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의 실크로드' 앞서 '말(言)의 실크로드'부터
'철의 실크로드' 앞서 '말(言)의 실크로드'부터
한반도브리핑 <101> 北고위인사 "현재의 남북관계선 절대 불가"
'철의 실크로드' 앞서 '말(言)의 실크로드'부터
정상회담만 한번 하면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가 되는 것일까? 이명박 대통령은 러시아 방문 성과를 평가하며 한러 양국관계를 기존 '상호 보완적인 건설적 동반자 관계'에서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한 단계 격상한 것을 최대 성과로 꼽았다.
  
  이로써 이명박 대통령은 2월말 취임 이후 7개월 여만에 미국을 시작으로 일본·중국·러시아 등 한반도 주변 4개국과의 관계설정 작업을 마무리했다.
  
  겉만 화려한 '4강 외교'
  
  표면적으로 보면 이 대통령은 미국과는 '21세기 전략적 동맹관계', 일본과는 '성숙한 동반자 관계의 신세대 개척', 중국 및 러시아와는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 등으로 모두 이전 정부에 비해 한 단계 진전된 관계를 구축했다.
  
  이를 두고 청와대측은 지난 10년간의 좌파 성향의 정부와 차별성을 강조하고 변화하는 국제환경에 맞는 새로운 '4강 외교'를 추진하겠다는 이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말 그럴까?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시절 한국은 동북아에서 자율성과 균형성을 강조했다. 자율성과 균형성에서 벗어난 새로운 '4강 외교'의 실체는 과연 무엇일까?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 관계자들이 쏟아낸 평가를 종합해 보면 그 '차별성'이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노무현 정부 시절 훼손된 미국·일본와의 전통적 동맹관계를 복원하고, 경제적 실리에 치우쳐 있던 중국·러시아와의 관계를 지역문제를 논의하고 군사 교류까지 확대하는 관계로 확대했다는 주장이다.
  
  둘째, 한러 정상회담을 마친 후 이명박 대통령은 "미국과는 정말 만족할 만한 관계로 복원됐고, 중국 및 러시아와의 관계를 전략적 단계로 높여 분단된 나라에서 '유사시' 사전 사후 협의할 수 있는 관계가 됐다"고 말했다. 여기서 '유사시'란 북한의 급변사태 혹은 대북 공조가 필요한 시점을 염두에 둔 것이다.
  
  즉, 한반도 주변 4강과의 전략적 협력관계를 통해 대북공조를 구축, 북한의 개혁·개방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외교기반을 마련했다는 주장이다. 이명박 정부의 이런 평가가 '실재하는' 동북아질서를 반영하고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우리 정부의 평가와 달리 이명박 정부를 바로 보는 중국과 러시아의 시각은 확연히 다르다. 지난 5월 이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친강(秦剛)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한미 군사동맹은 냉전시대의 유물"이라며 한국의 안보기조를 노골적으로 비판했다. 중국의 속마음을 슬쩍 내비친 셈이다.
  
  중국의 한 한반도 문제 전문가도 "중국은 이명박 정부에 그야말로 경제적 실리 측면에서 접근하고 있다"며 "일반적으로, 유사시는 더욱 더 한중 간 전략적 관계가 북중 간 동맹관계보다 더 중요시 될 수는 없다"라고 밝혔다.
  
▲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은 사전 조율도 안 된 '10.4선언' 얘기를 불쑥 꺼내 이명박 대통령을 당황케 했다. ⓒ청와대

  러시아, '10. 4선언' 이행 언급
  
  러시아의 입장도 유사하다. 한러 공동성명에는 한국 측이 제기한 '북핵' 문제가 적시되지 않았고, "6자회담 틀 내에서 협의와 협력을 강화해 9.19 공동성명의 목표를 평화적이고 외교적인 방법으로 조속히 실현"한다는 문구만 들어갔다. 더구나 공동 기자회견에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은 사전에 제기되 않은 "2007년 10.4정상선언의 합의 이행"을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메드베데프 대통령에게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동의'조차 얻지 못한 것이다. 러시아의 대북 중시 경향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당황한 청와대 관계자는 "러시아 외교차관이 '남북관계 진전을 기대하며 한 예로 든 것일 뿐이다'라고 밝혔다"며 "(10.4합의를 두고 러시아와 이견이 있는 것처럼) 오해하지 말아 달라"고 해명했다.
  
  이 대통령은 시베리아횡단철도(TSR)와 한반도횡단철도(TKR)을 연결하는 '철의 실크로드' 건설과 러시아에서 북한을 경유해 우리나라 천연가스를 공급하는 가스배관 건설 사업('에너지 실크로드')을 제안했다. 러시아 측에서는 마다할 사안이 아니다.
  
  그러나 이 구상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북한의 동의가 관건이다. 이 대통령은 이 난관을 러시아의 협조로 돌파할 수 있다고 기대하는 듯하다. 그는 "북한도 경제적인 면에서는 계산이 매우 빠르다고 생각한다"면서 "러시아가 적극 앞장서면 우리가 핫산, 블라디보스토크까지 (가스배관을) 연결하는 기간 내에 아마 북한하고도 협상이 되지 않겠느냐"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반면 러시아는 이 문제가 남북 간 협력관계가 진전돼 자연스럽게 풀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 대통령의 러시아 방문 기간 러시아의 한 외교소식통은 "이명박 정부가 한반도와 러시아를 잇는 대륙횡단철도 연결에 왜 그렇게 매달렸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며 "대륙횡단철도 연결문제는 남측이 북한 측과 먼저 풀어야 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북, 철도연결에 관심 있지만…
  
  정곡을 찌른 지적이다.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이 이행돼야 철도 연결도 가능하다는 입장을 북한 당국이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지난 9월 23일 남쪽에도 잘 알려진 북한의 최성익 민족화해협의회 부회장 겸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 책임참사는 <민족21> 방북취재단과의 인터뷰에서 남북관계가 개선되지 않고서는 절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이집트가 수에즈 운하 통행료로 올리는 수입이 연 46억 달러다. 만약 한반도횡단철도가 연결되고 남쪽이 국제철도기구에 가입하면 동남아, 일본 등에서 오는 물류 특수를 남쪽이 다 누릴 수 있다. 경제 전문가는 아니지만 남쪽계산으로 봐도 철도로 유럽 진출하는데 배로 가는 것보다 10~15일 덜 걸린다. 1만Km 거리 절약하고 비용도 30% 줄어든다. 현재 러시아가 적극적으로 달라붙고 있는 상황이다. 남측 당국자도 요즘 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북남관계가 현재와 같다면 절대 불가능하다."
  
  그의 발언은 북한 당국의 공식 입장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북한이 입장을 바꾸는 않는 한 이 대통령의 '철의 실크로드'와 '에너지 실크로드' 구상은 공염불에 그칠 수밖에 없다.
  
  최성익 부회장은 "북은 남측의 정권과 상관없이 북남합의를 이행하자는 것"이라며 "(남쪽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논의해 보자 하는 것은 부정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북남관계의 현 난국은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전면적으로 이행하겠다고 하면 다 풀어질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 북한을 자극하는 발언으로 파장을 일으킨 서재진 통일연구원장

  이명박 대통령은 여러 차례 북한에 진정성 있는 전면적인 대화를 제의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비핵-개방-3000'의 덫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원칙만 있고 남북대화 재개를 위한 각론은 전무하다는 게 중론이다. 또한 대북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할 수 있는 중심이 없다보니 조율되지 않은 대북발언이 중구난방으로 나와 북한 당국을 자극하고 있다.
  
  최근에는 정부의 통일정책을 지원하는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장이 "김정일 위원장은 오래 가지 못할 것", "(북한은) 지극히 비정상적이고 잘못된 정권이어서 아무리 대화해봐야 소용없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 파문을 던졌다.
  
  북한의 대남관계자들은 최근 방북자들에게 "남측 당국자나 북한전문가라고 하는 학자들이 우리를 너무 모른다"며 "아예 대북발언을 자제하는 것이 남북관계를 도와주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공염불보다 실천으로 진정성 보여야
  
  다행스러운 것은 북한이 아직까지 남북대화 재개에 의지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달 북한의 최고인민회의 김영남 상임위원장은 "중단된 남북대화 재개는 남측의 태도에 달려 있다"며 "남측에서 강한 신호를 보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 달 방북한 남쪽의 NGO 관계자들에게도 북한의 대남관계자들은 똑같은 발언을 했다.
  
  반면 이명박 정부는 북한이 먼저 식량지원을 요청하며 손을 내밀어야 남북대화에 나설 수 있다는 입장이다.
  
  남북 당국의 팽팽한 '기싸움'이 벌어지고 있지만 전혀 해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이명박 정부가 남북대화에 진정성과 일관성을 보여야 한다. 북한도 남쪽에서 정권이 교체된 조건에서 남북대화가 달리 진행해야 한다는 점은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북측이 신뢰할 수 있는 인사를 통해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을 진정성 있게 납득시킬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둘째는 말만 앞세울 것이 아니라 실천 방안을 내놓아 한다. 대북 식량지원이나 조건이 붙은 대북 투자계획으로는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나오게 할 수 없다. 그런 측면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이 표방한 철의 실크로드나 에너지 실크로드구상은 비핵-개방-3000 보다는 훨씬 타당성이 있다.
  
  특히 부산에서 출발해 중국과 러시아를 거쳐 유럽까지 연결되는 철의 실크로드는 한반도, 더 나아가 동북아지역 물류의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에도 담겨 있는 남북 합의사항이기도 하다.
  
▲ 작년 5월 17일 있었던 남북 철도 시범운행 ⓒ연합뉴스

  경의선 남북철도 운행이 정례화 되고 확대되면 중국이나 러시아·유럽 등 대륙의 물동량이 남북철도를 통해 수송되고 한반도와 대륙 연결 통행료 수입확보 등 남북 경제에 미치는 경제적 이익은 실로 막대하다. 정부는 TKR-TSR 연결시 동북아 지역 물동량 수송 운임으로 남측은 연간 1억 달러, 북측은 1억 5000만 달러의 수익을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철도를 이용한 물자와 관광객 수송은 개성공단 사업과 금강산관광의 활성화를 가져올 것이다. 특히 남북철도 연결은 2단계 사업을 앞두고 있는 개성공단 개발을 촉진하고 남북 직교역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
  
  철도 연결이 가져다 줄 직접적인 경제 효과보다 더 주목할 대목이 있다. 두 차례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했던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과 민족경제공동체 형성에 기여하는 측면이다. 한반도를 잇는 철도의 개통은 남북간 경제협력 시대가 본격화된다는 의미 외에도 남북경제통합의 기초가 될 것이다. 당연히 북한 측에서도 관심을 보일 사업이다.
  
  더구나 중국에서 독일까지 아시아와 유럽을 관통하는 유라시아 횡단 철도가 이르면 올해 안에 개통될 예정이다. 주중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9월 29일 "당초 2010년 정식 개통이 목표였으나 계획이 앞당겨져 이르면 올해 말에 유라시아 횡단철도가 공식 개통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 경제의 활로를 열기 위해서라도 남북철도 연결에 속도를 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이처럼 철의 실크로드 구상은 다목적 카드다. 다만 어떻게 쓰느냐에 성공여부가 달려 있다. 중구난방으로 북한을 자극하는 발언을 쏟아내며 우리 정부의 진정성을 이해해 달라고 촉구해 봐야 공염불에 그칠 뿐이다.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이행하는 가운데 남북 당국이 접점을 찾을 수 있는 철의 실크로드 구상을 적절하게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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