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메일
  • 목록
  • 글자크기
  • 크게
  • 작게

복지부, 자살 막자고 전 국민을 정신병 환자로?

[서리풀 논평] 잘못 짚은 정신건강 종합 대책

시민건강증진연구소 2012.07.02 09:49:00

잘못 짚은 정신 건강 종합 대책

얼리어 글리슨(Aliah Gleason)은 미국 텍사스 주 오스틴에 사는 열세 살의 중학교 2학년 여학생. 특이한 점은 없었지만 말이 험하고 지나친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한 번은 콧수염이 많은 여선생을 남자라고 대놓고 놀린 적도 있었다.

부모가 보기에도 그리 두드러진 점이 없었다. 활달하고 명랑하지만 잘 대들고 우스꽝스러운 짓을 자주 하는 애라고 생각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학교 당국은 달랐다. '반항성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특별 교육 대상으로 분류했다.

2003년 문제가 불거졌는데, 마침 텍사스 주가 실시한 정신 건강 검진에서 얼리어가 자살성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바로 추가 검사와 재검사가 진행되었고, 결국 정신병원에 강제로 수용되었고 아홉 달이나 치료를 받았다.

의무 기록과 재판 기록을 보면 얼리어의 말은 오락가락했고 입원한 후에 정신 질환 진단도 여러 차례 바뀌었다. 이 사건을 자세히 추적한 <마더 존스(Mother Jones)>의 기자 워터스는 얼리어에게 어떤 정신적 문제가 있는지 아직도 불확실하다고 보도했다.

얼리어 글리슨 사건은 언론의 보도를 통해 미국 전역에 알려지게 되었고, 학회에서 정신 건강 검진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나타내는 사례로 보고되기도 했다. 무차별적인 정신 건강 검진이 거대 제약회사의 이해관계를 대변한 것이라는 비판도 제기되었다.

이 사례는 분명 예외적인 것이고 극단에 속한다. 얼리어에게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확신할 수 없고, 검진을 한다고 해서 모두 이런 식으로 환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 정신 질환에서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경계의 모호함(건강과 질병을 나누는)' 때문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신 건강 검진이 많은 문제를 지니고 있다는 것도 분명하다. 실제 치료가 필요한 대상자를 잘 가려낼 수 있는가도 문제지만, 발견된 후에 관리를 어떻게 하는가가 더욱 중요하다. 사실 정신 건강의 경계성 자체가 검진의 유용성을 의심케 하는 한 가지 이유이다.

ⓒdemandstudios.com

지난 6월 25일 보건복지부가 정신 건강 증진 종합 대책을 발표했다. 그동안 거론되던 정책을 모두 모아놓은 것 같은, 그런 의미에서 종합 대책인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여럿 중에서도 핵심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정신 건강 검진을 실시하겠다는 것이 아닌가 싶다. 대책을 보도한 언론 역시 검진에 가장 큰 관심을 보였다. 정부의 이 계획은 좋게 말하자면 의욕이 넘치지만, 한편으로는 무모해 보인다.

정부가 계획한 대로라면, 여든까지 산다고 할 때 정신 건강 검진만 열여덟 번 받게 된다. 취학 전 두 번, 초등학교 두 번, 중학교와 고등학교 각 한 번씩, 20대에 세 번, 그리고 30대 이후 연령대별로 각 두 번씩 검진을 하겠다는 것이다.

어느 신문의 표현대로, 전 국민을 대상으로 정신질환 검사를 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더구나 이처럼 많이 그리고 철저하게 하겠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미국 몇 개 주에서 소아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정신 건강 검진을 한다고 하지만, 이들 집단조차 정신 건강 검진을 하는 것이 무슨 효과가 있는지 논란이 크다. 환자를 발견한다는 의미에서 순전히 의학적인 면만 보더라도 그렇다.

차별과 오명 등 사회적 효과까지 고려하면 집단 정신 건강 검진은 증명되지 않은 '실험'의 차원을 넘지 못한다. 더구나 온 국민을 모두 검진하겠다는 것은 무슨 근거를 가지고 그러는지 모르겠다.

사실 정신 건강 증진 대책의 진짜 문제점은 개별 정책이 아니라 정책의 틀이다. 대책 전체가 정신 건강을 개인의 과제로 돌리는 '개인주의' 패러다임, 상담이나 약물과 같은 치료로 해결할 수 있다는 '의료' 패러다임, 그리고 근원이 아니라 현상을 문제 삼는 '결과' 패러다임에 기초하고 있다. 물론, 정신 건강만 그런 것은 아니어서 생소하지는 않다.

쉽게, 2010년 세계보건기구(WHO)가 정리한 정신 건강 대책을 소개하는 것으로 대신하자(☞바로 보기). 세계보건기구는 정신 건강을 결정하는 요인이 매우 복합적이라는 데서 출발한다. 사회적, 심리적, 생물학적 요인이 모두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속적인 사회 경제적 압력(예를 들면 빈곤)이 개인이나 집단의 정신 건강을 위협하는 매우 중요한 원인이라는 사실은 명확하다. 급격한 사회 변화, 스트레스가 많은 노동 환경, 성차별, 사회적 배제, 건강하지 못한 생활습관, 폭력, 신체적 질병, 인권 침해 역시 마찬가지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더라도 이런 위험 요인들이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정부의 종합 대책 어디에도 이런 시각은 찾기 힘들다. 진단이 부분을 벗어나지 못하니 대책이 정말 '종합'일 리가 없다.

정신 건강을 증진하는 것은 보건의료 이외에도 경제, 교육, 노동, 법률, 교통, 환경, 주택, 복지 분야와 협력할 때 가능하다. 특히 기본적인 시민적 권리, 정치적 권리, 사회 경제 문화적 권리를 존중하고 보호하는 환경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높은 수준의 정신 건강을 누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근본적 구조의 개혁보다 당장의 대책을 아쉬워하는 보건 당국의 어려움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힘없는 부처라 '화끈한' 해결책을 찾기 어려운 사정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책을 구하는 기본 원리가 허술하면 정책은 미봉책과 전시행정의 차원에 머물 뿐이다. 농업과 농촌, 농민 문제를 그대로 둔 채 설문지와 상담을 통해 농민의 자살이 줄어들 수 있을까.

어떤 지표로 보거나 한국인의 정신 건강이 심각한 위기상황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진단과 처방이 잘못되면 위기는 더욱 심화된다. 조급하다고 단편적인 해결책이 통할 리 없다.

개인주의-의료-결과 패러다임을 모델로 삼아서는 이 위기를 넘기 어렵다. 사회 경제적 요인을 중심에 놓고 여러 부문이 함께 협력하는 전략이라야 한다. 문제의 뿌리를 향한 '구조적 통합 패러다임'이라야 해결책이 나온다.

참고 자료

Waters, Rob. Medicating Aliah. <Mother Jones>. 2005년 5/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