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너
  • 이메일
  • 목록
  • 글자크기
  • 크게
  • 작게

굿바이 MB! 당신이 있어서 5년간 행복했어요!

[한국 문단의 신인류] SF 작가 배명훈

안은별 기자 2012.12.14 18:38:00

"이민 가방이나 싸자"부터 "동면하고 싶다"까지. 대선이 다가오면서 누군가가 대통령이 될 미래를 예상하며 절망의 말을 쏟는 사람이 적지 않다. 5년 전에도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다.

소설가 배명훈은 2007년 12월 20일, 즉 '그분'의 당선 직후부터 쓰기 시작했다는 단편 '바이센테니얼 챈슬러(Bicentennial Chancellor, 200년을 산 총통)' 속에서 이 상상을 실행에 옮겼다. 우주여행을 위한 동면 연구를 진행하던 한 여성이, 실직 후 총통 선거에만 관심을 기울이다 "나 죽을까?"를 연발하는 남편을 세상 몰래 5년간 재운 것이다. 그러나 소설 밖에서 저자는 지난 5년이 오히려 즐거웠다고 말한다. "너무나 어처구니없고 기상천외한 것들이 많아 기록하기 바빴다"는 웃지 못 할
역설이다.

그의 소설집 <총통 각하>(북하우스 펴냄)는 그렇게 "그분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지어낸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다. 도시 정복을 위한 특수공수부대의 '낙하산' 침투 사건이나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는 광장 시위의 폭력 사건 등 소재들은 묘한 기시감을 불러일으키지만, '모든 것이 그 분 때문'이라는 지엽적인 정치 구호와는 거리가 아주 멀다. 평론가 허윤진의 표현대로 "악인과의 투쟁이 아닌, 악과의 투쟁을 다루"는 이야기 속엔, 개인에 대한 혐오에 힘을 실어주는 고리는 없다. 그러니 혹시라도 '반 MB'라는 감수성(?)을 충족시키고자 하는 사람은 기대를 접을 것.

작가는 작품 안팎에서 일관되게, 우리의 눈을 정책 결정자 개인이 아니라 권력의 구조로 돌려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2009년 발표한 <타워>(오멜라스 펴냄)에서도 권력의 정점에 네 발 달린 개를 놓아두면서 자체의 소스 없이 흐름만으로 발생하는 권력을 그러낸 바 있다. 이 문제의식은 국가 권력을 풍자하는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세계가 아닌 개인의 내면에 치중하는 한국 문단 문법의 보수성으로 향하기도 한다.


배명훈의 독특한 위치가 낳은 또 하나의 눈이다. 그는 소위 본격 문학이라 불리는 문예지 세계와 대중 소설 세계가 엄격하게 분리된 한국 소설계에서 드물게 양쪽을 오가는 소설가다. 문단에서 장르적 코드를 활용하는 작가는 적지 않지만 SF(과학 소설) 세계에서 날아 온 배명훈은 태생이 다르다. 장르 문학 웹진과 유력 문학 출판사를 오가는 동안 그는 두 쪽 독자군의 전혀 다른 독법에도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이런 관찰 시점도 지난 5년이란 타임라인과 겹친다.

책보다는 데이터베이스의 집적 속에서 유랑하는 그의 지식 습득 방식도, 소설을 쓰면서 덜컥 얻어버린 문학가나 예술가 같은 정체성에 의문을 던지는 모습도 흔히 봐 왔던 작가상과는 구별된다. 문단 속 신인류라고 할 수 있을까? '프레시안 books'는 그의 단편 '내년'에서 30년째 도래하지 않는 2013년을 기다리는 심정으로, '오래된 새로움'인 배명훈을 호출했다. <편집자>

▲ 소설가 배명훈. ⓒ프레시안(최형락)


'그분'에게 창작 지원 받다?

프레시안 : 올해 장편 한 권, 단편집 한 권을 냈다. 예전 인터뷰에서 작가로서의 이력서를 갱신한다는 이야기를 봤는데, 2012년은 그 이력서 속에서 어떤 해였나.

배명훈 : 개인적으로는 몇 년간 죽 굴곡 없이 지내 왔다. 올해는, 내 입으로 말하기 그렇지만 (웃음) <총통 각하>를 내면서 스스로 글이 나아졌다는 걸 깨달았다. 책에 실린 글 중 몇 년 전에 쓴 걸 다듬는 과정에서 느꼈다. 수정할 부분이 되게 많더라. 그건 좋아졌다는 증거다. 왜 늘었는지는 모르겠다. 예전에는 글을 쉽게 못 썼는데 지금은 복잡하지 않게 쓸 수 있는 것 같고. 쉬워져서 불안한 거? 없다. 아무 이유 없이 쉬워지는 건 아닐 테니까.

프레시안 : <총통 각하>는 "지난 5년간 쉴 새 없이 영감을 선사한 총통 각하"란 문구 등 누가 봐도 현재 대통령이신 '그분'을 연상시킨다. 이 정권이 들어설 때부터 앞으로 5년이 어떻게 될 거라는 부정적인 전망이 있었던 건가.

배명훈 : 그런 건 아니고, 5년간 그냥 영감을 받은 거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그 사람이 너무 싫다면서 (당선되면) 5년 동안 이민 가고 싶다, 푹 자다 5년 뒤 깨어나고 싶다고들 했다. 지금이랑 똑같다. 다만 그때는 그 사람이 당선된다는 사실이 훨씬 명백했으니까.

"저기, 5년 지난 거 맞아요?"
"맞잖아. 달력 봐."
"근데 총통이 왜 아직도 저…"
나는 5년 전을 떠올렸다. '그래, 남편이 딱 5년만 잠들기로 결심했던 이유가 공식적으로는 바로 저 총통 때문이었지.' ('바이센테니얼 챈슬러', <총통 각하>, 17쪽)


실제로 당선 다음날 현충원 참배하는 장면을 뉴스에서 봤는데 정말 너무 싫어서 그냥 쓰기 시작했다. (웃음) 그간 그런 식으로 쓴 단편들을 모아 보니 여섯 편쯤 되었고, 그 소재의 글들이 좋은 글들이었다. 뭔가 영감을 받은 것 같다고 느꼈다. 써야 할 소재가 휙 지나가고 그걸 좋은 타이밍에 잡았다고 할까. 이건 일종의 창작 지원 사업이었다. 다른 정부들이 창작자들을 지원한답시고 이런저런 지원금 대주고 마는 것과 달리 이 정부는 창작에 필요한 구체적인 영감들을 거의 원석 그대로 제공했으니.

{#8956056102#}
▲ <총통 각하>(배명훈 지음, 북하우스 펴냄). ⓒ북하우스
프레시안 :
책의 제목이나 표지 같은 첫인상만 놓고 보면 대통령만 사라지면 잘 될 거라는 '심판론자'들이 얼핏 생각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 식의 메시지로 읽힐 우려는 없었나.

배명훈 : 책을 읽어보면 아니란 걸 알겠지만, 마케팅 하기에는 그쪽이 더 쉽기 때문일 거다. 작가의 말에도 썼듯 난 그분에게 이 책을 헌정할 생각이 없고, 트위터에서도 딱 지금 이 정권에 대한 패러디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2009년에 <타워>를 냈을 때도 현재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비슷한 묘사가 있어서 시간이 지나면 보편성을 잃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도 똑같지 않나. <총통 각하> 역시 아마 5년 뒤에 읽어도, 10년 뒤에 읽어도 똑같을 거다. 마찬가지로 다른 나라에서는 또 그 나라 맥락에서 읽힐 거고. 정치 현상이라는 게 보편적이어서, 여기서 일어나는 일이 지구 반대편에서도 거의 비슷하게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프레시안 : 말한 대로 실제로 내용을 보면 소위 '반 이명박' 정서가 깔려 있지는 않다. 오히려 그 정반대 정서다. 악인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본의 아니게 악이 되거나 악과 싸우게 되는 사람들이 나온다.

배명훈 : 사람 한 명이 중요한 게 아니라 구조를 보자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그러니까, 가령 이런 거다.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되던 무렵에 모 연구 기관에서 직장 생활을 했는데, 구석에서 어깨 늘어뜨리고 다니던 나이 많은 박사들이 대통령 당선 직후 허리를 꼿꼿이 펴고 다녔다. 대통령 인수위원회 출범되고 나서는 원래 느슨했던 연구소 출근 시간이 살짝 앞당겨지면서 엄격하게 지키라는 이야기가 내려왔다. 내가 일하던 곳에서, 바로 윗사람들에게 힘이 생긴 걸 본 거다. 그때 본 게 권력의 한 겹이라고 생각한다.

'초록 연필'에서 필기구에 센서를 달아 직장 건물 내의 권력의 흐름을 추적하는 실험이 나오는데 비슷한 이야기다. 권력의 한 단계 한 단계가 있고 그게 쌓여 구조를 이룬다는 것. 물론 구심점은 있겠고 결국은 거길 향해 초록 연필을 몰아주고 있기는 하지만, 어떤 자리에 누가 있거나 없는 게 중요한 건 아니라는 얘기다.

"니 가설은, 필기구들이 권력을 따라 흘러간다는 말이야?" (…)
"응. 그런 거 있잖아. (…) 무의식적으로 결정돼 있는 서열 때문이라고 해야 되나. 그런 식으로 작은 경사가 만들어지는 거겠지. 그 경사를 따라서 흐름이 생겨나는 거고." ('초록 연필', <총통 각하>, 241~242쪽)


그 자리에 누가 있든

{#8901096439#}
▲ <타워>(배명훈 지음, 오멜라스 펴냄). ⓒ오멜라스
프레시안 :
<타워>의 첫 단편 '동원 박사 세 사람-개를 포함한 경우'가 생각난다. 이 작품에선 미세권력연구소라는 연구 기관이 비싼 양주를 타워의 상류 사회에 유통시킨 후 이동 경로를 추적한다. 이 이야기에서 권력 분포 지도를 그리다 보니 핵심에 개가 나온다.

배명훈 : 그 자리에 막대기를 꽂아놔도 권력이 될 수 있다는 거다. '문화 권력'이 있다고 했을 때 그것은 누군가가 손에 쥐고 있는 식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권력의 지형이 있어서 그것이 흘러가는 곳에 서 있는 사람이 권력을 행사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거기서 아인슈타인의 중력장을 차용해 '권력장'이란 개념을 썼다. 일그러진 공간을 지날 때면 질량 없는 빛 입자도 굴절될 수밖에 없는 것처럼, 권력장에선 권력을 수용할 의도가 없었던 사람도 자발적으로 권력 수용 행동을 보이기 마련이다.

프레시안 : 인물이 아니라 권력을 바라보라는 이야기인가?

배명훈 : 전공인 국제정치학의 주요 패러다임 가운데 권력을 중심으로 세상을 파악하는 걸 현실주의라고 한다. 내 이야기 역시 대개 그 관점에서 출발한다. 그런 눈으로 보면 겉으론 평화로워 보이지만 우리 사회에도 전쟁이 깊숙하게 들어와 있다. 안정된 껍데기가 어느 순간에 깨지면 바로 알 수 있는데 그 단면이 평소 우리에겐 잘 안 보인다.

권력 구조 이야기는 앞으로도 계속 해야 할 거 같다. 왜냐하면 좀 다른 이유인데, 한국 문학계의 독법이 명백히 인물 중심이기 때문이다. 독법 자체가 그래서인지 몰라도 인물이 아닌 구조 이야기를 해도 인물만 읽히는 경우가 많았다. 아마 그분들 스스로는 그런 의도나 자각은 없겠지만 난 그게 '보수'라고 생각한다. 구조를 보지 않고 인물의 문제로 보는 시각이니까. '내년'이란 단편에서 그 문제를 다뤘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 전체의 문제라는 생각을 못 하고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라고 하는 시각에 대해서.

"알겠어요. 뭐가 문젠지는 알겠는데, 그럼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자는 거예요? 방법이 있나요? 뭘 해 볼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
내가 물었다. 그러자 미래학자들이 대답했다.
"내년이 오게 하는 겁니다."
나는 한참 동안 그 말을 곱씹어 보다가 고개를 들고 다시 그들에게 물었다.
"내년이 오면 다 해결되는 건가요? 문제는 멈춰져 있는 시간이 아니라 30년간 끊임없이 사람들을 지배해 온 이 도시 전체의 권력 구조 아닌가요? 지배자 하나가 잘못된 것도 아니고, 사실상 이곳 사람들 하나하나가 피해자이면서 또 가해자일 텐데, 내년을 관철시킨다고 그게 갑자기 다 사라져버리는 건 아니잖아요." ('내년', <총통 각하>, 269쪽)


프레시안 : 인물 하나가 중요한 게 아니라고 하니 또 하나. 코앞으로 닥친 선거 생각이 난다. 많은 사람들이 인물 수준에서 선택을 하려고 하는데.

배명훈 : 대통령 선거에서 중요한 건 인물이 아니라 그 정책을 집행할 권력을 어디서 확보할 거냐는 문제지 않나. 안철수 씨가 대통령이 되면 안 된다는 의견의 근거가 그거였다. 누가 권력을 뒷받침해줄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는 거다. 그러니 개인의 품성이나 선언하는 말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사람을 떠받들고 있는 권력이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봐야 공약집 내에서도 할 공약과 안 할 공약이 보이는 거 아닐까. 다 경제 민주화를 하겠다고 하는데, 그 사람이 줄 대고 있는 권력의 속성과 역사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되는 것처럼. 그래서 선거에서 한 사람만 잘 뽑으면 된다, 착한 사람이 권력을 잡으면 세상이 좋아질 거다, 이런 생각은 되게 나이브한 것 같다. 마키아벨리적 관점으로 보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프레시안 : 권력의 속성을 보여주려 하면서도 결코 거기에 감정적인 반응을 드러내진 않는데, 유일하게 국가 권력에 대한 창작자의 분노가 드러나는 대목이 있다면 시위대 앞에서 경찰이 취하는 대열, 즉 보병 밀집 방진(팔랑크스, 보병들이 직사각형 대형으로 빽빽하게 모여 서서 벌이는 싸움 방식)에 대한 묘사다.

배명훈 : 전쟁사 공부를 하면 바로 아는데, 팔랑크스는 어마어마하게 공격적인 진영이다. 로마 군대가 갈리아 군대를 상대로 말도 안 되게 이길 수 있었던 이유다. 서울에선 근처에 집회가 있다고 지하철에서부터 경찰이 죽 서 있는 걸 보는 경우가 많은데, 보는 거 자체로 지나가는 사람을 위축시키잖나. 그렇게 하려고 줄 서는 거 맞다. 상대편의 사기를 완전히 꺾는 전술이니까. 게다가 방패 들고 있지. 창만 들면 완전히 팔랑크스다.

경찰은 시위대가 뭐라도 들고 있으면 무기 들었다고 뭐라고 하는데, 경찰이 손에 아무 것도 안 들고 있더라도, 밀집 방진 자체가 엄청난 위협이다. 국가가 그런 행동을 하는데 제약이 없다는 게 정말 이상하다. 어떤 식으로든 제약을 가해야 한다고 본다.

프레시안 : 사실 별로 신경 쓰지 못했던 것 중 하나다. 소설가 입에서 처음 들었다.

ⓒ프레시안(최형락)
배명훈 :
그래서 전쟁 공부를 하는 민간인이 필요한 것 같다. 저 사람들이 우리한테 하고 있는 게 뭔지 알아야지. 군대나 경찰에서도 전쟁사 전공자가 있겠지만, 그 사람들은 그게 위협이라는 이야기를 결코 하지 않을 테니까.

프레시안 : 당신의 소설에 나오는 인물 대개가 공무원이다. 일반 행정직이든 정보국 직원이든 연구소 연구원이든 어떤 형태로든 국가의 녹을 먹고 산다.

배명훈 : 그런가? 의식하지 않고 있었는데. 왜 그렇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지금까지 일해 본 경험이 군대 행정장교, 국립대 행정 조교, 연구소 직원 등 어떻게든 국가와 연결이 되어 있어서 직업 세계를 그리다 보면 어딘가에서 공공 영역이 나오는 걸지도? 아니면 이야기가 대개 국가, 세계 수준의 이야기를 다루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음, 이 사실은 오늘 처음 알았다. (웃음)

프레시안 : <총통 각하> 중반까지는 기시감을 불러일으키는 상황을 묘사했다면, 후반부에는 작가가 생각하는 대안 같은 것도 드러난다.

배명훈 : 이 책의 중 하나가 권력을 중화시켜야 한다는 문제의식이었던 것 같다. 권력을 상대하기 위한 똑같은 크기의 권력을 통해 균형을 맞추든지, 그걸 중화시키는 무엇을 만들든지. 예를 들면 '내년'에 나오는 권력 이양 5개년 계획 같은 것들 말이다. 집권이야 누가 하든 권력 자체를 평탄하게 만들자는 것이다.

세부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가령 시선의 권력 같은 것도 있다. 지금은 출동한 경찰이 시위대 쪽을 바라보는데 그걸 뒤로 돌게 만들 수 있으면 어떨까. 콘서트 같은 데 보면 사고 방지를 위해 온 경찰이 가수 쪽이 아니라 관객 쪽을 본다. 등을 진 쪽을 보호하겠다는 의미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공권력을 사유화되지 않은, 정말로 공적인 형태로 중립화시키는 일인 것 같다.

"시위대를 둘러싸고 쭉 늘어서 있는 경찰 병력이 바라보고 있는 방향 말이야. 광장에 모인 사람들을 향해 있더라고. 그래서 그 생각이 났지. 그 여자의 나라에서 용을 둘러싼 경찰이 어디를 바라보고 있었는지가. 어디였겠어? 당연히 용 반대쪽이었지. 그때 깨달은 거야. 지키려고 마음먹은 건 등 뒤에 두는 거구나. 시선이 향하는 족에는 위험해 보이는 걸 두는 거구나." ('고양이와 소와 용의 나라로부터', <총통 각하>, 81쪽)

프레시안 : <총통 각하>는 정치적으로 민감하게 읽힐 수 있는 책이라 단편 '자연 예찬'(<타워>)의 작가 K를 떠올리게 만든다. 그는 현실에 대한 발언을 요구받자 자연주의로 회피했다가 결국엔 정부 비판 글을 써서 매장을 당한다. 요즘 <시사인>에도 비판적인 칼럼을 쓰는 걸로 안다. 작가로서 사회에 대한 발언 수준이나 사회와 관계 맺는 방식에 대해 고민이 생길 것 같은데.

배명훈 : 그런 고민을 많이 안 하려고 하는데 하게 되는 일들이 최근 좀 있었다. 가령 강연하기 전에 '정치적 발언은 하지 말아 달라'는 얘길 들었다든지, 작가 스스로를 위해 (권력을) 조롱하는 내용을 쓰는 건 좋지 않다든지. 하나하나 떼어 놓으면 사소할 수 있는 얘기이지만 한 달 안에 예닐곱 번 들으니 좀 이상했다. 대놓고 하지 말란 소린 안 하지만, 누가 쳐다보는 느낌이 들었다. 정치적 발언 하지 말라는 얘기가 그달 내가 들은 가장 정치적인 발언이었다. (웃음)

이상한 사랑 이야기

프레시안 : 분위기를 좀 바꿔 보자. 배명훈 소설에서 의외로 두드러지는 게 로맨스 묘사다. 아주 희한한 순간에 이상한 대상과 사랑에 빠지거나, 사랑이라 하기엔 기묘해서 "거의 사랑이었다"라고 표현되는 감정들이 읽는 사람을 은근히 설레게 한다.

배명훈 : 어느 시점부터 연애 소설을 본격적으로 써 보라는 제안을 많이 들었다. <타워>에 실린 '타클라마칸 배달 사고'에 슬쩍 나오는 것처럼 로맨틱한 뭔가를 확장시켜 보라는 얘기였다. (이 단편은 사막에서 실종된 남자를 찾는 데 과거에 안타깝게 헤어진 연인이 인터넷의 힘을 빌려 나서게 되는 이야기다-편집자)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 부분은 연습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했으니까. SF에서는 세계가 움직이는 쪽으로 결말을 내야 결말을 냈다고 생각하는데 소위 문단에서는 내면이 움직이는 쪽의 결말이 아니면 결말을 낸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문단에서 데뷔한 분이 SF를 썼을 때 SF 독자들이 '결말이 허무하다'고 말하는 이유는 그들이 주로 내면의 결말을 내기 때문이다. 나는 줄곧 세계가 움직이는 방식의 이야기를 써왔는데, 반대쪽의 성장판도 닫아 두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런 요구를 받아들인 게 <은닉>인 것 같다.

{#8956055971#}
▲ <은닉>(배명훈 지음, 북하우스 펴냄). ⓒ북하우스
프레시안 :
<은닉>은 <타워>나 <신의 궤도>를 쓴 사람의 것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작품이었다. 정소연 작가가 '프레시안 books' 칼럼에서 이 책에 대해 "이야기의 스케일이 작다"라는 점을 중요하게 거론했는데, 읽고 나니 공감이 갔다. 짧은 시간, 한정된 공간 속에서 어둡고 빠르게 진행되는 이야기다. 이 책은 어떤 도전이었는가.

배명훈 : <신의 궤도>는 스스로 매우 좋아하는 작품이다. 내가 생각하는 재미있는 글이 바로 이런 글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그런데 이 책이 출판계에서 소화가 안 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떤 의미냐 하면, 나는 이 책이 밀리터리 마니아 같은 사람들에게 전달되어야 한다고 봤다. 그런데 출판 문법이나 출판사 특성상 '문학성'이라는 포장지에 담길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하니 잘못된 주소로 배달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더라. 가령 이건 전쟁 소설인데 종교 소설로 읽는 사람이 많았다.

그런 일련의 과정을 겪으면서 다음 장편은 가볍게 가자는 생각이 들었다. 구상하고 있는 큰 이야기, 하고 싶은 이야기는 몇 년 더 기다리기로 하고 경장편을 목표로 '작게' 써서 <은닉>을 냈다. 하고 나니까 이게 문학 출판계에서 말하는 장편 길이로구나 싶었다.

프레시안 : 어느 인터뷰에서 이야기를 써놓고 캐릭터의 성별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경우엔 무조건 여성으로 설정한다는 이야기를 읽었다. 실제로 당신 소설엔 성별 정체성이 분명한 캐릭터들이 많지 않다. <은닉>의 은수 같은 사람이 특히 그렇다. 처음엔 당연히 남자라고 느꼈다가 중반 지날 때쯤부터 여자 은수를 상상해가며 읽었다. 트위터에서는 그냥 '사람'으로 봐달라고 주문했다. 그래도 궁금하다. 이 캐릭터의 성별은 대체 뭔가.

배명훈 : 조은수라는 이름은 <끼익끼익의 아주 중대한 임무>(킨더주니어 펴냄)나 <타워>의 '타클라마칸 배달 사고'에도 나온다. 그런데 성별이 헷갈린다는 의견이 나오면서 편집부에서 일부러 더 헷갈리게 가자고 했다. 거기에 묘한 매력이 있다. 존재 자체가 흔들리게 되니까 은수와 은경, '나'의 삼각관계까지 끊임없이 변하게 된다.

국제 정치에서 강대국의 숫자가 체제를 만들잖나. 하나면 일극 체제, 두 개면 양극 체제 이렇게. 삼각관계를 삼극 체제라고 하면, 어디랑 어디가 동맹을 맺느냐가 굉장히 중요해진다. 고구려, 백제, 신라만 봐도 어떻게 동맹을 맺는지가 계속 바뀌잖나. 이성애적 삼각관계에서 한 명의 성별이 불분명하면 관계가 계속 흔들린다. 그래서 은수의 성별의 모호함을 그냥 놔두었다. 그런데 사실 이것도 책 나오고 한참 뒤인 지난달쯤 깨달은 거다. (웃음)

프레시안 : 어떤 소설에서는 성별이 매우 중요하게 느껴진다. 여자를 이해하기 위해 거의 목숨 거는 수준의 치열한 이해 과정을 겪는 남자들이 나오는 경우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단편인 '예술과 중력가속도'(<창작과 비평> 2010년 겨울호 게재), <안녕, 인공 존재!>(북하우스 펴냄)의 '크레인 크레인'과 '안녕, 인공 존재!'가 비슷한 맥락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걸 보면서 혹시 작가가 이성을 불가해한 존재로 보고 있는 게 아닌가, 이해하려다 실패한 경험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웃음)

배명훈 : 여성을 이해하고 싶다는 욕망의 투영은 아니고 (웃음) 오히려 나는 이해 받지 못하는 여자 주인공들 쪽에 더 가까운 것 같다. 이를테면, 내 소설에 단골 주인공인 '은경'이가 그렇다. 현실에 다른 모델이 있는 게 아니라 사실은 나의 분신이 아닐까 생각한다. 배명훈의 속성 중에 적극적인 부분을 쭉 뽑아내서 만든 인물이라고 할까.

은경이 나온 이야기의 구조를 보면 남자 주인공은 고정된 위치에서 관찰하는 입장이고, 은경이가 막 이상하게 헤집고 다닌다. 둘 다 움직이면 이상하니까 한 명은 지켜보는 거다. 이 구도에서 은경에 대한 몰이해가 발생하는데, 이런 묘사가 내가 이해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순간을 드러낸 게 아닌가 싶다.

그런데 '예술과 중력 가속도'만 놓고 보면, 반대로 사랑하는 여성의 예술을 이해 못 하는 그 남자의 입장이기도 하다. 그게 말하자면, 어떤 중력(맥락)에 놓이느냐에 따라 당신이 한다는 예술이 절대 예술로 안 보일 수도 있다는 얘기잖나. 나도 있다. 가령 나 스스로는 한국 문단과 관련이 없는 작가라고 생각하고, 그 미래를 책임질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그래서인지 문학 하는 분들 보면 사실 잘 이해가 안 되는 거? (웃음) 스스로 '문학'한다는 자각이 없는 상황에서 내가 과연 예술가인가를 고민해봤던 것 같다.

ⓒ프레시안(최형락)


잘못 배달된 소설?

프레시안 : 2005년 서울대학교 대학문학상, 같은 해 과학기술 창작문예 단편부문에서 수상한 이래 웹진 <거울>이나 잡지 <판타스틱> 등 소위 장르계에서 SF 작가란 칭호로 인식되며 활동해 왔다. 그런데 활동 초기엔 스스로 SF 작가라는 정체성이 없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배명훈 : 맞다. 당시 국제 정치학 공부하는 나와 글 쓰는 나는 완전히 분리되어 있었다. 남들이 어떻게 쓰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계속 습작을 썼다. 그러다 제출에 의미를 두고 대학문학상에 원고를 냈는데 그게 상을 받았고, 내 글이 SF로 읽힌다는 걸 처음 알았다. 동구권에서 유출된 미사일 기술을 가지고 미국의 인공위성을 요격하는 테러리스트 이야기였는데, 생각해 보면 '세계가 움직인다'는 측면에서 SF적이라는 평가를 받은 것 같다. 그래서 과학기술 창작문예에다 쓴 이야기 중 'SF스러운' 글을 다 냈더니 좋게 받아들여졌고, 이후로 SF 관련 지면이 계속 들어왔다.

프레시안 : 2010년 문학동네 젊은 작가상을 받은 뒤로는 'SF와 순수 문학 사이를 오간다'라든가 '이례적으로 장르계에서 시작해 문단의 문턱을 넘었다'는 식으로 묘사되어 왔다. 이런 구분 자체에 대한 생각과 그렇게 규정되는 것의 좋은 점과 불편한 점이 있다면 듣고 싶다.

배명훈 : 작가로서는 좋은 것 같다. 대부분의 작가들이 경계에 갇히거나 '어떤 작가'로 규정되는 걸 싫어한다. 나도 같은 마음이고, 많은 이들에 비해 눈치를 안 보는 위치가 되어 있어서 편한 게 있다. 그건 <타워>를 낼 때 포지션을 잡아 준 편집자들의 공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SF에서 시작해 문단으로 넘어갔다'는 식의 얘기엔 동의하기 어렵다. 그런 분들은 내가 문예지에 수록한 글을 안 본 거다. 오히려 훨씬 SF적인 글을 내 왔으니까. 사실 내겐 <판타스틱>이든 <에스콰이어> 같은 패션지든 문예지든 위계 없이 다 같은 '지면'이다. 오히려 문예지는 독자 수가 한정되어 있으니까 <거울> 같은 웹진보다 발표의 재미는 덜하다.

골치 아픈 점이 있다면, 두 개의 독자 군이 서로 전혀 다른 독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안녕, 인공 존재!>를 낸 뒤 한 1년간 당황스러웠다. 그 책은 앞의 반과 뒤의 반을 좋아하는 분이 명확하게 갈리는데, 그 두 군이 서로 양립할 수 없는 정도의 독법을 갖고 있는 거다. 이 책의 타깃을 어떻게 잡아야 하나 애매하더라. 지금도 그런데, 어떤 글을 내든 일부는 '이해 안 간다' '어렵다'고 한다. 뭔가를 낼 때마다 글이 좋아졌다는 소리와 글이 안 좋아졌다는 소리를 동시에 듣는다.

프레시안 : 그런 전혀 다른 반응이 작가로서는 오히려 건강한 균형을 유지하게 하지 않나.

{#8956054606#}
▲ <안녕, 인공 존재!>(배명훈 지음, 북하우스 펴냄). ⓒ북하우스
배명훈 :
음, 서로 대화를 좀 해봤으면 좋겠는데, 그 독법을 가지신 분들은 되게 확고하다. 다른 독법이 있다는 생각을 잘 못한다. 결말이 세계를 향해 터뜨려지는 SF와 내면으로 깊이 들어가야 하는 한국 문예지 독자들이 서로에 대해 '기술적으로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아쉬운 게 있다면, 글이 정확한 독자에게 배달되기 어렵다는 점이다. 가령 <신의 궤도> 같은 경우 명백히 대중 소설로 읽혀야 한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모니터링 단계에서 책을 자주 읽는 분들보다 오히려 1년에 한 권 정도 읽는 분들이 더 어려움 없이 읽었다. 나는 그걸 타깃으로 잡고 싶었고 거기가 내가 있을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출판 시장이 워낙 위축되어서인지 타깃을 좁힐 방법이 없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대중 소설을 쓰는 작업은 좀 더 뒤로 미뤘다. 편집부를 위해서도 그게 맞다. 그래도 아쉽다. 이렇게 재미있는 것을! (웃음)

프레시안 : 특정 창작자를 동경하거나 창작자가 된 자신을 지망하면서 창작자가 된 케이스는 아닌 것 같다. 그런 독특한 예로서, 작가 지망생들에게 좀 다른 시작점을 밟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조언한다면.

배명훈 : 지망생들에게 와 닿는 얘긴 아니겠지만 셀프 등단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보통 많은 분들이 1차 목표를 등단으로 잡고 그 다음에 훌륭한 작가 되어야지, 이렇게 생각하는데 등단에 그렇게 큰 의미가 있지는 않다. 오히려 어떤 청탁이 들어와도 자신 있게 글 쓸 수 있는 상태가 아니면 누가 등단을 시켜줘도 스스로 힘들어진다. 중요한 건 등단에 관계없이 좋은 작가가 되는 거니까, 어차피 거길 노려야 한다.

SF 작가로 데뷔하고 글이 점점 더 나아지고 있는 시점에서 이른바 등단을 했는데, 그래서 언제부터 '작가'가 된 건지 스스로도 모호하다. 기회가 몇 번 더 주어지긴 했지만 훨씬 나아지거나 달라진 건 없었다. 오히려 주어진 지면을 의식해야 하니까 실제로 좋은 건가 싶은 점도 있고. 결국은 기회가 주어졌을 때 쓸 수 있음을 입증하는 상태가 되는, '사실상 작가'가 되는 게 더 중요한 것 같다.

프레시안 : 현 시점에서 작가로서 느끼는 결핍이 있다면?

{#8954615724#}
▲ <신의 궤도>(전 2권, 배명훈 지음, 문학동네 펴냄). ⓒ문학동네
배명훈 :
여러 가지가 있는데, 일단 SF 평단이라는 게 있었으면 좋겠다. SF 평론가도 있고 실제로 같이 일 할 SF 편집자도 있어야 한다. 지금 같이 일하는 편집자들이 SF에 대해 편견이 있다거나 하지는 않은데, 교정지 오가는 과정에서 내가 일일이 설명하고 확인해야 하는 부분이 많다. 내 입장에선 작품을 쓰고 난 뒤에 자유롭게 읽으라고 놔두는 게 좋은데, 그렇게 할 수 없으니 에너지 소모가 많다는 느낌이 든다.

국내 SF를 기획하고 출간하는 일을 외국 장르 소설 번역해 온 분들이 맡는 경우가 있는데, 두 일은 완전히 다른 필드 같다. 외국에서 이미 검증된 책을 내는 것과 무명 작가가 초고를 가져왔을 때 그걸 판단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지 않나. 장르적 자장 안에서 어떤 글에 대해 작가도 확신이 없고 편집자도 확신이 없으면 글이 산으로 간다. 확신을 가져 줄 SF 편집자들이 필요하다.

또 아쉬운 건 그거다. 출판계 표준 작법. 문단에는 문단의 문법 외에 다른 어떤 방법이 있을 거라고 생각 못 하시는 분들이 많다. 그런데 내 생각엔 한국 문단의 작법이나 독법이 오히려 더 이질적이다. 인물 중심으로 쓰고, 주인공이 느끼는 감정은 반드시 묘사해주는 게 표준이고, 세계나 설정 이야기는 죽여야 되고, 그런 것들.

프레시안 : 한국 소설은 별로 안 읽는 것 같다.

배명훈 : 한국 문학을 포함해 문학 작품 자체를 잘 안 읽는다. 이유는 어려워서다. 그런데 그 독법에 익숙해져 있는 분들은 SF 읽기가 어렵다고 느낀다. 그분들 작법, 독법으로는 문예지가 쉽다고들 하는데 그게 되게 신기하다. 재작년쯤 느낀 건데, 어떤 글이 좋은가에 대한 생각이 아니라 어떤 글이 쉬운가에 대한 생각이 다르다. 나는 분명 이렇게 쓰는 게 쉽다고 생각해 쉽게 쓰는 건데 그게 어렵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음을 발견했다. 이 다름은 꽤나 근원적인 문제로 이어진다고 본다.

프레시안 : 소위 문학 청년은 아니었을 테고, 대학 때는 주로 뭘 했나?

배명훈 :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공부. 그리고 군사 동아리 조금? 글은 그야말로 취미 생활이었다. 한 달에 한 편 정도 쓴 게 10년이 넘은 것 같다. 그냥 써서 친구들에게 보여주었다. 힘들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대학원 논문 쓸 때도, 회사 다닐 때도 거의 같은 속도를 유지했다. 개인적으로 평생 해도 좋을 만한 것 두 가지를 20대 초반에 빨리 찾은 게 무척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는 글쓰기, 하나는 공부. 물론 둘 다 직업으로서는 변변치 않지만.

국제 정치사상 수업 들을 때, 전체 다 읽을 필요가 없었음에도 혼자 <리바이어던>을 끝까지 읽고 그러고 살았다. 솔직히 그걸 어디에다 써먹겠나. 그런데 나중에 '변신 합체 리바이어던'(<안녕, 인공 존재!>)이란 작품으로 써먹었다. (웃음) 언젠가 교수님이 "사랑의 국제 정치학"이란 표현을 쓰는 걸 보고 힌트를 얻어 나름대로 정리를 해 본 거다. 정말 쓸데없다고 생각했던 걸 써먹을 데가 생기니까 굉장히 좋았다. 생각해보니 그 쓸모없는 걸 쓸모 있게 해 주는 건 소설밖에 없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현재 사회를 내다보는 주된 창구 역할을 해 주는 건 뭔가.

배명훈 : 인터넷. 그 중에서도 지금은 트위터가 제일 가깝다. 꼭 좋아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다만 요즘 일어나는 많은 일들은 사건 자체뿐 아니라 해석까지 '일어나는 일'에 포함된다는 점에서 포털이나 트위터가 뭔가를 알기에 용이한 것 같다. 어제(12월 11일) 민주통합당의 국가정보원 의혹 제기 사태만 봐도 뉴스에 나오길 기다리는 것보다 포털에서 국정원 검색해 놓고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이야기를 보고 있으면 대충 이렇게 흘러가는구나,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는구나 하고 알게 된다. 옛날에는 현실과 사이버스페이스를, 사건과 해석을 구분했는데 지금은 그게 구분이 되는가도 모호하니까.

오래된 것에 대한 창구는 <위키피디아>다. 어릴 때도 책 중에 백과사전을 가장 열심히 봤고 지금도 그렇다. 백과사전과 상대되는 개념이 필독서 목록인 것 같은데, 내겐 어떤 시기에 보면 더 좋은 책이 없었다. 그냥 필요한 걸 직접 찾아가는 게 더 잘 맞았다. 찾아가는 과정은 대학원 공부하면서 많이 배웠다. 책을 계속 읽으면서 필요한 걸 찾는 식이 아니라 뭘 보면 되는지 먼저 감을 잡고 찾아가는 식으로 접근한다. 한국 포털에서 검색어를 찾을 때까지 검색하고, 적절한 검색어를 찾으면 구글에서 영어 검색을 한다. 그럼 필요한 건 거의 다 나온다.

프레시안 : 나도 그런 지식 습득 방법에 익숙하긴 하지만, 학교에서는 권장하지 않는 얘기다. (웃음)

배명훈 : 구텐베르크와 백과사전을 전후로 지식의 체계가 바뀌었다. 그 전엔 과목 자체가 정해져 있었고 그 과목을 달달 외우는 게 공부를 잘하는 거였다면, 백과사전이 나온 이후에는 그렇지 않다. 그런데 아직도 우리는 필독서 목록을 정독해야 제대로 공부하는 거라는 생각이 남아 있다. 그런데 학문 체계가 나처럼 했을 때 더 유리하게 되어 있다. 사람들이 많이 보는 책이 수백 권 있는 도서관이 아니라, 사람들이 10년에 한 번 볼까말까 한 책이 많이 있는 도서관이 좋은 도서관인 것처럼. 특이한 질문을 던질수록 유리하다. 인터넷 덕분에 더 찾기 좋아졌고.

프레시안 : 마지막 질문. 내년이 기대되는가? 하나는 작가로서, 하나는 대통령이 바뀔 해로서.

배명훈 : 작가로서는 이제 지구전을 해야 할 단계인 것 같다. 작품을 안 내겠다는 게 아니라, 진짜 쓰고 싶은 건 미뤄 두더라도 계속 써낼 수 있음을 보여주어야 하는 단계라고 해야 하나. 장편은 1년에 한 권씩 쓰고 싶고, 중간 중간 손에 잡히는 글을 많이 쓰려고 한다. 최근에 JYJ의 열혈 팬인 핵잠수함 승무원의 콘서트 티켓 전쟁을 소재로 한 '티케팅 & 타게팅'을 쓰면서 내가 왜 이걸 쓰고 있지? 미쳤나? 이런 생각이 들었는데, 그 느낌이 되게 좋았다. (웃음)

그리고 대통령이 바뀔 해로서는…, 솔직히 '나의 뮤즈' 이명박 정권 시대에서도 소설가로서는 재미있었다. <거울> 자유게시판에 "여러분, 지금 많이 쓰셔야 합니다! 이렇게 좋은 기회가 어디 있어요"라고 쓰기도 했다. (웃음) 그런데 그건 여전하지 않겠나. 그분(?)이 당선되면 난 <타워 2>를 쓰면 되겠지. 물론, 당연히 그렇게 되길 바라지는 않는다.

이전에는 세상의 균열이라는 게 정교하게 감춰져 있었다. 찾아내려면 사회과학적 도구를 가지고 더 세밀하게 들어가야 했다. 그런데 5년간은 그 균열이 그냥 큰길 한가운데 떡하니 방치되어 있곤 했던 것 같다. 노골적으로 해 주니까 작가 입장에선 좋았고, 독자들도 그 위에서 바로 감응할 수 있으니까 좋았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총통 각하> 같은 것만 쓸 수는 없지 않나. 좋은 세상이 되어서 다른 더 재미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

배명훈은….

1978년 부산에서 태어나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05년 '스마트D'로 과학기술 창작문예 단편 부문 당선, 같은 해 환상 문학 웹진 <거울>에 '다이어트'를 발표하면서 필진으로 합류한 이래 다양한 지면을 통해 작품을 발표했다. 2010년 '안녕, 인공 존재!'로 문학동네 젊은 작가상을 수상했다. 단독 단행본으로 연작 소설 <타워>(2009), 소설집 <안녕, 인공 존재!>(2010), 동화집 <끼익끼익의 아주 중대한 임무>(2011), 장편 <신의 궤도>(2011), <은닉>(2012), 소설집 <총통 각하>(2012)가 있다.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