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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나누는 '핫와이프', 그 은밀한 현장은?

[프레시안 books] 데이비드 레이의 <욕망의 아내>

이은영 사이언스북스 편집자 2011.02.11 16:16:00

성(性·Sex)은 존재하는 모든 것 중에서도 가장 매혹적이고, 복잡하며, 불가사의하다. 지구상의 생명을 이토록 다양하고 풍성하게 이끈 장본인인 동시에 그 생명들이 편을 갈라 지난한 갈등과 반목을 일삼고 때로는 파멸에 이르게 만드는 불행의 원천이기도 하다.

성이 지닌 다면적 모습에 매료된 수많은 생물학자, 의사, 심리학자, 인류학자 등이 성의 본질을 밝히고자 노력해 왔지만 여전히 성과 관련한 많은 부분들은 비밀의 장막에 가려져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인간 여성의 성은 때로는 지나치게 비하되고 때로는 지나치게 과장되며 왜곡된 진실 속에서 억압과 찬양의 부침을 거듭해서 겪어야 했다.

실제 여성들의 성 심리나 행동에는 일절 관심을 두지 않은 채(어쩌면 일부러 애써 무시한 채) 오랫동안 (남성) 인간 사회는 그들이 만든 기준과 공식으로 여성들을 재단하고 그녀들에게 성녀와 창녀, 순종적이고 자기희생적인 모성과 적극적이고 이기적인 여성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했다.

다행히도 20세기 들어 이러한 잘못된 시각을 교정하고 여성의 성을 바로 보려는 (페미니스트들을 포함한) 일군의 학자들의 노력으로 왜곡된 진실들은 차례로 수정되고 그 자리에는 새로이 밝혀진 진짜 진실들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2010년에 출간되어 커다란 화제를 불러온 <여자가 섹스를 하는 237가지 이유>나 페미니스트 진화생물학자 세라 블래퍼 허디가 쓴 <어머니의 탄생>과 <여성은 진화하지 않았다(The Woman That Never Evolved)> 등은 과학계 내부에서 여성의 성을 바라보는 시각 또한 급격히 달라졌음을 보여 준 결과물들이었다.

▲ <욕망의 아내>(데이비드 레이 지음, 유자화 옮김, 황소걸음 펴냄). ⓒ황소걸음
여기 여성의 성에 새로운 장을 열어 줄 정도는 아니더라도 멍석 하나는 깔아 줄 또 한 권의 책이 있다. 미국에서 임상심리학자로 활동하고 있는 데이비드 레이는 2005년 인터넷을 통해 '핫와이프(Hotwife)'라는 이름 아래 성적 교류를 일삼는 사람들을 접하게 되었다. 주로 동명의, 혹은 거기에서 약간의 변형을 거친 제목을 단 웹사이트들에서 서로 만나 정보를 교환하고 대상을 물색해 '아내 나누기(swinging, 말 그대로 아내를 다른 남자와 성적으로 나누는 행위이다)'에 이르는 이 해괴한 현상은 날로 증가하는 듯 보였으며, 도대체가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일들을 즐겨 하고 있다는 사실에 레이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엄청나게 놀랄 정도는 아니지 않은가? 성적 행동과 관련해서는 이미 너무도 다양한 사례들이 널리 알려져 있다!)

'아내 나누기'에 나서는 사람들(그들은 스스로를 스윙어(swinger)라고 불렀다)은 어떤 사람들일까? '핫와이프'는 정확하게 어떤 성적 행동을 지칭하는가? 기존에 알려져 있던 '스와핑(swapping)'이나 '개방 결혼(open marriage)', '폴리아모리(polyamory)'와는 다른 것인가? 스윙어들은 성적으로, 정신 병리적으로 문제를 지닌 이들일까? 아니면 인간의 성적 본성 내에 '아내 나누기'는 내재되어 있는 것일까?

이러한 질문들에 답을 얻고자 레이는 '아내 나누기'에 나서는 사람들로부터 실제 사례들을 수집하는 동시에 인류학과 진화심리학, 사회학, 역사학, 문학 작품 등 각종 문헌에서 관련성을 보이는 자료들을 차곡차곡 모아 <욕망의 아내>라는 이름으로 한 권의 책을 펴냈다.

레이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아내 나누기를 하는 사람들(스윙어)은 보통 성, 성 역할, 관계에 있어서 매우 개방적이고 자유주의적이며, 전문직과 경영직에 종사하는 등 소득과 교육 수준에서 모두 평균 이상을 보였다. 또 활기 넘치며 적극적인 성격들을 지녔으며 대개 나이가 많고 자녀를 둔 부부들로서 몇 년에서 몇 십 년의 결혼 생활 끝에 서로에 대한 견고한 이해와 신뢰를 바탕으로 새로운 성적 모험을 즐기기 위해 '핫와이프'의 세계에 들어선 경우가 많았다.

'욕망하는 아내', '뜨거운 아내'라는 단어에서 연상되듯 채털리 부부와 같은 성적으로 문제가 있는 남편과 그에 반해 젊고 욕정으로 가득한 아내가 등장하지도 않으며, 매혹적인 아내를 자랑하고자 시종에게 아내의 침실을 엿보게 하는 고약한 취미를 가진 리디아의 왕 칸다울레스도 등장하지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이 또(!) 생겼다며 젊고 혈기 넘치는 새 남편을 집으로 데려오는 <아내가 결혼했다>의 '인아(손예진)'와 같은 아내도 등장하지 않는다.

게다가 마약이나 알코올에 흠뻑 취해 즉흥적으로 몸을 섞거나 하늘 아래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모두가 뒹구는 난교 파티 따위를 상상했다면 이 책을 펼치는 순간 실망하고 말 것이다. 따라서 남편들은 책을 읽기도 전에 섣불리 아내의 욕망이 어느 날 갑자기 화산처럼 분출해 그녀가 침실 벽을 뚫고 거리로 뛰쳐나가는 게 아닐까 전전긍긍할 필요가 없다. 마찬가지로 아내의 욕망을 지레짐작해 B급 영상물들을 통해 가끔 대리만족을 해 왔던 성적 판타지(스리섬이나 관음증 등등)를 드디어 실천해 볼 기회가 왔다고 만세 삼창을 불러서도 안 된다.

레이가 인터넷 게시판이나 광고 등을 통해 알게 된, 핫와이프를 하나의 생활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비(非)일부일처 관계를 지향하는 부부들은 역설적이게도 가장 안정적인 일부일처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 어떤 부부들보다도 서로의 삶과 가치관을 존중하고, 자신들이 품고 있는 욕망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놓고, 서로가 합의에 도달하기까지 기다리며, 진정한 합의에 이르렀을 때 정교한 계획 하에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예상과는 달리 남편의 강제는 없었고 대개의 경우 아내가 먼저 제안했으며, 둘 다 흡족해 할 대상자, 특히 남편은 아내에게 위협적이지 않을 대상자를 고르기 위해 많은 사람들과 면담했다. 아내 나누기를 즐기는 사람들은 '스와핑(swapping, 교환하기)'의 경우 단어 자체에서 마치 아내를 다른 남자와 바꿔 쓸 수 있는 물건 취급하는 느낌이 드는 탓에 협조나 연합, 관계, 의사소통의 의미가 더 강하고 핵심적인 '스윙잉'을 사용한다고 대답했다. 레이는 스윙잉을 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자신의 욕망에만 충실하지 않고 상대방의 욕망까지도 충족시키려는 이타적인 동기에서, 그리고 둘이 함께 행복한 삶을 위해 지루해져 가는 부부 생활을 다시 불타오르게 하려는 노력에서 모험을 감행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이중 어느 하나라도 충족시키지 못한 상태에서 모험에 나섰던 부부들 가운데는 기존의 일부일처 관계를 유지하기는커녕, 자기 자신조차 파멸시키고 마는 비극에 이르는 사례들도 많았다. 아내를 나누는 일부 남자들은 아내를 성적 소유물, 자산으로 생각하고 자신이 권력의 지배자라는 걸 과시하기 위해 마음대로 아내를 내어 준다거나 자신은 다른 남자의 아내를 탐하면서 자기 아내가 새로운 남자의 품에 안기는 것은 참지 못하는 이중 잣대를 들이대기도 했다. (역시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는 교훈을 준다!)

레이는 '아내 나누기'가 모든 인간 남녀에게 보편적이라고 말하고자 하지 않는다. 또한 '핫와이프'가 부부 관계 개선을 위한 특효약이라고 말하려는 것도 아니다. 조사된 개인과 커플, 가족들에서 비일부일처 관계가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하는 듯하게 보였지만, 이러한 비일부일처 관계를 몇 십 년에 걸쳐 추적 조사했거나, 자녀들과 가족 전반에 미치는 전체적인 영향을 탐구했거나, 기존의 일부일처 관계에서 다른 방식으로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한 경우와 비교 연구한 사례는 거의 없다.

오히려 레이는 인터넷을 통해 점차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는 '핫와이프'라는 현상을 중심에 놓고, 인간의 성, 그중에서도 특히 인류 역사를 통해 오해와 이해, 억압과 해방을 반복해 온 여성의 성이 얼마나 복잡하고 다양한지, 그리고 부부 관계를 비롯한 남녀 관계를 건강하게 지속하기 위해서는 여성의 성적 욕망을 제대로 알고자 노력하는 자세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하고자 한다.

레이가 직접 만나거나 아니면 이메일, 게시판 등을 통해 수집한 핫와이프 경험자들의 사례들이 책에서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장들의 마지막에 막간 이야기로 등장하거나 본문에 극히 일부 등장한다.). 이미 기존에 나와 있는 책들에서 많이 다룬 다른 연구자들의 연구 사례들이 빈번히 등장해서 책의 신선도를 떨어뜨리며, 실제 이 책의 주요 주제인 '핫와이프' 현상을 본격적으로 다루기까지(200쪽 가까이 가서야 '핫와이프'가 드디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너무 많은 분량을 다른 책들에서 언급한 이야기를 재탕하는 데 할애하고 있다는 점도 단점이다(평소 진화심리학에 관심이 있었던 사람들은 이 책 전반부는 그냥 읽지 않고 넘어가도 된다).

게다가 본인의 전공 분야가 아닌 영역들에서 관련 자료들을 그러모으다 보니 서로 배치되는 주장을 지지하거나 펼치고, 또 해석에 있어서 문제점을 보이기도 한다. 예를 들어, 남자의 성적 질투가 부성 불확실성에 대한 안전장치로서, 즉 자신의 배우자가 낳은 아이가 틀림없이 자기 자식일 확률을 높이기 위해 진화했다는 이론을 지지하다가(81쪽), 뒤에 가서는 아내를 놓고 성적인 질투심을 느끼는 일은 산업화 이전 문화에서는 흔치 않았다며 질투가 진화된 심리 기제라는 앞에서의 얘기와 배치되는 주장을 내놓기도 한다(182쪽).

스윙어들이 대개 나이가 많고 현재 관계에서든, 아니면 이전의 부부 관계에서든 이미 자식을 두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논리적으로 모순이 되는 해석을 내린다. 레이는 남자는 생식을 이미 끝냈고, 여자는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하더라도 남편에게 부양을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에 남녀 모두 자식을 낳은 다음에 스윙잉을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레이가 줄기차게 차용하는 진화심리학에 따르면, 일단 남자의 생식은 거의 관이 덮일 때까지 계속되며(설 연휴에 한 방송사에서 주최한 '동안 선발 대회'에서는 11살의 아들을 둔 93살의 할아버지가 나와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기도 했다), 다른 남자의 아이가 확실한 데도 그 아이의 부양을 책임지는 아버지는 진화할 수 없었다.

따라서 굳이 진화적으로 해석을 하자면, 오히려 어느 정도 자식을 키워 놓아 자녀 양육에 대한 부담(이는 정말 엄청난 부담이다!)이 덜하고(즉, 혹여 상대가 배신할지언정 나의 번식 성공이 완전히 실패할 일은 없다), 게다가 여성은 번식 연령의 한계에 다가가고 있어 새로 아이를 가질 확률이 낮아지고 있는 상태인 탓에(즉, 남자로서는 아내가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해 올 확률이 낮아지는 지점에 이른 셈이다), 서로가 심적 부담 없이 스윙잉을 할 수 있게 된다라고 설명하는 편이 맞을 것 같다.

물론 성을 비롯한 인간의 모든 행동과 마음에 진화의 렌즈를 들이댈 수도 없을뿐더러 실제로 "모든 것이 적응적이다!"라고 외쳐 대는 진화 이론가도 없다. 페미니스트 진화생물학자 세라 블래퍼 허디의 말처럼 인간의 성이야말로 "본래의 범위를 넘어 문화의 중심으로 옮겨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런 점에서 '진화를 넘어서는 섹스의 심리학'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이 사실은 진화를 넘어서기는커녕 줄기차게 인간 남녀의 성을 진화적 시각으로 들여다보고 설명하려 한다는 것도 안타까운 점이다.

그래도 군데군데 등장하는 인류 역사나 문학 작품들에서 뽑은 '핫와이프' 사례들은 무척 흥미롭다. <스타십 트루퍼스>,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 등으로 유명한 과학소설(SF)의 거장 로버트 하인라인가 두 번째 부인과 개방 결혼을 한 나체주의자이며 이와 관련한 내용을 담은 <낯선 땅 이방인>이 이후의 폴리아모리 운동에 영감을 주었다거나, 낭만파 시인 바이런은 일부일처 관계에 만족하지 못하는 부인들을 꼬드기는 재주가 뛰어나 그 남편들인 당대의 재력가나 정치가들 여럿을 오쟁이 진 사내로 만들었다는 등 책 속에 등장하는 바람 난 남녀 얘기만으로도 '침대 위의 역사'라는 책 한 권이 나올 법하다. 핫와이프나 쿠콜드, 폴리아모리, 트로일리즘뿐만 아니라 BBC(방송국 이름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 BDSM, '불', '섭' 등 일반적으로는 접하기 힘든 그들만의 언어, 그들만의 행동 양식을 엿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성과 관련한 우리 사회 인식의 변화를 입증하듯 최근에는 <재미있는 섹스 사전>이라는 책이 출간되기도 했다. <욕망의 아내>는 <재미있는 섹스 사전>보다는 풍부하지만 <여자가 섹스를 하는 237가지 이유>만큼 도발적이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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