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노무현 지지했던 '그들', 왜 돌아섰나?"

[토론] 참여연대 '18대 대선의 의미와 한국 사회 변동'

서어리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2.12.23 13: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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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의 승리'로 끝난 지난 18대 대선은 개혁진보 진영에는 '엄중한 경고'였다.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남의 잘못에 편승해 지지를 얻으려 하지 말라"고 말했다. 보수층으로 돌아선 50대 유권자 표심을 다시 잡기 위해선 "생활 의제를 부활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선 이틀 뒤인 지난 21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열린 '18대 대선의 의미와 한국 사회 변동' 좌담회에서 개혁진보진영의 실책을 지적하는 자성의 목소리가 연이어 나왔다. 패널로 참석한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이태호 참여연대 사무처장, 한귀영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은 공통적으로 "'생활밀착형' 대안 마련 없인 진보진영의 집권은 불가능하다"고 내다봤다.

▲ 21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열린 참여사회연구소 대선 평가 좌담회 '18대 대선의 의미와 한국 사회 변동'에 참석한 패널들. ⓒ뉴시스

"민주화 이후, 진보는 어떤 상품을 내놓을 것인가"

강원택 교수는 "이번 선거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실망감, 분노가 폭넓게 깔려있던 판"이었다며 "내 것을 스스로 보여주지 않은 채 남의 잘못에 편승해서 가는 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어떤 의미에서 진보진영의 집권능력의 한계와 의구심이 드러난 것"이라며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정치세력으로서의 진보가 어떤 답을 줄 것인가 절박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강 교수는 '현실 정치의 실패'를 보여주는 지표로 '50대'와 '수도권'의 득표율을 들었다. 그는 "많은 언론에서 '50대 유권자', '수도권' 이 두 변수가 선거 결과에 가장 중요하게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이 둘의 공통점은 생활과 관련된 불안감의 문제"라며 "전통적으로 진보가 강했던 이슈인데 결국 유권자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했다. 이번 선거에서 가장 중요하게 논의됐던 이슈인 복지와 경제민주화는 박근혜 후보 쪽에서 선점했다"고 말했다. 투표율이 90%에 육박한 50대에서 박근혜의 득표율은 62.5%, 문재인은 37.4%였다. 경기도의 득표율은 박근혜 50.4% 대 문재인 49.2%다. 경기도는 수치 상 막상막하로 보여도, 전통적인 야권성향 지역이었다는 점에서 진보진영에는 뼈아픈 결과다.

강 교수는 "민주화 이후에 민주주의는 적어도 절차적 의미에서는 상당한 정도로 실현이 됐다"며 "그동안 진보진영이 주장했던 거대 담론 이후, 어떤 상품을 내놓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이념 중심의 논쟁 구도도 탈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 교수는 "기존 진보가 갖고 있던 내용에서 크게 변하지 않았다. 대북정책도 기존 메시지가 그냥 그대로 강조됐고, 성장과 복지도 자꾸 대립되는 기존 틀에서 많이 벗어나지 못했다"며 "안철수가 '나는 경제는 진보고 안보는 보수'라고 했을 때 사람들이 환호했다. 과거 프레임에서 벗어나 새로운 가치를 보여줘야 한다. 기존 틀에서 벗어난 새로운 틀의 재구성이 과제"라고 말했다.

"50대의 보수화, 20대보다 더 불안한 현실이 만든 선택"

한귀영 위원은 우선 이번 선거의 패인을 '프레임 선정의 실패'에서 찾았다. "지난 총선 분석을 하면서 그런 느낌을 받았는데, 보수가 총결집을 하면 이길 수가 없다"며 "그런데 가장 중요한 시기를 (야권이) 단일화 프레임으로 가져왔고, 근데 그게 사람들을 피로하게 했다"고 말했다.

한 위원은 진보진영의 프레임 선정의 실패로 이어진 결과가 "50대의 역습"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2010년 지방선거, 2011년 서울시장 선거 때도 50대는 보수성향이었다, 새삼스럽게 이번에 보수화로 돌아선 것이 아니다"라면서 "오히려 지금의 50대가 10년 전에는 40대였고, 당시 노무현 지지율이 이회창 지지율보다 높았는데 10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느냐를 봐야 한다"고 말했다. 한 위원은 "참여정부의 실패와 국정운영 불안이 50대에게 씻을 수 없는 불안감을 주지 않았나"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50대는 1970년대에 학교를 다니고 경제활동을 시작하면서 실질적으로 성장을 경험한 세대이고 본인들이 산업화시대의 수혜자다. 이 세대들한테 '20대 청년들을 위해 희생해달라'는 요구를 던졌는데 사실은 이들이 20대보다 더 불안한 세대다. 노후, 자녀, 하우스푸어. 그런데 야권에는 왜 아무런 대응이 없었느냐"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5060이 보수라기보다는, 5060이 유보했던 부분에 대한 부응이 안 돼서 나타난 절박함의 표시"라고 해석했다. 그는 "50대는 가장층이고, 실제로 50대 자살율이 증가하고 있다. 가계부채 문제로 고통을 겪었다. 그런데 박근혜 후보 제1공약이 가계부채였다"고 말했다.

▲ 박근혜 당선인 ⓒ프레시안


"박근혜, 굉장한 득표력 가진 후보"

김윤철 교수는 이어 "5060이 박근혜를 이해하는 방식과 진보진영이 박근혜를 이해하는 방식이 달랐다고 보고, 바로 그들이 사는 곳이 경기와 인천인데, 왜 이곳에서 손학규 등을 민주당이 활용을 하지 못했느냐"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이 결국 자기와 같은 세대인 4050하고도 괴리된 '친노 486' 정치인 주도 속에 만들어진 결과가 아닌가 생각한다"며 민주당의 실책을 꼬집었다.

이태호 처장 역시 "박근혜 후보의 잠재력을 과소평가했다. 박근혜 후보는 굉장한 득표력을 가진 후보다, 매 선거에서 그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해온 파괴력 후보"라며 "'여성대통령 논쟁'에서 선거전략적 측면에서 냉소를 했겠지만, 이 메시지는 여러 가지로 통합력을 갖는 것이었다. (박근혜는) 강력한 가부장성도 대표하고. 여성성도 대표할 수 있는 호소력이 생긴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처장은 이어 "많은 언론에서 박은 민생에 주력했고 야당은 이념공략을 했다고 하는데, 참여연대가 볼 때 여당에서 제기한 건 호소력 있기보단 이미지를 (먼저) 가져간 것이고, 민생정책은 상대적으로 야당이 나았지만 이미지가 충분하지 않았다."며 "'사람이 먼저다'라는 슬로건을 내걸었지만, 그에 부합하는 캠페인은 별로 없었다"고 지적했다.

"의제투입의 정치가 아닌, 산출의 정치가 필요"

개혁진보진영 내에서의 성장과 복지의 관계 재정립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강 교수가 "성장과 복지를 대립 틀 속에서 보지 말자"는 주장한 데 대해 이 처장은 "성장담론은 여전히 동의하면서도, 사실 선거에서 무시한 적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근혜가 말한 '잘살아보세'의 재현은 따뜻한 성장담론의 최종판"이라면서 "야권 혹은 진보, 지지자는 성장 말고 다른 프레임을 설정했어야 한다. 성장담론을 대체하기 위해 여러 노동, 환경 등 따뜻한 연대 메시지를 충분히 소화해야 하는데 실패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성장, 복지 담론 사이에서 "의제투입의 정치가 아닌, 산출의 정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진보정치 관점에서 봤을 때, 경제민주화는 부의 문제로만 보면 성장패러다임에 갇힌다"며 "부의 배분을 누가 어떻게 배분하느냐의 문제로 결정하는 부분이 있어야 성장 패러다임에서 벗어나고 시민참여형 경제민주화가 이뤄진다"고 지적했다.

이어 "박근혜가 경제민주화 의제를 선점하며 진보의 독자성을 얘기하기 어려워졌다"며 "이제 의제투입의 정치가 끝났다. 이제 산출이 필요하다. 그런데 산출이 있으려면 정치적 위상이 있어야 한다. 수권가능성을 인정받아야 한다. 정책적인 차별성과 실력이 없는 상황에서 퇴행적인 언어를 구사한 예가 이정희 후보, 홍성담 화백이었다"고 비판했다.


▲ 19일 18대 대선에서 사실상 패배가 확정된 뒤, 서울 구기동 자택을 떠나 영등포의 민주당사로 향하는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 ⓒ뉴시스

"안철수에게 '제3 정치세력' 뺏긴 진보진영은…"

이번 선거에서 나타난 '안철수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한 고민도 오갔다.

강 교수는 "정치개혁이라는 주제만이라도 확실하게 차별성을 갖고 보여줄 수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라면서 "민주당이 제도적인 기득권을 과감하게 버리겠다는 모습을 보이면서 그것이 국민적인 호응을 받았으면 새누리당도 대응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태호 사무처장은 "모두가 정치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 '어떤 정치개혁으로 유권자들을 조직할 것인가'라는 좌표를 만들어내는 데 있어서 '안철수 현상'의 꼭짓점에 있는 안철수는 충분히 유능했는가"라는 문제제기를 했다.

이에 대해 강 교수는 "(안철수 전 후보가) 정치개혁이라는 중요한 화두는 던졌지만 내용적으로는 다소 허섭한, 포퓰리즘적인 접근을 했다"면서 "새로운 정치세력이 제도적 정치권에 들어가서 대표되지 못한 사람들을 대표하고 새로운 경쟁 틀을 만들어내서 기존 정당들을 자극하고 변화하도록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면서 전체적인 논쟁 자체가 힘을 많이 잃어버렸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안철수 지지자의 1/3은 선거 이후에도 여전히 포용하지 못하는 제3의 세력으로 있을 것 같다"며 "(개혁진보 진영이) 다음에 집권한다고 했을 때 이들을 끌어안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제 '제3 정치세력' 공간의 주인은 안철수 후보와 그 지지자들로 바뀌었다"면서 "민주진보진영이 사회적 기반을 강화하기 위한 시민정치운동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지금까지 진보가 선호 형성 정치를 해왔다면 4050의 선호에 맞는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정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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