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수이벤 증후군
천수이벤 증후군
[中國探究] <5> 타이완 부패 정치의 뿌리
천수이벤 증후군
타이완(臺灣)은 포르투갈어로 포르모사(Formosa:美麗島)라고도 부른다. 1544년 포르투갈 선박이 처음 타이완을 발견했을 때 붙인 이름이다. 당시 서양인들의 눈에는 타이완이 비록 작은 섬에 불과하지만 온갖 기화요초가 만발하고 정경이 매우 '아름다운' 섬이었다는 의미다. 그리고 타이완 사람들은 스스로 '보물 같은 섬(寶島)'라고도 부른다. 그런데 요즈음 타이완은 부패의 썩은 냄새가 진동하고 '아름답고 보물 같은 섬'이 혼란과 '온갖 권력 부패의 추악한 스캔들'의 섬으로 변해 가고 있다.
  
  최근 타이완 사람들은 이른바 '아비엔증후군(阿扁症候群)'에 시달리고 있다. 다시 말해서 '천수이벤(陳水扁) 증후군'이다. 이 증후군의 주된 증상은 정서가 불안하고, 쉽게 분노를 폭발하거나 초조하고, 서로 신뢰하지 못하고 심지어 타이완의 미래에 대한 절망감이 엄습하는 '병변'을 의미한다. 스캔들로 인한 가치관의 혼란을 타이완 국민들이 심각하게 겪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현재까지 드러난 천수이벤 전 총통을 둘러싼 비리는 지역적으로 4대주 13개국에서 이루어진 '돈세탁'이다. '돈세탁'의 액수는 현재까지 밝혀진 것만 10억 타이완 달러(약 330억원)에 달한다.
  
  이번 부패 스캔들은 총통의 가족과 친척이 모두 동원된 전형적인 특권층 비리다. 천 전 총통의 부인 우수전(吳淑珍)은 거액의 백화점 상품권을 업자로부터 받아 '타이완 옷 로비 사건'을 일으켜 조사를 받았고, 사위는 주식 내부자 거래로 거액의 부당 이득을 챙겼다가 구속되었다. 또 천 전 총통 부부가 자신의 며느리 통장을 통해 3억 타이완 달러(약 100억원)를 해외로 빼돌렸으며, 처남 우징마오(吳景茂)도 법죄 행위 대열에 동참하였다. 총통 가족의 '부패 일상화'를 보는 타이완 사람의 절망감은 타이완 정치에도 암운을 드리우고 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타이완의 정치적 부패의 뿌리는 어디에 있는가?
  
  무엇보다도 과거 국민당의 금권정치(黑金)에 뿌리를 두고 있다. 국민당의 장기집권은 부패의 일상화를 조장하였다. 그러나 이것을 극복하겠다고 국민들에게 호소했던 천수이벤 전 총통은 결국 이러한 악습을 타파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집권 이후 개별 자본가의 충성을 국민당에서 민진당으로 옮기려고 시도하였다. 이 과정에서 민진당은 과거 국민당의 부패 행위를 더욱 노골적으로 답습하였던 점에 그 연유가 있다.
  
  다시 말해서 소수의 지지로 집권한 민진당은 집권 초기 재계와의 제도적 통로를 갖고 있지 못했다. 결국 민진당의 유력 정치인들은 재개 기부자들과의 개인관계를 구축하게 되었고 그들의 정치적인 지위가 높아지자 재계의 거물들과의 관계도 긴밀하게 발전시켰다. 천수이벤은 이들을 '국가정책자문위원'으로 임명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정경유착이 유지되었고 부패의 싹은 이곳에서부터 싹텄다.
  
  또한 총통의 인사권 남용을 들 수 있다. 즉 타이완은 과거 국민당 집권 시기 국영기업의 민영화를 통해 정치자금을 충당하였다. 그러나 천수이벤은 집권 이후 민진당 중심의 엽관주의로 대체하였다. 그 이유는 소수의 지지로 당선된 천수이벤은 정치적으로 불안정했기 때문이다. 천수이벤은 자신의 통치를 공고히 하기 위하여 최대한 많은 자원을 장악해야 한다는 생존 본능을 갖고 있었다. 따라서 자신이 행사할 수 있는 인사권을 이용하여 고위직부터 말단 행정단위의 인사, 나아가 NGO의 간부까지 약 4000명에 달하는 인사들을 자신의 사람으로 임명하였다. 이에 대해 타이완 학자 주윈한(朱雲漢)은 1828년 집권한 미국의 앤드류 잭슨 이래 최대의 엽관주의였다고 지적하였다. 엽관주의의 폐단은 공무원의 비윤리적 권력유지와 생존이 정책의 비효율을 가져와 부패의 온상이 되었다.
  
  또한 타이완의 부패 정치와 관련하여 지적해야 할 것은 정당정치이다. 민주주의 가장 기본인 정당정치는 각 정당이 정치과정에서 일반대중이나 이익집단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집약함과 아울러 결집된 의사를 정부에 전달하는 대변자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더욱이 정당은 국가 권력에 대한 감시의 기능도 갖고 있다.
  
  그러나 타이완의 정당정치는 난마처럼 얽혀져 있다. 이들은 이른바 '범람(泛藍)'진영과 '범녹(泛綠)' 진영으로 분리되어 '너 죽고 나 살자' 식의 첨예한 갈등을 지속해 오고 있다. 지역적으로 타이완의 중부 지역인 타이중(臺中)을 경계로 북쪽은 '범람진영'이 남쪽은 '범녹진영'이 강세를 보인다.
  
  이러한 갈등 구조는 치유가 불가능할 정도로 심각한 국론분열의 상태에 이르렀다. 국민들은 반대를 위한 반대에 익숙하게 되었고 국가의 장기적인 발전과 정당간의 견제와 균형이 아니라 포퓰리즘에 영합하는 정책 경쟁으로 국정의 혼란이 가중되었다. 정치가들은 상호신뢰가 무너지고 적대적 관계가 되어버린 국민들의 통합을 위한 노력보다는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해 권력을 유지하려는 전략으로 이용하고 온갖 얄팍한 잔꾀가 난무하였다.
  
  타이완 정치 부패의 악습은 또 다른 축은 타이완의 폭력조직과 정치집단의 결탁이다. 헤이써후이(黑社會)라고도 불리는 이러한 조직폭력 그 뿌리가 매우 깊고 정치권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한 예를 들면 2005년 5월 29일, 타이완의 폭력조직 '죽련방천룡당(竹聯幇天龍堂)' 당주(堂主) 줘봉깡(左鳳崗)의 어머니 장례식에 당시 타이완의 최고 정치지도자 천수이벤, 부총통 뤼수롄(呂秀蓮)과 현재는 총통이 된 당시 타이페이 시장 마잉지우(馬英九)가 만장을 보냈고, 조야의 민의대표들이 현장에서 애도를 표시할 정도로 뿌리가 깊다.
  
  현재 타이완의 대표적인 조직폭력 단체로는 '죽련방(竹聯幇)' '사해방(四海幇)' '천도맹(天道盟)' 등이 있고 여타 유사한 헤이써후이 조직 범죄단이 1,000여개가 넘는다. 이들은 범죄 행위뿐만 아니라 경제 분야까지 영역을 넓히고 정계 진출도 적지 않다. 타이완의 한 매체는 1990년 중반 이후 타이완의 중앙민의대표 중 5-10%, 지방민의 대표의 3분의 1이 헤이써후이 배경을 갖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하였다. 이들은 각종 이권에 간여하고 불법을 합법으로 가장하고 있으며, 자신들의 이익 챙기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이렇게 볼 때 타이완의 민주주의 발전은 이번 부패사건을 계기로 더욱더 지난하고 힘든 길을 가야만 할 것이다. 왜냐하면 민주화와 개혁을 주장하며 등장한 정권이 권력을 이용하여 파렴치한 부패행위를 자행한 것은 국민들에게는 신뢰의 상실이 마치 산사태처럼 무너지는 형국과 같기 때문이다.
  
  타이완의 부패는 이미 국제사회도 공인하고 있다. 국제투명성기구(TI : Transparency International)가 매년 발표하는 국가별 부패지수(CPI:Corruption Perceptions Index)에서 타이완은 천수이벤이 정권을 장악한 2000년 28위를 기록하였고 다음 해인 2001년 27위로 한 차례 올라갔을 뿐 계속 순위가 하락하여 2007년에는 34위로 부패가 매년 심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번 천수이벤의 부패 스캔들은 우리에게 반면교사의 역할을 하고 있다. 어느 나라가 먼저 반면교사의 역할을 했는지 알 수 없으나 분명한 것은 타이완의 최고지도층의 부패 행위를 보면서 어딘가 우리와 닮은 부분을 감지할 수 있다. 개혁적인 성향의 정권이 탄생한다고 해서 정치적 민주화가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교훈도 얻어야 한다. 또한 정당정치의 원활한 운영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견제와 균형을 유지할 수 없고, 최고지도자의 인사권 남용은 궁극적으로 부패를 조장할 수 있다는 점도 깨닫게 된다.
  
  한국은 국제적인 부패지수 순위에서도 타이완보다 더 낮게 나타나고 있다. 아직도 대통령의 친척이 공천에 영향을 미친다고 돈다발을 넘기는 인사들이 있는 상황에서 한 국가의 멸망은 외부의 공격이 아니라 내부의 신뢰가 무너지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는 점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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