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있다는 것은 모두 거짓인가?
빛이 있다는 것은 모두 거짓인가?
[김상수 소설 '아버지의 새벽']<9>
2010.03.31 12:23:00
빛이 있다는 것은 모두 거짓인가?
12

잿빛 하늘


흔들리는 비행기 안의 창으로 내려다 본 풍경은 을씨년스러웠다. 겨울이라 그런지 온통 잿빛이었다. 김포공항에 내린 세이코는 서울의 냉랭하고 차가운 분위기에 자신도 모르게 위축이 됐다.

김재오에게 미리 연락도 하지 못한 채 출발했다. 내내 불통이던 전화는 겨우 김재오의 신문사 직원과 통화가 됐지만 그의 행방은 알 수 없었다. 전화를 받은 사람은 우물쭈물 제대로 대답을 못했고, 영어도 서툴렀다. 같은 번호인데도 전화를 걸 때마다 받는 사람이 바뀌었다. 팩스를 보내도 묵묵부답이었다. 김재오의 집도 통화가 되지 않았다. 하는 수없이 무작정 다음 날 비행기에 올랐다.

출입국 검색대 주변에는 경찰과 군인들이 서성거리고 있었다. 무표정한 검색요원들을 지나 검색대를 나오는 순간, 양복을 입은 건장한 사내 셋이 짧은 일본어를 하면서 앞을 가로막았다. 세이코는 무척 당황했다. 그들은 한국의 중앙정보부 요원들이었다. 그들은 세이코를 공항 한쪽 구석의 사무실로 데려갔다. 미리 나와 있던 일본 대사관 직원이 세이코를 안심시켰다. 그들은 종이 한 장을 내밀며 서명하라고 요구했다.
"기자가 취재하는 걸 대사관이 나서서 이래라 저래라 할 수는 없잖아요."
대사관 직원의 말에 정보부요원이 일본어로 답했다.
"일본 대사관의 요청으로 일주일만 입국을 허락합니다. 그것도 특별히!"
대사관 직원은 세이코에게 다가와 난처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저들이 제시한 문서에 그냥 서명을 하세요. 아무 일도 없어요. 그냥 형식적인 절차니까요. 잘못하면 저네들이 입국을 못하게 할 수도 있어요."
"알았어요."
세이코는 정보부요원이 제시한 문서를 읽어보지도 않고 서명을 했다.

세이코는 대사관 직원의 안내를 받아 시내 한복판의 조선호텔에 짐을 풀었다. 지난 겨울 한국에 왔을 때 묵었던 호텔이었다.
김포공항에서 시내 호텔까지 들어오는 길에 차 안에서 대사관 직원은 이것저것 꼬치꼬치 캐물었다. 왜 왔는지, D일보 김재오 기자와는 언제부터 아는 사이인지, 취재를 한다면 뭘 할 것인지, 사진은 뭘 찍을 것인지를, 마치 피의자를 심문하듯이 캐물었다. 깍듯한 경어체로 대사관이 처한 어려움에 대해 몇 번이나 양해를 구하면서 질문을 해댔다. 세이코는 대사관의 우려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는 이번 방문의 목적이 취재가 아닌 사적인 용무 때문이라고 말했다. 대사관 직원은 혹시 급하게 연락할 일이 생기면 대사관 비상전화로 연락해달라면서 전화번호를 적은 쪽지와 명함을 건넸다. 그리고 지금 한국은 외신기자들의 동태를 일일이 감시하고 있고 사방에 감시자의 눈이 번뜩인다는 것을 한시라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신신당부를 하고는 호텔 로비에서 사라졌다.

세이코는 방안으로 들어오자마자 김재오가 일하는 D일보로 전화를 걸었다. 여전히 그와의 통화는 이뤄지지 않았다. 그녀는 전화를 받는 신문사 직원에게 자신이 김재오를 만나기 위해 일본에서 지금 막 도착했고, 1시간 후에 D일보사로 찾아가겠다고 영어로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상대는 감정이 실리지 않은 목소리로'알겠다'고 대답했다.

광화문 D일보사 건물 안으로 들어간 세이코는 출입구의 수위에게서 김재오는 지금 자리에 없다는 말을 다시 한번 들어야 했다. 그녀가 그럼 김재오의 동료 기자나 부장은 자리에 없느냐고 묻자, 수위는 건물 내 지하에 있는 구내 다방을 가르쳐 주면서 거기서 기다리라고 말했다.

세이코는 초조한 마음으로 다방에 앉았다. 그녀가 기다리는 사람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그를 통해 김재오 소식을 들을 수 있기를 간절히 고대했다. 마음속으로 기도도 했다. 제발 아무 일이 없기를, 잠시 자리를 비웠거나 취재를 나간 것이기를, 오늘 저녁이면 반드시 그를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기원했다.
한참이 지나서야 중년으로 보이는 낯선 사내가 그녀에게 다가와 영어로 말을 걸었다.
"혹시 미스 세이코이십니까?"
"그렇습니다."
"김재오 기자와는 같은 부서인 정치부에 있었습니다. 제 이름은 박종세라고 합니다."
"미스터 김이 연락이 안 됩니다. 그는 지금 어디에 있는거죠?"
"병가중입니다"
"병가라니요? 어디가 아프단 말인가요?"
"그렇습니다."
"지금 병원에 입원하고 있는 건가요?"
"병원은 아니고, 몸이 안 좋아서……"
박종세는 말끝을 흐렸다. 심약해 보이는 인상의 사람이었다.
세이코는 그가 무슨 얘기를 하는 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어쨌든, 지금은 만날 수 없습니다."
"아니, 왜 만날 수 없는 거지요? 저는 김 상을 만나기 위해 일본에서 바다를 건너왔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그의 집이 어딘지 알 수 있을까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집 전화도 받질 않아요. 집 주소는 알 수 있지 않습니까?"
그는 약간 당황하는 눈치였다.
"...저는 주소를 모릅니다. 미안합니다. 저도 곤란합니다."
세이코는 그의 입에서 나온 '곤란하다'는 말이 불길하게 느껴졌다. 반사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혹시, 누군가가 어딘가로 끌고 간 것인가요? 경찰, 아니면 KCIA, 보안부대? "
"...대답하기 어렵네요.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
사내는 움찔 놀라면서 황망하게 자리를 떴다.
세이코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한동안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 ⓒ김상수

몇 시간 후 세이코는 아사히신문 서울지사장 후지와라 쇼스케를 만났다. 이제는 누구라도 붙잡고 김재오의 행방을 묻고 싶었다. 지사장의 대답도 신통치 않았다.
"그럼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단 말입니까?"
"세이코 상. 아까 전화를 받고 지금 서울지사 직원들이 모두들 여기저기 알아보고는 있습니다만 한계가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지요. 멀쩡하던 사람이 갑자기 사라져 행방을 알 수가 없다니요."
"잠시 피신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민주화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불가피하게 권력의 힘이 미치지 않는 곳으로 피신을 해야만 하니까요."
"...피신요?"
"......"
"피신한다면 어디로 숨을 수 있는 건가요?"
"...제 생각에는 세이코 상도 위험합니다. 감시를 당하고 있을 겁니다."
"외국기자들도 감시를 당하나요?"
"전화 도청은 물론이고... 늘 경계를 해야 합니다."
"여긴 완전히 경찰국가군요. 조지오웰의 소설에서나 나오는 나라 말입니다."
"내가 아는 한국인 기자 한 사람도 2주일 전부터 갑자기 연락이 끊겼습니다. 세이코 상도 일본으로 돌아갈 때까지는 마음을 놓으면 절대 안 됩니다."
"걱정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럼 나중에 또 연락을 드리지요."
그는 걸어나가려다 문득 세이코를 돌아보고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세이코 상. 이건 제 생각입니다만 그냥 일본으로 돌아가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김재오 기자를 위해서도 말이지요. 지금 한국의 전두환 신군부는 아주 예민합니다. 이들의 신경을 거슬리면... 이 사람들은 법도 상식도 없는 깡패들입니다."
"아닙니다. 그냥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저는 김 상을 꼭 만나야 합니다."
세이코의 표정은 단호했다.

세이코는 호텔로 돌아와 샤워기의 물을 틀었다. 몸조심하라는 아사히신문 지사장의 말이 자꾸만 귀에 맴돌았다. 비누 거품을 내면서 온몸을 꼼꼼하게 씻었다. 세이코는 두렵지 않았다. 그보다는 김재오, 김 상이 이런 감시와 통제와 억압 속에 놓여 있었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았다. 한국사회는 도처에 빠져들기 쉬운 수렁으로 가득 찬 것 같았다. 서울은, 아니 이 나라 전체가, 세이코가 경험한 세계와는 전혀 다른 세계였다. 나는 지금 이 시간, 이런 세계에 자신이 존재하고 있고, 이런 세계에 살고 있는 남자를 사랑하고 있다, 내 사랑을 간절하게 찾아서 이곳으로 왔지만, 우리들 사랑을 파괴할지도 모르는 위험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 바로 이곳, 한국이라는 사실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샤워를 마치기도 전에 전화벨이 울렸다. 혹시 하는 기대감에 타월로 급히 몸을 두르고 전화기를 들었다. 기다리던 전화는 아니었다. 수화기 너머에서는 위협적인 일본어가 흘러나왔다. 조악하고 상스러운 일본어였다.
"이봐, 여긴 너희 나라 일본이 아니야. 뭘 함부로 알려고 돌아다녀 다니길. 넌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수 있어. 빨리 너희 나라로 돌아가!"
"누구세요, 누구시죠?"
전화는 뚝 끊겼다.
세이코의 머리카락에서 전화기 위로 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녀는 어찌할 바를 몰라 멍 하니 그 자리에 서 있다가 고개를 돌려 창밖의 야경을 바라보았다. 충격을 받았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런 야비하고 무례한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세이코는 가슴속에 분노가 치밀었다. 창밖의 도로에는 차량들이 꼬리를 물고 지나가고 있었다. 세이코는 자동차 불빛을 오래도록 응시했다.

어째서 인간인 사람들은 똑같은 실수를 무수히 계속해서 범할까? 1961년에 쿠데타를 당해 별별 끔찍한 경험을 18년간이나 경험한 한국인들은 어째서 또 같은 식의 군부 쿠데타를 20세기 후반에 되풀이 당할 수 있단 말인가.
세이코는 인간의 학습능력에 의문까지 들었다.

사람들은 공포 때문에 제 정신이 아니고 어떤 인간들은 나서서 악독해지기까지 했다.
한국의 민주주의 문화와 시민의식이 고작 이 수준은 아니지 않는가? 도쿄에서 들은 한국의 여론조작에 관한 얘기가 생각났다. 한국에서 가장 독자가 많은 3개의 신문이 쿠데타 군인들 편으로 재빨리 돌아섰고 여론을 조작하면서 여론 몰이에 나섰다는 얘기가 생각났다.

과연 이 나라의 장래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총칼로 위협을 하고 이익을 챙겨주겠다고 협력을 요청하면 신문들은 하나같이 권력에 빌붙어 여론까지 나서서 조작을 한다? 과연 이게 가능한 일이란 말인가?

세이코는 그 날 밤 겨우 잠에 들었다. 예의 일본에서 꾸던 같은 꿈이었지만 배경과 내용은 사뭇 다른 이상한 꿈을 꾸었다.
어둠 속에서 새가 날개 짓하는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큰 새는 날지 못하고 있었다.
넓은 강이 보였고 은색의 드넓은 강물 너머로 김재오, 김 상이 강둑에 서서 뭔가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이쪽으로 힘껏 외치고 있었다.
그 외침은 단단하게 튀쳐나와 얼음으로 뒤덮인 강을 깨뜨렸다.
얼어붙었던 강이 그의 외침으로 쩌억 갈라지더니 얼음조각이 되어 아래로 흘렀다. 깨진 얼음이 둥둥 뜬 강물은 그의 외침에 묵묵히 아래로 아래로 흘러갔다. 그의 목소리는 물질로 구성되어 있는 세상에 당당하게 반기를 드는 외침이고 아우성이었다. 그러나 그가 외치는 소리는 곧 침묵으로 바뀌었다. 힘이 실린 은빛의 침묵이었다.
그는 천천히 강으로 걸어내려 왔다. 드디어는 강물이 저 멀리로 빠져나간 바닷물 위까지 저벅저벅 그는 걸어갔다. 씩씩한 걸음걸이였다.
인간의 신념과 의지가 폭발하는 듯한 걸음걸이였다. 마치 인간이 어느 정도의 생물인지 그 장대함을 보이고 말겠다는 끈기가 묻어나는 그런 걸음이었다. 세이코는 김재오를 애타게 불렀다. 김 상! 김 상!
그리고 잠에서 깼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타는 갈증을 느꼈다.
▲ ⓒ김상수

13

나는 쓴다, 너의 이름을


세이코는 호텔 정문 앞에서 택시를 탔다.
앙상한 나뭇가지들 사이로 햇살이 희미하게 비치고 있었다.

택시가 D일보사 앞에서 멎고 세이코가 내렸다.
그녀가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늙은 수위가 그녀를 일본말로 제지했다.
"세이코상이시죠? 들어갈 수 없습니다."
세이코는 어리둥절했다.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일본말도 일본말이지만 '세이코 상' 이라고 분명한 일본식 발음으로 자기 이름을 부르고 있지 않는가.
"아, 일본말을 하시는군요. 그런데,.. 저를 아시나요? 제 이름을..."
수위는 불안한 얼굴로 조심스럽게 주위를 둘러보고는 그녀에게 빠르게 귓속말을 했다.
"알고 있습니다. 여기 신문사 사람들은 모두가 다 세이코씨가 왜 신문사를 찾아오는지를 압니다. 도와드리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김재오 기자가 보름 전부터 보이지 않습니다. 신문사 출근도 안하고 있습니다."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갔는지도 신문사에서는 전혀 모른단 얘깁니까?"
"......"
"정보부에서 잡아갔나요? 아니면, 경찰이나 군 보안부대에서 납치해 갔나요?"
세이코가 단도직입적으로 묻자 늙은 수위는 몹시 당황해했다. 수위는 난감한 얼굴로 주위를 살폈다.
"제가 마지막으로 김 기자를 본 건 한 보름 쯤 전인데요. 고향을 다녀오겠다는 얘기를 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정말로 김기자가 고향에 갔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고향이요? 태어난 곳은 서울이라고 들었는데요. 혹시 외가댁이 아닌가요? 보길도라고..."

그 때 건물 정문으로 두 사람이 들어섰다. 수위는 얼른 그 사람들에게 거수경례를 하면서 짐짓 세이코를 외면하는 척했다. 두 사람이 층계위로 사라지자 다시 주위를 살피면서 세이코에게 다가섰다.
"맞아요! 보길도! 전라남도 보길도를 간다고 그랬어요!"
"전라남도 보길도가 어딘가요?"
"여기서 아주 멉니다. 기차를 타고 버스를 타고, 또 배를 타고 가야 합니다. 저도 가본
적은 없습니다."

세이코는 아사히신문사 서울지사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 후지와라 지사장에게 도움을 청했다. 후지와라는 그녀에게 보길도(甫吉島)를 찾아가는 방법을 자세히 가르쳐 주었고, 한국인 직원을 통해 민박집까지 소개해 주었다.

그렇다면 빛이 있다는 것도 거짓이란 말인가?

세이코는 다음 날 아침 기차에 올랐다. 기차로 목포까지 가서 완도(莞島)행 버스를 타고, 보길도까지 12킬로 바닷길을 가야 했다. 서울에서 그 섬까지는 열두 시간이나 걸리는 먼 여정이었다.

세이코는 달리는 열차 안에 앉아 창밖을 내다봤다.
몸은 지쳤지만 그녀의 눈빛은 그 어느때보다도 반짝이고 있었다. 그녀의 머릿속은 오직 김재오를 만나야만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차 있었다. 그녀는 김재오가 외가인 보길도에 갔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믿고 기차에 올랐고, 그녀가 할 줄 아는 한국어라고는'감사합니다'라는 말 밖에는 없었다. 낯선 외국 여인이 이국땅에서 알지도 못하는 섬을 향해 가고 있다. 그녀는 그곳에 빛이 있을 거라 믿었다. 김상이 살아만 있다면... 그녀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세이코는 한국의 상황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후지와라 지국장의 얘기에 의하면, 한국에서 정치활동은 완전히 봉쇄되었고 일본에서 들었던 얘기대로 한국의 주요 신문들은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군부세력에 벌써부터 줄을 서기 시작했다고 했다. 이들 신문들은 국민들을 향해'괴담'에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고 떠들면서 오히려 자신들이 괴담을 만들고 있었다.

언론의 사명이나 자유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거리에서는 길가는 시민들이 수시로 검문을 당했고, 모든 뉴스는 군사 쿠데타 세력들로부터 통제와 검열을 받고 있다고 했다. 텔레비전은 이런 현실과는 상관없는 드라마와 쇼를 내보내면서 쿠데타 세력을 미화하고 있었다.

뉴스는 쿠데타집단에 유리한 방송만 쉬지 않고 내보냈다. 세상에 대해서 귀를 바짝 대고 가슴이 타는 열정으로 그 모든 것을 제대로 알아듣고 제대로 말하는 사람들은 슬프게도 어느 구석으로 마구 끌려가고 있다고도 했다.
▲ ⓒ김상수

세이코의 눈에는 모든 것들이 회색이자 주검으로 보였다. 그녀의 예민한 감각은 이 나라에 넓게 퍼진 불안과 공포를 섬세하게 포착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서로 꺼리고 의심했다. 마치 전염병이 유행하여 불태워지는 시신의 냄새가 밤이고 낮이고 도시 전체를 에워싸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의심이 공기처럼 사방에 퍼져 있고 비명과 죽음이 어느 구석에서 흐느끼고 있었다.

그녀는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면서도 서서히 잠에 빠져들었다.
기차는 빠른 속도로 컴컴한 터널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기차가 종착역인 목포에 도착하자, 세이코는 기차에서 내려 시외버스 터미널을 찾았다. 어렵게 물어물어 완도행 버스를 탈 수 있었다.
그녀는 오후 다섯 시가 되어 완도 선착장에서 배를 탈 수 있었다. 보길도로 가는 배였다.

보길도

보길도 뱃길은 아마쿠사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넓은 바다에 작은 섬들이 둥둥 떠 있는 모습은 일본 구마모토현 남서부 쪽의 바다 풍경과 흡사했다. 김재오가 일본에서 그녀에게 말했던 그의 외가가 있는 섬의 풍경이 그대로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아름다운 모래 해안들로 둘러싸인 작은 섬들은 낙원을 연상시켰다. 배에 탄 사람들의 얼굴도 하나같이 순박해 보였다. 뭍에서 섬으로 생활용품과 양식들을 이고지고 가는 모습은 일본에 여느 섬에 사는 사람들과 똑같아 보였다.

배는 거칠게 물이랑을 일으키며 앞으로 나아갔다. 세이코는 갑판에 서서 바다 물결을 바라보았고 아직 쌀쌀한 바닷바람을 그대로 맞았다. 노을이 서서히 바다 전체를 붉게 색칠하기 시작했다.

보길도 선착장에는 사십대 중반의 나이로 보이는 민박집 주인 여자가 나와 있었다.
세이코는 그녀가 D일보 김재오 기자의 친구 분 되시느냐고 떠듬거리는 일본말로 물어서 깜짝 놀랐다. 반가웠다. 아사히신문 지국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고 했다. 김재오, 김 상을 아는 사람을 낯선 섬에서 만나다니, 금세라도 김 상이 나타날 것만 같았다.

작은 화물차 운전석 옆자리에서 앉아 10여분 지나 고개를 넘어서자마자 민박집이 나왔다. 작은 초가집이었다. 120년이나 된 집이라고 했다. 세이코는 신기했다. 외딴 섬에 떨어져 있어서 기적처럼 형태를 유지할 수 있었는지, 이렇게 작고 아름다운 집이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는 건 일본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황토색 흙으로 담과 벽을 세웠고 볏짚을 엮어 지붕을 올렸다. 역시 볏짚으로 엮어 만든 이엉이 맨 위에 고깔처럼 씌워져 있었다. 마치 일본의 전통 다실(茶室)을 보는 듯 했다.

세이코는 역사학자 미요시 사타지가 쓴 센노 리큐(千利休)에 관한 전기가 생각났다. 센노 리큐는 일본에서 다성(茶聖)으로 칭송받는 인물이었다. 그녀는 2년 전에 한 잡지의 부탁으로 일본의 다도(茶道)에 관한 사진을 찍을 기회가 있었는데, 그 때 읽은 다도(茶道)에 관한 역사책이 미요시가 쓴 것이었다. 일본의 다도를 정립한 일본차의 선조가 바로 16세기의 센노 리큐였다. 그의 몸에는 조선인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센노 리큐의 조부는 일본으로 건너온 조선인이었다. 센노 리큐의 다실 구조도 조선 민가와 꼭 닮았으며, 다도구(茶道具) 역시 고려시대의 것이 많았다는 점도 그런 핏줄의 내력 때문이었다.

일본 국보로 지정된 세 곳의 다실 중에 으뜸이 바로 센노 리큐가 만든 초가집 다이안(待庵)이었다. 세이코는 눈이 내리던 겨울 도카이도 본선을 타고 야마자키(山岐) 오야마자키초(大山崎町)에 있는 묘키안(妙喜庵)에 갔던 적이 있다. 다실은 겨우 다다미 두 장의 작은 방이었다. 다실 입구는 무릎을 굽히고 몸을 웅그려야만 들어갈 정도로 작았다. 그곳에서 불가(佛家)의 선(禪)정신이 담겨 있다는 차를 마신 기억이 났다. 400년이 넘은 초가에서 와비챠(わび茶, 草庵の茶)의 원조를 맛볼 수 있었던 것은 사진가로서 직업적 보람을 느낄 수 있었던 일이기도 했다. 자신의 배를 칼로 자르는 할복으로 생을 마감한 센노 리큐의 최후는 비극적이었다. 그는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의 다도 스승이 되었다가 오다가 죽은 뒤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 다도 선생으로 초빙되었다. 그러나 그는 토요토미의 조선정벌에 반대해 토요토미의 미움을 사다 자결을 명령받았다.

세이코는 보길도의 초가에서 오랜만에 깊고 달게 잤다. 김재오가 어린 시절을 보낸 섬이라는 사실 때문인지 그가 가까이에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을 것만 같았다. 김 상이 그녀를 감싸고 지켜주고 있다는 푸근함이 들었다. 아침 식사도 맛있었다. 된장은 일본 것과 다르게 맛이 깊었다.

식사를 끝낸 세이코는 카메라를 들고 민박집을 나섰다. 우선 김재오의 외가를 찾아가야 했다. 민박집 주인은 그 집에는 김재오의 먼 친척인 노인이 홀로 집을 지키고 있다고 했다. 세이코는 이 섬에 유일한 기와집이라는 그 집으로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겼다.

김재오의 외가는 묵직한 기와를 얹은 낡은 기와집이었다.
한 노인이 나와 서툰 일본어로 세이코를 맞았다. 그는 김재오를 마지막으로 본 게 이년 전이라고 했다. 세이코는 목례를 하고 그 집을 나왔다.
김재오는 이곳으로 내려온 것이 아니란 말인가. 다리에 힘이 쭉 빠졌다.
김재오가 이 섬에 오지 않았다는 민박집 주인 여자의 말이 맞는 것인가.

세이코는 섬 이곳저곳을 천천히 다녀보기로 했다.
섬인데도 산세는 깊어보였다. 아름드리나무도 보였고 산언덕 길을 넘어서니 바다가 펼쳐지고 있었다. 아름다웠다. 바다는 아침 햇살을 받아 싱그럽게 빛나고 있었고 바다와 수평으로 뻗은 상록수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나무들은 방풍림인 듯 해안가에서 백여 미터쯤 떨어져 길게 숲을 이루고 있었다.
길게 뻗은 해안에는 검은 색깔의 갯돌이 수북하게 쌓여 파도가 칠 때마다 서로 몸을 부딪쳐 댔다.
김재오, 김 상이 일본에서 말했던 그대로의 풍경이었다.

세이코는 카메라를 들고 갯돌이 깔린 해안가로 나갔다.
바닷가에는 어린이들이 뛰어놀고 있었다. 아이들은 해안가를 따라 뜀박질을 하며 놀고 있었다. 강아지가 꼬리를 치며 아이들 뒤를 따랐다. 아이들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데 갑자기 헛구역질이 났다. 아이들이 보고 있을 것만 같아 간신히 구토를 참았다.
파도가 갯돌 위에 흰 포말을 남기며 부서지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천천히 몇 커트를 더 찍자 속이 진정됐다.
문득 세이코는 일본 시마바라 해안에서의 추억을 떠올렸다.
김재오, 김 상과 함께 해안가를 달리던 아침이 생각났다.

갯돌 부딪치는 소리가 다시 들렸다.
자잘한 갯돌위에 흰 물결이 부서졌다.
김 상은 없다. 여기 해안가에 김 상은 없다. 그는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일까.

세이코는 홀로 김재오의 섬에 버려진 것만 같았다.
그는 어디로 갔는가, 어디에 있는가 말이다, 김 상.
'기쁨은 언제나 고통 뒤에 온다고 했는데 이 고통의 기다림은 언제 끝이 나는 건가요.'

빛의 사랑

보길도의 상록수 숲 너머로 해가 저물고 있었다.
나무 가지마다 빨간빛이 물들어 불타고 있었다.
세이코의 뺨에도 저녁 해가 발그스름하게 물들었다.
검은 숲속으로 이어지는 희미한 산길로 나섰다.
숲 위로는 새들이 푸드득 소리를 내고 날았다.
어느 집 돌 벽 앞에서 세이코는 걸음을 딱 멈추었다.
돌 벽 그 너머로 서쪽 하늘을 물들이고 있는 저녁 해의 노을빛이 계절을 넘긴 빈 논바닥을 빨갛게 물들이고 있었다. 거기에는 허수아비가 서 있었다.
빛의 각도 때문일까, 그것은 창에 찔린 채로 서있는 인간처럼 보였다. 섬뜩했다.
세이코는 얼어붙은 듯이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바로 앞에 돌 벽에는 마른 나무 덩쿨이 벌거벗었고 한두 잎의 노란 잎 새만이 바람에 흔들렸다.

민박집에 밤은 깊어가고 있었다.
세이코는 밤이 깊도록 뜬눈으로 누워있었다.
이불로 머리를 덮어도 바닷물소리가 들려왔다.
먼데서 바람 소리도 들렸고 심벌즈 소리처럼 갯돌 부딪치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렸다.
세이코는 눈가가 촉촉해졌다.

김재오, 김 상, 왜 나는 그의 운명 속으로 파고들었는가, 왜? 나는 그의 손을 잡았는가.
나는 김 상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었던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김 상은 돌연 행방이 묘연해졌는데도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또 어제도 오늘도, 나는 그를 위해서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김 상은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처럼 무기력하게 그냥 끝날 사람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그는 비굴한 굴종으로 부조리한 현실을 받아들이는 그런 인간이 아니다. 그는 곧장 앞으로 돌진할 사람이다. 그러나 이런 사실들이 무엇보다 무섭다. 무엇을 위한 무엇을 향한 돌진인가. 생을 존중하는 자는 한편으론 죽음에 가까이 있는 자일 수 있다는 말을 나 세이코는 믿어야하나. 내게 있어서 김 상, 그는 삶으로 이어지는 길이며 내 삶의 의미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러나 말이다. 어쩌면 오랫동안 그와 떨어져 있을지도 모른다면? 그의 소식을 듣지도 못하고, 그의 목소리도 못 듣고, 그의 눈을 쳐다볼 수도 없다면?
세이코는 외롭고 무서웠다. 그러나 세이코는 생각했다. 그리고 마음에 깊이 새겨야 할 말이 있다고 스스로 다짐했다.
'그는 분명히 살아있다.'

다음 날 해가 뜰 무렵 새들의 지저귐 소리에 아침을 맞았다.
세이코는 아침 일찍 민박집에서 나와 해안가를 따라 걸었다.
어부들은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기 시작했고 그녀는 간간이 바다 새를 카메라에 담았다.
발길 닿는 대로 걸었다. 바닷바람이 불었다.
한걸음 디딜 때마다 높아지는 파도소리와 짙어지는 소금 냄새가 가까이 다가왔다.

그녀는 해안가 갯돌 위를 걸었다. 해변에서 조개를 줍는 어린이들의 조잘거리는 소리가 파란 하늘로 울려 퍼졌다.
날씨는 매웠지만 아이들은 아침부터 바닷가로 나와 놀고 있었다.
저 멀리 안개처럼 피어있는 완만한 능선 넘어서 멀리 산등에는 잔설(殘雪)이 햇살을 받아 반짝거리고 있었다.

세이코는 오솔길로 들어섰다. 손질이 덜 된 인공림을 빠져나가자 그 오솔길은 바로 모래사장으로 이어져 있었다.
한 참을 걸었다. 파도가 밀려왔다 밀려가고 있었다.
그 날은 하루종일 파도와 같이 보냈다.

세이코는 나흘째도 섬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나흘째 저녁,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이었다.
세이코는 작은 부둣가 조그만 식당에서 늦은 점심식사를 하고 있었다.
이빨이 다 빠진 밥집의 주인할머니는 큰 솥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밥을 국자로 퍼 세이코에게 내밀었다. 할머니는 솥뚜껑을 덮고 부뚜막에 앉아서 생선 한 마리를 가시를 발라가며 날름날름 먹고 있었다.
식당 창문에는 고양이 한 마리가 아까부터 이빨 빠진 할머니가 먹고 있는 생선가시에 홀려 있었다.
세이코는 할머니 모습과 고양이를 번갈아 슬쩍 쳐다보면서 카메라 셔트를 눌렀다.
할머니는 생선을 다 먹고는 뼈만 남은 생선을 바닥으로 던졌다. 그러자 지켜보고 있던 고양이가 몸을 날려 생선뼈를 챘다.

바로 그때였다,
식당 바깥에서 무어라고 외치는 사람들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사람들이 어딘가로 몰려서 뛰어가고 있었다.

"사람이 죽었다!"

섬사람들은 일제히 해안으로 달려갔다.
세이코도 얼결에 카메라를 들고 사람들의 뒤를 쫓았다. 숨찼다.
해안가에 도착하자, 섬사람들이 해안모래밭 위로 물결에 떠밀려온, 곶의 해변 쪽으로 끌려올라온, 한 익사체를, 양복을 입고 있는 한 남자의 주검을, 둘러싸고 있었다.
세이코는 사람들을 헤치고 황급하게 안으로 파고들었다.
김재오였다.
그는 바로 김 상이었다.

세이코는 더 자세히 보기위해 다가갔다.
세이코는 둘러 서있는 사람들을 밀치고 가까이 다가갔다.
왼발에는 콘크리트 조각과 철사조각이 매달려 있고, 철사로 손과 팔을 묶인 상처가 있었다. 양복 상의는 찢어진 채고 흰 와이셔츠는 바다풀이 엉켜 있었다.
한쪽 발은 양말을 신었고 한쪽 발은 구둣발인 채, 얼굴에는 타박상 흔적이 보였다.
그는 그렇게 죽어 있었다.

그녀의 넋은 소리를 질렀다.
슬픈 오후의 세계는 여전히 햇살을 비추고 있었지만 김 상, 그는 그렇게 죽었다.
울거나 슬퍼하지 않고 소리도 없이 영문도 모르게 죽어 있었다. 그는 호흡이 멎었고 바닷가에 몸이 부풀어 누워있었다. 그는 들을 수도 없다, 말 할 수도 없다, 그는 그의 모든 것과 이별을 했다.

세이코는 소리도 없이 울부짖었다.
이럴 수가! 이럴 수가! 오! 어떻게? 어떻게! 이럴 수가! 김 상! 김 상!"

그녀는 일본말로 소리치며 김 상의 주검 앞에 무릎을 꿇었다.
세상은 느리게 슬로우모우션처럼 수평으로 지나갔다.

세이코의 울음은 흐느낌도 없는 처절한 울음이었다.
섬사람들은 하나같이 이상한 표정으로 낯선 일본 여자를 바라보고 서있었다.
세이코는 일어나 섬사람들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섬사람들은 세이코의 일본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왜? 무엇 때문에 김 상이 이렇게 죽어야만 하는 겁니까? 왜 당신들 한국인들은 당신들 끼리 계속해서 사람을 죽이는 겁니까? 왜? 무엇 때문에? 왜? 무엇 때문에 김 상을 죽이 나요? 왜? 김 상이 이렇게 죽어가도록 당신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겁니까? 왜? 왜?"

세이코는 일본말로 피 같은 고함을 낮게 토해내고 있었다.
섬사람들은 갑작스런 일본여자의 고함에 하나같이 어리둥절해 하는 얼굴들이었다.

세이코는 침착하게 일어나 김 상의 주검을 카메라에 담았다.
파도의 잔물결이 죽은 김 상의 발목을 적셨다.
섬사람들이 모여 쑤군거렸다.
저녁노을이 낮게 깔리고 있었다.

세상은 슬로우모우션처럼 지나가다가 툭하고 테이프가 끊기듯이 멎었다.

▲ ⓒ김상수


14
1980년 6월 30일, 일본 도쿄


'이 세상에는 사랑이 정말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고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 세상에 휩쓸려서 그냥 살고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저도 그 중에 한 사람이고요.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나는 한 남자를 사랑했습니다. 한국인인 그 남자는 자기 조국의 사람들을 생생하게 떠올리고 여기 일본에서 한국으로 돌아갔습니다. 뉴스에서는 다루어지지도 않는 죽음으로 그는 최후를 맞았습니다. 또 한 번 더 생각하고 말하게 됩니다. 깨닫지 않으면 비극도 비극이 아닙니다. 나는 그를 존경합니다. 사랑합니다. 내 영혼 속에서 그는 영원한 존재가 되어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불길한 소식이 계속 들려 왔습니다. 유력한 대통령 후보였던 김대중 씨를 비롯한 많은 지식인들이 쿠데타 군인들에게 체포당했다는 뉴스가 한 달 보름 전에 들려왔습니다. 사악한 마음을 품은 일부 정치군인들과 무엇이든 이권을 챙기려는 자들이 서로 결탁하여 한국을 송두리째 집어삼키려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피에 굶주려 있었습니다. 지난 5월엔 전라남도 광주에서 무장한 특수부대 군인들이 데모하는 민간인들을 향해 총을 쏘았고 민간인들도 예비군 무기고에서 총을 꺼내 총을 들고 대항했다는 뉴스까지 들었습니다. 나는 김 상의 죽음이 벌써 이 사태를 예고하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세이코는 인파 속에서 도쿄 시내를 걷고 있었다.
배가 부풀어 아이 낳을 달이 찬, 만삭(滿朔)의 몸이었다.
그녀는 빨간 신호등을 앞에 두고 횡단보도에 멈춰 섰다.
양손에는 책이 든 봉투와 가방을 들었다.

스튜디오로 돌아 온 세이코는 텔레비전을 켰다. 뉴스가 나왔다. 한국의 광주에서는 전두환 군대가 민간인들을 학살하는 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독일어 자막을 일본글자로 처리했고 일본어로 해설을 내보내는 화면이었다.
그녀는 냉정한 얼굴로 스튜디오 한가운데 서서 텔레비전을 봤다.

독일의 공영방송인 ARD(Allgemeine Rundfunkaustalt Deutschlands)의 북부지역방송인 NDR(Norddeutsche Rundfunk)의 도쿄 특파원 유르겐 힌츠페터(Juergen Hinzpeter)가 한국으로 들어가 광주를 취재했던 이 필름은 세계로 송출된 유일한 광주 현장 화면이라는 설명도 있었다. 희생자는 공식적으로 2백 명 정도, 비공식적으로 2천여 명으로 추산된다는 멘트가 흘러나왔다.

힌츠페터의 인터뷰가 나왔다. 그는 도쿄에서 한국의 전라남도 광주에서 소요가 있다는 라디오 뉴스를 듣고 19일에 도쿄를 출발하여 서울을 거쳐 광주로 향했다고 했다. 서울과 한국의 지방에서는 사람들 아무도 광주의 긴박한 사태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 했다. 전두환이 계엄군을 통해 언론을 철저하게 통제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힌츠페터는 5월 20일 자동차를 몰고 처음으로 봉쇄된 도로를 뚫고 광주로 진입하는데 성공했단다. 그는 군인들에게 심문을 당하면서'다리가 후들거렸다.'고 말했다. 그러나 당시 외국인들은 광주시내로 진입할 예외적인 권리를 가지고 있었다고 했다. 군인들로부터 검문을 당할 때 자기 가족을 찾으러 왔다고 핑계를 대면 들어갈 수가 있었단다.

그가 광주에 들어가자 시민들과 학생들은 외국인이 왔다고 기뻐하고 환호했다. 그가 광주에 도착한 5월 20일 이전, 이미 18일과 19일, 공수부대에 의한 잔혹한 진압사태가 지나간 다음이었다. 그는 광주 사람들의 서툰 영어와 국제사면위원회 소속의 젊은이들로부터 그간의 사건들에 관하여 설명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21일 새벽 다시 총성이 들렸고 사망자가 늘어났다. 그가 찍은 영상에는 군인의 곤봉에 맞아 머리가 함몰된 된 채 피를 철철 흘리는 청년이 보였고, 태극기에 싸여 길에 누워 있는 시신들이 있었고, 아들딸의 주검 앞에서 오열하는 부모들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허리춤에 대검을 꽂고 트럭에서 내려 행진곡을 부르는 공수부대원들의 모습도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었다.

힌츠페터, 그는 즉각 광주항쟁의 의미를 이해했다고 말했다. 그는'사태가 너무나 엄중하고 비극적이라 찍은 그대로 즉각 영상을 송출해야만 했다.'고 얘기했다.
그는 특히 한 줄로 결박당한 콘크리트 바닥 위의 시체들을 촬영했다. 한때 의학을 공부한 그는'머리에 총상을 입은 18세에서 25세 사이의 젊은이들을 발견하고 이것은 의도적인 사살임을 확신한다.'고 말했다.

그는 필름을 해외로 빼돌리는 것이 목숨을 걸 정도로 위험한 일임을 알고 있었지만 다음날까지 이틀간 광주시내 전역을 돌며 찍은 이 위험한 필름을 숨겨 군대의 검문을 뚫고 광주를 빠져나와 쿠키 통에 필름을 숨겨서 도쿄 공항에서 독일로 필름을 전송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5월 22일 저녁 8시, 필름은 독일 전역에서 방송되었고 바로 다음날 유로비전과 외국 방송사들을 통해 전 세계에 방영됐다. 미국 CBS 전파를 타고 광주의 비극은 한국을 제외한 세계 모든 사람들이 비로소 알게 됐다. 오직 사건의 당사자들이자 주인공인 대한민국 사람들만 몰랐다.
그 와중에 힌츠페터는 놀랍게도 다시 광주로 돌아갔다. 그는 다시 상무대 체육관에 즐비한 관들과 오열하는 가족들, 그리고 수습대책위와 무장한 청년들, 참혹한 모습의 시신들을 다시 카메라에 담았다고 했다.

그는 광주에서 들었던 유족들의 오열이 너무나 생생하며 진실을 외면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전두환 등의 학살자들이 영원히 숨기고 싶었던 참상이지만 세계에 알려야만 했었다고 말했다.

세이코는 텔레비전 스위치를 껐다.
책이 든 봉투에서 몇 장의 종이를 꺼내들었다. 낮에 만났던 뉴스위크 도쿄지국장 브래들리 마틴으로부터 받은 특파원 리포트였다. 의자에 앉아 천천히 읽었다.

테리 앤더슨 AP통신 기자
5·18은 사실상 군인들에 의한 쿠데타였다. 놀라움과 분노로 가득 찬 시민들 앞에서 시위대를 추격하며 곤봉으로 때리고 최루탄은 물론 총까지 쏘았다. 공수부대원들은 상점과 시내버스 안까지 쫓아가서 젊은이들을 잡아 끌어냈다. 광주는 분노로 일어섰다. 시민들은 세무서와 KBS 방송국을 불태웠고, 무기고를 습격해 군인들과 전투를 벌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전두환은 상황을 진정시키기 위해 경찰과 군대 병력을 광주 밖으로 철수시켰다.
언론인으로서 우리는 중립을 지키고 최대한 객관적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이 옳고 그른 것을 몰라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압제자와 피해자를 구분할 수 없다는 것은 더욱이 아니다. 나는 독자들에게 광주를 확실히 알리려고 한다. 내 개인적인 견해가 아닌 진실로서 말이다. 나는 이 일을 할 수 있어야만 한다.

헨리 스코트 스톡스 뉴욕타임스 서울 특파원
광주에서 5월 18일과 19일, 사건들이 터진 직후에 글라이스틴 서울 주재 미국 대사는 워싱턴에 한국군대가 길거리에서 시민들을 총검으로 찔러 죽였다고 보고했다. 정확한 보고였다.
그럼에도 며칠 안 가서 광주에 대한 정책결정을 위해 5월 22일에 열린 백악관 회의 바로 직전에 글라이스틴은 보고의 전체적인 개요를 뒤바꾸어버렸다.'15만명의 사람들이 제멋대로 날뛰고 있다''소중한 재산이 파괴되고 있다.' 이런 미국대사의 보고서는 나를 위시한 외신 언론인들이 그곳에 내려가서 직접 목격하고 내렸던 판단과는 너무나 달랐다. 터무니없이 광주의 모습을 곡해한 것이었다.

심재훈 뉴욕타임스 서울 주재기자
광주시민들에게서 느낀 첫인상은 폭동이 아니었다. 봉기였다. 나의 판단은 광주 시내를 여기저기 돌아보면서 더욱 확신으로 굳어졌다. 시민들의 봉기는 철저히 외부 세계와 단절되어 있었다. 광주는 대한민국이라는 바다에서 외로이 떠있는 고도(孤島)였다.

샘 제임슨 AP통신 기자
한국전쟁 이후 한반도에서 1980년 5월의 군대만행으로 빚은 희생보다 더 큰 것은 없다. 군대의 만행은 이내 7일간의 광주사태로 치달았다. 한국의 거대 신문들은 광주 소재 한국화약 창고의 다이너마이트 탈취 같은 시위자들의 과격한 행동을 강조했고 군대의 잔인한 행동에 대해서는 침묵했다.

유르겐 힌츠페터 독일 NDR.ARD TV 기자
병원 안에 줄줄이 놓여 있던 많은 관을 열어 그들의 사랑하는 친구와 친척들을 광주 시민들은 내게 보여주었다. 대부분 어린 학생들의 시신이었는데 몽둥이에 맞아 죽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의 머리는 온통 상처투성이였다. 치밀어 오르는 울음을 간신히 참으면서 이 비참한 광경을 나는 필름에 담았다.
내 생애에서 이런 비슷한 상황을 목격한 적은 없었다. 심지어 베트남전쟁에서 종군기자로 활동할 때도 이렇듯 비참한 광경을 나는 본 적이 없었다. 가슴이 너무 꽉 막혀서 영상을 찍는 것을 잠시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진실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안다. 하지만 이건 진실이기 때문에 나는 알려야만 했다.

블레들리 마틴 미국 볼티모어 선 서울 특파원
나는 지난 25년 동안의 기자생활 중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중국의 장칭(江靑) 등 4인방 재판, 그리고 인도의 인디라 간디 수상 암살 이후 폭동과 살인사건 등을 취재해왔다. 그러나 나는'광주'의 참상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어떤 사건이 나의 기억 속에 가장 뚜렷하게 남아 있느냐고 누가 물어보면, 한 마디로 나는 '광주'라고 대답한다.
광주항쟁 기간 동안 나는 단 하루밖에 광주에 머물지 않았지만, 죽음을 걸고 폭압에 맞서 투쟁했던 용감한 광주시민들의 모습이 나의 뇌리 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세이코는 특파원 기자들의 리포트를 책상에 올려놓고 의자에서 일어났다.
스튜디오 창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창을 가렸던 블라인드를 활짝 열었다.
햇살이 쏟아져 들어왔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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