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노벨 물리학상의 비밀, 아인슈타인도 '멘붕'!
2012 노벨 물리학상의 비밀, 아인슈타인도 '멘붕'!
[프레시안 books]루이자 길더의 <얽힘의 시대>
2012 노벨 물리학상의 비밀, 아인슈타인도 '멘붕'!
얼마 전 양자 역학에 대한 대중 강연을 마치고, 질의응답 시간에 받은 질문이다.

"양자 역학은 정말 신기하네요. 근데, 이게 실생활에 쓰이는 예가 있는지요?"

질문자에게 무안을 줄 의도는 아니었지만, 내 대답은 간단했다.

"양자 역학이 없으면 19세기 문명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사실 양자 역학만큼이나 현대 문명에 심대한 영향을 준 물리 이론도 없다. 20세기 초 물리학에는 혁명이 일어났는데, 그 주역은 양자 역학과 상대성 이론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상대성 이론과 그 이론을 만든 아인슈타인을 잘 알고 있는 것과 비교할 때, 양자 역학은 정말 홀대를 받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마트폰, 컴퓨터, 텔레비전, 형광등, 인공위성, 수많은 의약품, 수많은 화학제품, MRI(자기 공명 영상), 핵발전소, 레이저 등등. 양자 역학이 없다면 존재하지 않을 물건 목록이다. 끝도 없이 쓸 수 있지만, 지면 관계상 몇 가지만 적어보았다. 이렇게 중요한 양자 역학을 왜 우리는 잘 모르는 걸까?

여러 가지 답이 있을 수 있겠지만, 아마도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너무 어려워서다. 오늘 소개할 책인 루이자 길더의 <얽힘의 시대>(노태복 옮김, 부키 펴냄)에 나오는 당대 최고 천재 물리학자들의 대화를 보면 자명해진다.

"논문을 쓰기 시작할 때는 희망에 부풀고 뿌듯함을 느끼지만 결국은 발표를 하지 않고 만다네." 보어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왜냐하면 양자론이라는 이 끔찍한 불가사의 앞에서 내 견해가 늘 바뀌지 때문이지."

"나도 알지." 좀머펠트가 말한다. "물론 알고말고."

아인슈타인은 거의 눈을 감은 채 고개를 끄덕인다. "나도 벽에 부딪혀 앞으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네. 정말 끔찍하게 어려운 문제지." 아인슈타인이 다시 눈을 뜬다. "요즘은 양자론과 씨름하다가 잠시 기분 전환용으로 상대성이론을 다룰 뿐이네."

▲ <얽힘의 시대>(루이자 길더 지음, 노태복 옮김, 부키 펴냄). ⓒ부키

상대성 이론이 기분 전환용라는 아인슈타인의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양자 역학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던 20세기 최고의 물리학자들은 거의 '멘붕'을 일으킬 지경에 놓인다. 결국 그들은 '이해'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논쟁을 해야 했다. 양자 역학이 어렵다 못해 괴상하기까지 하다는 것을 알고 나면, 대체 왜 이론을 이따위로 만들어야 했을까하는 원초적 질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 역사가 궁금해진다는 말이다. 양자 역학의 역사는 과학사의 가장 드라마틱한 이야기이며, 장담컨대 웬만한 소설보다 훨씬 더 재미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양자 역학의 역사를 다룬 책들은 수도 없이 많다. 제목에 양자 역학이란 단어가 없어도, 현대 물리를 논할 때 양자 역학을 빼고 이야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최신 물리 이론을 설명하는 교양 물리 서적에는 양자 역학의 이야기가 반드시 나온다고 보면 된다.

양자 역학의 탄생 비화를 다룬 여타의 책과 비교할 때, <얽힘의 시대>는 분명한 차별성을 갖는다. 사건 중심의 일반 역사와 달리 양자 역학은 수많은 천재들이 벌이는 논쟁의 역사다. 양자 역학의 발전 과정을 연표로만 보면 말도 안 되는 이론들이 갑자기 하늘에서 뚝뚝 떨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이런 이유다. 게다가 이론 하나하나가 멘붕을 일으키는 것이다 보니 전공자들조차 양자 역학이 만들어진 '진짜' 과정을 알고 싶어 하는 것은 당연하다. <얽힘의 시대>는 이 지점에서 제법 새로운 시도를 한다.

불확정성 원리가 탄생하던 순간 하이젠베르크는 무슨 생각을 했으며 파울리와 무슨 대화를 나눴을까? 보어와 슈뢰딩거는 만나서 무슨 말을 하며 싸웠을까? 양자 역학 전쟁을 벌인 두 진영의 우두머리 아인슈타인과 보어가 주고받은 대화는 무얼까? 사실 누구나 이런 세세한 내용이 궁금하지만 역사책에서 이런 것을 바라는 것은 지나친 호사다.

물론 책에 따라 독자의 흥미를 조금이나마 만족시키고자 이런 내용을 일부 넣기도 한다. 하지만 <얽힘의 시대>는 책의 대부분을 이런 이야기로 채운다! 책을 이런 식으로 쓰는 것은 당연히 위험하다. 자료가 다 남아있지도 않을뿐더러 기록으로 남아있는 단편적인 대화의 사이사이를 어떻게 매끄럽게 연결하는가도 큰 문제이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역사가 아니라 소설이 될 수도 있다. 이에 대한 저자의 말을 들어보자.

나는 이런 식의 이야기가 지닌 위험성에 비해 그 보답이 더 크다고 믿는다. 사람들은 이로부터 어떻게 양자론이 전개되었는지 알아낼 수 있으니 말이다. 어떤 이가 "그렇게 말했을 리가 없어!"라는 생각이 든다면 주를 확인하기 바란다.

이 책이 가진 또 하나의 미덕은 100쪽에 달하는 주다. 이걸 놓치지 않고 죄다 번역하기로 결정한 출판사에 감사드린다. 주까지 챙겨보는 나 같은 사람에게 이 책은 축복이다. 양자 역학이 탄생한 지 90여 년이 지나서야 우리는 비로소 그 전모를 속속들이 들여다보게 해줄 책 한 권 가지게 된 것이다.

양자 역학이 이상하게 보이는 것은 우리의 직관과 다르기 때문이다. 달라도 너~~무 다르다. 양자 역학은 빛이나 전자 같은 것이 입자이면서 파동이라고 말한다. 사과나 당구공, 스마트폰, 이렇게 손에 잡히는 것들이 입자다. 소리같이 어디 있는지 잘 모르겠는 것이 파동이다. 소리는 벽을 타고 넘어간다. 밤 말은 쥐가 듣고 낮말은 새가 듣는다고 하지 않았는가. 파동은 작은 틈만 있으면 파고들어 지나간다. 입자는 이렇게 행동할 수 없다.

근데 입자가 파동의 성질을 보이거나 파동이 입자의 성질을 보인다는 것이 양자 역학의 핵심이다. 이 때문에 전자는 동시에 두 개의 장소에 존재할 수 있다. 이것을 중첩의 원리라고 한다. 벽을 뚫고 지나가기도 한다. 어떻게 벽을 뚫고 가냐고? 터널링이라는 현상인데, 이를 이용해서 현미경을 만든 사람들은 벌써 옛날에 노벨상을 받았다. 대중 강연에서 "양자역학은 괴상합니다"라고 운을 뗄 때,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다는 자세를 보이던 사람들도 이런 말을 하고 나면 미친 거 아냐 하는 표정을 짓게 된다.

어쨌든 양자역학이 학계에 자리를 잡게 되는 1930년대까지의 역사는 다른 책들을 통해서도 제법 알려져 있다. <얽힘의 시대>가 주는 두 번째 즐거움은 그 '이후'의 역사, 특히 데이비드 봄, 존 벨, 알랭 아스페, 안톤 차일링거의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점이다. 사실 오랫동안 데이비드 봄이라는 이름은 물리 사회의 금기어였다. 양자 역학의 정통 해석인 코펜하겐 해석과 다른 설명을 내놓은 죄로 그는 이단자 취급을 당했기 때문이다. 학계에서 봄의 해석을 지지한다고 말하려면 어느 정도 용기가 필요하다. 존 벨의 이야기 역시 다른 책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내용들이다. 사실 책의 핵심 주제인 '얽힘'을 물리학 무대의 중앙으로 가져온 사람이 바로 벨이다. 안타깝게도 벨은 1990년 62세의 나이로 죽었으니, 노벨상을 꼭 받아야했으나 받지 못한 애석한 인물 1순위라 하겠다.

이미 이야기했지만, 양자 역학은 하나의 입자가 동시에 두 장소에 존재하는 중첩의 성질을 갖는다고 말한다. 벨이 밝힌 것은 양자 역학에서는 두 개의 입자 사이의 '관계'도 우리의 직관과 어긋난다는 것이다. 서평에다가 벨의 이론에 대해 늘어놓을 생각은 없다. 이 괴상하다 못해 "유령 같은" (이것은 아인슈타인이 사용한 표현이다) 상호 관계를 '얽힘'이라 부른다. 책의 뒷부분에 소개가 되어 있지만, 이제 얽힘은 양자정보, 양자컴퓨터라는 첨단 물리학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더구나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하다.

<얽힘의 시대>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시의적절하다. 최근 개정된 고등학교 물리 교과서에는 양자 역학과 관련한 부분이 대폭 추가되었다. 현대의 첨단 기술은 대부분 양자 역학에 의존하고 있는바, 양자 역학 지식에 대한 수요는 점점 늘어갈 것이란 판단 때문이다. 더구나 2012년 노벨 물리학상은 세르주 아로슈와 데이비드 와인랜드에게 수여됐는데, 이들은 양자 역학적 중첩 상태를 원자나 빛으로 구현하고 이를 마음대로 제어하는 실험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나도 이 분야를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양자 역학의 역사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단언컨대 양자 역학을 다루는 책에 있어, <얽힘의 시대>보다 생생히 살아있는 역사책은 조만간 나오기 힘들 것이다. 물리학자의 눈에 거슬리는 문구들이 몇 군데 있지만 (물리학자의 완벽주의가 문제일지도!) 인물들의 대화를 생동감 있게 표현한 번역도 훌륭하다.

양자 역학 탄생의 주역이었던 슈뢰딩거는 바람둥이였던 것으로 유명하다. 책은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문장으로 끝난다. 이쯤 되면 책을 보고 싶은 생각이 들 법도 한데.

스물한 살의 루돌프는 이 이야기를 통해 비로소 자기 외할아버지가 슈뢰딩거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eon@pressian.com 다른 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