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대한민국에 복수의 칼을 꽂다!
50대, 대한민국에 복수의 칼을 꽂다!
[2012 '올해의 책'] 김상조의 <종횡무진 한국 경제>
50대, 대한민국에 복수의 칼을 꽂다!
'프레시안 books' 송년호(121호)는 '2012 올해의 책' 특집으로 꾸몄습니다. '프레시안 books'가 따로 '올해의 책'을 선정하는 대신, 1년간 필자·기획위원으로 참여한 12명이 각자의 '올해의 책'을 선정해 그 이유를 밝혔습니다. 다양한 분야, 다양한 장르의 이 책들을 2012년과 함께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50대 유권자의 자발적 선택, 왜?

대통령 선거에서 신승한 새누리당 국회의원들의 환호작약하는 모습을 보며 착잡한 마음이 든다. 애초부터 민주통합당의 문재인 후보가 이길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3차에 걸친 TV 토론에서 문재인 후보가 상대를 제압하는 모습을 보며 기대가 조금 부풀었었다. 그 기대는 허망하게 무너졌다.

왜 문재인 후보는 졌을까? 아니 거꾸로,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독재자의 딸' 박근혜를 자발적으로 선택했을까? 원인에 대한 많은 분석이 나오지만, 가장 주목되는 분석은 역시 90퍼센트 투표율을 보인 50대 유권자들의 투표 행위이다. 50대 투표자의 3분의 2가 박근혜를 선택했다.

그런데 50대가 누구인가? 흔히 5060 세대라고 50대와 60대를 하나로 묶어서 '보수 세대'라고 하는데, 그것은 틀린 분석이다. 50대의 역사적 경험, 문화적 정서 그리고 인생 경로는 바로 윗세대인 60대와 사뭇 다르다. 전쟁 직후인 1954년 이후에 태어난 50대와, 식민지 치하 또는 전쟁의 와중에서 태어난 60대는 다르다는 것이다.

흔히 노래방이나 통기타 맥주집의 간판에 '7080'이 붙어 있는 것처럼, 1970년대와 1980년대의 시기에 20대와 30대 청춘을 겪은 이들에게는 하나의 공통적인 심리적, 문화적 코드가 있다. 그들은 60대와 달리 뽕짝이 아닌 조영남, 윤형주의 세시봉 노래와 한대수, 송창식의 통기타 음악을 들으며 성장한 세대이다.

한대수의 '물 좀 주소', 김민기의 '아침 이슬'이 불리기 시작한 시점이 1970년대 초반부터이고, 하필이면 '행복의 나라로'라는 노래가 나온 시점이 1970년대 초반의 유신 독재 시작 즈음이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지금도 7080 노래방에 가면 50대들은 송창식의 '고래 사냥'과 이장희의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를 부른다. 많은 곡들이 박정희 유신 체제에서 억압을 당했던 노래이며 상당수는 비틀즈 음악처럼 서구 68 혁명의 영향 하에 있던 노래들이다.

50대는 1970년대의 폭압적인 박정희 유신 독재 치하에서 20대 청춘을 보낸 사람들이며 따라서 군부 독재가 무엇인지 인생에서 가장 뼈저리게 체험한 세대이다. 그런데 그런 그들이 이번 선거에서 민주주의보다 독재를 더 좋다고 했다고?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1980년대에 30대 직장인이 된 그들은 1987년의 6월 민주 항쟁 과정에서 '젊은 넥타이 부대'로 또는 '젊은 공장 노동자 부대'로 나서서 386 세대 학생들과 함께 수백만 명의 항쟁의 대열에 나섰던 이들이다.

요약하자면, 지금의 50대를 그 이전의 60대와 한 묶음으로 간주하면 큰 오류이며, 50대의 감수성은 오히려 현재 40대인 386 세대의 그것과 훨씬 가깝다. 7080 세대라는 말은 있어도, 6070 세대라는 말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50대의 다수가 왜 박근혜를 자발적으로 선택했을까? 간단히 말해, 그들이 직접 체험한 과거 김대중, 노무현 민주 정부 10년이 절망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40대였던 이들은 민주 정부가 시행한 이른바 '경제 민주화'와 함께 처음 등장한 명예 퇴직, 희망 퇴직, 정리 해고의 첫 희생자들이었다.

그렇게 밀려난 이들의 상당수가 퇴직금으로 통닭집, 피자집, 음식점을 차렸고, 그 중 다수가 파산하여 빈곤층이 되었다. 지금 은행 대출, 신용카드 대출을 못 막아 전전긍긍하는 신용 불량자 중에도 50대가 가장 많을 것이다.

경제 민주화를 위한 충실한 논리와 증거

무릇, 인간의 역사는 아이러니로 가득 있다. 도덕적으로 가장 인간적인 체제를 내세웠던 소련 등 동유럽 사회주의 체제는 가난과 폭압의 반도덕적 체제라는 비난을 뒤집어쓰고 무너져 버렸다. 반면에 도덕적으로 가장 비인간적인 체제라는 비난을 받았던 자본주의 체제는 살아남았고, 더구나 가장 악질적인 자본주의인 신자유주의 체제가 지금도(세계 금융 위기 이후에도) 건재하게 작동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가장 폭압적인 독재를 상징하는 인물의 딸이 과반수 국민들의 자발적 선택에 의해 다시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는 법설도 있다지만, "선은 선이요, 악은 악이로다"는 선악 이분법의 명제는 역사 속에서 관찰되지 않는다. 선이 악이 되고 악이 선이 되는, 역설과 모순이 뒤엉켜 있는 생생한 소용돌이의 현장이 역사이고, 그것이 역사의 변증법이다.

▲ <종횡무진 한국 경제>(김상조 지음, 오마이북 펴냄). ⓒ오마이북
여기 한 권의 책이 있다. <종횡무진 한국 경제>(김상조 지음, 오마이북 펴냄). 그 이름만큼이나 이 책은 한국 경제의 여러 측면을 종횡무진으로 누빈다. 즉 신자유주의 극복을 위한 구자유주의의 확립이라는 거대 담론적 이야기부터 시작해, 중소기업의 양극화 문제 해결과 금융 산업 분리의 해법에 이르는 미시 경제적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이 책은 다방면에 걸친 이야기를 펼쳐 나간다.

이 책이 올해 주목받은 이유는 우리 정치권과 선거판에서 지난 1년간 벌어진 이른바 '경제 민주화' 논란에서 이 책과 그 저자만큼 큰 역할을 한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책과 다른 저자들도 있었지만, 이 책만큼 탄탄한 논리와 통계적 증거를 가지고 충실하게 자기 의견을 제시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리고 탄탄한 논리적, 통계적 근거를 가지고 이야기하는 만큼, 이 책과 저자만큼 자신의 논리 전개에 있어 신중한 경우도 흔치 않다.

그 탄탄한 논리와 신중한 논리 전개 덕택에 이 책은 많은 깨어 있는 독자들을 설득시켰으며, 많은 정치권 인사들에게 애독서가 되었다. 특히, 선거로 시작하여 선거로 끝난 올해 2012년의 경우 이 책만큼 이른바 진보 정치권의 사고방식과 선거 전략에 큰 영향을 준 책은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이 책에서 전개된 내용들이 문재인 캠프와 안철수 캠프, 나아가 심상정 캠프가 발표한 경제 사회 정책과 공약들의 논리적 근간을 형성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그것만으로도 이 책은 올해의 책으로 선정될 충분한 가치가 있다.

경제 민주화는 왜 50대에게 외면받았나?

그만큼 이 책은 진보 정치권의 선거 패배에 일정 정도 기여한 책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저자는 신자유주의 극복을 위한 대안적 이념으로 구자유주의를 제시한다.

구자유주의를 상징하는 공약이 바로 문재인 캠프와 안철수 캠프가 가장 우선시한 정책이었던 '공정한 시장 질서'였다. 그리고 그것은 순환 출자 금지 등 문재인, 안철수 캠프의 (심상정, 이정희 캠프 역시 동일한데) 각종 재벌 규제 공약으로 표현되었다. 그리고 중소기업의 몰락을 초래하는 재벌들의 탐욕에 대한 이 책의 비판 역시 넓게 수용되었다.

그렇지만 50대 인생의 살림살이의 관점에서 경제 민주화와 재벌 개혁은 어떻게 다가올까? 그들이 1990년대 후반 이후 직접 체험한 대규모 명예 퇴직, 희망 퇴직, 정리 해고 등의 사태가 이 책에서 주장되는 경제 민주화, 재벌 개혁, 구자유주의의 확립과 무관하다고 할 수 있을까? 과연 그들이 이 책에서 주장되고 또한 문재인, 안철수, 이정희가 선거 전략으로 실행에 옮긴 경제 민주화와 재벌 개혁, 재벌 해체의 슬로건에 감동하여 마음이 움직였을까?

내가 관찰하기에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더구나, 앞으로 5년 뒤에 50줄에 접어들 지금의 40대, 즉 386 세대의 향후 인생살이가 과연 현재의 50대와 현격하게 다를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탄탄한 통계적 증거의 이면

인생은 경험과 체험의 연속이며, 정치인과 정당에 대한 신뢰는 그 체험을 바탕으로 형성된다. 그리고 사람들이 느끼는 체험은 학자들의 연구에서는 통계 수치로 나타난다. <종횡무진 한국 경제>는 학자가 아닌 일반 독자들을 위한 교양서답지 않게 수십 개에 이르는 통계표를 보여주면서 설득력 있는 논리를 전개해 나간다.

그렇지만. 모든 숫자와 통계는 그 자체 절대 진리가 아니다. 5000만 국민들이 살아가는 살림살이 경제를 모두 표현하려면 수십 개가 아니라 수천, 수십만 개의 통계표도로 모자랄 것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무엇을 통계표로 제시할 것인지 논리적 취사 선택이고, 따라서 논리의 전개 방식과 그 관점이다.

예컨대 저자는 책에서 각종 중소기업 관련 통계들을 제시하면서, 중소기업들이 힘들어하는 이유가 주로 재벌계 대기업들의 하청 단가 인하 때문이라는 논리를 전개한다. 그 통계표와 그 논리 전개만 보면 매우 설득력 있다. 그렇지만 실제의 경제 현실, 산업 현실로 한번 들어가 보자.

신문 지상에서 흔히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 같은 재벌계 대기업들이 중국, 인도, 미국, 유럽 등에 현지 공장을 세워 운영한다는 이야기를 읽는다. 실제 현실이 그렇다. 그런데 바로 그 신문 기사 옆에는 삼성전자나 현대차에 납품하는 1차 협력사(1차 하청)들의 대부분이 해외로 동반 진출하고 있다는 기사도 등장한다. 그것 역시 현실이다.

그렇다면, 이 책의 내용에 의문을 품어보자. 삼성전자, 현대차와 함께 해외로 동반 진출한 1차 협력사들의 매출과 수익이 과연 하청 단가 인하 때문에 늘어나지 않고 있을까? 하청 단가는 어디까지나 단가에 불과하다. 제품 단가가 깎이더라도 총매출액(해외 공장까지 포함한)이 늘어나게 되면 총수익도 늘어나는 것이 당연하다.

이 책의 통계표들은 그런데 하청 협력 업체들의 해외 공장들에서 발생한 매출은 전혀 반영하지 않는다. 그것은 당연한데, 회계 기준상, 해외 현지 법인은 법률상 독립 법인인 까닭에 한국 본사의 매출액으로 계상되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해외 현지 법인에서 발생한 이익 역시 한국 본사의 영업 이익으로는 잡히지 않고 (회계 기준상 지분법 평가에 의해) 영업 '외' 이익으로 잡힌다. 그런데 이 책의 통계들은 오직 중소기업의 '영업 이익'만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 영업 이익의 하락을 근거로 중소기업들이 대기업들로부터 수탈당한다고 말한다.

더 결정적인 오류도 있다. 재벌계 대기업에 납품하는 1차 하청 협력 업체의 상당수가 이미 법률상 중소기업이 아닌 대기업으로 성장해 있다. 즉 이미 글로벌 중견 기업(즉 이른바 히든 챔피언)으로 10년 전부터 성장한 있는 협력 업체들이 부지기수다. 그런데 이 책은 오직 (법률상) 중소기업으로 등록된 기업들의 통계만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김상조의 책과 그 통계에 등장하는 이들 회사는 누구일까? 대부분 재벌계 대기업과 직접 계약한 1차 하청 협력 업체가 아니라, 그 1차 하청 협력 업체와 법률적으로 계약한 2차 또는 3차 하청 협력 업체들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런데 이들 2차, 3차 하청 회사에서 발생하는 하청 단가 인하 문제를 재벌계 대기업들을 규제하여 (그것이 바로 재벌 규제인데) 해결하겠다? 그것은 초법적 발상이며, 김상조가 이 책에서 '구자유주의의 확립'과 관련하여 매우 강조하는 '법치주의의 확립'의 정신에도 어긋난다.

더 탄탄한 논리와 통계, 더 경제 현실에 근접한 경제 민주화

다시 50대의 변절(?)로 되돌아 가보자. 그들은 20대 청춘을 유신 독재와 동시에 통기타의 낭만으로 시작한 이들이다. 30대 시절에는 1987년 6월 항쟁과 그 이후의 민주화 물결 속에서 사무직 넥타이 부대로 또는 현장 노동자 부대로 투쟁에 나섰던 이들이다. 그런데 1998년 이후 출범한 민주 정부들은 그들을 '토사구팽'하였다.

그들의 살림살이는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유린되었다. 경제 민주화와 재벌 개혁의 이면인 대규모 구조 조정 과정에서 명예 퇴직당하고 퇴출당한 그들에게 우리 사회는 '사오정'이라는 이름도 붙여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30대였던 386 세대는 경제 민주화와 재벌 개혁에 열광했다. 기업의 인력 및 사업 구조 조정과 함께 진행된 인사 제도 재편(팀제 도입)과 임금 제도 재편(능력급 및 연봉제 도입) 등에 앞장서면서 미국식 기업 문화를 도입하는데 열심이었던 것도 386 세대였다. 그 '경제 민주화' 과정에서 당시 40대, 50대였던 인물들은 '사오정'으로 낙인찍혀 쓸쓸히 퇴출당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10년이 흐른 이번 선거에서, 이제는 50~60대에 접어든 된 왕년의 '사오정'이 자신들이 당한 경제 민주화에 정치적으로 복수한다.

그렇다면, 그 50~60대의 정치적 행위를 우리가 도덕적으로 비난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역으로, 도덕의 이름으로 밥그릇을 빼앗은 행위는 과연 도덕적이었을까? 더구나 그 경우 "도덕이 밥 먹여주냐?", "민주주의가 밥 먹여주냐"는 반박에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민주주의와 경제 민주화의 이름으로 독재와 경제 독재(재벌과 모피아)를 비판하는 진보계 인사들을 "현실을 잘 모르는 도덕군자"라고 비판하는 보통 사람들이 많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보통 사람들을 "도덕이 모자라는 저열한 욕망의 덩어리"라고 비판하는 것은 그야말로 도덕군자들의 잘난 엘리트주의일 뿐이다.

그 보통 사람들의 바람은 소박하다. 즉 자신들의 인생살이, 살림살이도 풍요롭고 여유로우며 안정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이 바람을 학자들은 '실질적 자유'(형식적, 절차적 자유가 아닌)라고 말한다. 그에 반해 지금까지 진보 정치권이 주장해온 민주주의와 경제 민주화는 여전히 구자유주의의 패러다임에 머무르고 있다. 즉 실질적 자유가 아닌 형식적, 절차적 자유에 불과하다.

박정희의 딸 박근혜 대통령의 시대를 맞아 다시금 "나치 독재에 맞서 투쟁한 구자유주의"의 긍정성에 대한 목소리가 앞으로 높아질 것이다. 그렇지만 구자유주의로는 5년 뒤에 희망이 없다. 왜냐하면 지금부터라도 구자유주의를 넘어서는 새로운 민주주의 즉 실질적 민주주의와 실질적 자유를 보장하는 새로운 차원의 경제 민주주의를 이야기하지 않는 한, 5060 세대들은- 더 나아가 현재의 40대마저-민주주의와 경제 민주화를 외면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대장정의 정신적 출발은 올해의 책 <종횡무진 한국 경제>에 대한 비판적 성찰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2030 세대만이 아니라 5060 세대까지 포함한 모든 세대가 실제로 자신들의 살림살이 속에서 체험하고 있는 경제 현실에 대하여 더 탄탄한 논리 전개와 통계적 증거를 통해 올바르게 이해하고 파악해 나가는 것은 실질적 민주주의 즉 '밥 먹여주는 민주주의'를 위한 정신적 토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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