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의 저주 "이 만화책은 펴지도, 읽지도 마!"
35년의 저주 "이 만화책은 펴지도, 읽지도 마!"
[김용언의 '잠 도둑'] 미우치 스즈에의 <유리 가면>
2011.04.22 18:35:00
35년의 저주 "이 만화책은 펴지도, 읽지도 마!"
지금까지 소개했던 책들이 '잠 도둑'이라면, 이번에 설레는 마음으로 펼쳐든 책 <유리 가면>은 '인생 도둑'이다. 상황을 대략 설명하면 이러하다. 어린 시절 만화를 그렇게까지 열성적으로 파고드는 편은 아니었다. 전설로 남은 옛 만화들도 그다지 많이 본 편이 아니다.

<유리 가면>도 마찬가지다. 인터넷 상에서 "무서운 아이!"라고 외치며 눈알이 사라진 소녀의 이미지(이게 뭔지 모르는 분께서는, 포털 사이트에서 '무서운 아이 유리 가면'이라고 검색하면 바로 '그 이미지'가 뜹니다!)가 돌아다닐 때에도 그저 1970년대의 웃기는 산물이라고 생각하며 지나쳤다.

▲ <유리 가면>(신장판 1권, 미우치 스즈에 지음, 대원씨아이 펴냄). ⓒ대원씨아이
주변의 많은 친구들이 '넬 베르디 원작, 김이순 그림' 해적판으로 출간된 <유리 가면>(주인공 기타지마 마야의 이름은 오유경으로 바뀌어 있었다!)을 읽으며 소녀 시절을 보냈지만, 그 시절에도 나는 오히려 황미나, 김영숙 등의 국내 만화가들에게 정신이 팔려있었다.

그러다가 2010년 늦가을, (지금까지 출간된) 전권을 소장하고 있던 친구가 떠맡기다시피 강권하며 <유리 가면>을 꼭 읽어볼 것을 당부했다. 읽어야 할 책이 산더미인데 만화까지…. 10대 시절 이후 순정 만화계를 떠난 지도 너무 오래됐고, 무엇보다 난 완간되지 않은 만화를 정말 싫어한다. 안달복달하며 "다음 권은요!" 하고 동동 구를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작업을 천천히 하기로 유명한 우라사와 나오키(<몬스터>, <20세기 소년>)의 만화도 유행이 한풀 꺾인 다음 완간된 것을 확인한 다음에야 혼자 막차를 탔다(덕분에 함께 읽어 가며 열성적인 동조와 흥분의 공감대를 형성할 사람이 없었다). 게다가 <유리 가면>의 악명은 우라사와 나오키쯤은 세발자전거 타고 놀러 다니는 애 취급할 정도로 드높지 않던가.

작가 미우치 스즈에는 1976년 처음 연재를 시작하여 1997년 돌연 침묵을 지켰다. 그리고 2008년에 이르러서야 아주 천천히 작업을 재개했다. 1976년엔 어린 소녀였다가 이제 중년의 아줌마가 된 팬들로부터 "내가 죽기 전에 <홍천녀>의 정체를 알 수 있기는 한 건가" 하는 분노의 원성을 자아내기도 했다. 솔직히, 이 모든 상황을 알면서 읽을 자신이 없었다.

며칠 동안 쌓아둔 만화책을 지켜만 보다가, 하릴없는 금요일 밤 처음으로 내키지 않게 1권(여기서의 1권이란 절판된 '애장판' 버전의 1권이다. 현재 나오고 있는 버전은 '신장판'이다)을 펼쳤다. "으음 유치해, 유치하다…" 하고 중얼거리며 몇 장을 넘겼다. 그러고 나서 정신을 차려보니 새들이 지저귀는 토요일 아침 8시였다. 피곤에 지쳐 잠깐 쓰러졌다 다시 눈을 떴을 땐 오후였다.

옆에 놓인, 읽다 만 <유리 가면> 8권을 집었다. 식사는 시리얼로 대신했다. 계속 읽었다. 배가 고파서 과일을 깎아먹었다. 다시 주변을 둘러보았을 땐 새벽 6시였다. 이불 위에 풀썩 쓰러져 잠들었고 다시 눈을 떴을 때…. 이런 식으로 3일을 보냈다. 주말은 이미 끝나 있었다. 내 인생의 50시간이 그렇게 사라졌다. <유리 가면>은, 진정 인생 도둑이었다.

"연기자는 어떤 때라도 그 가면을 벗어서는 안 된다. 어떤 슬픈 일이나 괴로운 일이 있어도 그건 자기 자신만의 슬픔과 고통일 뿐. 역의 인물과는 관계없는 것이다. 연기하기 전 먼저 자신을 죽이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들은 유리처럼 깨어지고 부서기지 쉬운 가면을 쓰고 연기하고 있는 거야. 아무리 멋지게 극중의 인물이 되어 훌륭한 연기를 하려 해도, 아차 하는 순간에 깨어져서 본모습이 나타나고 말지. 얼마나 아슬아슬한 건지. 이 유리 가면을 계속 쓰고 있을 수 있는가 없는가에 따라 그 연기자의 재능이 결정되는 거야."

일본 요코하마. 기타지마 마야는 음식점 종업원으로 일하는 어머니 밑에서 성장했다. 평범한 외모, 늘 덤벙거리는 성격 때문에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아이"라는 호통만 듣는다. 그런 그녀에게 유일한 낙은 연극이나 영화, 드라마를 보며 주인공들의 연기를 따라하는 것. 그 모습을 우연히 지켜본 왕년의 톱 여배우 츠기카게 치구사는 경악한다.

츠기카게는 자신의 대표작 <홍천녀>를 다시 한 번 무대에 올리는 것이 필생의 소원이다. 그녀는 오랜 세월 홍천녀, 즉 매화의 정령을 연기할 수 있을 만한 엄청난 배우를 찾고 있었고 마야로부터 그 가능성을 본다. 이제 츠기카게의 뒤를 따라 연극에 입문한 마야는, 오로지 그녀의 본능과 정열에 따라 무시무시한 연기력을 펼치면서 '무대 광풍'이라는 별명까지 얻고, 경계와 질시의 대상이 된다.

한편, 톱 배우와 감독 사이에서 태어났고 뛰어난 미모와 재능으로 어려서부터 대스타의 반열에 올랐던 히메가와 아유미는 마야의 존재에 점점 경계심을 품게 된다. 아유미 역시 어려서부터 <홍천녀>의 주인공을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연기에 매진했기 때문이다.

실상 이 줄거리는 만화의 3분의 1도 채 설명하지 못하는 초반부 설정일 뿐이다.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 위한 두 소녀 라이벌의 싸움'에 그쳤다면, <유리 가면>은 그저 16부작 미니시리즈 분량의 이야기, 혹은 '트렌디한 감각으로 포장된 칙 릿' 단계에 머물렀을 것이다. 하지만 단언하건대, 그 이상이다.

<유리 가면>은 대단히 하드보일드한 성장물이자 스포츠 드라마에 가깝다. 기타지마 마야와 그녀의 원수 하야미 마스미 사이에서 조금씩 흘러넘치는 사랑의 감정이 감질나게 진행되는 러브스토리(굳이 비교한다면, 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길라임과 김주원 같은 관계랄까)도 흥미진진하지만, 역시 <유리 가면>에서 압도적으로 눈을 빼앗은 것은 연기다. 말하자면 마야와 마스미의 감정이 가장 절정에 달할 때조차, 마야는 <홍천녀>의 대사와 몸짓으로 그 감정을 고백하기 때문이다.

일생의 라이벌로 설정된 마야와 아유미는, 첫눈에 짐작하는 것처럼 마야-착한 아이, 아유미-나쁜 아이가 결단코 아니다. 실제로 "주역이 되기 위해 태어난 것 같은 소녀" 아유미는 어떤 면에서 동정 받을 여지가 훨씬 더 많은 캐릭터다. 그녀는 유명한 예술인 가문에서 태어났고, 어린 시절부터 그녀가 아무리 좋은 성적을 받아도 "아유미는 유명인의 딸이니까, 당연하지"라는 시선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그것이 아유미의 정당한 실력이라는 인정을 받을 수 없었다. 그녀의 일생의 목표는 엄마와 아빠의 후광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되어버렸고, 연기를 택하고 난 뒤 그녀는 전심전력을 다해 무대 위에서 필요한 모든 테크닉과 표정과 감정을 습득해왔다. 그렇다, 감정까지도! 누군가를 짝사랑하는 눈빛이 나오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자, 아유미는 자신을 짝사랑하는 엑스트라에게 일부러 접근하여 그의 눈빛을 관찰한다. 그리고 카메라 앞에서 그 눈빛을 연기한다.

기타지마 마야는 아유미에 비해서 테크닉도, 무대 위에서의 섬세한 계산도, 우아한 표현력도 일천하다. 얼굴은 평범하고 체구도 작다. 그러나 무대 위에서의 마야는, 자신이 맡은 인물이 '되어버린다.' 아유미가 가장 경악하는 지점이 바로 그것이다. 마야의 본능! 아유미가 그 인물에 어떻게 다가갈까를 고민하고 있을 때, 마야는 그 인물이 되는 법을 찾는다. 그녀는 타인의 해석에 신경 쓰지 않고, 자신 안에서 어떻게든 캐릭터의 면모를 끌어내는 숭엄한 순간에 집중한다.

오랜 노력의 시간이 지난 다음, 그녀는 무대 앞의 수많은 관객들의 존재를 순식간에 잊어버린 채 "…할 수 있어!" 하고 외치며 무대에 나선다. 마야가 "나의 헬렌(혹은 미도리, 요정 바크, 늑대 소년 제인, 왕녀 알디스)!"이라 되뇌며 어깨를 펴는 순간. 그 카타르시스는 독자들에게 그대로 짜릿하게 감전되며, 아유미에게는 크나큰 고통으로 전해온다. 마야가 아유미의 화려한 무대를 지켜보며 "왜 이렇게 세상은 불공평할까…그런 애랑 라이벌이라니, 운명이란 너무 잔혹해!"라며 눈물을 흘릴 때, 아유미는 "이 애 앞에서는…내 능력이 얼마나 하잘것없는 것인가를 깨닫게 해! 왜 나는 저 애가 아니지? 저 애의 반만이라도 재능이 있다면!"이라며 절규한다.

아유미의 인생에서 처음으로 패배감을 안겨주는 존재는 마야이며, 마야에겐 아유미가 도저히 넘어설 수 없는 지점의 벽으로 다가온다. 연기를 두고,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홍천녀>를 두고 도저히 물러설 수 없든 두 사람이 무대 위에 몸을 던질 때마다 그 광기는 소름이 끼칠 정도다(개인적으로는 <유리 가면>의 전체 줄거리를 그나마 '정상적'이었던 아유미가 점점 츠기카게와 마야처럼 광인으로 변해가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 광기의 퍼레이드에서 '끓어오르는 지점'을 몇몇 소개한다면, 첫째로 <춘희> 사건을 꼽을 수 있다. 마야가 아직 요코하마에서 살던 시절, 연극 <춘희>의 티켓을 얻기 위해 그믐날 혼자서 음식 배달 120건을 해낸다. 손바닥이 헐고 온몸이 흠뻑 젖으면서도 "갈 수 있어…이걸로 <춘희>를 보러 갈 수 있어" 하며 마야의 눈이 번들거리던 장면.

혹은 츠기카게의 제자로 들어간 마야가 연극 <돌의 미소>에서 인형을 연기할 때. 무대 위에서 인간의 숨결을 지우고 완벽한 인형으로 거듭나기 위해, 츠기카게는 마야의 온몸에 대나무 조각을 칭칭 동여맨다. 헬렌 켈러와 설리반 선생의 이야기를 그린 연극 <기적의 사람>도 잊을 수 없다. 이 극에서 헬렌 켈러의 대사는 단 한 마디, 설리반 선생이 그녀를 펌프 앞으로 끌고 가서 물을 마구 길어내며 "헬렌, 이건 물이야! 물!" 하고 외칠 때 헬렌이 처음으로 벼락같은 깨달음을 통해 "무...무...무우우우우"라고 외치는 그 순간이다.

<유리 가면>은 마야와 아유미, 이 두 재능의 차이의 변주만으로 놀랍도록 장대한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펼쳐간다. 무엇보다 연극 텍스트에 대한 놀라운 해석이 없었다면, 마야와 아유미의 대결 구도 역시 불가능했을 것이다. 똑같은 연극을 두고 마야와 아유미가 각기 다른 해석을 통해 연기하는 모습을 그릴 수 있다는 건, 똑같은 줄거리와 장면을 유지하면서도 극의 분위기 자체를 완전히 바꿔버릴 수 있는 미우치 스즈에의 연출력이 얼마나 굉장한 것인지를 새삼 깨닫게 한다.

연극 <키 재기>의 여주인공 미도리가 어떤 얼굴로 바뀌는지, 혹은 <기적의 사람>의 헬렌 켈러가 어떻게 재해석될 수 있는지, <두 사람의 왕녀>에서 두 사람이 각기 빛과 그림자 같은 왕녀 알디스와 오리겔드를 연기하는지를 지켜보는 건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서스펜스에 가깝다. 그 절정은 마침내 단 두 사람의 <홍천녀> 후보로서, 츠기카게 앞에서 '바람, 물, 불, 흙'이라는 네 가지 주제를 연기해 보이는 매화골 장면에서 숨 가쁘게 고조된다.

<유리 가면>에서 끝없이 이어지는 연극들을 지켜보며 그 원작들에 대한 관심마저 급상승한 것도 또다른 수확이다. 얼마 전 렌조 미키히코의 <회귀천 정사>를 읽다가 연극 <야채상 오시치>를 재발견하여 기쁜 마음에 다시 <유리 가면>을 집어 들어 마야가 오시치를 연기하는 장면을 찾았다(그리고 또다시 밤을 샜다.) 마야와 아유미가 처음으로 연기 대결을 펼치는 연극 <키 재기>의 내용이 궁금해서 번역된 히구치 이치요의 <키 재기 외>도 구입했다. 아주 오래전 학부 때 전공 수업 텍스트로 읽었던 <한여름 밤의 꿈> 희곡집을, 마야가 요정 바크를 연기하는 장면에서 새삼 꺼내들 수밖에 없었다.

참고로 이 원고를 쓰기 위해 어젯밤 <유리 가면> 1권을 집어 들었고, 예상할 수 있다시피 새벽 6시 반까지 6권을 내리 읽었다. 한두 번 있는 일이 아니었다. 이 개미지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이 있을지 정말 알 수가 없다. 게다가 한국에선 신장판 버전으로 45권까지 나왔는데, 일본에선 얼마전 47권까지 출간되었다는 사실이 더 견딜 수가 없다.

한국쪽 출판사 대원씨아이 측에서 어서 46권과 47권 출간을 서둘러주길 당부하는 바이다. 마지막으로 불경스런 마음을 고백하자면, 미우치 스즈에 작가가 비명횡사하는 일만은 제발 없기를 바랄 뿐이다. 가실 때 가시더라도 <유리 가면>은 완결시키고 가셔야만 한다. 미우치 스즈에, "무서운 사람!"
tyio@pressian.com 다른 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