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도 가고 고양이도 간다
사람도 가고 고양이도 간다
팔레스타인과의 대화 <33> 나의 젖형제 고양이를 생각하며
사람도 가고 고양이도 간다
어머니는 말씀하신다. 내 어릴 적에 어머니가 내게 젖 물리기를 그만두자 내가 마당에서 암고양이의 젖을 빨고 있더라고. 아직까지도 나는 그 아련한 기억의 자취를 느낀다. 아마도 내가 고양이들과 형제애를 나누게 된 것은 이 일이 발단이었을 게다. 아랍 표현으로는 '젖형제'다. 언제나 고양이 종족이 나를 따라다닌다. 내가 머무는 곳이 어디든 거기에는 고양이가 있다. 고양이 뺨에 난 두 줄의 수염은 밀림 속 부족의 장식처럼 보인다. 그래서 나는 고양이들을 '뺨을 장식한 부족'이라고 부른다. 내가 한 군데 오래 머무른다면 내가 만난 고양이는 점점 능력이 세져서 어느 날 족장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나 불행히도 나는 그런 결과를 볼 만큼, 또는 그것이 내 망상이라는 걸 확인할 만큼 오래 머문 적이 없다. 모든 만남은 내 친구 고양이가 최고로 등극하기 직전에 내가 떠나는 비극적인 헤어짐으로 끝났다. 요르단에서 나는 자살 시도 끝에 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고, '아부 이싸(이싸의 아버지)'를 거기 남겨두고 떠났다. 그 밝은 갈색의 페르시안 고양이보다 아름다운 고양이를 나는 지금껏 보지 못했다. 내가 떠난 뒤 어머니가 그를 길렀는데, 아부 이싸는 수컷이지만 어미처럼 어린 고양이들을 돌보았다고 한다. 한 번은 어린 고양이 한 마리가 벽장 뒤에 갇혔단다. 아부 이싸가 벽장 뒤로 들어가 마침내 어머니가 꺼내줄 때까지 겁에 질린 어린 것과 함께 있어 주었다는 것이다.

1998년에 나는 팔레스타인 문제에 관한 초청 강사로 덴마크로 가게 되어, 검은 고양이 '아이룰'과 헤어졌다. 아이룰은 아랍어로 '구월'이며, 내가 '검은 구월'1)을 따서 지어준 이름이다. 그는 자신이 고양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나와 내 손이 동일한 존재라는 것도 결코 믿지 않았다. 길 잃은 암컷 강아지를 내가 집에 데리고 오자, 그는 그 암컷 강아지를 지키기 위해 큰 개들을 공격하곤 했다. 그리고 그는 내 손을 때로는 사냥감으로서 변형된 나귀로, 때로는 친구이자 놀이 상대로 취급했다. 그의 사냥 기술을 관찰하면서 나는 언어가 가장 정교한 판단 방식이라는 인간의 생각이 터무니없다는 통찰을 얻었다. 이 깨달음으로 나는 언어학과 졸업 논문을 쓰기까지 했다. 사냥감인 나귀에게 접근하는 고양이는 공격할 만큼 가까운 거리가 될 때까지 나귀가 움직여야만 움직이고, 나귀가 동작을 멈추기 직전에 또는 동시에 멈춘다. 내 손이 가만히 있으면 고양이의 몸은 영원히 굳어버린 것 같다가, 내 손이 움직이자마자 미세하게 자세가 바뀐다. 내가 덴마크로 떠나자 그도 떠났다. 그리고 나는 한 달 뒤에 돌아왔지만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언젠가 그는 내 꿈에 나와 정통 아랍어로 말했다. 자기는 더 이상 그림자를 가진 존재들을 먹이로 먹지 않겠다고.

집안에서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어머니와 논쟁하다가 집에서 뛰쳐나옴으로써, 나는 가장 사랑했던 고양이와 헤어지게 되었다. 그의 이름은 태양이라는 뜻의 '샴스'인데, 잡종 페르시안 고양이지만 털이 황금색이고 빛나서 정말 태양처럼 보였다. 그는 내 머리의 수호자였다. 그는 내 머리 근처에서만 자고 다른 누구의 접근도 허락하지 않았다. 어머니의 집에서 함께 살던 내 여자 친구는 잘 때 내 옆에서 자려고 그 고양이한테 온갖 아부를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여자 친구는 말하기를 자기가 밤늦게 집에 돌아와서 나와 내 고양이가 같이 자고 있는 꼴을 보면, 마치 둘이 하나의 유기체처럼 보인다고 했다. 나와 고양이가 연인이고 자기가 우리의 고양이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내가 집에서 뛰쳐나오자 그도 뛰쳐나갔다. 그리고 나는 일주일 후에 집으로 돌아갔지만 그는 아직도 어딘가로 가고 있다.

2006년 봄에 광주의 '아시아 작가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참가하러 오면서, 나는 점쟁이 고양이 '샴세흐(태양의 여성형)'와 헤어졌다. 내가 스승 '후세인 알 바르구티'의 병실에서 밤을 새고 집에 돌아온 아침, 그녀는 내 침대 위에서 막 태어난 참이었다. 그녀는 아마 내 스승이 오랜 암 투병 끝에 마지막 숨결을 내뱉은 그 순간 태어났을 터였다. 고양이는 내 스승을 닮지도 않은 데다가, 다만 내가 스승의 영혼이 일부라도 빨리 돌아오기를 바라서 그렇게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하여튼 내게는 그 시간적 일치가 의미심장한 사건으로 여겨졌다. 그녀는 스스로 제 어미를 버리고 나를 가족으로 선택한 첫 번째 고양이였다. 내 가족으로서 그녀는 내 주변 인물들에 대한 선호를 분명히 했다. 내가 집에 데려온 인간에게 그녀가 야옹거리면 그 사람은 맘에 든다는 뜻이었다. 그녀가 야옹거리지 않으면 나는 난관에 봉착했다. 그녀는 당시의 내 여자 친구와 나 사이에 자면서 여자 친구를 밀어내곤 했다. 하루는 고양이가 내 여자 친구의 팔찌에 유난히 매달리더니, 대단한 집요함으로 마침내 그것을 여자 친구의 팔에서 벗겨냈다. 그래서 나는 여자 친구에게 팔찌에 대해 물었으며, 그것이 시리아의 '알레포'에 사는 다른 사나이로부터 받은 선물임을 알게 되었다. 내가 한국으로 오기 전날 밤 고양이는 내 가방 위에서 잤으며, 내 동생이 일러준 바에 따르면 내가 떠나자 그녀도 떠났다.
▲ 팔레스타인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예쁜이' ⓒ프레시안

광주에서 팔레스타인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사랑스러운 '재즈'와 헤어졌다. 재즈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린다. 그리고 내가 여기 라말라에 돌아오자 '힐레웨(예쁜이)'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옮긴이 주

1) 검은 구월; 1970년 9월, 요르단에서 팔레스타인 전사들이 학살당하고 팔레스타인 해방 기구는 레바논으로 쫓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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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을 잇는 다리(www.palbridge.org)' 기획ㆍ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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