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 마피아' 선전대, <조선일보>의 커밍아웃

[기자의 눈] 핵 마피아 견제가 어려운 진짜 이유

강양구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06.14 10: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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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조선일보>다. 거침이 없다.

<조선일보>는 6월 13일자 1면에 실린 "새 원자력 안전委員에 反원전 운동가 포함 논란"(이영완 기자) 기사에서 "정부 수립 이후 처음으로 원자력 규제 기관에 반원전 인사가 들어간다"고 보도했다. "엄정한 과학적 근거로 이뤄져야 할 원전 문제가 정치 논쟁으로 변질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고 엄포를 놓았다.

그러나 평소 '1등 신문'을 자처하는 이 신문의 해당 기사는 문제투성이다. 우선 "원자력 규제 기관에 반원전 인사"가 들어가는 것이 진짜 논란이 되고 있는지조차 의문이다. 유일한 근거는 "원전 전문가들"이 했다는 "반원전 인사들이 들어오면서 원안위가 여야 정치 투쟁의 장이 될 우려가 크다"는 익명의 인용뿐이다.

이런 우려를 표명한 '원전 전문가들'이 도대체 누구인가? 만약 핵발전소 스캔들로 궁지에 몰린 특정 대학 원자핵공학과 출신이나 혹은 한국수력원자력 관계자라면, 이 기사는 전형적인 이른바 '핵 마피아'의 '청부(請負) 기사'다. 혹은 오랫동안 산업계, 과학계를 취재한 해당 기자의 개인적인 우려라면 있어서는 안 될 '사기(詐欺) 기사'다.

ⓒchosun.com

반핵 인사의 원자력안전위원회 참여는 옳다

십분 양보해 이 신문의 보도대로 일부 "원전 전문가들" 혹은 "정부 관계자들"이 "반원전 인사들"의 원자력안전위원회 참여를 정말로 걱정하고 있다고 치자. 그런데 그게 왜 문제인가?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원자력의 생산과 이용에 따른 방사선 재해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고, 공공의 안전과 환경 보전에 이바지"하고자 만들어졌다. 그러나 지난 2011년 10월 출범한 강창순 초대 위원장을 포함한 총 9명의 1기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이런 역할을 제대로 못했다. 최근의 핵발전소 불량 부품 스캔들은 단적인 증거다.

그럴 만도 했다. <조선일보>의 보도만 보면 1기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 9인이 핵 발전에 관한 "과학적 근거"를 판단할 대단한 능력이라도 가진 것처럼 보인다. 현실은 정반대다. 1기 위원의 면면을 보면 <중앙일보> 기자, 정치외교학과 교수, 변호사, 전직 청와대 환경비서관 등이다. 이들이 도대체 "과학적 근거"를 판단할 어떤 '전문성'을 가지고 있었는지 의문이다.

더구나 원자력안전위원에게 중요한 것은 전문성보다는 진정성이다. 핵발전소로 상징되는 정부의 핵 정책을 견제할 의지가 없다면 1기 원자력안전위원회가 그랬듯이 '거수기' 역할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조선일보>도 이날 다른 면(A6)의 기사에서는 "원자력안전위원회의 규제 업무는 원자력에 대한 전문성도 필요한 일이지면 기본적으로 견제와 균형이라는 행정 업무"라고 지적했다.

사실상 거수기 노릇만 했던 1기 원자력안전위원회의 문제를 극복하고자 2기부터는 국회가 4명을 추천하게 되었다. 민주당은 <조선일보>가 "반원전 인사"로 규정한 김익중(52) 동국대학교 교수(의과 대학)와 김혜정(50)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위원장을 야당 몫으로 추천했다. 이 둘은 능력과 의지 면에서 1기 위원에 비할 바가 아니다.

김익중 교수는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이 들어서는 경주에서 오랫동안 반핵 운동을 해왔을 뿐만 아니라, 지난 대선 때는 민주당 문재인 후보의 에너지 정책 수립에도 깊숙이 관여 했다. 박근혜 정부의 에너지 정책에 비판적인 이들을 대표해, 핵 정책을 감시할 자격이 충분하다.

김혜정 위원장 역시 자타가 공인하는 에너지 전문가다. 1988년부터 25년간 핵발전소의 위험을 감시하고, 핵발전소의 대안을 찾는 운동에 헌신해온 환경 운동가가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위원 자격이 없다면 도대체 누가 자격이 된단 말인가? 1기 때 그랬던 것처럼 <조선일보> 기자에게 한 자리를 줘야 했을까?

원조 핵 마피아가 감시자로

원자력안전위원회의 목적을 염두에 두면 오히려 논란의 진원지는 새누리당 몫 추천 인사다. 새누리당은 임창생(73) 전 한국원자력연구소 소장과 나성호(62) 전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본부장을 추천했다.

일단 나성호 전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본부장은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으로서 손색이 없다. 그는 오랫동안 핵발전소,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 방사성 물질 안전 문제를 담당해 온 해당 분야 최고의 전문가다. 그는 현재 유엔 방사선과학위원회 한국 대표로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의 평가 그룹 리더로도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임창생 전 한국원자력연구소 소장(1991~1993년)의 선정을 두고는 논란이 불가피하다. 그는 박정희, 전두환 정부에서 핵에너지 육성 과정에 깊숙이 관여했던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최근 핵 마피아의 핵심으로 지목받는 서울대학교 원자핵공학과 1회 졸업생인 임 전 소장은 현재의 한국형 원자로(경수로) 개발을 주도한 핵 산업계의 핵심 원로이다.

특히 임창생 전 소장은 그간 핵무기의 원료인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있는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의 필요성을 공공연하게 주장해 왔다. 이와 관련해 1970년대 중반 박정희 정부가 미국의 핵발전소 제조업체 웨스팅하우스에서 일하던 임 전 소장을 영입한 이유가 핵폭탄 제조를 위한 플루토늄 추출이 목적이었다는 핵 산업계 원로의 증언도 기억하자. (☞관련 기사 : 재처리의 '재'字도 꺼내지 말라)

하지만 정작 <조선일보>는 이런 경력의 임창생 전 소장이 핵 발전 규제 기구인 원자력안전위원회에 참여하는 것에는 침묵했다. 이날 이 신문이 다른 면(A6면)에서 "원자력 마피아"를 거론하면서 강창순 전 위원장에 이어서 서울대학교 원자핵공학과 출신의 이은철 위원장이 뒤를 이은 것을 문제 삼은 것과는 앞뒤가 안 맞는 모습이다.

한국 언론, 핵 마피아의 선전대

핵발전소 불량 부품 스캔들 이후에 반핵 운동 진영에서 통용되던 '핵 마피아' 혹은 '원자력 마피아'가 <조선일보>를 비롯한 전 언론의 머리기사를 장식했다.

그러나 그렇게 핵 마피아에 핏대를 올리던 그 언론의 모습은 달랐던가? 수십 년간 그런 핵 마피아가 활개를 칠 수 있었던 데는, 그들과 엉겨 붙어서 핵발전소 칭송에 앞장섰던 언론의 역할이 컸다. 사실상 언론 역시 핵 마피아의 일원으로서 일종이 선전대 역할을 해왔던 것이다.

물론 그 대가는 달았다. 핵 마피아의 선전대 역할을 잘한 언론에게는 광고와 협찬이 '당근'으로 주어졌다. 핵 마피아가 원하는 대로 펜대를 잘 놀린 기자에게는 "아랍에미리트 핵발전소 수주"와 같은 특종 또는 각종 공짜 해외 연수나 취재(외유) 혹은 자문과 같은 각종 명목을 내세운 용돈이 주어졌다.

<조선일보>는 이런 핵 마피아의 선전대 역할로부터 자유로웠나?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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