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은을 벼랑 끝으로 내몬 것은 자신인가, 사회인가?
최고은을 벼랑 끝으로 내몬 것은 자신인가, 사회인가?
"인터넷 절필" 선언으로 이어진 '김영하 vs 조영일' 논쟁
2011.02.17 10:06:00
최고은을 벼랑 끝으로 내몬 것은 자신인가, 사회인가?
인기 작가 김영하 씨가 '모두에게 사과드린다'는 글을 끝으로 14일 자신의 트위터와 인터넷 블로그를 떠났다.

김 씨의 인터넷 절필은 지난 1월 말부터 진행돼 온 문학평론가 조영일 씨와 벌인 작가(지망생)들의 현실 인식을 둘러싼 논쟁 끝에 그가 선택한 결론이다. 조 씨는 16일 블로그에 '새로운 논쟁을 꿈꾸며 : 김영하 님과의 논쟁을 마무리하면서'라는 글을 올렸고, 이로써 2주가량 인터넷 상을 뜨겁게 달구었던 논쟁이 일단락 지어졌다.

김 씨는 블로그 '김영하 아카이브'를 닫으며 쓴 글에서 논쟁 상대였던 조 씨에게 "조만간 문학 판을 바꿀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또 "(나의) 자기만족적이고 '낭만주의적인 예술관'을 타인에게 설득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며 "이런 저를 비판하셨던 분들은 앞으로 나아가 세계를 바꾸고 현실과 대결하라"고 적었다. 그러자 조 씨는 16일 트위터와 블로그를 통해 "이런 찜찜한 사과는 난생 처음"이라며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심정을 밝혔다.

김 씨와 조 씨 사이의 논쟁은 작가(예술가)의 정체성과 생존권을 둘러싸고 '예술가의 자기 책임이 중요하다'(김영하)와 '구조 개혁이 중요하다'(조영일)라는 의견 간의 대립 양상을 보였다고 거칠게 요약할 수 있다. 또 김영하 대 조영일 개인 간 혹은 '소설가' 대 '비평가' 간의 논리와 감정 싸움이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특히 이 논쟁은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 씨의 죽음을 맞으며, 문화예술 업계의 현실 인식에 대한 문제의식을 환기시켰다. 이 과정에서 블로그 댓글, 트위터 등을 통해 수많은 이들이 관전했다.

기 : 작가의 정체성 둘러싼 논란

논쟁의 발단은 지난 1월 1일 김영하 씨가 쓴 '작가는 언제 작가가 될까'라는 글이다. 그는 신춘문예에서 낙선한 이들에 대한 위로 차원의 글에서 "누군가를 작가로 만드는 것은 타인의 인정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긍지"라며 "스스로 작가라고 선언하는 것으로 이미 충분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조영일 씨는 같은 달 29일 '젊은 문학 지망생에게 보내는 편지 : 김영하의 작가론에 부쳐'라는 글을 통해 "(김영하가 말하는) 원론적인 동감이 현실적인 문제들을 이해하고 해결하는 데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조 씨는 "외부의 인정과 상관없이 자신의 가치만을 끝까지 고수하려는 것은 나르시시즘이며 이것은 '어른 되기'를 사실상 포기하는 것"이라면서 작가의 정체성에 대한 이견을 피력했다.

그러자 김 씨는 "예술가는 바로 그런 정신적 어린아이들이 나르시시즘으로 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냉정한 자기 인식은 예술가가 아니라 증권 시장의 투자자에게 꼭 필요한 덕목"이라고 말했다. 이에 조 씨는 "(근대 문학에서 작가란) 인정받거나 말거나 예술혼을 불사르는 자기만족적인 아마추어 작가가 아니라 독자와의 소통을 위해 한없이 노력하는 프로 작가만을 가리킨다"면서 김 씨의 작가론을 재반박했다.

여기까지의 논쟁은 그저 작가(지망생)의 정체성 문제였다. 김 씨는 작가를 일종의 자기 선언과 자기 인정만으로 선택이 가능한 개인의 정체성으로 보았고 조 씨는 독자와 수요가 있어야만 존재할 수 있는 직업으로 보았다.

그러던 논의는 김영하 씨의 다음 글인 '낭만주의자는 어떻게 현실을 보는가'를 통해서 등단 제도가 존재하는 문학계의 현실 문제로 넘어간다. 성공할 확률이 지극히 낮기 때문에 수반되는, 낙선자와 생계가 어려운 작가 지망생의 불행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에 대해서다. 두 사람은 낙오자가 생기는 현실과 문단 제도의 문제에는 의견을 같이했지만 결론은 달랐다.

김 씨가 "예술가 개인은 시장의 규모도, 진입 장벽의 높이도, 정치 제도도 바꾸지 못한다"면서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은 당분간 오직 우리 자신뿐"이라고 강조한 데 대해 조 씨는 "문학가(예술가)는 세상의 편견이나 불합리한 사회 제도와 싸워가면서 세상을 바꾸는 사람"이라고 맞섰다.

승 : 최고은의 죽음…"영악하게 살아남아라" vs "뭐라도 해야 한다"

여기서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 씨의 죽음이 8일 <한겨레> 보도를 통해 알려지면서 논쟁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이 논쟁에 최 씨를 먼저 '소환'한 것은 조 씨 쪽이다.

조 씨는 9일 트위터에 "문학계에 여성 작가가 많은 이유는 상대적으로 생계 부담이 적기 때문"이라는 글을 남겨 여성 작가들을 모욕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그는 11일 '예술가는 누가 지키는가 : 최고은 씨에게 바친다'는 제목의 글에서 자신을 비난한 사람들에 대해 "뉴스 소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고 비판한 뒤, 이 문제를 앞선 논쟁의 영역으로 끌고 왔다.

그는 영화계에서 비정규직 스태프 착취 등 불공정한 관행이 반복되고 있는 것은 "영화인들이 진정으로 그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일갈한 뒤 "영화계 스스로 관행을 제도적으로 고치기 전까지 절대 한국 영화를 보지 않겠다"며 보이콧을 선언했다. 그는 이어지는 글에서 '가난한 문인들에게 부의금을 받지 말라'는 유언을 남긴 고(故) 박완서 작가 역시 "'가난'이라는 문제에 대해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면서 기성 작가들이 인세를 '작가기금'으로 적립하는 제도를 제안했다. 일관되게 '제도의 마련'을 주장한 것이다.

▲ 故 최고은 씨 .
한편, 12일 김영하 씨도 "나는 최고은의 선생이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글을 올렸다. 그는 생전 최 씨와 한국예술종합학교 사제 관계였음을 밝힌 뒤, 최 씨에 대해 공개적으로 언급하고 싶지 않았지만 조 씨와의 논쟁을 이어가자면 꺼내지 않을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조 씨가 둘을 비슷한 선상에 두고 구조 문제를 지적한 것과 달리 영화계와 문단을 구분하면서 "(문단의) 제도는 보기보다 간단하지 않다. 카르텔을 형성해 새로운 작가들의 진입을 막고 있지도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수많은 고은이들의 건투를 빈다. 영악하게 살아남으라"며 "세상이 곧 바뀐다는 풍문에 속지 마시라"라고 끝맺었다.

이렇듯 작가의 정체성과 현실 인식을 둘러싼 논쟁은 최 씨의 죽음이라는 '현실 문제'를 만나면서 한층 격하게 상승해갔다. 초점은 부적절한 현실에 대한 개인의 변화가 중요한가, 사회 제도의 변화가 중요한가로 뚜렷해지는 양상을 보였다.

전 : 김사과 "무엇을 할 것인가"

그러던 13일 소설가 김사과 씨가 자신의 블로그에 김영하-조영일 논쟁과 관련해 자신의 입장을 밝힌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글을 올렸다. 최고은 씨와 마찬가지로 한국예술종합학교 시절 김영하 씨의 제자였던 김사과 씨는 자신의 입장은 조영일 쪽에 가깝다면서 "예술가라면 더욱더 현실을 있는 그대로 투명하게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예술가들에게 삶 아니면 삶과 유리된 예술로의 도피 두 가지 선택지만 있는 게 아니라 "삶과 예술 모두를 포기하지 않는" 길이 있다고 말했다. 예술가는 다른 노동과 차별되는 특별한 일을 하는 존재가 아니라 "다른 모든 인간들처럼 먹고 살 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다가는 굶어죽을지도 모르는 이런 엉망진창인 사회에 맞서 목소리를 높이고 투쟁한다고 해서 예술가들의 창작욕이 타락되거나 고갈되지 않는다"며 각 개인 간의 연대를 강조했다.

이에 김영하 씨는 "현실적 문제들을 고민하지 않는 한, 선언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고 반박했다. 그는 "이미 우리는 문인협회나 작가회의를 비롯한 단체들을 이미 갖고 있다"면서 "그들이 있는데도 왜 궁핍한 예술가들이 줄어들지 않는지를 실사구시의 눈으로 살펴야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미국의 작가 길드(Authors Guild), 작가들을 위한 조합(Writer's Guild of America), 프랑스의 예술가 지원 프로젝트의 사례를 언급하기도 했다.

이 대응에서 알 수 있듯 김영하 씨 역시 제도 개선에 대한 의지를 보이지 않은 건 아니다. 다만 그는 반복해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세상은 선언만으로 바뀌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또 앞서 쓴 글에서 "세계의 변화는 다음 문제"라고 자신의 세계관에 따른 순서를 명확히 한 결과, 그가 뒤늦게 제시한 예들은 반대자들의 큰 설득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결 : 논쟁의 다음 단계는?

비판이 쏟아지자 결국 김 씨는 인터넷 절필을 선언하기에 이른다. 그는 마지막 글에서 '많은 사람들이 최고은의 사인을 아사로 믿고 있지만 사실이 아니다. 그는 의연하고 당당하게 살아갔다'라는 요지의 주장을 펼쳐 또 한 번 논란을 몰고 왔다. 김 씨는 최 씨가 갑상선 기능항진증은 물론 우울증에 시달렸던 것 같다며 "어쩌면 삶에 대한 희망을 서서히 놓아버린 것인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일부 누리꾼들은 김 씨가 고인의 사생활을 추측으로 언급하며 애초의 보도가 문제라는 주장을 펼친 것을 비난했다. 수많은 매체들이 이 발언에 초점을 맞춰 기사를 작성하는 부작용도 뒤따랐다. <동아일보>는 15일 기명 칼럼에서 "식량난에 시달리는 북한도 아닐진대 '아사'라는 표현을 쓰려면 신중해야 한다"라는 엉뚱한 논지를 펼치기도 했다.

최 씨의 죽음에 대해 주변인들은 극도로 언급을 꺼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죽음의 원인을 둘러싸고 '아무도 알 수 없는 개인의 문제다', '사회적 타살이나 다름없다'는 의미의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최 씨가 병 때문에 죽음에 이르렀다 하더라도 투병 중 이웃집에 '쌀이나 김치를 조금만 더 얻을 수 없나', '밀린 돈들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쪽지를 남긴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사건의 주인공은 '밀린 돈'을 받지 못한 한 작가였고, 그로 인해 월 50만 원 이하의 급여로 계약 상태를 유지하는 영화 스태프들 등 불합리한 사례들이 환기되고 있다.

이번 논쟁의 마무리를 지켜보는 시선은 다양하다. 한 누리꾼은 "개인의 의견과 의견들이 오롯이 의견으로서 공존하는 세상이 너무 멀다"(듀나게시판, 아이디 'Paul.')고 안타까워했다. 김 씨의 태도를 비판하는 의견과 함께 조 씨가 김 씨의 애초 주장을 곡해했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다음 아이디 '1109'는 "시작은 김영하의 글에 대한 (조영일의) 논점일탈에서 출발하지 않았나"라고 지적했다.

그런가 하면 한 누리꾼은 논쟁과 관련한 블로그 댓글에서 "누가 옳네, 틀리네 하는 놀음에서 진짜 중요한 문제가 덮였다"면서 "(처음 논쟁대로) 신춘문예 제도에 대해 불합리성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가 정도로 논쟁이 발전했다면 오히려 생산적이었을 것"이라고 김 씨와 조 씨 모두를 비판했다.

이에 대해 당사자인 조 씨는 16일 블로그 글을 통해 "논쟁 과정에서 생기는 격한 감정의 충동도 논쟁의 본질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며 "이번 논란이 '논쟁의 무용성'을 증명하는 예가 되지 않길 바란다"고 밝혔다. 그는 논쟁은 우위를 가리는 경기가 아니라면서 "논쟁의 당사자들은 물론 그 논쟁을 지켜보는 사람들도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장(場)을" 꿈 꾼다고 말했다.

이번 논쟁은 '작가란 어떤 상태를 말하는가', '작가 지망생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야 하는가'에서부터 냉혹한 승자 독식 구도가 존재하는 문화예술계를 둘러싼 현실 인식 문제를 건드렸다. 이 부분은 김사과 씨의 지적대로 "각자의 문제이고 (어느 쪽도) 비난할 일이 아니"다. 그러나 논쟁 당사자·관전자들은 모두 입장을 떠나 문단과 영화계를 포함한 우리 문화예술계 현실이 약자에게 더욱 냉혹하며, '밀린 돈'을 받지 못하는 이들이 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김영하-조영일 간 논쟁은 마무리됐지만 일련의 글들이 촉발시킨 논쟁들은 현재진행형이다. "'밀린 돈'은 '개인의 불행'인가, 문화예술계의 '관행'인가'", "예술 직종 지망생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어디까지 지원하고 지원하지 말아야 하나", "문화예술계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적인 사회 안전망의 문제다" 등 인터넷 게시판·트위터를 통해 추가적인 논쟁이 일어나고 있다. 조영일 씨는 트위터에서 "논쟁은 마무리됐지만 논쟁에서 다룬 문제까지 마무리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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