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흑같은 MB 시대, '정세의 등대'를 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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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books] <정세현의 정세 토크>
칠흑같은 MB 시대, '정세의 등대'를 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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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0월 4일 대한민국 노무현 대통령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정상회담이 끝난 직후의 일이다. 정상회담 특별수행원으로 평양을 다녀온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을 <프레시안>의 황준호 기자가 그날 밤 자정 무렵 만나 인터뷰를 했다. 정 전 장관은 설렁탕으로 늦은 저녁 끼니를 해결하면서 특유의 입담으로 '평양 이야기'를 풀어놨다.

이 인터뷰는 다음날 이른 새벽 <프레시안>에 실렸다. 대박이 터졌다. 정상회담 2박 3일간 <프레시안>이 봇물 터진 듯 쏟아낸 모든 정상회담 기사의 클릭수(방문자 수)보다 이 인터뷰 한 건의 클릭수가 많았다. 헤겔이었던가. 필연은 우연을 가장해서 자기 모습을 드러낸다고 말한 사람이.

정 전 장관한테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프레시안> 쪽에는 그 뒤 '정세현의 정세 토크'라는 아이디어를 낸 것은 필연이라고 할 수 있다. 속된 비유를 하자면, 장사꾼이 '대박 상품'을 포기할 이유가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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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세현의 정세 토크 : 60년 편견을 걷어내고 상식의 한반도로>(정세현 지음, 황준호 정리, 서해문집 펴냄). ⓒ서해문집
정세현 전 장관은 비유의 달인이다. 그는 통일부 차관 시절, 1998년 11월 첫 배를 띄운 금강산 관광 사업을 '햇볕 정책의 옥동자'라고 불렀다. 이 작명은 그 뒤 언론과 전문가들 사이에 널리 회자됐다. 그는 한학과 역사에 조예가 깊다. 첫 애를 본 통일부 출입기자가 아이 이름을 지어달라고 정 전 장관한테 부탁한 일도 있다.

그런데 정 전 장관은 언론 기고를 좀처럼 하지 않는다. 언젠가 기고를 부탁했더니 돌아온 답변은 이랬다. "원고지 10매를 쓰려면 10시간 이상 걸려." 쓰고 싶지 않다는 말씀인데, 글을 쓸 재주가 없어서라기보다는 효과적이지 않다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느껴졌다.

언론 기고를 거의 하지 않는 것과는 달리 신문과 방송 좌담이나 인터뷰는 마다하는 일이 별로 없다. 그때마다 오랜 연륜과 전문가적 소양에 받침된 정세 분석과 전망이 특유의 입담에 실려 작렬한다. 가독성이나 시청률이 높지 않기로 악명 높은 좌담과 인터뷰이지만, 등장인물이 정 전 장관일 때는 대박이 터질 때도 적지 않다. 정 전 장관의 분석과 전망은 깊고 넓지만, 무엇보다도 큰 힘은 시민의 상식과 흐름을 같이 한다는 데 있다는 게 일반적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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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현 전 장관은 서울대학교 외교학과에서 <모택동의 대외관 연구>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러니 그는 관료이기 이전에 공산주의 연구와 국제정치학에 능통한 학자다. 그가 관료의 길에 들어선 때는 박정희 정부 말기인 1977년. 그 뒤 김영삼 정부 때 청와대 통일비서관으로 일했고, 김대중 정부에서 통일부 차관과 통일부 장관을, 노무현 정부에서 첫 통일부 장관을 지냈다.

그 뒤론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의 대표상임의장으로 4년간 일했고, 지금은 김대중평화센터 부이사장으로 있다. 왜 이런 이력을 언급하느냐면, 그의 정세 분석과 전망에는 학자의 엄정함과 오랜 관료 생활로 터득한 현실감이 화학적으로 녹아들어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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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에 장기 연재되어온 '정세현의 정세 토크'는 이런 여러 사정이 행복하게 만난 경우에 해당한다. 글쓰기보다는 말로 하기를 즐기는 정세현 전 장관, 그리고 독자들이 마치 현장에서 듣고 있다는 착각에 빠질 정도로 정 전 장관 특유의 말투를 글로 정갈하게 재현해낸 <프레시안> 황준호 기자의 존재는 축복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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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현의 정세 토크'는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 씨 피격 사망 사건이 남북 관계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운 2008년 7월 15일 첫 회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총 60차례 진행됐다. 애초 1년만 할 계획이었지만, 열화와 같은 반응 덕에 '토크'는 계속됐다.

외교·안보·통일 분야 담당 기자들 사이엔 '이명박 정부의 정책을 제대로 비판하는 하나의 가이드라인' 구실을 하고 있다는 얘기가 회자된다. 정 전 장관도 "강의 시간에 '정세 토크'의 내용을 인용하기도 한다는 몇몇 교수들을 만나면서 책임감 비슷한 것을 느꼈다"고 회고했다. 황 기자가 정 전 장관한테 연재를 계속하자고 설득하면서 했다는 말이 걸작이다.

"장관님과 프레시안이 공동 출자를 해서 사설(私設) 등대를 하나 만들었는데, 사람들이 그 등대 불빛을 보고 항로를 찾고 있네요. 우리 마음대로 만들었는데, 하다 보니까 공공성이 커져버렸습니다. 그래서 등대를 끄는 건 마음대로 할 수 없게 된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그냥 계속 하시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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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행본으로 나온 <정세현의 정세 토크>는 프레시안에 60회 연재된 글을 33개로 압축한 것이다. 책은 3부로 구성돼 있다. 1부 '남북의 망령들'에 묶인 9편의 글은 '퍼주기론' '대북 지원 핵·미사일 개발 전용론' '통일 비용 망국론' 등 남쪽의 이른바 '보수 세력'(보수주의자들은 민족을 중시한다는 게 정치학의 정설인데, 한국의 이른바 보수주의자들은 왜 '반북·친미'를 성경처럼 모시는지 모르겠다)에 뿌리 깊은 이데올로기적 편견의 허울을 벗겨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북쪽의 자기 중심적 정세 판단 등에 대해서도 일침을 가한다. 이 책의 정수가 되는 부분으로 거듭 숙독하시기를 권한다. 술자리 토론에서 의견이 다른 지인과 사이에 '마음의 다리'를 놓을 수 있는 길을 발견하실 수 있으리라 믿는다.

2부 '우공이산(愚公移山)'에는 남북 관계사의 이면을 깊게 들여다볼 기회를 제공한다. 이 가운데 '일흔여덟의 DJ, 젖 먹던 힘을 다했다'는 정세 토크 때 최고 히트작의 하나였다. 3부 '요동치는 21세기 동북아'에선 대한민국의 유일한 동맹국이자 초강대국 미국과 무섭게 떠오르고 있는 대국 중국 사이에서 한국이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에 대한 깊은 통찰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구차해진 대중 외교, '유소작위(有所作爲)'를 자초하다-북중 관계는 한미 관계와 같은가?"는 중국 전문가인 정 전 장관의 회심의 역설로 꼭 챙겨 읽는 게 좋겠다.

결론을 당겨 말하자면, 단행본 <정세현의 정세 토크>는 전문 서적 10권 이상을 읽은 뒤에 느낄 지적 희열과 개안을 독자들에게 안겨줄 것이라 믿는다. 정 전 장관 특유의 입담과 촌철살인의 비유는 복잡하고 어려운 내용에 상대적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돕는 강력한 촉매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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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너무도 중요한 내용이 많아 간단한 요약과 논평이 어렵다. 다만 맛보기 차원에서 몇 가지만 언급한다. 정 전 장관이 이 책을 읽을 독자들에게 북한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와 관련해 꼭 전하고 싶은 말씀은 아마도 이 대목이리라.

"경제 공동체다 뭐다 여러 가지 거창한 개념을 쓰지만 결국은 민심입니다. 남북의 민심이 연결되도록 하는 것만 한 통일의 왕도는 없어요. 민심이 연결돼서 북쪽이 남쪽 때문에 어려운 시기를 넘기게 되면 북쪽도 남쪽 중심의 통일이 되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는 겁니다." (91쪽)

'퍼주기론'에 대한 정 전 장관의 지적은 잠자던 양심을 뒤흔든다.

"1999년 통계를 보니까 버려지는 곡물 쓰레기가 174만 톤입디다. (…) 174만 톤이면 북한 식량 부족분의 70~80%입니다. 그러면서 북에 쌀 지원하는 걸 퍼주기라고 욕하면 벌 받습니다. 벌 받는다고요. 특히 '퍼주기'라면서 대북 지원에 인색한 사람들일수록 윤택한 사람들이 많고, 음식물 쓰레기를 그렇게 많이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음식물 쓰레기도 못 만들어요. 비싼 음식점에서 비싼 음식 시켜놓고 손도 안 대고 나오는 그런 음식들이 결국 쓰레기가 되는 건데…." (15쪽)

몸무게가 자꾸 는다고 시켜놓은 음식 남기는 분들, 찔리지 않습니까?

'통일 비용론'에 논평은 상식의 핵심을 찌른다.

"1990년대 중반에 통일 비용론이 왜 국민들로 하여금 차라리 분단 상태에 있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갖게 만들었느냐? 통일되면 분단 비용이 더 이상 안 들어가는 얘기는 안 하고 투자 비용만 계산해서 내놨기 때문입니다. 생돈 들어가는 얘기만 하고 그 돈이 새끼를 치는 얘기는 안 하니까 '아이고, 돈 엄청 드는구나.' 이렇게 생각한 거죠. 그래서 통일 비용론은 분단 이데올로기의 역할을 했습니다. (…) 우리 속담에 '쌀독에서 인심 난다'고 했습니다. 북쪽도 그 말을 잘 써요. 지원을 통해서 민심의 흐름이 바뀌는 겁니다."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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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전 장관이 단행본을 출간하며 밝힌 '바람'을 전하는 것으로 난삽한 글을 맺는다.

"책을 내면서 한 가지 바라는 게 있다면, 스스로 보수층에 속해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인터넷 매체에 접근하기가 귀찮았거나 이런저런 이유로 다소 거부감이 있던 분들이 오프라인으로 나온 '정세 토크'를 통해 내 이야기를 듣고 생각을 달리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설령 거기까지는 어렵다면, 남북 관계에 대한 편견을 일단 내려놓고 흉금을 터놓고 토론할 수 있는 기회가 이 책을 통해 마련됐으면 한다."

정 전 장관의 '꿈'은 이뤄질까?
tyio@pressian.com 다른 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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