들은 별 다른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합니다. 나머지 나라들은 이들의 번영을 위해 존재하거나 자원의 창고(warehouse)가 되거나 시장(market)의 기능만 하면 됩니다. 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운 좋게 잘 살게 되면 그것은 이들의 덕분이지요.

이들이 하는 정치학이나 경제학·경영학을 바라보면서 가장 답답한 것이 진리탐구에 대한 열정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저 서유럽과 미국의 백인 사회에 안주하여 어떻게 하면 이 백인 지배를 지속시킬 수 있는가에만 몰두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자본주의라는 거대 패러다임의 입장에서 본다면 자유주의나 현실주의는 동전의 양면에 불과한 것이지 패러다임의 논쟁으로는 볼 수가 없습니다. 마치 탁구공이 네트(net)를 넘어가면 또 다른 방향에서 응수하는 것과 같은 것이지 탁구대나 게임의 법칙이 바뀐 것은 아니지요.

이것은 마치 세계 경제를 논한다고 하면서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의 차이를 논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공화당이나 민주당은 보기에 서로 원수처럼 으르렁거리지요? 그러나 미국의 공화당이나 민주당은 월라스(George Wallace)의 지적처럼 한 푼(a dime)의 차이도 없는 정당입니다. 그것이 아메리카니즘(Americanism)의 본질이기도 합니다.(2)

이들은 세계평화란 거창한 구호를 내세우면서 서로 진리를 찾아서 토론하는 듯 보이지만 그 구체적인 내용을 보면, 오직 유럽과 일본 등 자본주의의 중심부의 테두리 안에서 자기들의 이해만을 위한 헛된 학문을 개발시킨데 불과합니다. 학문이라는 것은 그래서 진리를 찾고자 하는 열망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열망은 없이 오직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으니 잘못된 것이지요. 그러다 보니 전체 이데올로기의 견지에서 보면 별로 차이도 없는 이론들의 프로퍼겐다(propaganda)에 너무 많은 돈과 종이와 시간을 낭비한 듯합니다. 한마디로 통합적 사고가 부족한 것이지요.

분명한 것은 저개발 국가들의 미래는 계속 암울하다는 것입니다. 현재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테러(terror)나 비행들도 다 따지고 보면 경제적 이해(economic understanding)의 충돌입니다. 만약 경제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면 팔레스타인(Palestine) 문제는 애초에 없었을 것입니다. 정치적 압박은 결국 상대방에게 경제적 희생을 강요하게 됩니다. 이에 대한 반발이 테러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지 테러 자체를 즐기는 사람은 세상에 없습니다. 실제의 대부분 무슬림(Muslim)들은 지나치게 종교 편향적인 요소는 있지만 상당히 평화주의적입니다.

라틴아메리카의 경우를 보면 이 점 더욱 분명해집니다. 신자유주의니 현실주의니 하는 것들은 모두 중남미에는 해로운 정책들입니다. 라틴아메리카 대부분의 경제구조는 열악한 농업 플란테이션(plantation)과 왜곡된 산업구조에 기반하고 있는데 신자유주의를 한들 (신)현실주의를 한들 그들의 경제가 나아질 리 만무합니다. 왜냐하면 농산물의 가격은 공산품 가격에 비하여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그나마도 토지소유가 극소수에 국한되어있기 때문에 대다수 민중들의 생활이라는 것은 악화될 수밖에 없지요. 왜곡된 산업구조 하에서는 실업이 만연하고 이들 상품들의 부가가치 생산성이 낮아서 교역조건은 매우 악화되어있습니다.

이상한 말이기도 하지만 이들 지역은 천연자원이 풍부한 곳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나라들은 외채와 금융위기, 인플레이션(inflation), 플란테이션(plantation)과 빈곤(poverty), 불평등(inequality) 등으로 얼룩진 세계의 그늘 속에 있습니다. 라틴아메리카 경제는 1차산품의 수출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이미 앞에서 지적했던 궁핍화 성장(immiserizing growth)과 종속이론(Dependency Theory)의 대표적인 예가 되는 나라들입니다. 물론 천연자원이 많다는 것은 큰 행운일 수도 있습니다만 이들 나라들은 에두아르도 갈레아노(Galeano)의 자조(自嘲)의 말처럼 "대지의 풍부한 자원 때문에 가난해진 나라들"입니다. 참으로 아이러니지요. 그러면서도 2000년대에 라틴아메리카에서 유일하게 1차 산품 수출 의존에서 벗어난 멕시코(Mexico)가 오히려 다른 나라들보다도 더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그 이유는 멕시코 경제의 과도한 미국 의존 때문입니다.(3) 이들 나라들은 한국이 농지개혁을 할 때 제대로 농지개혁을 하지 못했고, 수출드라이브(export drive) 정책에 나설 때 수입 대체(import substitution) 산업화를 선택하고 말았습니다. 사회적으로도 인종별, 계층별 격차가 극심한 환경으로 말미암아서 여러 기회들을 놓친 상태입니다. 라틴아메리카는 빈부격차가 세계에서 제일로 큰 지역 중 하나일 뿐만 아니라 문제들이 산더미같이 쌓여 항상 개혁이 제대로 되지 못하는 환경입니다.(4) 좀 더 구체적으로 지니계수(Gini coefficient)로 보면 라틴아메리카 지역은 0.5가 초과한 지역이고 하루 1달러(정확히는 1.25달러) 미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20%에 육박하는 지역으로 사회혁명의 위험지대이자 보다 근본적인 개혁 또는 사회혁명이 필요한 지역이기도 합니다.(아래 세계 빈곤 지도 참조)

라틴아메리카는 미국의 앞마당이기도 하기 때문에 미국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고 있습니다. 그 동안 미국의 정책은 한국과 일본, 타이완에 대해서는 매우 관대(寬大)했지만, 자기의 앞마당인 라틴아메리카에는 각박(刻薄)했습니다. 1990년대에 대부분의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은 IMF의 처방에 따라 개방, 긴축, 민영화, 금융자유화 등의 정책을 비교적 충실히 수행했지만 주요 국가들은 외환위기라는 늪에 차례로 빠져들고 말았습니다.(5) 라틴아메리카를 포함한 세계 수많은 나라들에게 갈 길은 너무 멀어 보입니다. 중앙 아시아, 남부 아시아도 마찬가지고 아프리카는 더욱 심각합니다. 특히 아프리카는 통계도 제대로 없을 정도로 사회적 시스템이 구축되고 있지 못합니다.

▲ 세계 빈곤 지도

근대 경제학(자본주의 경제학)에서 말하는 비교우위(comparative advantage) 이론도 라틴아메리카나 아프리카의 경우에는 농업·광공업 등에 특화(specialization)하기를 강요하는데, 이를 받아들이게 되면 결국 농산물 중심의 경제구조로 가서 미래를 기약하기가 힘든 상황이 됩니다.

일찌기 독일의 프리드리히 리스트(Friedrich List·1789~1846)는 농업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혹평하면서 후진국들은 서둘러 제조업을 성장시켜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즉 리스트는 자신의 주저인 <정치경제의 국민적 체계>(Das nationale System der politischen Ökonomie·1841)에서 농업이란 ① 생산과정에서 동일한 행위를 반복해서 배우는 것이 없으며 따라서 농업은 사람을 태만하게 한다는 점 ② 농업은 장래성이 없다는 점 등을 지적하였습니다. 이에 비하여 공업은 생산과정에서 배우는 것(현대 개념의 Learning effect)이 많으며, 인간 및 사회를 기술적 조직적으로 만들고 나아가 인간을 문화적으로 진보시키는 것이라고 그는 주장하였습니다. 따라서 리스트는 당시의 독일 제품이 영국에 뒤지더라도 그것은 장기적으로 충분히 발전시킬 수 있기 때문에 그 산업들은 보호해야만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것이 저 유명한 유치산업보호론(Protection of infant industry)의 토대였습니다.

라틴아메리카는 극심한 빈부격차가 있고 국민 대다수를 차지하는 인디오(Indio)들에게 있어서는 교육이나 제대로 된 취업기회도 거의 없기 때문에 악순환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농민들을 공업 쪽으로 돌리면 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도 들겠지만 그것은 매우 힘듭니다. 평생 농사만 지어온 사람들이 다시 새로운 직업교육을 받아서 다른 직업으로 이전하기도 어렵고, 설령 이들이 공장에 취직을 하고 싶어도 공장이 제대로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1990년대 이후 풍미하고 있는 신자유주의는 분배구조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습니다. 빈익빈 부익부가 심화되어 중산층이 약화되고 있는 것이지요. 물론 한국의 경우는 라틴 아메리카나 아프리카의 경우와는 많이 다릅니다. 그저 얌전히 세상 돌아가는 추이(trend)를 살피면서 틈새시장(Niche market)이나 또는 IT, 조선, 자동차 등에서 산업적 이익을 얻으면 되겠지요.

그런데 한국은 특이하게도 이른 바 진보를 표방했던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신자유주의가 가장 활개를 쳤습니다. 그래서 상당수의 한국 사람들이 신자유주의가 무슨 마르크스주의와 관련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본대로 신자유주의는 이른바 진보와는 가장 거리가 먼 이데올로기입니다. 그리고 이들이 가장 경멸했던 과거의 정권들은 오히려 철저히 케인즈 경제정책(Keynsian Economic Policy)으로 경제를 운용하였으며, 이 케인즈의 경제정책은 오히려 진보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습니다. 극단적인 케인지안(Keynsian)이 바로 공산주의(Communism : 사회주의의 마지막 단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케인즈의 이론이 처음 등장했을 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매우 당황하였습니다. 실제로 정부가 경제에 개입한다거나 계획적으로 경제를 운용하는 자체가 사회주의적 발상이기 때문에 자본가들은 알레르기(allergy) 반응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요컨대 당시에는 '정부개입' 또는 '계획경제'라는 말 자체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금기어(禁忌語)였기 때문입니다. 해서는 안 될 말이었죠.

케인즈 경제정책이 가장 성공적으로 수행되었던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 (Franklin Delano Roosevelt·1882~1945) 치하에서는 많은 사회주의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정부에 들어갔습니다. 그것이 결국은 매카시즘(McCarthyism), 즉 1950년부터 시작되어 미국을 휩쓴 일련의 반(反)공산주의 광풍(狂風)으로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당시 공화당 상원의원 매카시(Joseph Raymond McCarthy·1908∼1957)는 1950년 2월 "국무성 안에는 205명의 공산주의자가 있다"고 폭탄 발언을 하면서 대대적인 사회주의자 색출 작업이 시작되었는데 이것은 당시 미국민들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미국민들은 강력한 소비에트 러시아의 동유럽 진출, 미국의 광대한 시장이던 중국의 상실[중국 공산화(1949)], 연이어 발생한 한국 전쟁(1950) 등 공산 세력의 급격한 팽창에 크게 위협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이 당시에는 이미 세상을 떠난 루즈벨트(Roosevelt)는 물론 트루먼 대통령(Harry Truman·1884~1972), 덜레스(John Dulles·1888∼1959) 국무장관 등도 매카시즘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수많은 시인, 작가, 배우, 영화감독 등 문화계 인물들도 사회로부터 격리되었으며 이로 인하여 이후 미국의 대외 정책이 필요 이상으로 경색된 반공노선으로 일관하게 된 것입니다.

(4) 한국에 몰아친 신자유주의 광풍

한국의 신자유주의는 이데올로기적인 혼동이 빚어낸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신자유주의는 진보의 가장 큰 적(enemy)인데도 불구하고 김대중 - 노무현 정부 당시에 왜 신자유주의자들이 활개를 쳤는지를 면밀히 검토하여 미래의 거울로 삼아야 합니다. 아무리 당시의 시대의 대세(mega trend)가 신자유주의라 해도 진보의 적을 수용한 것은 그 참모들의 경험이 부족했거나 대중 영합을 위한 포퓰리즘(Populism)적 시도였거나, 정운찬 교수(전국무총리)의 지적처럼 신자유주의자들의 꼬임에 빠졌거나 했을 것입니다. 제가 보기엔 어떤 경우라도 이데올로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 분명합니다.

한국의 이른바 신자유주의는 가계 부채를 급증시키고 빈부 격차를 가속화하고 산업적으로도 기업의 양극화를 초래했습니다. 또 철밥통 모피아[교육마피아 : 교육과학기술부 고위 공무원]들의 꼬임에 빠진 것인지 과거의 것이면 무조건 반대해야만 옳다는 식이었는지 '창의성'과 '세계성' '개방성'을 표방하는 신자유주의적 교육 정책을 강력히 시행한 결과 오늘날 절반 이상의 학생들이 중학교 때부터 수학을 포기하고 영어를 포기하게 되고 말았습니다.['창의성'과 '세계성' '개방성'은 신자유주의의 가장 큰 모토(motto)입니다]. 다른 문제들은 일단 차치하고 한국인들의 생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교육 문제를 한번 집중 거론해 봅시다.

애당초 한국의 교육 개혁의 이념적 토대인 '신자유주의'는 성실한 '갑남을녀(甲男乙女)'의 참된 경쟁의 논리라기보다는 '교목세가(喬木勢家)'들의 유희로 변질될 수밖에 없는 성질의 것입니다. 이상하게도 당시의 집권자들은 '신자유주의'가 '팔라디온'(Palladion : 국가를 지키는 수호상)이라고 너무 확고하게 믿고서 이것을 따르지 않는 것이 '후진화'가 되는 지름길이라고 믿었는 듯합니다.

저는 이 시점에서 그리스 신화의 백미인 '트로이 전쟁(Trojan War)'을 다시 생각합니다.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Paris)가 아름다우나 죄 많은 '헬레네(Helen)'를 국내로 데리고 와 기나긴 전쟁을 치른 후, 그리스군이 의도적으로 남기고 간 '목마(木馬)'를 선물로 착각하여 '팔라디온'의 대용물로 믿고 성중으로 데려와 승리의 환호로 밤새우다가 몰락의 운명을 맞은 전설을 말입니다. 한국은 '트로이'가 그랬던 것처럼 그 '허영'의 너무나 비싼 대가의 전쟁을 지금 치르고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른바 진보를 표방하는 당시 정부들이 신자유주의적 교육 정책을 강력히 시행한 결과 이제는 가난한 사람들이 명문대를 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기보다도 어렵게 되었습니다. 제가 대학을 갔던 유신독재(維新獨裁) 말기에는 오히려 서울대학교를 비롯한 각종 명문대에서 가난한 학생들의 비율이 훨씬 높았습니다. 그 당시에도 이른바 망국과외(亡國課外)가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서울대학교를 들어가려면 당시 돈으로 2억 원 이상의 과외비(課外費)가 들어간다고 했으니 말입니다. 그래도 다수는 지방에서도 삼당사락(三當四落 : 3시간 자면 합격이요 네 시간 자면 떨어진다)의 정신으로 열심히 공부한 학생들이었습니다. 당시에는 누가 얼마나 많이 공부했는가가 화제였습니다(요즘처럼 누가 족집게 선생에게 배웠는가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계층 이동도 비교적 활발하였습니다. 당시 가난했던 친구들이 지금은 대부분 견실한 중산층과 고위층들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가난하면 도저히 공부가 감당이 안 됩니다. 즉 외국에 가서 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하는 영어 연수도 기본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각종 호사(豪奢)스러운 취미나 특기가 입학 요건의 일부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다 보니 계층 간의 괴리감은 회복하기 힘들 정도입니다. 뿐만 아니라 '기러기 아빠'라는 신조어가 등장하고 거의 1십 만 명 이상의 어린 학생들이 순전히 영어 교육만 받으러 해외에 나가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이들이 성공할 확률이 높은 것도 아닙니다. 영어교육 전문가에 따르면 영어공부를 위한 유학은 95%가 실패한다고 합니다(<인터뷰365 김두호> 2008.5.24). 즉 100명 중 성공확률은 4~5명 정도라는 것이죠. 무조건 한국의 아이들을 미국의 교실에 집어넣어 놓으면 잘 할 것이라는 생각 자체가 착각입니다. 특히 영어를 잘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바로 현지인들(미국인, 영국인 등)과 함께 수업을 하게하는 것은 무모함을 넘어서 하나의 고문(拷問)입니다.

이 때문에 헤아릴 수 없는 가정 파탄과 마약 흡입, 성범죄 등 수많은 청소년 비행(juvenile delinquency) 같은 심각한 사회 문제가 발생하고 있고 오로지 영어만을 위해 해외로 나가다보니 영어 실력은 향상되었을지 모르나 특히 국어, 수학, 과학, 사회 등은 도저히 따라가지 못하게 되어 국제미아(國際迷兒)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따라서 잘 사는 집 아이들은 해외에서 중고교를 다니면서도 똑똑한 한국 유학생에게 한국식 과외 지도를 받습니다. 정말 몬도가네(Mondo Cane)가 따로 없군요]

그리고 '열린 대학(open university)', '개방화' 등을 시대정신으로 아무 것이나 하나만 잘해도 대학을 갈 수 있다고 해서 그것이 서민층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 것 같은데 그것도 오산(誤算)입니다. 가령 춤만 잘 추면 대학 갈 수 있다고 합시다. 그렇다고 동네에서 백수(白手)들에게 배운 춤과 한 달에 수백만 원씩 교습비를 주고 전문 안무가(按舞家)들에게 배운 춤이 같겠습니까? 대학 입시에 누가 유리하겠습니까? 여기에 더하여 각종 음성적인 기부 입학과 편법이 결합하기 쉬운 입학사정관제(入學査定官制)로 인하여 이제 명문대는 부자들의 천국이 되어버린 지 오랩니다. 입시에 필요한 사회봉사는 사회적 봉사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입시용으로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이고(학생들이 무얼 먼저 배우겠습니까?), 입시용 자기 소개서도 수십, 수백 만 원에 거래되고 있는 것이 2012년 한국의 교육 현실입니다.

입학사정관제(入學査定官制)는 한국이라는 사회 현실과는 동떨어진 제도로 공정한 경쟁과는 거리가 먼 제도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치마 바람과 과외바람이 거센 한국에서 부와 권력이 결합하면, 수많은 부정과 비리가 횡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박인숙 의원(새누리당)은 "누가 더 많은 돈과 시간을 투입하느냐에 따라 합격이 결정되는 제도"라고 합니다. 입학사정관제는 교사들의 지적과 같이 특목고·고소득층 대도시 자녀 전유물(專有物)이며 고교 교사 10명 중 8명은 입학사정관제 고소득 전문직 자녀를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한국일보>2012.10.3). 이 제도는 노무현 정부에서 시작되어 이명박 정부에서는 더욱 확산되고 말았습니다. 입학사정관제는 5% 미만으로 줄여야할 대표적 제도입니다. 인구가 과밀한 한국에서는 무엇보다도 누구라도 납득할 수 있는 경쟁의 객관성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교육계에 이같이 신자유주의의 광풍(狂風)이 몰아치더니, 한국에서 '개천에서 용(龍)나는 시대'는 영원히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이제 명문대에 가려면, 영어는 외국의 중고등학교에 몇 년은 굴러먹고(아마도 수억 원 이상은 들 것입니다. 이것이 엄청난 국제수지 적자를 초래합니다), 수학은 최고급 족집게 수학강사들에게 최소 6년은 배워야 하는 시대입니다. 국어(언어)도 유치원 시절부터 명문 논술학원에서 최소 10년 이상은 배워야 수능시험 문제를 제대로 풀 수가 있을 정도입니다. 저 같이 외국에 나갈 형편이 안 되고 과외 근처에도 가기 힘들었던 학생들은 지방대학에 가기도 힘든 것이 2012년 한국입니다.

한국의 신자유주의 교육는 참으로 참담한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지방은 피폐할 데로 피폐하고 수도권은 또 다른 병마(病魔)에 시달립니다. 제가 현재 사는 곳은 시골 도시인데 지난 15여년 간 인구가 절반으로 줄었습니다. 한국 인구 이동의 가장 큰 원인 중에 하나가 교육과 관련이 있습니다.(6) 지방 고등교육도 거의 사망 직전에 있습니다. 과거 서울 명문 사립대학 수준으로 평가를 받았던 지방 국립대의 위상이 추락하여 지방의 우수학생들이 대부분 서울로 몰리고 있습니다.

1977년의 경우 부산대학교 상대(商大)의 합격자 예비고사 평균성적(258.5)은 연세대학교 영문과(252.9), 고려대학교 정치외교과(253.3)와 비슷했고, 충남대학교 사회계열(233.9)은 이화여대 문학부(233.7), 연세대학교 중문학부(227.3)보다도 약간 앞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지방 국립대는 서울 지역의 하위 대학들보다 못한 수준입니다. 과거에는 경북대학생(대구)들을 경희대학생(서울)이라고 하면 불같이 화를 내었는데(실제로 제가 직접 본 일입니다) 이제는 그 반대입니다. 2011년 현재 서울의 전체 대학생 27만 명 중 절반인 14만 명이 지역(지방) 출신입니다.(7) 지역으로서는 엄청난 경제적 유출과 손실이 나타납니다. 숙식비를 제외하더라도 연간 등록금을 800만원, 연간 용돈(월30만 원 가정) 360만 원이면, 1인당 1년간 1160만 원, 14만 명이면 1조6천억 원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이 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우수 인재들의 수도권 유출로 인하여 지역을 발전시킬 인재들의 고갈되고 있다는 점이지요.

무엇보다도 이것이 이른바 진보 성향을 가진 정부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참으로 아이러니 합니다. 아마도 그 정부 안에 이데올로기나 패러다임에 대한 공부를 제대로 한 사람들이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교육 문제에 관한한 지금이라도 늦지 않습니다. 수능 시험 수준을 떨어뜨려서 진정으로 교과서 공부를 충실히 하면 풀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현재의 수능 시험은 옆에서 일일이 가르쳐주는 전문가의 도움이 없이는 불가능한 공부입니다. 사교육비를 줄여 서민층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누구라도 쉽게 수능시험에 접근하도록 해야 합니다. 말 그대로 학교에서만 열심히 공부하면 중위권 대학은 들어갈 수 있는 수준으로 출제해야합니다. 현재의 수능 시험은 과거 서울대학교 본고사(本考査)에 나오는 수준의 문제들도 보이는 정도입니다. 제가 시험 칠 당시 채점했던 교수님들이 수재(秀才)들이 모인 서울대학교 입시에서도 수학은 절반이 거의 영점(0)에 가까운 점수를 받았다고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종류의 시험을 6∼70만이나 되는 학생들이 매년 치르고 있고 수백만이 준비하고 있으니 수포자(수학 학습 포기자), 영포자(영어 학습 포기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 수밖에 없지요. 한 언론 기관의 조사에 따르면 서울 지역의 고교 수포자 비율은 60% 이상이라고 하는데(YTN 2011.7.3), 교육 현장의 사람들은 거의 80%에 육박한다고 합니다(지방은 훨씬 심각합니다). 서울대학교 이공계 신입생 20%가 수학 기초 학력이 미달되었다는 조사도 있습니다(<한국대학신문>2012.10.2).

2012년 현재까지의 수능시험은 한국 최고 수준의 일류 대학에 갈 학생들은 전체의 1%도 되지 않는데 그들의 변별력을 위해 유지해왔습니다. 아이러니한 말이지만 이 제도가 보수를 표방하는 이명박 정부에 와서 수정되고 또 수정되어 수준별 수업이 진행되고, 수능시험 난이도가 계속 조정되고 있습니다. 현재 한국의 교육 제도는 마치 모재벌 회장이 "백 년 전에는 수십만, 수백만 명이 왕과 귀족을 먹여 살렸지만 지금은 한 사람의 천재가 수십만, 수백만 명을 먹여 살릴 수 있다"는 논리를 그대로 따르고 있는 듯합니다. 만약 이 같은 논리로 한국의 교육정책이 앞으로도 진행된다면, 기가 막힐 일입니다. 이런 식의 교육은 한 사람의 천재를 위해 수백만의 학생들의 교육을 포기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그 천재 하나가 수백만 사람들이 살 수 있는 생존 기반을 독점할 수도 있다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이 재벌 회장이 예로 들었던 빌게이츠(Bill Gates)의 그 많은 기업적 비행(非行)들은 어떻게 해석해야 합니까?

결론적으로 제가 드리는 말씀은 신자유주의니 신현실주의니 하는 말은 결국은 미국과 서유럽 등의 백인 선진국 사회에서나 해당되는 '말장난'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에 크게 놀아난 것은 바로 한국 지식인 사회입니다.

신자유주의나 신현실주의는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패러다임의 변화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그런데 무슨 자본주의 3.0이니 자본주의 4.0이니 하고 패러다임의 변화인양 큰 소리로 떠들어 댑니다. 그래서 저는 이들이 자기들끼리 무슨 생사를 건 이론 투쟁을 하는 듯이 보이는 것이 이해가 안 된다는 말입니다.

부자들은 자기 문제만 세계의 문제이고 나머지 사람들은 자기의 번영과 행복에 들러리만 서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학문의 이름으로 합리화되고 있으니 문제지요.

그러면 여러분들은 물으실 것입니다.

"당신 생각은 뭐야? 당신은 세상을 분석하고 그에 따른 해결책은 있는 거야?"

그러게 말입니다. 부지런히 분석을 해도,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답이 잘 보이질 않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신자유주의나 신현실주의는 실질적인 세계의 문제와는 동떨어진 담론 수준에 불과하다는 사실입니다.

◆ 미니 해설 : 미국 군수산업과 한국 경제의 약진

미국은 1985년 제2분기를 기점으로 순채무국이 되었다. 이것의 가장 큰 이유는 군비지출과 이를 충당하기 위한 재정적자의 팽창 및 국내저축의 둔화 때문이다. 1980년대 미소의 대결이 격렬했던 당시 군비지출액의 추세는 [표 1]과 같다.
▲ [표1] 1980년대 당시 미국의 군비지출과 재정 적자 / 자료 : 워싱턴 국제경제 연구소

뿐만 아니라 당시 보수 정객인 레이건의 야심작 SDI(전략방위구상 Star Wars)가 실현될 경우 소요경비(5,000억 달러)를 포함하면 1990년대 미국의 군비지출은 1조(兆) 달러를 넘어선다.

군수산업은 다른 산업에 비하여 초과이윤 폭이 크다. 이 초과이윤으로 미국은 군비 지출액 일부를 메워왔다. 그러나 군수산업은 장기적으로 보아 산업과 투자구조를 왜곡시켜 경제전반에 마이너스 효과를 초래한다. 기업들이 이윤 폭이 낮은 데다, 외국상품과의 경쟁이 치열한 소비제품의 국내생산을 포기하려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수산업의 전반적인 황폐화가 초래되고 재정적자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신규 설비투자 대비 군비지출의 비율이 일본은 3.7%, 서독은 18.9%인데 미국은 46%에 이르고 있다. 여기에 노동생산성은 계속 하락하고, 공급능력은 갈수록 약화되어가고([표2], [표3]), 첨단산업들이 군수공업에 집중되어감으로써 산업의 왜곡이 발생했다.

▲ [표2] 1980년대 당시 미국의 노동생산성 비교(1975~80 연평균상승률%) / 자료 : 워싱턴 국제경제 연구소

▲ [표3] 1980년대까지 미국의 공업생산과 상품수출(자본주의진영내의 점유율) / 자료 : 워싱턴 국제경제 연구소

이 기간 중 한국경제의 지표와 비교해보면, 대체로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서 헤어나지 못하던 시기를 기점으로 하여 한국 경제의 성장과 수출의 대미의존도가 매우 긴밀하게 연관되어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표4] 경제성장률(실질GDP 성장률)과 대미수출의존도(%) / 자료 : <연합뉴스>(2011년 12월 2일, 1991년 3월 22일) 및 <아시아투제이>(2011년 12월 2일), 관세청 <무역통계연보(1970)>, http://www.index.go.kr 한국의 주요지표

▲ [표5] 연대별 국내 5대 수출상품 / 자료 : 한국무역협회

특히 수출 상품들이 단순한 1차 산품에서 60년대에서 70년대는 섬유가 집중적으로 수출되었고 80년대 후반기부터는 반도체, 자동차 등으로 이전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동안 미국 군수산업의 팽창은 끊임없이 미국의 영구전쟁정책(Permanent War policy)의 반증으로 비판의 대상이 되어왔다. 즉 미국은 자국 또는 세계 자본주의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전쟁을 하나의 대안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이론적으로 보면, 맬더스(Thomas Robert Malthus·1766~1834)에서 마르크스, 케인즈, 홉슨(John A. Hobson·1858~1940) 등은 이구동성으로 개별 자본가들이 경제성장에 의해 야기된 저축 수준의 증가를 상쇄하기에 충분한 투자기회를 발견할 수 없다고 보았다. 따라서 케인즈는 정부가 개입하여 과잉저축을 차입하고 공공재에 대한 정부 지출로써 완전고용을 달성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것은 소득분배에 의해 저축이 감소하고 유효수요의 창출이 가능하다고 판단한 홉슨의 주장과는 다른 형태로 그 내부적으로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다음의 국민소득(GDP)의 일반 수식으로 점검해 보자.

Y = C + I + G + (X - M) ……………………… [1]
(Y는 국민소득, C 소비지출, I 투자지출, X 수출, M 수입, G 재정지출)

[1]에서 보면, C(소득 분배)의 증가는 소득(Y)의 증가를 달성할 수 있다. 그래서 만약 강제적 또는 다양한 형태로 소득분배가 제대로 이뤄지면 국내 소비가 증대하여 ① 국내시장이 개발되어 굳이 해외시장을 약탈할 필요가 없고 따라서 제국주의적 침략을 강행하지 않아도 되고([1]의 식에서 제국주의는 강제적인 X>M의 형태), ② 유효수요의 창출은 국민들의 복지 증진에도 큰 도움이 되고, ③ 결과적으로 사회 계층 간의 갈등을 완화시키게 된다. 그러나 소득의 재분배는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 사회혁명적인 요소가 있기 때문에 케인즈는 C의 조정(예를 들면, 강제적인 소득분배)에 의한 소득(Y)의 증가를 거부하였다. 케인즈는 인류의 모든 위대한 문명은 불평등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면서 자본주의에서 나타나는 불평등은 불가피한 것으로 보았고 오히려 맬더스(Malthus)의 이론을 찬양하였다.

다음으로 케인즈는 투자(I)가 저축에 의해 고정되어 있으므로 손대기가 어렵고, 강제적인 수출증가(X>M)는 제국주의 정책이므로 이 방식도 거부하였다. 따라서 이제 남은 것은 정부지출(G)의 증가에 의한 소득(Y)의 증가밖에 없다. 그 결과로 강제적인 소득 재분배(즉 C에 대한 정부개입)없이 총수요를 유지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케인즈 혁명의 실제 내용이다. 이로써 자본주의는 자본주의가 가진 만성적인 유효수요의 부족과 대공황의 위험에서 벗어나 긴 세월의 풍요를 누리게 되었다.

그러나 정부 재정지출의 증가는, 경우에 따라서, 자본재 사업의 만성적인 생산과잉을 해결하며 이윤율이 높고 사적 이윤 경쟁이 불필요한 군수산업의 증대로 나타날 수도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즉 정부의 과도한 재정지출과 경제 개입은 때로는 인류를 파멸시키는 영원한 전쟁정책(Permanent War Policy) 지향적 결과를 초래하는 트로이의 목마(Trojan Horse)로 전화될 위험성이 내재해 있기도 하다. 왜냐하면 전쟁만큼 유효수요를 단기적으로 증가시킬 수 있고 패전국으로부터의 경제적 이익을 챙길 수 있는 경우가 없기 때문이다.

참고로 국민소득(GDP : Y)의 구성 요소는 좀 더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도 있다.

Y = ( C + IR ) + INR + G + (X - M)
C : 가계 소비 / 가계의 소비지출, R : 가계 소득
IR : 주거용 투자(가계의 투자지출)
C + IR : 가계 지출
INR : 비주거용 투자



* 필자주석

1. 카아는 자신의 주저인<The Twenty Years' Crisis (1919~1939)>에서 "정치는 화합할 수 없는 유토피아(자유의지론)와 현실(결정론)로 이루어져 있다."고 주장했다. 카아는 국제 영역에서의 정치권력을 '군사력', '경제력', '여론에 대한 지배'로 나누고 경제력은 군사적 수단과 결합될 때 정치력의 수단이 된다고 하였다.

2. 미국의 공화당이나 미국의 민주당은 정당의 이데올로기적인 편향성을 기준으로 본다면 완전히 같은 정당이다. 미국이 이렇게 된 데에는 많은 역사적 이유가 있다. 이 부분은 미국적 예외주의(Exceptionalism), 합의이론(Concensus Theory), 아메리카니즘(Americanism) 등을 찾아보면 된다. 이와 관련한 책으로는 권용립<미국 - 보수적 정치문명의 사상과 역사>(역사비평사 펴냄·1991)가 권할만한 책이다.

3. 멕시코는 1994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이후 경제구조를 1차 산품 수출 위주에서 마킬라도라(Maquiladora, 보세 가공업) 산업 위주로 전환했지만 2001년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으로 멕시코의 마킬라도라 산업이 중국과 경쟁하게 됨에 따라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으로 인한 멕시코 산업의 경쟁력이 상실되었다. 게다가 2008년 미국의 경제위기는 수출의 80% 이상을 미국 시장에 의존하고 있던 멕시코 산업에 결정적인 타격을 가했다. 책 <라틴아메리카 경제의 이해>의 22쪽, 52쪽 참조 (김기현,권기수 지음·한울 펴냄·2011)

4. <The Economist>의 2009년 4월 25일 글 'Latin America's economies>(Curious George)


5. 1994년 멕시코가 외환위기를 겪었으며, 1995년에는 베네수엘라가, 1998년에는 브라질이 외환위기를 맞았다. 그리고 2001년에는 아르헨티나마저도 경제위기에 빠져들었다. 책 <라틴아메리카 경제의 이해>의 170쪽 참조 (김기현,권기수 지음·한울 펴냄·2011)

6. 지역(특히 농어촌)에서 도시로 인구가 이동하는 이유는 도시가 인구를 끌어 들이는 '흡인요인(吸引要因 : pulling factor)'과 농촌이 인구를 밀어내는 '압출요인(押出要因 : pushing factor)' 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우리나라 인구 이동의 가장 중요한 직접적인 동기는 경제적 동기 및 교육 기회에의 접근이다[책<도시학개론> 13쪽 참조 (노춘희 지음·형설 펴냄·1994)]
수도권 인구집중을 주도하는 연령층은 20대로 취업이나 학원수강 등이 주된 목적인 20대의 순유입 규모는 10만 6천95명으로 전체 순유입의 70.6%를 차지하고 있다. 수도권지역 가운데 서울로의 진입은 줄어드는 대신 경기도로의 전입은 늘고 있다.(<중앙일보> 2001.4.11)

7. <조선일보>201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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